가장 존경하는 투자자이자 경영 구루는 워런 버핏이다. 어려운 것을 간단하게 설명해낼 수 있는 그의 명쾌함을 좋아한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도 혹시 버핏을 접하게 된다면 사랑에 빠지리라 생각한다. 무엇보다 재미있고, 해학적이며, 기존의 지식과 학계, 경영 전문가에 거침없이 공격적이기 때문이다. 생각보다 버핏에 관해 잘 모르는 사람이 많다. 가치 투자자의 창시자로 무조건 싸게 사서 오래 들고 존버한다는 식으로만 안다. 그래서 지루하게 여기고 아예 읽어볼 생각조차 않는 것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그에게 1964년에 300만 원을 투자했으면 현재 그 돈은 600억 원이 되었을 것이다. 물론 그 돈으로 강남땅을 사서 끝까지 버텼어도 100억 원이 되었을 것이다. 레버리지까지 활용했으면 버핏과 비슷한 수익이 되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더구나 버핏은 수많은 주주에게 매우 안정적인 수익을 주었고, 지속 가능한 지혜로 그것을 달성했다.
맨손으로 엄청난 부자가 되었던 버핏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계속 자산을 불려내 결국 세계 최고의 부자 대열에 올랐다. 삼성전자의 두 배 수준의 재벌 그룹을 만들었으며, 그럼에도 최소한의 인력으로 그 체제를 유지한다. 윤리적이고 재밌으며 겸허해 어쩌면 자본주의 역사상 대중에게 가장 보편적으로 사랑 받는 떼부자가 아닌가 한다.
그리고 아낌없이 자신의 지혜를 퍼준다. 여러분이 그의 이야기를 듣지 않을 것을 알고, 또 극소수의 사람이 자신의 철학을 녹여내어 큰돈을 벌 것을 알 것이다. 그의 추종자들은 매년 버핏의 회사 ‘버크셔 헤서웨이’의 주총에 몰려든다. 86년에 500명을 넘겨 이미 일반 주주총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 하는데 2017년에는 4만 명을 넘겼다.
주주총회에서 워런 버핏과 그의 파트너인 찰리 멍거 부회장에게 평균 6시간의 질의응답이 쏟아지고, 흡사 한 편의 명강의를 보기 위해 세계 최고의 투자자들이 모여든다. 그의 글과 영상을 직접 보기를 추천하지만, 투자자의 입장에서 그의 노하우 몇 가지를 요약해서 설명하려 한다. 공감되는 부분이 있으면 꼭 버핏을 공부해보시라. 부동산 투자자도, 기업가도, 초단타 트레이더도, 알고리즘 트레이더도, 선생님도, 그에게서 배울 바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버핏은 기업을 경영하는 입장에서 투자한다. 달리 말하면 주가를 보고 시세를 가지고 노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한다는 것이다. 기업 그 자체의 의미를 보고, 그 문화를 보고, 그 경영진을 보고, 그 상품을 보고, 그 브랜드를 본다. 나도 창업을 하고 나서야 이 말의 뜻을 잘 이해하게 되었다. 창업자는 회사를 아무렇게나 사고팔 수가 없다. 회사를 키우고 수익을 발생시켜야만 한다. 버핏도 그런 회사를 알아보고 ‘수집’하는 관점에서만 투자를 진행한다.
그러니 그가 하지 않는 행동들도 명백하다. 그는 시장도 보지 않고 개별주가도 보지 않으며 경제 상황을 예측하지도 않는다. 어쩌면 포기했다는 말이 더 정확할 수도 있다. 여하튼 그는 더 많은 돈을 벌기 위해서라도 그런 것에 일체의 시간을 투입하지 않는다.
주식을 산다는 것은 친구의 가게의 수익의 일부를 받을 권리를 산다는 것이다. 한번 사면 팔기 어렵다고 가정하면 본질에 집중하게 된다. 버핏은 친구네 치킨집을 평가하듯이, 친구네 문방구를 평가하듯이, 실제로 돈을 얼마나 벌고 앞으로 얼마나 볼지 본다. 거기서 세 가지 중요한 점이 나온다.
첫째, 인수할 가게의 그 ‘친구’가 얼마나 경영을 잘하는지 본다.
