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과 직장인이 커피를 마시는 이유는 무엇일까?
맛과 향, 혹은 분위기 때문에? 아니다. 살기 위해 마신다. 아메리카노(Americano). 그것은 졸음을 쫓고 집중을 불러주는 현대사회의 퇴마사다. 누군가는 공부 때문에, 또 누군가는 밀린 업무 때문에 그분을 찾게 된다. 덕분에 편의점과 마트의 캔커피들은 컵커피로, 그것도 모자라 페트병에 담기기 시작했다. 이 정도 추세라면 아메리카노가 정수기 물통(?)에 담길지도 몰라.
누군가는 블루보틀에 가기 위해 4시간 30분을 기다리지만, 그 시간에 누군가는 사무실에서 아메리카노를 3병 내리 마시고도 카페인 부족을 외친다. 그게 나다. 의자에서 일어날 시간도 없어. 마감이, 마감이 다가온다고! 오늘 마시즘은 최고의 노동 음료, 그중에서도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찾기 위한 연구다. 아마 이 노동음료만 있었다면 장영실 선생님은 자격루가 아니라 롤렉스를 만들었을걸?
1. 도비들을 위한 대용량 아메리카노 찾기
커피믹스를 비교 리뷰했던 마시즘. 이번에는 아메리카노다. 대용량의 기준은 300ml으로 잡고 음료를 찾아 떠났다. 조지아 크래프트나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정도나 있겠거니 생각했던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장바구니에 담다 보니 15종이나 된 것은 함정. 하지만 나의 카드에는 자… 자비가 없지(아마).
실험 음료
리스트는 다음과 같다(가나다순으로).
-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 마스터 블랙,
- 서울우유 스페셜티 디카페인,
- 스타벅스 콜드브루 블랙,
- 아카페라 사이즈업 아메리카노,
- 유어스 카페25 블랙,
- 쟈뎅 시그니쳐 아메리카노 블랙,
- 조지아 크래프트 블랙,
- 카페베네 블랙아이스 아메리카노,
-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블랙,
-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HOT/COOL,
- 커피빈 아이스커피,
- 티오피 심플리스무스 블랙,
- 티오피 더 블랙 Tall,
-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킬링샷,
- 헤이루 아이스 아메리카노.
연말에 마감 거리만큼 카페인이 쌓인 기분인걸?
1-1. 대용량 아메리카노에도 취향과 평가 기준은 존재한다
대용량 아메리카노에도 각자의 취향이 존재한다. 다년간의 야자 생활, 취준 생활, 야근 생활을 거친 마시즘은 사람들이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찾는 기준을 세 가지로 같이 나누고 비교 리뷰를 진행했다.
- 외관: 손 닿는 대로 마시는 타입(용량, 그립감, 무게중심)
- 스펙: 손익분기를 따지는 타입(카페인, 칼로리)
- 맛: 곧 죽어도 맛을 원하는 타입(쓴맛, 신맛, 깔끔함 등)
외관과 스펙의 경우는 동일한 조건에서 실험하거나, 적힌 정보를 기준으로 했다. 맛은 주관적인 영역이므로 블라인드 테스트를 거쳤다. 더 정확한 평가를 위해 마시즘 요원들에게도 크로스 테스트를 부탁했다. 제야의 종소리를 듣지 않고 30대를 맞이할 거라 말하던 후배는 아메리카노를 몽땅 마시고 방금 집에 갔다. 미안.
2. 외관: 손에 닿는 대로 마신다
우리는 대부분 손에 잡히는 대로 페트병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맞을 것이다. 대용량 아메리카노의 스펙을 장 보듯이 꼼꼼히 볼 시간이 있었다면 카페를 가거나 에티오피아 커피농장(?)에 갔겠지. 이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는 외적인 요소들이 더욱 많은 만족감을 줄 수 있다. 노동음료는 말이야. 척 보면 안다고!
2-1. 용량
‘용량’은 페트병 아메리카노를 선택하는 최초의 기준이다. 매일 같이 작은 캔커피로 카페인을 채우다간 책상이 업무공간이 아닌 재활용 수거함(캔)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 병을 서서 넉넉하게 마실 수 있는 대용량의 아메리카노에는 ‘쟈뎅 시그니처 아메리카노 블랙(신장 25cm)’이 뽑혔다. 무려 1.1L의 아메리카노는 약수통에서 물을 떠 오는 느낌을 들게 만들어준다. 오직 하승진 선수만이 이 음료를 가지고 광고를 찍을 수 있을 것 같은데.
2-2. 그립감
‘쟈뎅 시그니처 아메리카노 블랙’은 용량은 크지만 ‘그립감’에서는 낭패다. 무겁고 한 손으로 들으라니 차라리 피트니스 클럽을 1개월 다니고 말겠다는 생각이 든다. 반대로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 마스터 블랙’은 페트병에 홈이 깊고 많이 파여있어 잡았을 때 손에 착 감긴다. 거의 클라이밍을 하는 느낌이랄까?
