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지 씨, 이직할 생각 없어?”
이번 주에만 세 번째 들은 질문. 어김없이 당황스러웠다. 그런데 그의 질문이, 혹은 갑자기 질문이 튀어나온 그 맥락이 당황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의 질문을 말미암아 또 한 번 시험에 빠지는 나 스스로가 당황스러울 뿐이다.
멋들어지게 ‘아니요, 저는 1인 스튜디오나 거대한 호텔 사장님으로 성장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어야 했는데… 야속하게 본심이 먼저 튀어나온다.
어딘데요?
그의 설명이 길어지고 내 본심을 겨우 잠재운 후에야 완곡히 제안을 거절할 수 있었다. 그는 더 권유하지 않았고, 오히려 그렇게 끝나버린 짧은 대화가 아쉬울 뿐이었다.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은, 머릿속을 오가는 수많은 고민들 사이에서 꽤나 퇴색되어 버린 지 오래다. 가벼운 제안에도 나의 프리랜서 생활을 시험대에 올리며, 어느덧 ‘나의 지속적인 프리랜서 생활’에 대해 물음표를 그리기 시작했다.
일 따오면 끝인 줄 알았지? 이제 그다음이 문제다
프리랜서로 독립하기 전에는 일만 받아오면 다 끝났다고 생각했다. ‘과연 누가 나한테 일을 맡길까?’가 최고의 난제였고, 일만 주면 잘할 자신이 있다고도 생각했다. 그렇게 먹고 살 길만 마련되면 영원히 프리랜서 생활을 즐길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일을 받아오는 것’은 되려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특히 디자인 분야는 더더욱 그런 것 같다. 디자인이 필요하지 않은 곳이 없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디자이너와 닿을 수 없어 고군분투한다. 그래서 감사하게도, 아직까지는 별도의 웹사이트나 홍보 없이 소개의 소개를 통해 일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
도리어 나는 이러한 상황 속에서 나의 프리랜서 생활에 위기를 느낀다. 통장에 돈이 들어오고 일감도 들어오지만 ‘프리랜서 김영지는 도대체 뭘 잘하는 사람이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맞닥뜨리고 말았다.
내가 일이 끊기지 않는 건 그래픽부터 시작해서 일러스트레이션, 제품, 공간 디자인까지 다 받고 있어서 그런 것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에게 의뢰를 하는 분들 모두 ‘디자이너’를 찾고 있는 것이지 ‘디자이너 김영지’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그들의 요구 사항에 나의 생각을 더 넣기도 어렵고, 그들도 나의 색깔이 드러나기보다는 기획했던 디자인이 제대로 구현되기를 바라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면, 나 스스로가 한 명의 ‘디자인 잡상인’이 될 것만 같았다. 물론 잡상인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나는 수없이 여러 번, 잡상인의 재화가 너무나 쉽게 다른 구매 수단에 대체되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문득 떠오른 생각에 아찔해졌다.
나는 어디까지나 디자인 프로그램을 다룰 수 있는 수단이다. 그리고 이 수단은 여지없이 다른 고유의 장점을 가진 작업자에게 쉽게 대처될 수 있다.
나의 프리랜서 생활의 위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아, 그렇다고 입맛에 맞게 일을 받을 입장은 아니라서
일감이 꾸준히 들어온다고 했지, 넘쳐 들어온다고는 하지 않았다. 내 입맛에 맞고, 내 스타일에 맞는 작업만 받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아무리 일이 많다고 투덜대도, 나는 아직 들어오는 일마다 ‘감사합니다’라고 받을 처지일 뿐이다.
오늘도 ‘네, 다 받아요’ 전략을 취하고 있지만, 믿거나 말거나 나는 때를 기다리고 있다.
물론 마냥 기다리는 것은 아니다. 프리랜서 김영지를 정의할 수 있을 만한 단서들을 작업에 계속 심어놓고 있다. 그리고 이 단서들은 나의 작업들을 연결 지을 수 있는 고리이기도 하다.
