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부터 2017년까지 상품 기획과 홍보 마케팅 5년, 2018년부터 2019년까지 광고 회사 2년 차. 마케터로 살다가 광고인이 되어 느낀 점을 기록해봅니다.
마케팅과 광고, 뭐가 다른가요
마케팅은 말 그대로 상품의 시장성을 만드는 모든 활동을 의미합니다. 어떤 상품을, 얼마에, 누구에게, 얼마나, 어디서, 어떤 날, 뭐라고 하면서 팔 건지 등을 기획하고 실행하는 일인지라 업무 범위가 상당히 넓습니다. 물론 회사마다 업무 범위가 조금씩 다르지만, 일반적으로는 위와 같은 판매의 전후 과정을 총체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합니다.
그래서 보통 마케터들은 늘 바쁘고, ‘이 일까지 해야 하나’ 싶은 것까지 늘 합니다(주변 마케터가 늘 분주하고 산만하다고 느껴져도 이해해주세요). 광고 역시 마케팅 업무 범위에 속하지만, 마케팅은 광고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광고는 소비자 커뮤니케이션입니다. 마케터가 상품의 시장성을 위한 론칭 전후 전략을 총체적으로 기획한다면, 광고인은 상품을 시장에 내놓을 때 뭐라고 말할 것인지 더 전문적으로 기획하고 실행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 이슈화하고 퍼져나가게 할 것인지 확산 전략도 기획합니다.
마케터는 어떤 상품을, 누구에게, 얼마나, 어디서, 어떤 날 팔지 기획하고 광고전문가는 이런 배경에 가장 최적화된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을 세우는 일을 합니다. 이 과정에서 뛰어난 광고인들은 상품, 소비자, 유통, 영업에 관한 총체적인 고민을 포함해 마케팅 활동 제언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마케팅이 업무적으로 더 넓은 외연을 갖지만, 광고의 내연적 의미를 고려하면 두 업무 경계가 참 애매합니다.
광고가 마케팅보다는 좀 더 좁은 의미이기 때문에 광고는 딱 광고만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마케터가 직접 광고까지 집행하는 경우에 두 업무의 외연을 비교하는 건 무의미합니다. 이런 경우라면 광고가 마케팅에 종속되어 있다던지, 광고인이 하는 일은 마케터보다 좀 더 전문분야라던지 하는 말은 확대해석일 수도 있습니다. 상품의 시장성을 만드는 일이라는 업의 본질적 관점에서 보면 광고와 마케팅은 연속 선상에 있는 하나의 업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광고와 마케팅을 굳이 구분 짓는 게 별 의미 없고, 광고주와 광고대행사의 관계라는 협소한 이야기를 확대 해석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업무를 행하는 사람들의 관계가, 업무의 본질적 관계인 양 말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많은 마케터가 광고대행사를 활용하기 때문에, 확대 해석이라 할지라도 업무적으로 서로 제한이 있는 ‘현상’은 분명히 존재하는 현실인 것 같습니다.
요즘 광고 회사의 현실
기본적으로 광고주와 광고 회사는 돈을 지불하고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일종의 소비자와 생산자로서 이해관계를 맺지만, 여기서는 마케팅 전략 주도권에 의해서 구분되는 관계라는 점에 주목해보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광고주는 마케팅 전략 주도권을 쥐고, 대개 광고 회사는 그에 따라야 하는 구조입니다. 광고주는 팔고 싶은 물건, 하고 싶은 말, 여기에 쓰고 싶은 돈을 정해두었고, 광고 회사는 주어진 조건에 맞게 그 말을 더 잘하게 만들어 주어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광고주가 하고 싶은 말이 ‘주장에 그치는 경우’라면 광고 회사는 곤욕을 치릅니다. 광고 회사는 브랜드의 대변인 같은 존재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서든 브랜드의 주장을 증명하기 위한 판을 짜고, 그에 맞는 말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광고 회사 사람들은 늘 앉아서 ‘우리가 이 말을 하는 게 맞아?’라며 브랜드의 말을 점검하고 또 고민합니다.
그러나 요즘 광고 회사는 마케팅 회사로 변화하며, 변화하기를 요구받습니다. 단순 커뮤니케이션을 넘어 비즈니스 솔루션을 제안하려고 노력합니다. (모든 광고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멋진 광고를 만들어 소비자들의 기억 속에 남기거나, 소비자들이 상품을 고를 때 우리 브랜드가 생각나게끔 하는 데 그칠 뿐 아니라, 직접 세일즈까지 연결될 수 있는 구체적인 판촉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더 이상 소비자들이 기억에 남는 광고에 의존해 재화를 구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너무 많은 채널과 “내가 알아보고 구매한다”는 소비자 주관이 강하게 형성되어 있는 시기인지라, 광고인들은 더 치밀한 커뮤니케이션 메시지를 도출하는 것은 물론, 판매를 유도할 수 있는 마케팅 아이디어까지 제안하는 부담을 안게 됐습니다.
