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드 빌 게이츠(Inside Bill’s Brain)〉는 꽤 잘 짠 다큐멘터리다. 다큐를 보기 전에 내가 그에 대해 알고 있던 정보는 크게 두 가지였다. 젊은 나이에 세계적 기업 마이크로소프트를 설립한 위대한 기업인이자 은퇴 후에는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을 만들어 자선사업을 하는 사람.
뛰어난 사람들이 말년에 봉사하는 삶을 택하는 것이 비교적 흔한 일이기도 하고, 사재를 헐어 ‘불우이웃 돕기’를 아주 큰 규모로 하는 재단을 운영하는 것이 그리 특이한 일이겠냐는 생각을 했었는데 저 재단은 그런 곳이 아니었다.
잠시 다른 얘기를 좀 해보자. 당신이 10만 원을 기부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선택지가 두 가지가 있다.
- A라는 봉사 단체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손 씻기와 모유 수유의 중요성 같은 보건 교육을 하는 곳이다.
- B라는 봉사 단체는 아프리카 지역에서 주민들 가정을 직접 방문해 식료품을 주는 곳이다.
두 단체 중 어떤 방식의 봉사가 아프리카 지역에 더 적합할까?
흔히 아프리카라고 하면 영양실조와 같은 식료품 부족만을 떠올리지만 실제로 개발도상국 사람들이 죽는 가장 큰 원인은 ‘설사’다. 오물을 강에 그대로 버리고, 그 물을 다시 마시는 과정에서 아동들은 고작 설사 같은 질병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다. 당장 식료품을 보내주는 것도 도움은 되겠지만, 교육을 해두면 오래 지속될 수 있는 보건교육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그 지역 주민들의 생존율을 더 높일 수 있는 것이다. 이른바 ‘효율적 이타주의’인 것이다.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은 위와 같이 효율적으로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투자를 진행하고 있다. 빌 게이츠 본인도 인터뷰에서 인정했지만, 그는 전형적인 ‘기술만능주의자’에 가깝다.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이를 해결할 방법을 무조건 기술에서 찾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세계의 근원적인 문제들 역시 기술적인 방식으로 해결을 시도했다.
전 세계 소아마비 퇴치를 위해 나이지리아 전국 지도를 작성하고,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대안적인 에너지로서 핵폐기물을 이용한 원자력발전소를 개발하고, 개발도상국 식수의 오염을 막기 위해 외부 동력을 사용하지 않는 특수 화장실을 개발하는 등 기술혁신을 통한 문제 해결을 밀어붙인 것이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런 시도들은 ‘정치적인 이유’로 인해 실패하고 말았다. 기술적 접근 외의 다른 접근도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다.
다큐는 이 지점을 영리하게 파고든다. 빌 게이츠의 개인사와 그의 재단이 추구하는 것의 난항을 엮어, 어떤 실패를 겪고 어떻게 사고방식이 변화했는지 보여준다. 과거 마이크로소프트의 반독점법 기소 사건과 그의 결혼 생활, 그리고 그가 처음 마이크로소프트를 세울 때의 경험을 대비시키며 기술만 알던 바보가 사회를 배워나가는 과정을 입체적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그는 얼마나 달라졌을까? 나는 그 결과물이 바로 이 다큐멘터리라고 생각한다.
다큐를 보고 나면 기부를 할 일이 생겼을 때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에 기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것이며, 빌 게이츠가 추진하던 과제들이 정치적 이유로 좌절된 것에 대해 큰 분노를 느낄 것이다. 기술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천재가 본인의 시간과 삶에 대한 정보를 기꺼이 내어주는 대가로 정치적 우군을 얻는 방법을 배운 것이다. 세 편의 다큐를 보며 내가 느낀 경이를 같이 느껴보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