작업들에 모두 내 스타일을 넣을 수는 없다. 하지만 예를 들면 이렇다. 나는 디자인의 스토리를 중요시 여기는 편이다. 그래서 나에게 받은 작업이 콘셉트 제안을 필요로 하지 않고, 아주 간략한 아트워크 요청만 하더라도 그 안에서 스토리를 지어내어 저장해 두고 있다. 강조하고 싶은 부분들이 돋보이도록 재편집하여 그때그때 포트폴리오를 만들고 있다.
그래서 기다리는 ‘때’가 오면, 어느 정도 쌓였을 고리들을 짜잔 공개할 예정이다. 아직 그렇게 안 해봐서 모르겠지만, 그때는 조금 더 나의 작업의 고리들을 보고 의뢰하는 비중이 조금 더 높아지지 않을까 싶다.
1. 무엇보다 선행되어야 하는 ‘나에 대한 정의’
사실 작업에 단서를 심어놓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이다. 포트폴리오 재편집이야 마음만 먹으면 하룻밤에 할 수 있는 것이고(사실 못한다. 쿨럭), 뚜렷한 작업의 단서만 정의되면 구석구석 작업에 심어 놓는 것도 매우 쉽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문제는 이 “나만의 작업에 대한 정의”이다. 더 나아가 프리랜서인 나에 대한 정의이기도 할 것이다. 프리랜서 김영지는 ㅇㅇ을 잘하는 사람, 또는 ㅇㅇ 느낌의 작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 등등 나를 정의하는 것이 제일 힘들다.
정의를 한다고 끝일까? 당연히 아니다. 내가 내린 정의에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어야 한다. 가까운 지인들은 물론이고, 내 작업만을 보고 컨택할 사람들이 작업 안에 스며든 나만의 색깔에 공감해줄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출장 때 한 작가님을 만나 뵈었다. 사진을 이용한 설치작업을 주로 하시는 작가님인데, 자신의 작업의 장점과 한계를 정확히 알고 계셨다. 그녀는 자신의 사진 스킬이 부족하다고 스스로 말하면서도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렇게 찍힌 2프로 부족한 사진들을 다시 구성하고 조합하며 새로운 작업으로 ‘기획’한다고 하셨다.
그녀는 스스로를 ‘기획하는 아티스트’라고 정의했고, 실제로 그녀의 작업 물든 단순한 사진작가라고 그녀를 설명하기에는 아쉬울 정도의 다채롭고 흥미로운 이벤트와 설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2. 나에 대한 정의의 시작은 타인의 조언으로부터
어쩌면 내가 뚜렷하게 어떤 액션을 취하지 못한 것은, 내가 내린 나의 정의에 대해 확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순간에 오히려 나를 한 발짝 나아가게 해 준 것은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이었다.
같이 작업을 하신 분께 솔직하게 나의 작업이 어떤 부분에서 좋았냐고 여쭤봤다. 한 분은 내가 ‘모호하게 제시되었던 요청사항들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는 것을 높게 평가해주셨고, 어떤 분은 내가 ‘작업을 풀어낸 생각과 스토리들이 충분히 공감되게끔 전달되었다’고 전해주셨다. 그리고 디자인 작업 외에도 그림이나 글을 쓴다는 사실은 차별화되는 지점이라고 정리해주셨다.
나는 이러한 피드백에 상당한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다른 디자이너들과 달리 ‘말이 많아 잘 듣고 잘 표현한다’는 점을 나만의 차별점으로 정해보았다. 그래서 예전에는 그림을 위주로 디자인 시안을 전달했는데, 디자인 시안이 섞인 수필 형태로 나의 작업 과정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내가 왜 이렇게 작업을 했는지 나의 생각 과정을 자세하게 기록했고, 스토리를 풀어나간 방법을 구체적으로 기록했다. 아직 이러한 방법이 정말로 좋은 방법이라고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지금까지의 클라이언트들은 내가 작업을 공유하는 방식을 매우 특이하는 것을 넘어 더욱더 공감을 해주고 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이러한 나에 대한 정의와 새로운 작업 방식은 주변 사람들의 피드백이 아니었다면 어려웠을 것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내 마음의 균형
나는 이렇게 어제보다 조금 더 나은 프리랜서 생활을 위해, 혹은 잡상인이 되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렇게 조금씩 노력하며 오늘은 조금 더 ‘그럴싸한’ 프리랜서가 되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사실 어느 무엇보다 나의 프리랜서 생활을 위협하는 것은 ‘내 마음의 균형’이다.