실제 광고 제안서를 작성할 때, 광고 메시지는 물론 광고 콘셉트에 인라인 한 판매 아이디어를 제안하는 게 하나의 정해진 틀이 되어 갑니다. 제안 단계에서는 광고주가 알려준 정보에 의존해 기획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브랜드의 내부 리소스나 유통 상황을 정확히는 모르지만 “그래도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우리 광고 콘셉트와 하나의 결로 보일 법한 프로모션 아이디어를 제안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을 마케팅 전략이라고 보기에는 조금 무리인 부분이 있습니다. 정확한 유통 현황이나 소비자 판매 데이터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추측에 근거한 일종의 ‘콘셉트’에 그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정말 팔릴까? 하는 시뮬레이션도 불가, 기존 히스토리 파악도 불가, 오로지 감과 통찰만으로 제안해야 한다는 한계가 큽니다. 운이 좋으면 광고주가 그 안을 사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정성 가득한 제안 추억만 얻게 됩니다.
그럼에도 광고 회사는 마케팅 아이디어 제안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수많은 광고주가 “광고가 필요해? 제품(or 가성비) 좋으면 사는 거 아니야?”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광고 회사가 가치를 팔기 위해서는 광고주 마음에 들만한 제안을 해야 하는 숙명이 있습니다.
정말 좋은 커뮤니케이션 제안을 받고서도 “좋은 메시지는 알겠는데, 이 메시지로 매출이 얼마나 날까요?”라고 묻는 광고주가 많아지는 상황도 광고 회사를 마케터가 되도록 만듭니다. 노출과 도달로 말하던 광고의 시대가 지나고 클릭과 전환이 중요한 시대를 사는지라, 광고 회사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늘 고민하고 또 변화할 준비를 합니다. 광고인으로 사는 저의 고민 역시 이 지점에 머물러 있는 것 같습니다. 결국 광고도 상품이 잘 팔려야만 비즈니스에 유의미한 활동임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문제의식이 당장 어제오늘 생긴 일이 아니기 때문에, 몇 년 전부터 심심치 않게 꽤 많은 광고 회사가 변화를 시도하는 모습을 관찰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 광고 회사는 TV CF나 디지털 광고 영상, 이벤트 아이디어를 만드는 일에 그치지 않습니다. 직접 일반 브랜드처럼 사업을 하기도 하고 미디어커머스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일부는 콘텐츠 기업이나 플랫폼이 되기도 하고, 아예 마케팅 에이전시로 업무 영역을 넓히는 등 다양한 시도를 합니다.
개중에는 이게 도대체 무슨 비즈니스 모델인 거지? 싶은 실험적인 모델들도 있었습니다. 그래도 운이 좋으면 대박이 나기도 합니다. 대박이 나면 더 이상 광고 수수료 때문에 갑질을 참지 않아도 되니 광고 회사들은 각자만의 대박 신화를 꿈꾸며 더욱 적극적으로 BM 변화를 위해 노력하곤 합니다.
탈(脫) 광고 시대에 광고 회사에게 바라는 점
그러나 저는 수많은 광고 회사가 탈(脫) 광고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시대에, 그래도 광고 회사들이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는 본질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는 좋은 광고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상품이 좋으면 됐지 뭘, 광고가 왜 필요해?’라고 말하는 사람들 중 90%는 별로 안 좋은(그냥 그저 그런) 상품을 팝니다. 또 ‘가격이 싸면 됐지 뭘 광고가 왜 필요해?’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더 싼 제품이 나오면 바로 경쟁에서 밀려날 위험에 처해 있습니다.
이렇게 특수한 10%의 브랜드를 제외하면 여전히 90%에게는 광고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브랜드 건 자신의 언어로 소비자에게 말을 건넬 수 있어야 합니다. 여전히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이 필요한 이유이자, 광고 회사들이 이 본질을 잃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광고는 마케팅의 최전선에 있습니다. 브랜드와 소비자를 매개하는 언어적/비언어적 활동의 총합으로서의 광고는 소비자와 브랜드의 교량 역할을 합니다. 소비자가 안전하게 브랜드로 넘어올 수 있고, 브랜드가 안전하게 소비자에게 넘어가는 매개가 됩니다. 그래서 마케터들이 광고대행사를 더욱 영리하게 활용하기를 바랍니다.
마케터들이 광고인들에게 마케팅 아이디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미 수차례 밝힌 것처럼 광고 역시 마케팅과 하나의 연속 선상에 있는 일이므로 당연한 요구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마케터가 좀 더 현명해지려면 그에 맞는 업무적 유연성과 협업의 태도를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은 상태로 마케팅을 광고인에게 떠넘기는 건 제 살 깎아 먹기입니다. 선뜻 광고대행사가 어떤 자료도 요구하지 않고 마케팅 제안에 동의한다면 그들을 경계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마케터들은 광고인들이 더 적합한 커뮤니케이션 솔루션을 제안할 수 있도록 내부 전략을 자세히 설명하고 의견을 구해야 합니다.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들의 의견을 함께 검토하고 수용해나가는 팀십을 가져야 합니다. 할 말을 정해놓고 정해진 예산에 맞춰 메시지를 짜오라고 할 것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 측면에서 봤을 때 내부 전략이 설득력이 있는지 충분히 검토하는 일을 광고대행사에게 맡기시기 바랍니다.
