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들 때일수록 행복해야 하고, 일상을 유지해야 한다. 내일 전쟁이 일어나서 내 목숨이 위태위태하다 하더라도, 지금은 내가 좋아하는 3분짜리 음악 한 곡을 듣고, 시를 한 편 쓰고, 커피를 한 잔 마셔야 한다. 어머니가 응급실에 실려 가더라도 중환자실에 들어간 뒤에는 성경 한 구절을 읽든지, 오늘치 글 한편은 써야 한다.
당장 하루 한 끼 제대로 사 먹을 돈이 없더라도,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고 좋아하는 이야기 한 구절 읽어줘야 한다. 그것이 얼마나 가능하든, 때로는 불가능하든, 적어도 그렇게 살아야 한다고 믿는 게 나의 신념이라면 신념이다. 힘든 일이 있고, 위기가 있고, 고통이 있다고 해서 하루의 24시간 전체가 그 일에서 오는 번뇌에 휩싸이게 두어서는 안 된다.
셔터를 내릴 때는 내리고, 내가 움켜쥘 수 있는 단 5분의 행복이라도 누려야 한다. 지금이 아니면 행복할 별도의 시간 같은 건 없기 때문이다. 내일 사형을 당하더라도, 마지막으로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평생 쓰고 싶었던 한편의 단편소설을 써야 한다.
실의에 빠진 사람들을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술만 마시고 쓰러져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나는 이별을 겪든, 인생에서 좌절을 겪든, 그래서 매 순간이 고통스럽든, 그 순간 내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믿었다. 그래서 그날 사랑할 수 있는 것들은 그와 별개로 찾고자 했다. 아무리 힘이 들고 위기가 와도 글을 쓰지 않은 날은 없다.
세상의 색깔을 모두 잃어버리는 건 나 자신에게 죄를 짓는 일이라 믿었다. 그랬기에 내 지난 모든 시절들을, 어느 하루도 빠짐없이 후회하지 않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놓쳐선 안 되는 것이 항상 있다고 생각했고, 그것이 곧 나의 목숨이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한 것이라 생각했다.
작년부터 삶은 점점 힘들어져서, 요즘에는 정점을 찍는다. 차마 어디에도 그 사정을 일일이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짐을 안기도 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내가 쓰고 싶은 한 편의 글이 있고, 책이 있었다면, 가능하면 행복에 관한 것이었다.
어찌 보면 내 삶에서 가장 힘겹고 어려울 때 출간한 책에 유일하게 ‘행복’이라는 단어가 들어간 것도 그런 연유에서였을 것이다. 가장 힘든 시절, 그래도 가장 행복하고자 애썼다. 그래서 지난 2년은 행복했다. 내년도 그랬으면 싶다. 어느 때보다 어려운 날들이 기다리지만, 나는 행복할 것이다, 아마도.
나에게 그런 행복의 비법이란 그다지 풍부하진 않다. 그저 차를 타고 오가며 하루에 좋아하는 노래 두어 곡쯤은 들을 것이다. 아이와 매일 목욕하며 스킨십하고 아무 생각 없이 30분쯤은 깔깔거릴 것이다. 어떻게든 시간을 내어 내가 나를 사랑할 수 있도록 좋은 글 한 편을 쓸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들을 웃게 해줄 것이고, 작은 선물들을 뿌리고 다닐 것이다. 하루의 23시간이 힘겨울지라도 행복한 1시간이 있을 것이고, 그 한 시간으로 내 삶은 정의될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