프리랜서 생활을 유지하는 마음은, 적절한 열정과 적절한 여유 사이 어딘가에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작업과 성장에 열정이 없다면, 같은 작업을 자가 복제하며 제자리에 머무러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열정이 너무 지나치면 마음이 조급해지고 남들과 나를 비교하게 된다. 그렇기에 적절한 여유가 필요한 것이다.
나는 요즘 이 두 감정 사이에서 굉장히 줄타기를 하고 있다. 한 업체는 디테일한 완성도를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나 스스로가 채찍질을 하지 않는 이상 꽤나 낮은 퀄리티로 매우 빠르게 작업을 완료할 수 있다. 물론, 비용은 똑같이 받는다. 나는 이 업체와 일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 이상으로 퀄리티를 내려고 한다. 어쩌면 바보 같은 짓일 수도 있지만, 그것이 나의 작업 수준과 열정을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하는 길이라고 생각했다.
반대로, 동시에 진행 중인 다른 하나의 프로젝트에서는 이미 너무나 자기 길을 잘 가고 있는 작가와 디자이너님들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나는 제일 막내이자 경력도 제일 짧은데, 비교하지 않으려 해도 이미 앞서 나가 있는 그들과 비교를 하게 된다. 그들은 어떤 이력을 가지고 있는지, 그들의 작업 계정의 팔로우는 몇 명이나 되는지, 어떤 작업을 계획하고 있는지 등등 – 그들이 이미 나보다 몇 년은 훨씬 일찍 시작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자꾸 비교하고 마음이 조급해지게 된다.
잘 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이렇게 마음이 조급해질 때 나의 N년 후를 상상한다. 이제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한 내가 3개월 만에 이만큼을 이뤄냈는데, N 년 후에는 얼마나 멋진 일들을 하고 있을까 말이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이런 상상에는 앞서 나간 다른 분들의 업적들이 꽤나 큰 도움이 된다. 나도 그들처럼, 혹은 그 이상으로 N 년 후에는 이런 역할을 하고 있겠지 하고 말이다.
또 남들과 나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를 비교하려 하고 있다. 갑자기 마음의 균형이 깨져 오늘의 프리랜서 생활에 위태로움을 느낄 때에는 20살의 내가, 혹은 21살, 22살의 내가 지금의 나를 어떻게 평가해볼지 상상해본다.
그러면 물론 그들이 생각했던 만큼 안정적이지도 않고 멋진 일을 하고 있지는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적어도 하고 싶은 일에 솔직하고, 매일 조금씩 성장하는 나의 모습은 그들에게 멋진 귀감이 될 것이다.
나의 지속적인 프리랜서 생활을 위하여
사실 내가 언제까지 이 프리랜서 생활을 유지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먹고사는 문제는 물론이고 앞으로 나의 성장을 생각했을 때도, 이 생활을 계속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아마 그렇기에 누군가가 이직 제안을 하거나, 다른 어떤 옵션을 제시하면 거절은 하더라도 순간순간 혹하나 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토록 프리랜서 생활을 지속하기 위해 고군분투 중인 까닭은 이 생활만이 설명할 수 있는 수많은 장점들 때문일 것이다. 출퇴근 없는 자유로움과 ‘나’라는 작은 회사를 설립하고 키워나가는 쾌감은 겪어본 사람만이 아는 프리랜서의 장점이다.
나는 프리랜서의 열정과 여유 사이에서 오늘도 아찔한 줄타기를 한다. 위태위태한 줄타기의 끝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각보다 시시한 내가 기다리고 있을 수도 있고, 돌연 회사로의 복귀가 기다릴 수 도 있다. 하지만 아찔한 줄타기 속에 내가 ‘나’에 대하여 끊임없이 정의하며 성장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만으로도 너무 반짝이고 소중하다.
이렇게 나는, 오늘도 나의 지속적인 프리랜서 생활을 위해 한 발짝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