광고인들은 브랜드가 외치는 주장이 소비자 사이드에서 설득력 있을지 가장 객관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방향성을 제안하는 일을 해내길 바랍니다. 광고주 입맛에 맞춰 어설픈 콘셉트 아이디어를 내기보다는 마케터와 한 팀이 되는 방법을 더 많이 고민하고 연구해야 합니다. 제품은 제품대로, 광고는 광고대로 각자의 톱니바퀴를 굴리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소비자 설득은 더 이상 간단한 문제가 아닙니다. 소비자 주권이 더 강해지는 이 시대에 맞춰 움직여야 합니다.
광고인들은 마케팅의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로 역할하고, 마케터는 광고인을 한 팀으로 여겨 둘 사이가 업의 본질을 제대로 실현할 때, 비로소 가장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을 것입니다. 아마도 이런 원 팀(one team)이 발전된 형태로는, 브랜드가 직접 광고팀을 내재화하는 것이 되겠죠?
실제로 주변에서 광고비를 줄이는 큰 기업 중에서 광고대행사 출신들로 내부 마케팅팀 인력을 강화한다는 얘기가 들려오기도 합니다. 이런 경향성이 어쩌면 광고 회사와 브랜드를 하나의 팀으로 묶는 오픈 이노베이션 트렌드를 불러오지는 않을까, 살포시 기대도 해봅니다.
글을 마치며
끝으로 마케팅-광고의 원 팀 캠페인 몇 가지를 소개합니다. 매일유업 #우유속에어쩌구 캠페인은 온라인에서 언급되어 화제였던 ‘우유속에어쩌구’를 실제 제품 패키지에 반영해 화제를 만들었습니다.
실제 소비자의 입에서 시작된 이야기를 제품 패키지에 반영해 소비자들에게 큰 반응을 일으켰습니다. ‘우유속에어쩌구’를 단순히 광고 메시지로 활용한 것을 넘어, 제품 패키지에 직접 활용한 사례입니다. 광고가 단순히 메시지를 개발하는 것을 넘어 마케팅과 제대로 협업을 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비슷한 사례로 2016년 빙그레 바나나맛 우유의 ‘#채워바나나’ 캠페인도 있습니다. 이 캠페인 역시 마케터들의 과감한 선택과 광고인들의 빛나는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시너지를 만들어 낸 사례입니다.
실제 담당자의 인터뷰에서도 이런 과감한 선택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소개합니다.
이와 관련, 빙그레 관계자는 “바나나맛 우유는 1974년 출시돼서 올해로 42년 된 제품인데, 장수 브랜드의 가장 큰 약점 중 하나가 브랜드가 노후화되는 것”이라며 “추억의 제품, 어른들이 마시는 제품이 되기 십상인 위치에서 늘 젊은 소비자와 소통하려 노력하다 보니 이런 캠페인을 기획하게 됐다”라고 밝혔다. […]
소비자들이 인스타그램 등에 해시태그(#)를 걸어 자신의 응용작을 공유하면 이를 광고나 마케팅에 다시 활용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과감히 제품명에 손을 댔다고 한다.
회사 관계자는 “바나나맛 우유는 매출 비중이나 제품의 역사 면에서 빙그레에서 굉장히 중요한 제품이기에 늘 신중하게 접근하지만, 젊은 감성을 공유하고자 이번엔 과감하게 실행했다”며 “사실 용기 디자인도 대표적 특징이기에 인지도 측면에서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 이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라고 전했다.
- 「바나나맛 우유의 이유 있는 ‘ㅏㅏㅏ’」, The PR
마지막으로 소개할 캠페인은 이니스프리 Made by You 캠페인입니다. 이니스프리 스킨 클리닉 마데카소사이드 팩은 출시 후 3년 동안 별도의 광고 없이 소비자의 입소문만으로 이니스프리 시트팩 중 가장 사랑받은 제품입니다.
이니스프리는 3년간 브랜드의 목소리 없이도 사랑받던 스킨 클리닉 마데카소사이드 팩을 더 많은 소비자에게 알리고, 그들의 의견을 토대로 업그레이드 제품을 출시한 캠페인입니다. 실제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통해 제품을 리뉴얼하고 출시했던 캠페인으로 역시나 제품의 기획부터 유통, 제품명, 광고 메시지까지 하나의 팀이 기획해 소비자에게 좋은 반응을 이끌었던 케이스입니다.
위에 살펴본 사례들은 앞으로 광고 회사가 지향해야 할 지점들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그리고 마케터들이 광고대행사와 어떻게 협업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고요. 2020년은 광고가 마케터들과 광고인들이 하나의 팀이 되어 움직이는 한 해가 되길 바라며, 이 글을 마칩니다.
원문: 한나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