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여 적용 확대, 과연 좋기만 할까?
의약분업보다 위험한 ‘선별급여’ 눈앞이라는 기사를 보면, 아직도 많은 전문가들이 “왜 의료계가 급여 확대를 우려하는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듯 하다.
급여 적용: 건강보험에서 보험 혜택을 주는 것. 급여 항목이나 급여 혜택을 늘리는 것을 보장성 강화라고 함.
보험 적용이 되지 않는 항목에 대해 급여전환을 하게 되면, 보험 혜택이 되지 않아 본인이 전액 부담하던 것을 “급여 적용”, 즉 건강보험 혜택으로 진료비의 일부(적게는 5~20%)만 부담하면 되므로, 결과적으로 환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떨어지는 효과가 있어 이용 빈도가 늘어나게 된다.
급여 적용시 이용 빈도가 늘어나는 이유는, 질환 발생율 즉, 유병율에는 변화가 없어도, 비용 문제 등으로 치료를 꺼리던 환자들에게 가격 장애가 사라짐으로 치료를 받고자 하는 수는 대폭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급여 적용으로 돈 없어 치료 못 받는 국민들이 치료 받을 길이 생기는 것이니 좋은 것 아니냐? 고 반문할지 모른다. 당연히 그렇다. 이는 환영할 일이며, 많은 의사들이 사실 이를 바란다. 왜냐면, 치료비 문제로 하고 싶은 치료를 할 수 없었던 일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단지 그 측면만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왜냐? 건보는 민간보험이 아니라 사회보험이기 때문이다. 또 급여 적용 확대는 다음의 문제를 동반하기 때문이다.
1. 급여 적용 시 가격 하락과 적정성 평가
공급자 시각에서 보자면, 그 행위에 대한 가격은 급여 적용이 되든, 안 되든 달라질 이유가 없다. 다만, 급여로 전환이 되면, 환자의 본인 부담만 줄어들게 되어야 한다.
그런데, 가격결정권자 (건정심. 이는 곧 정부나 시민단체를 의미.)는 빈도가 늘어날 것이라는 이유로, 가격을 후려친다. 비급여는 시장 원리에 따라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지만, 급여는 특별한 근거없이 정치적 방식으로 일방적으로 가격이 결정된다.
그래서, 어제까지 100만원의 가치를 가졌던 의료 행위가 단지 급여로 전환되었다는 이유로 오늘은 10만원의 가치로 떨어진다는 것이다. 서비스를 공급하는 의료인으로서는 자신이 하는 행위의 가격이 떨어지게 되면서 상당한 자괴감과 함께 경제적 손실이 올 수 밖에 없다.
이와 별개로, 급여 전환 시에는 행위에 대한 심사와 적정성 평가가 시작되고, 각종 규제와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다른 문제도 있다.
2. 의료 소비 통제 불능
우리나라는 기본적으로 의료소비에 대한 통제 기전이 없다. 환자는 누구나 원하는 병원에, 원하는 의사에게, 원하는 날자에 진료 받을 수 있다. 고작 43개에 불과한 3차 병원에 갈 때만 진료의뢰서가 필요하데, 사실상 형식적 절차일 뿐, 이 때문에 원하는데 못 가는 환자는 없다.
기본적으로 “내 돈 내고 내가 내가 원하는 병원을 맘대로 가고, 내가 원하는 치료를 내 맘대로 받자는데 무슨 상관이냐?”는 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는데, 보험 기전을 보자면, 결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
대한민국 환자가 의료비로 쓰는 돈은 내 돈이 아니라, 남의 돈이다. 내가 병원에 가서 쓰는 돈은 내가 낸 돈(본인 부담금)만 내 돈이지, 나머지는 남의 돈(건강보험 재정)에서 나오는 것이며 그 부분이 훨씬 더 크다.
건보는 사회보험이고, 재정이 한정된 돈이다. 이걸 제한없이 마구 쓰는 것도 문제이고, 이를 방치하고 오히려 조장하는 제도도 문제이다. 이른바 “선별급여” 제도가 지금 그렇다.
이런 선심성 정책과 함께, 국민들에게는 의료 소비를 오히려 조장하는 보장성 강화를 부르짖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재정 지출을 억제하기 위해 건보공단과 정부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과 의사를 압박한다.
즉 재정 지출 통제를 위해, 의료 소비자를 통제하기 보다는 의료 공급자를 통제하는 방법을 쓰는 것이다. 삭감과 실사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니, 의사들은 억울할 수 밖에 없다.