알루미늄 병이지만 홈을 파놓은 ‘티오피 더 블랙 Tall’와 돌기를 만들어 놓은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킬링샷’도 그립감 부분에서는 좋은 평을 받았다. 이 정도면 잡고 마실만 하지. 음료는 말이야. 그립감이야!
2-3. 무게중심
누군가가 책상 위의 커피를 깜짝 건들 때, 일을 하다가 순간 음료에 엘보 어택을 날릴 때 페트병 커피의 균형감각은 굉장히 중요하다. 이를 실험해보기 위해 병들을 세워놓고 공을 굴려봤다.
… 굴리지 마라. 진격의 거인 아니 쟈뎅이 아닌 이상 모두 픽픽 쓰러지고 말았다. 음료는 엎어지지 않게 조심히 마시자.
3. 스펙: 커피에는 손익분기가 있다
사무적으로 아메리카노를 대하자면 우리가 이 녀석에게 원하는 것은 ‘카페인’이다. 음료에는 이력서처럼 성분표와 가격이 붙어있기 때문에 이를 보고 수치만으로도 아메리카노를 고를 수 있다. 마시즘에서는 이를 카페인, 칼로리로 나누어 비교했다.
3-1. 카페인
마시즘에는 덕력이, 나루토에는 차크라가 있다면, 커피에게는 카페인이 있다. ‘커피빈 아이스커피’는 100ml당 60.6mg의 고카페인이 들어있었다. 동급 최강이라는 ‘스누피 커피우유’의 100ml당 카페인 47.4mg을 뛰어넘는 수준이다. 한 병의 용량도 1L라서 다 마시면 606mg의 카페인을 제공받는다.
반대로‘서울우유 스페셜티 디카페인’은 측정 불가다. 디카페인이라서. 아니 대용량으로 아메리카노를 만들었는데 디카페인이라니. 아기공룡 둘리에서 나온 비눗방울 찐빵 같은 건가.
3-2. 칼로리
아메리카노들은 전반적으로 칼로리가 낮게 나오기 때문에 다이어터들에게 사랑을 받는 음료다. 그중 ‘카페베네 블랙아이스 아메리카노’는 무설탕을 기반으로 칼로리를 0으로 만들었다. ‘티오피 심플리 스무스 블랙’(100ml당 1.7Kcal)과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킬링샷(100ml당 2.2Kcal)’도 낮은 칼로리가 나왔다.
하지만 아는가. ‘맛있으면 0칼로리’라는 만고불변의 진리를. 이 모든 스펙을 뛰어넘을 단계인 ‘맛’으로 넘어갈 시간이다.
4. 맛: 맛있으니까 마신다
앞서 말했다시피 맛 평가는 블라인드 테스트로 진행했다. 콘텐츠에서는 단순하게 나눴지만 실제로는 커핑(Cupping) 폼을 참고해 향미와 풍미, 후미, 질감, 무게감, 조화 등을 체크해 보았다. 더 객관적인 수치를 반영하기 위해 마시즘 요원들을 투입해 한 바퀴씩 마셔보게(?) 했다.
비록 요원들에게는 엄격하지만, 독자에게는 친절하고 싶은 마시즘. 어떤 대용량 아메리카노의 맛이 좋다가 아닌 취향에 따라 고를 수 있는 기준을 마련하기로 했다. 쓴맛과 신맛(산미), 마신 후의 깔끔함과 전체적인 균형감으로 나눠서 구분해보았다.
4-1. 쓴맛
- 유어스 카페25 블랙: 쓴 놈들도 혀를 내두를 쓴 놈
- 스타벅스 콜드브루 블랙: 스타벅스다운 강배전
- 커피빈 아이스커피: 씬스틸러 같은 크기와 맛
우리가 기존에 알던 아메리카노(블랙커피)는 커피를 볶은 고소한 향과 씁쓸한 느낌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런 의미에서 ‘유어스 카페 25 블랙’은 너무 볶았고, 강하게 세다는 특징을 남겼다. ‘스타벅스 콜드브루 블랙’ 역시 스타벅스 특유의 씁쓸함이 났다.
4-2. 신맛(산미)
- 커피빈 아이스커피: 쓰기도 했지만, 시기도 하단다
-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블랙: 은은한 산미가 난다
-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 마스터 블랙: 숨은 산미를 찾아서
재미있었던 것은 신맛, 즉 ‘산미’에서 차이가 많이 났다. ‘커피빈 아이스커피’는 캐릭터가 뚜렷할 정도로 산미가 강했다. 물론 씁쓸한 맛도 강했기 때문에 전체적인 조화가 있었다. 의외의 발견은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블랙’과 ‘맥스웰하우스 콜롬비아나 마스터 블랙’이 산미가 제법 있었다는 점이었다.
반대로 ‘티오피 더 블랙 Tall’, ‘조지아 크래프트 블랙’, ‘유어스 카페25 블랙’에서는 산미를 찾아보긴 힘들었다. 산미는 애호가들이 좋아하는 기준이기도 하고, 사람에 따라 취향에 따라 갈리니 이쪽을 기준으로 마셔도 재미있을 듯하다.
