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 프랜시스 스콧 피츠제럴드, 그리고 그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와 관련한 아주 쓸데없는 정보를 하나하나 싣는 매거진을 하나 시작해보려고 한다. 구체적인 형식이나 주제를 미리 정하진 않았다. 그때그때 마음이 내키는 소재를 하나씩 골라 관련 이야기를 풀어볼 생각이다.
다만 최대한 TMI의 느낌이 듬뿍 담긴 매거진을 구성해보려고 하는 기본적인 방침 정도는 가지고 있다. 내가 제일 잘하는 일 중 하나는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이야기를 혼자 신나서 구체적으로 떠드는 일이니까.
내가 처음으로 피츠제럴드의 책과 만난 건 아마 내 나이 열다섯 언저리였다. 하루는 이모부의 집에 놀러 가 뻔뻔하게 책을 한 권 훔쳐 왔는데, 그것이 시사영어사의 영한대역문고 81번에 해당하는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였던 것이다. 마치 한참 전에 빌려준 책을 도로 가져오는 대여자의 태도처럼 당당했다.
소설을 무진장 좋아하던 내게 이모부의 서재에 가득하던 경영학 관련 도서나 실용서가 눈에 들어왔을 리 만무했고, 애초에 책을 몇 개 훔쳐 올 요량으로 서재에 들어간 것이었는데 그나마 몇 개 꽂혀있지도 않은 소설책 중에서 그나마 내 구미를 당기는 건 학교로 가져가 친구들에게 떠벌리기 좋은 세계 문학 『위대한 개츠비』뿐이었다.
위대한 만남이란 이렇듯 우발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그날 밤, ‘조금만 읽다가 푹 자야겠다’라는 생각으로 시작한 숙면을 위한 독서는 내친김에 새벽으로 치달아 불면의 독서로 이어졌고, 마지막 장을 덮은 나는 쉴 새 없이 흐르는 눈물을 자꾸만 훔치느라 수면에 완벽히 실패했다(약간의 과장을 허용해주기 바란다).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위대한 개츠비』와 작가 피츠제럴드라는 거대한 늪으로 자진해서 걸어 들어간 셈이었는데, 나중에야 알았지만 그곳은 한번 빠져버리면 다시 원래의 상태로 빠져나올 방법이 극히 적은 무시무시한 곳으로 이미 문학 마니아들 사이에서 악명을 떨치고 있었다.
나는 늘 생각한다. 내가 그때 그 나이, 그때 그 계절, 그때 그 감성이라는 완벽한 타이밍을 놓치고 훗날 『위대한 개츠비』와 만났다면, 지금의 나로서 이렇게 존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만큼 『위대한 개츠비』의 어떤 문장들은 (무려) 나의 인격 형성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언젠가 존경하던 인생 선배님은 내게 ‘인생이란 언제 누구를 만나느냐에 달린 거야’라고 정중한 태도로 말씀하셨는데 요즘 들어 그 말을 절감한다. 피츠제럴드 잡설, 그 첫 번째 이야기는 바로 ‘카피라이터 스콧 피츠제럴드’이다.
피츠제럴드는 여러 의미에서 ‘돈’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는 스스로 생존하기 위해서,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사랑을 쟁취하기 위해서 ‘돈’을 미친 듯이 갈구했다. 생전에 피츠제럴드는 담당 편집자 맥스웰 퍼킨스와 엄청난 양의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가 쓴 편지글 속에서 ‘달러’ ‘가불’ ‘입금’ ‘인세’ ‘은행’ ‘빚’이라는 단어가 과연 몇 번이나 등장하는지 세어본다면 아마 날밤을 깔지도 모른다.
무엇보다 ‘돈’을 이야기할 때의 그는 항상 그것에 무진장 쫓기고 있는 사람인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을 만큼 불안해 보였다(나는 한 사람이 쓴 글 속에 담긴 감정은 목소리나 얼굴 표정에 담긴 감정만큼이나 뚜렷하게 드러나는 법이라고 생각한다).
군에서 제대한 프린스턴 중퇴자 피츠제럴드의 지상 최대 목표는 그의 약혼녀 ‘젤다 세이어’와의 결혼에 성공하는 것이었다. 앨라배마 몽고메리 근교의 캠프에서 군 생활을 하던 피츠제럴드는 몽고메리의 클럽 무도회에서 젤다와 만나 사랑에 빠졌다.
그의 연인 젤다는 대법관의 딸이자 여러 대를 이어 온 명망 있는 집안 출신이었지만 결코 ‘부자’는 아니었기에 자신을 확실히 부양해줄 수 있는 (경제적으로) 능력 있는 남자를 원했다. 따라서 피츠제럴드는 ‘돈’을 벌어야만 했다.
1919년 2월, 피츠제럴드는 뉴욕으로 향한다.
군 시절 초고를 완성한 소설 『낙원의 이편』은 출판사로부터 거절당했고, 그는 당장 돈을 벌어야만 했다. 뉴욕에 도착해 그는 기자가 되기 위해 여러 신문사의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는 계속 퇴짜를 맞을 뿐이었다. 낮에는 기사를, 밤에는 소설을 쓰겠다는 야심 찬 계획은 그렇게 와장창 무너졌다. 늘 그렇듯이 계획이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 법이다.
