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기분 나쁜 알람 소리에 눈을 떴다. 보통 세 번째 알람이 울리면 그제야 이불을 걷어찬다. 오늘 아침 불편한 허리를 부여잡고 꾸역꾸역 일어나는데 자동으로 입이 열렸다. 그 사이로 “지겨워”라는 말이 툭 떨어졌다.
살아 있는 동안에는 도무지 끝날 것 같지 않은 징그러운 일상을 당연한 듯 살아가는 우리다. 가끔씩 고개를 드는 화려한 일탈은 환상일 뿐 대부분 비슷한 반복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묵묵히 버틴다. 이 길이 정말 최선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조차 사치라고 여기면서, 지금 내게 주어진 일상이 숙명이라 여기면서.
유난히 출근길 발걸음이 무거웠다. 서늘한 바람에 몸이 움츠러들어서이기도 하겠지만, 아마 어젯밤에 본 영화 〈델마와 루이스〉에 대한 여운이 짙게 남아서인 거 같았다. 델마와 루이스뿐 아니라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나도 늘 그렇다. 하루에도 머리로는 열두 번씩 일탈을 상상한다. 하지만 그게 마치 죄악이라도 되는 양 순식간에 털어내고 일상으로 스며든다. ‘일탈’이라는 단어를 찾아봤다.
정해진 영역 또는 본디의 목적이나 길, 사상, 규범, 조직 따위로부터 빠져 벗어남.
‘나쁜 게 아니었네? 나한테 꼭 필요한 거였네?’라는 생각이 스치면서 뒤통수를 툭 쳤다. 그런데 나는 왜 그렇게 염원하는 일탈을 요리조리 피하면서 일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날마다 반복되는 생활의 늪에 푹 빠져 살까.
델마: 내가 약간 미쳤나 봐.
루이스: 아냐, 넌 항상 그랬어. 표현할 기회가 없었을 뿐.
영화 〈델마와 루이스〉 말미에 이런 대화가 오간다. 우리의 삶을, 내 삶을 집약적으로 보여주는 둘만의 촌철살인이었다.
늘 생각한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을 털끝만큼이라도 당당하게 표현하며 사는 건가. 명쾌한 답을 나 자신도 알 수 없기에 일상의 가두리에 스스로를 밀어 넣고 삐져나갈까 조심조심 살아간다. 정말 지겨워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어쩔 수 없이. 시골 마당에서 수년 동안 묶여 살던 개의 목줄이 끊어졌다. 그 개는 여전히 줄이 닿던 자리만 맴돌았다. 내 모습을 목격한 거 같았다.
델마와 루이스는 처음부터 일상이라는 테두리에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한 건 아니다. 그저 의도치 않게 일상에서 밀려난 순간, 지리멸렬한 삶에서 해방을 맛보게 된 것일 뿐. 델마가 일상이라는 감옥에서 벗어나 짧은 일탈을 만끽하지 않았더라면, 어쩌면 길게 주어진 불행한 삶에 만족하며 살았을지도 모른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상이 악몽인 줄도 모른 채.
영화의 결말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받아들일 것이다. 안타까울 수도, 그들의 해방감에 대리만족할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마지막에 보인 행복한 미소가 해피엔딩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일탈의 일逸에는 ‘편안할’ ‘달아날’의 뜻이 있고, 탈脫에는 ‘벗을’ ‘기뻐할’이라는 의미가 있다. ‘편안함에서 벗어난다’라는 혹은 ‘달아나서 기쁘다’라는 의미로 받아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일탈이라는 말이 꼭 부정적인 건 아니다. 지루하고 편안한 일상에서 달아나 기쁨을 만끽하는 일이 될 수도 있으니까. 분명한 건 일탈은 삶의 파괴가 아니란 사실이다. 오히려 삶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상에서 부담 없이 누릴 수 있는 일탈도 얼마든지 널렸다.
눈치 보며 찔끔찔끔 떠나던 휴가에 과감하게 사나흘만 더 붙여도 충분한 일탈이 되지 않을까. 가끔은 부부가 1년에 한 번씩 혼자 여행을 떠나는 것도 개인 시간을 존중하는 일탈이다. 어릴 때 좋아했던 그룹의 콘서트에 찾아가 신나게 흔들면서 소리 지르는 것도, 평소 드나들지 않던 클럽에서 맛보는 새로움도, 계획 없이 훌쩍 떠나는 야밤의 드라이브도, 한 달 동안 주야장천 만화책만 보는 것도, 당일 아침 아프다는 핑계로 연차를 내는 것도. 이 모든 게 편안하고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기쁨을 찾는 소소한 일탈이자 일상에 지친 현대인에게 필요한 탈출이다.
우리가 막연하게 품은 ‘일탈’이라는 단어의 부정적인 의미를 걸러내고 ‘정해진 영역에서 벗어남’ 그리고 한자의 뜻처럼 ‘지루하고 편안한 일상에서 달아나 기쁨을 만끽하는 일’에만 포커스를 맞추면 행복한 일탈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나를 억압하는 건 무엇일까’ ‘내가 할 수 있는 일탈은 어떤 게 있을까’ ‘지금의 불편함에서 잠시 벗어날 방법은 무엇일까’에 대한 고민을 해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탈을 위한 동기부여가 될 것이다.
인생은 이래도 저래도 엉망이 되었을 거야. 잘 모르겠어. 난 이미 뭔가를 건너왔고, 돌아갈 수도 없어, 난 그냥 살 수가 없어.
이래저래 인생은 누구도 돌이킬 수 없는 슬픈 현실이다. 그런 돌이킬 수 없는 삶을 살면서도 우리는 오늘을 아등바등 이겨내고 꾸역꾸역 내일로 향한다. 아주 잠깐이라도 일탈을 통해 삶에서 새로운 맛을 느낄 수 있다면, 너무 틀에 박힌 일상에 집착하며 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어차피 우리는 또다시 내달 수 있는 내공을 갖췄으니까.
원문: 이드id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