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Economist의 「Does democracy hurt or help growth in the tiger economies of Asia?」를 번역한 글입니다.
대만해협은 종종 화약고에 비유되곤 합니다.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중국 정부가 불량 지역 취급하는 섬을 향해 수천 발의 미사일을 배치한 지역이죠. 하지만 해상 풍력발전소인 포르모사 1(Formosa 1)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대만해협의 의미는 다릅니다. 한 엔지니어는 “지구상에서 최고의 바람이 부는 곳”이라고 표현했죠.
올 연말 가동에 들어가는 포르모사 1은 중국을 제외한 지역에서 가동될 아시아 최초의 상업 해상 풍력발전소입니다. 원자력을 대체할 에너지를 찾는 대만 정부는 앞으로도 이 지역에 풍력발전기를 추가로 설치할 계획이죠. 재계는 대만이 원자력 발전을 포기하면 경제가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고 우려합니다. 이 문제를 두고 국회에서 몸싸움이 벌어지기도 했고, 2017년에는 대만 북부가 대규모 정전 사태를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25년까지 원자력 발전소 없는 대만을 만들겠다는 차이잉원 총통의 의지는 확고합니다. 정권을 비판하는 이들에게 이는 환경론자나 반자유무역주의자들의 주장에 쉽게 휩쓸리는 정치 제도의 약점을 상징하는 사안입니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의문으로 이어지죠. 민주주의는 번영의 걸림돌인 것일까요?
중국에서 흔히 들려오는 말도 이것입니다. 대만이 20년 동안 민주주의를 해서 얻은 게 뭐냐, 경제가 서서히 퇴보하지 않느냐는 것이죠. 하지만 이른바 ‘아시아의 호랑이들’로 불렸던 나라에서도 비슷한 목소리가 나옵니다. 한국이나 대만의 나이 든 세대에는 경제 부흥을 이끌었던 독재자 박정희나 장징궈를 향한 향수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폭스콘의 창립자인 궈타이밍은 “민주주의를 먹을 수는 없다”고 말하기도 했죠.
비교적 자유로운 한국과 대만의 정치도 영광의 나날만을 누린 것은 아닙니다. 1987년 이후 직선제로 선출된 한국의 대통령 7명 가운데 3명이 부정 부패로 기소됐고 한 사람은 스캔들 국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1996년 이후 대만 총통 4명 가운데 3명이 부패 혐의를 받았고, 그중 한 명은 19년 형을 선고받았죠. 모든 정치 인생의 끝은 나쁘다고 말한 영국의 정치가 이넉 파월의 말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 정도로 끝이 나쁘기도 쉽지 않을 겁니다.
하지만 1997년 이후 홍콩 지도자들의 면면을 보면 비민주적인 통치의 손을 들어주기도 어렵습니다. 초대 행정장관은 조기 사퇴, 2대 행정장관은 감옥에 갔고, 그 뒤를 이은 사람도 너무 인기가 없어서 재선에 성공하지 못했으니까요. 현재 행정장관 역시 인기가 바닥이라, 사람들이 큰 관심을 갖지도 않던 지방선거가 정권 심판이 되어버렸죠. 성과주의를 따라온 싱가포르에서는 국부인 리콴유의 자식들 간 분쟁이 일어나면서 엘리트 정치의 추한 면면이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아시아의 네 마리 호랑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당시, 네 국가 중에는 경쟁 선거를 치러본 나라가 없었습니다. 넷 중 둘은 그 이후 활발한 민주국가로 발전했고, 나머지는 다른 길을 갔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네 국가는 사회과학자들이 원하는 각종 변수의 시험장 역할을 하게 되었죠. 한국과 대만의 소란스런 민주주의와 싱가포르의 “관리된 민주주의”, 그리고 홍콩의 대표성 없는 체제, 이에 각 국가의 비민주적 과거까지 모두 비교해서 우리가 알게 된 것은 무엇일까요?