이 안목은 일반 투자자들이 갖추기 어려운 안목이다. 경영을 해본 사람만이 훌륭한 경영자를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그 평가가 생각보다 쉽다고 버핏은 주장하지만, 그건 ‘금융공학’ 따위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지 정말로 아주 쉽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경영자의 ‘잠재력’을 보지 말고 실제로 쌓아온 ‘실적’을 보면 그의 재주를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업적을 쌓았는지 보면 미래에도 그것이 유지될지 알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도 엄청난 경영자가 20–30명 존재한다. 어떤 위기에도 좋은 의사결정을 이어왔고, 좋은 조직을 꾸렸고, 좋은 브랜드를 만들어왔다. 이런 능력자를 찾는 데 사람들은 생각보다 관심이 없다. 직원들도 관심이 없고, 주주들도 관심이 없고, 애널리스트들도 관심이 없다. 버핏은 여기에 주목했다.
둘째, 브랜드를 고려한다.
흔히 버핏의 가치투자에서 중요한 것을 ‘해자’라고 한다. 성을 지키기 위해 파 놓은 호수 말이다. 사업에서 해자란 경쟁자에게 공격당하지 않을 어떤 사업모델이나 수익구조이다. 해자 중에서 리테일에서 특히 중요한 것은 ‘브랜드’이다. 브랜드는 일반인들이 잘 이해 못 하는 경쟁력인데, 매우 심리학적인 영역이다.
우리가 ‘탄산음료’라는 단어를 들으면 가장 먼저 생각날 브랜드는 무엇일까? 압도적으로 코카콜라다. 엠티에서 술에 취해 정신이 혼미할 때 회비를 손에 쥐여주며 라면을 사 오라고 하면 무슨 라면을 사 올까? 압도적으로 신라면을 사 온다. 정신없이 놀다가 배달 음식을 시키려고 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앱은 어딜까? 압도적으로 ‘배달의 민족’일 것이다. 사람들이 극도로 집중하지 않은 상황에서는 돈을 어떻게 쓰는가. 당연히 먼저 떠오르는 것을 구매한다.
그로 인해 브랜드 간의 매출 차이는 어마어마하게 발생한다. 더욱이 마케팅 비용의 감소로 인해 수익도 많이 발생한다. 머리속을 지배하는 것이 바로 ‘브랜드’이다. 버핏은 압도적인 1등의 브랜드에 가치를 준다. 멍 때리는 소비자들이 습관적으로 구매할 수밖에 없는 물건들을 만드는 회사를 좋아한다.
셋째, 저렴하게 산다.
오직 이때만 주가를 본다. 내가 평가한 그 회사의 향후 수익을 생각건대, 지금 이 회사를 얼마에 사면 적정할까 계산한다. 버핏이 MBA를 가르친다면 가르치고 싶은 것은 오직 두 가지라고 했다. 1) 비즈니스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가, 2) 시장 변동성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이렇게 가르치고 나면 수업은 끝날 것이라 했다. 비즈니스는 향후에 벌어들일 수익을 계산하면 끝이다. 그 안에는 브랜드와 경영진의 능력이 물론 녹아 있다. 세상의 변화도 녹아 있을 수 있다.
시장 변동성에 대해서는 ‘주가는 당신에게 정보를 주는 존재가 아니라 당신이 이용해 먹어야 하는 대상이다’라고 수십 년에 걸쳐 강조한다. 즉 주가가 오른다는 것이 좋은 시그널이 아니라, 주가가 빠져서 내가 헐값에 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행동을 직접적으로 살펴보면 또 네 가지를 배울 수 있다.
넷째, 엄청나게 읽는다.
11살 때는 동네 도서관에서 투자에 관한 책을 다 읽었다고 할 정도다. 어떤 것은 두 번 읽었다고 한다. 눈에 잡히는 건 모두 읽는다. 대부분 투자에 관한 것들이다. 일과를 설명해달라는 이야기에 ‘종일 읽고, 가끔 전화 통화만 좀 한다’고 했다. 월 스트리트 저널, 포천지, 책, 기업 연간 보고서를 중심으로 본다. 반면 애널리스트 리포트 따위는 절대로 읽지 않는다. 공개된 정보를 읽지만 결국 남보다 압도적으로 많이 알기에 남보다 강력하게 행동할 수 있다. 여간해선 따라가기 쉽지 않지만, 반대로 그를 따라 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읽고 또 읽자.