4-3. 깔끔함
-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킬링 샷: 내가 뭘 마셨지? 인셉션하는 깔끔함
- 서울우유 스페셜티 디카페인: 카페인도 연하지만, 맛도 연하다고!
- 카페베네 블랙아이스 아메리카노: 이게 다 설탕을 없애서입니다
이곳도 취향에 따라 많이 갈리는 부분이다. 개인적으로 스위트 아메리카노가 아닌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이유는 마신 후에 텁텁함이나 달달함 없이 깔끔하게 떨어졌으면 하는 기분에서 마시게 된다. 그래야 또 마시고, 오래 마실 수 있잖아.
그런 의미에서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킬링샷’은 부드러운 첫맛, 강렬한 중간맛이 나는데 다 넘기고 난 후의 향미를 모조리 깔끔하게 없앴다. 킬링샷이란 이름은 커피계의 청부업자를 말하는 것이었을까? 덕분에 물처럼 마실 수 있을 것 같은 녀석이었다. 반대로 ‘티오피 심플리 스무스 블랙’은 로스팅 향이 독특하고 강렬하기 때문에 마신 후에도 계속 향미가 남아돌았다.
4-4. 균형감
- 칸타타 콘트라베이스: 다른 대용량 아메리카노들의 맛의 기준점
-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킬링샷: 맛을 섬세하게 잡아서 균형감이 좋다
- 스타벅스 콜드브루 블랙: 가리고 마셔도 스타벅스임이 느껴진다
마지막으로 전체적인 요소의 균형감을 보았다. 가장 대중적인 ‘칸타타 콘트라베이스’의 맛을 중심으로 밸런스가 좋은 타입과 특징이 살아있는 타입으로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나누어 보았다.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킬링샷’은 전체적으로 섬세하다는 느낌이다. 이름은 거친데 요소요소가 튀지 않게 만들었다. 반대로 스타벅스 콜드브루 블랙은 블라인드 테스트로 마셨음에도 맞출 수 있을 정도로 캐릭터가 있었다. 앞선 킬링샷이 에스프레소 추출과 드립 추출을 섞어 만들었다면 이 녀석은 콜드브루 외길을 걷는다. 그것도 강배전. 두 가지 모두 다 장점이 다른 아메리카노임이 느껴졌다.
5. 연구 결과: 어떤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게 좋을까?
한 잔의 아메리카노를 평가할 때에는 많은 고려사항이 들어간다. 다 똑같을 것만 같았던 대용량 아메리카노의 경우도 비교해서 마셔보니 다른 점이 많았다. 마시즘 요원들은 각각 한 가지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뽑았다. 취향 차이가 있기도 했지만, 자신의 생활에 맞춘 선택이라고 할까?
5-1. 맛은 상관없다 오직 밤샘러 추천
오직 밤샘만을 위한 카페인이 필요하다면 ‘조지아 크래프트 블랙’을 추천한다. 카페인은 ‘커피빈 아메리카노’가 더 많지만 가까이 구하기 힘들어서 탈락. 물론 여기에서 한 발자국만 더 카페인을 받고 싶다면 에너지 드링크와 스누피가 기다리겠지(…)
5-2. 열일을 인증하는 인스타그래머 추천
때로는 고된 작업현장을 인스타그램에 올려 위로받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 테이크아웃 컵을 정림사지 5층 석탑처럼 쌓아 놓는다거나, 창가에 커피를 올려놓은 사진들을 올린다. 이러한 노동갬성(?)에 새바람을 일으킬 대용량 아메리카노는 1.1L짜리 ‘쟈뎅 시그니쳐 아메리카노 블랙’이다. 너희와는 사이즈가 다른 일을 한다고!
5-3. 혈관에 아메리카노가 흐르는 커피수혈파 추천
물 대신에 아메리카노를 달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분들에게는 ‘프렌치카페 로스터리 킬링샷’을 추천한다. 마실 때는 커피 향미가 나지만, 마신 뒤에 텁텁하거나 남는 맛이 없다. 계속 들이켜도 혀가 피로하지 않은 맛이랄까. 그야말로 생수를 위협하는 아메리카노라고 볼 수 있다.
더욱 맛있고 넉넉한 대용량 아메리카노를 원해
각각의 대용량 아메리카노는 매력이 있었다. 사무실이라는 게 함정이지만 홈 카페를 차려도 괜찮을 커피빈이라거나, 스타벅스에 가고 싶지만 못 가는 이를 위한 스타벅스 콜드브루, 향에 신경을 한가득 쓴 ‘맥심 심플리 스무스 로스터리 블랙’까지 알아보고 마실수록 이 녀석들의 매력을 알아가는 듯했다.
단지 살기 위해 마시는 음료는 무언가 아쉽다. 일상에서 낼 수 있는 작은 시간일지라도, 당장 갈 수 있는 피신처가 편의점이나 마트뿐일지라도, 주어진 상황에서 나에게 가장 큰 행복을 주는 음료를 마셔보는 것을 추천한다. 우리의 노동음료가 그저 노동음료가 아니게 될 때, 공부와 업무로 무거워진 우리들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 수도 있을지도 모르니까.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