3. 대형 병원에게 특혜를 주는 선별 급여
“선별급여”는 다분히 대형 병원에게 주는 특혜가 될 수 있다.
“선별급여” 란, 지금까지는 비용이 더 낮고 대체가능 치료방법이 있어 의학적 필요성이 낮았던 경우나, 혹은 비용 대비 효과가 확실치 않은 최신 의료기술 등은 급여 대상으로 포함되지 않았는데, 이를 선별적으로 급여 혜택을 주겠다는 제도이다.
즉, 다른 방법을 쓰면 더 효과가 좋은데 사회적 요구(?)가 있다는 이유로 굳이 이를 보험(급여) 적용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캡슐 내시경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내시경을 받는 고통을 줄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존의 fiber optic 내시경에 비해 검사 효과가 월등히 떨어진다. 게다가 가격이 비싸다. 그래도 사회적 요구가 있다면, 이를 보험 적용하여 저렴하게 받을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것이다.
솔직히 이야기 하자. 국민적 요구가 클까? 캡슐 내시경을 하는 대형 병원의 요구가 더 클까?
또, 기존의 다른 방법을 쓰면 상대적으로 적은 가격으로 할 수 있는데, 사회적 요구가 있다면, 비용이 훨씬 많이 나는 의료 행위에도 보험적용을 해 주겠다는 것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로봇 수술이다. 로봇 수술은 그 장비 자체가 고가이고, 쓰고 버려야 하는 소모품의 가격도 비싸, 로봇 수술의 가격은 같은 질환의 다른 수술에 비해 엄청나게 비싸다. 그러나 로봇 수술을 받고자 하는 국민적 요구가 크면 이도 보험 헤택을 주겠다는 것이다.
국민적 요구인가? 대형 병원의 요구인가?
이대로 하게되면, 이런 고가 수술, 검사는 건보 적용이 되면서 대박 시장이 된다. 병원, 특히 대형병원들은 대대적으로 이런 시설, 장비를 들여와 경쟁적으로 환자를 유치하게 될 것이고, 그것으로 대형병원들은 다시 한번 호황을 누리게 될 것이다.
재정은 사회를 위해 사용해야 한다
그걸 부러워 하고 시샘하는 게 아니다. 건보는 사회보험이고, 제한된 재정을 나누어 써야 한다.
즉, 재정의 효율적 이용이 절대적으로 필요한데, 이처럼 치료/검사 효과가 낮고, 다른 치료 방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건보 혜택을 준다는 것, 특히나 고비용의 검사, 치료 방법을 이런 식으로 보험 혜택을 준다는 것은 사회 보험의 성격이나 정신에 결코 맞지 않는다.
하물며, 지난 2000년 초반, 암 정책의 예를 보면, 본인 부담을 20~30%에서 5%로 대폭 줄여 주어, 대학병원, 대형병원을 중심으로 암 병동을 경쟁적으로 대거 늘리도록 하여, 전국의 환자들이 빨아들이면서, 우리나라 의료수급 구조의 악영향을 미친 바 있다.
재정이 한정되어 있는데, 특정 질환에 많은 돈을 쓰게 되면, 정작 써야 할 것에는 돈을 쓸 수가 없게 된다. 지금 우리나라 보험 제도에서 돈을 더 투입하고 보살펴야 하는 것은 이런 것이 아니다. 이건 아무리 좋게 생각해도, 대형 병원을 배려한 제도 그 이상이 아니다. 중소 병원은 캡슐 내시경이나, 로봇 수술과 같은 값비싼 고가 장비를 구입해 대형 병원과 경쟁할 수가 없다.
결국 대형 병원으로의 환자 쏠림은 더 가속화될 것이며, 소규모 병원이나 특히 개원가는 더욱 열악하게 될 것이다.
기사를 보면, <발제자인 서울대 김 윤 교수는 “우리 부모님이 아프다고 하시면 아주 경증질환이 아닌 이상 대학병원에 보낼 것”이라며 “환자의 자율권을 국가가 통제할 수는 없다. 다만 중소병원들의 질도 대학병원급으로 높이는 정책이 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 나도 아주 경증질환이 아닌 이상 대학병원에 보낼 것.
– 환자의 자율권을 국가가 통제할 수는 없다.
이 따위 사고 방식을 갖는 자가 보험 정책을 하고, 교수라는 현실이 서글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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