한국과 대만은 둘 다 민주화 이후보다 되기 전에 더 빠른 경제 성장을 기록했습니다. 하지만 그건 홍콩과 싱가포르도 마찬가지죠. 따라서 호랑이 네 마리의 성장이 둔화한 것을 민주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것은 무리입니다. 싱가포르가 최근 한국, 대만보다 높은 성장세를 보인 건 사실이지만, 홍콩은 또 그렇지 않으니까요.
더 체계적인 연구들 역시 결론은 엇갈립니다. 하버드대 로버트 바로(Robert Barro)의 기념비적인 1996년 논문은 너무 많은 민주주의가 성장에 (다소) 해로운 효과를 내는 경향이 있다는 불편한 결론을 내린 바 있죠. 바로 교수는 유권자 다수에게 어필할 수 있는 재분배가 투자와 노동의 인센티브를 희석할 수 있다고 추측했죠. 그의 통계 분석은 싱가포르 정도가 현재 누기로 있는 정치적 자유가 경제 성장에는 가장 최적임을 시사했습니다.
반면 민주주의자들이 좀 더 반길만한 최근의 연구 결과들도 있습니다. MIT의 대런 아세모글루(Daron Acemoglu) 연구팀은 민주주의가 장기적으로 국가 1인당 GDP를 20% 올린다는 계산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개방성을 촉진하고, 교육과 보건을 중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설명의 일환입니다. 싱가포르와 홍콩은 개방성을 유지하고 교육과 보건에 집중 투자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가져오는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고요.
아세모글루 연구팀에 따르면 민주주의는 또한 사회적 불안이라는 뇌관을 제거함으로써 경제 성장에 기여합니다. 호랑이들의 최근 경험은 이 같은 주장을 뒷받침합니다. 2016년, 한국인들은 당시 대통령 박근혜에게 미스터리의 백스테이지 자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현재의 홍콩 상황처럼, 수백만 단위의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시위를 벌였죠.
민주국가인 한국의 정치 제도는 이와 같은 문제를 수습할 수 있었습니다. 입법부가 정식 탄핵 절차를 가동했고, 헌법재판소가 판결을 내렸으며,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에서 물러나 감옥으로 향했고, 후임을 선출하기 위한 선거가 치러졌습니다. 반면 홍콩의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는 스스로 물러날 권력조차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홍콩의 정치 제도가 시위대의 분노를 해결하는 데 실패했기에, 시위 수습이라는 임무는 경찰에게 떨어졌습니다. 이런 상황은 경찰에게 분노와 동시에 엄청난 권력감을 안겨주었죠. 정부가 쓸 수 있는 수단이라고는 경찰뿐이기 때문에 경찰의 심기를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찰의 공권력 남용에 신뢰할 만한 감사를 벌일 수도 없죠.
이와 같은 책임성의 부재는 시위대의 분노를 더욱 부추겼고, 경찰이 버젓이 피해 가는 법치 따위는 존중할 필요도 없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생겨났습니다. 현 대치 상황으로 인해 홍콩 경제는 침체에 빠져들었고 내년까지도 쭉 지속된다는 관측입니다. 민주주의가 성장에 걸림돌이 되는지 아닌지를 떠나, 민주주의의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 자체로 경제에 해가 된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아직은 역사가 짧은 아시아의 민주주의가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대만 현지 언론은 포르모사 1의 예산을 두고 정부를 공격했고, 8차례의 철저한 환경 평가를 받아야 했습니다. 포르모사 1 프로젝트에서 가장 큰 지분을 보유한 올스테드 아시아태평양의 사장은 그 과정을 “유럽에서보다 더 힘들었다”고 묘사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부침을 겪으면서 추진한 일이기에 풍력 발전을 향한 대만의 의지를 확신할 수 있다고 덧붙였죠.
풍력발전소 문제가 지나가도 국회의원들이 논쟁을 벌일 사안은 얼마든지 남아있습니다. 2018년에는 공공연금 삭감을 두고 또 한 차례의 몸싸움이 벌어졌죠. 인구 고령화는 대만뿐 아니라 모든 아시아 호랑이에게 닥쳐온 문제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