다섯째, 어려운 것은 화끈하게 포기한다.
그가 똑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엄청나게 잘 아는 영역을 제외한 영역에 과도한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버핏만큼 공부를 많이 하는 사람이 이렇게 이야기할 정도라면 시사하는 바가 있다. 그와 찰리 멍거는 모든 투자 대상에 대해 ‘들어간다 / 만다 / 너무 어렵다 (in / out / too hard)’ 로 세 분류를 한다고 한다. 버핏은 2m짜리 장애물을 뛰어넘지 말고 30cm짜리 장애물만 찾아다니는 것을 추천한다.
난해하고 화려하며 불확실한 것에 투자하지 말고, 자신이 경쟁적 강점을 지닌 영역을 정확히 이해하고 그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성공 요인을 설명하며 ‘가장 잘한 투자는 남들과 비슷한 수준의 수익을 냈지만 잃을 때 훨씬 적게 잃었다’고 누차 이야기한다. 전설이 되어버린 그의 명언으로 ‘첫째는 잃지 말 것, 둘째는 첫째 룰을 기억할 것’이라고 하지 않는가. 잃지 않기 위해 쏟는 에너지가 돈을 더 벌기 위해 쓰는 에너지보다 훨씬 생산적이다.
여섯째, 좋은 파트너를 둔다.
버핏은 찰리 멍거와 함께 책을 읽고 아이디어를 나누며 함께 성장해왔다. 멍거는 버핏보다 7세 많다. 변호사로 살아오다가 투자 회사를 차렸고, 이후 버핏의 파트너가 되었다. 둘의 시너지가 대단하다. 버핏과 멍거는 매우 명석한 사람들이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가장 똑똑한 사람들은 아니다. 심지어 어떤 기자가 멍거에게 당신은 이만한 부를 이룰 만큼 유난히 더 똑똑한 것 같진 않은데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은 적도 있다고 한다.
버핏과 멍거의 눈에는 세상에 똑똑하지만 멍청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그래서 지능보다 성품이나 자세가 더 중요하다고 한다. 돈에 대한 자세, 그리고 원칙을 가지고 수익을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 같은 것 말이다. 괜히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상엔 헛똑똑이가 넘쳐난다. 그들을 피해 진짜 똑똑이가 되는 법은 따로 있다. 그런 의미에서 버핏은 우리 모두에게 희망을 주는 큰형처럼, 헛똑똑이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게 이끌어주는 것 같다.
마지막, 스스로 반성을 많이 한다.
반성을 통해 새롭게 배운다. 멍거는 버핏을 ‘배우는 기계(learning machine)’라고 부르기도 한다. 버핏은 ‘내가 놓친 기회로 주주들에게 수조 원의 손실을 입혀왔다’고 이야기한다. 그만큼 철저하게 자신의 실수를 인정하고 통탄하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차라리 내 실수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나면 그것을 합리화시키기 위한 변명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다. 이것이 메타 인지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버핏의 해맑은 표정과 단순명쾌한 명언들을 보면 그가 새삼 얼마나 똑똑한지 잊어버릴 때가 많다. 그러니 단순히 주식을 싸게 산다거나 장기 투자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그를 100% 모방하는 게 생각보다 쉽지는 않다. 다만 생각만큼 어렵지도 않을 것이다. 예컨대 박사 학위를 두 개 따는 것보다 가치 투자로 부자가 되는 것이 더 쉬운 일임은 확실하다. 다만 학사도 따지 않을 노력으로 그의 모든 것을 흉내 낼 순 없다.
그의 경영에는 치밀한 장치가 많고 초인적인 인내심과 분석력을 통해 달성된 성과도 많다. 혀를 내두르게 만드는 안정적 레버리지를 창출했는가 하면, 브랜드와 평판의 힘을 극대화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주식 투자를 통해 장기적 성과를 얻을 수 있는 유일한 왕도를 가르치는 사람이 버핏이다. 투기가 아닌 사업으로서의 투자, 1억으로 치고받는 것이 아니라 수십억·수백억을 태울 수 있는 투자 말이다.
원문: 불릴레오 천영록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