그러던 차에 피츠제럴드는 한 광고인과 만나고 그의 소개로 광고 업계로 발길을 돌리는데, 그 길로 곧장 피츠제럴드는 맨해튼에 위치한 광고회사 ‘바론 콜리어’의 카피라이터가 된다. 그의 주 임무는 시내 전차와 빌보드의 슬로건을 작성하는 일이었고(안구에 습기가 찬다), 월급은 90달러. 심지어 군대 월급보다 작은 박봉이었다.
We keep you clean in Muscatine.
바론 콜리어의 카피라이터 스콧 피츠제럴드는 아이오와주 무스카틴에 위치한 증기 세탁을 위한 슬로건 ‘We keep you clean in Muscatine.’으로 약간의 인기를 얻고, 보스를 향해 이렇게 내뱉는다. “월급 좀 올려주세요.” 보스는 피츠제럴드가 쓴 카피가 약간은 못마땅했다. 그리고 그는 피츠제럴드의 카피를 이렇게 수정했다.
Muscatine LaundryㅡWe Clean and Press.
보스는 피츠제럴드를 향해 카피라이터로 성공할 ‘싹수’가 보인다는 진심을 알 수 없는 칭찬을 던져주는 일도 잊지 않았는데(돌아보면 참으로 굴욕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다), 시간이 흘러 한 인터뷰를 통해 피츠제럴드는 당시의 광고업계를 풍자하며 그 보스에 대해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상상력도 부족하고 전혀 문학적이지 못한 사람’
‘경제 성장에 기여하지 못하는 모든 예술을 질색하고 창조성의 역사를 무시하는 사람’
그렇다. 피츠제럴드는 뒤끝이 있는 남자였다.
재즈 시대의 메아리
1919년 6월, 약혼녀 젤다는 피츠제럴드와의 약혼을 깨버린다. 이유는 간단했다. 피츠제럴드가 돈이 없고, 앞으로 돈을 벌 수 없을 것이란 생각 때문이었다.
나는 실패자였다. 광고 일에는 별로였고 작가로는 출발조차 못 하고 있었다. 뉴욕에 넌더리를 내며 술을 마시고, 마지막 한 푼까지 털어 술을 마시고는 비탄에 젖어 집으로 돌아가곤 했다.
「나의 잃어버린 도시」, 『재즈 시대의 메아리』, 북스피어, 2018
젤다의 약혼 파기 선언과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시시한 광고 슬로건이나 작성하고 있는 자신의 현재 상황에 대한 환멸은 그의 소설 집필욕에 다시금 불을 질렀다. 그는 결국 1919년 7월 4일, 광고 카피라이터로서의 삶을 정리하고 그의 고향 세인트 폴로 돌아간다. 마음을 다잡고 소설 집필에 새로이 몰두하기 위해서였다.
그가 사업에 뛰어들기를 바랐던 경제적으로 무능했던 아버지와 군인이 되기를 바랐던 교양 있는 어머니는 결국 피츠제럴드를 위해 조용한 방을 하나 내어줬고, 새로운 비전 아래 조직적이고 체계적으로 소설의 수정에 집중하던 피츠제럴드는 결국 새로운 버전의 『낙원의 이편』 초고를 완성한다. 피츠제럴드는 같은 해 8월 중순, 스크리브너스 출판사로부터 『낙원의 이편』 출간을 약속받고, 그 길로 문학계에 화려하게 등장해 스타플레이어로 발돋움한다.
자구책으로 택했던 피츠제럴드의 카피라이터로서의 생활은 그의 드센 자존심을 팍팍 긁어주는 소중한 자극의 시간이 되어준 셈이었고, 문학적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새롭게 확인한 감사한 경험이 되어 주었다.
참고로 덧붙이자면 광고회사를 관두고 고향으로 돌아가 소설 집필을 끝낸 피츠제럴드는 『낙원의 이편』 초고를 스크리브너스 출판사에 발송하고 답변을 기다리는 동안, 그의 오랜 친구 래리 보드맨이 감독관으로 일하고 있던 ‘노던 퍼시픽 차고’에서 일하기도 했다. 오래된 옷을 입고 출근하라는 친구의 말에 피츠제럴드는 더럽혀진 흰 플란넬 셔츠, 폴로 셔츠, 스웨트 셔츠 그리고 파란색 모자를 쓰고 작업장에 나갔다.
피츠제럴드는 곧 친구에게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 같지가 않다며 불평하기도 했다고 전해진다(대문호 피츠제럴드도 이런 아름다운 과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눈치 빠른 피츠제럴드는 멜빵바지를 사 입고 십장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방법(십장이 망치질을 하는 동안 옆에 조용히 앉아 있는 일)까지도 습득하지만, 결국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일을 관둔다. 실로 탁월한 선택.
카피라이터 피츠제럴드가 있었기에 소설가 피츠제럴드도 존재한다
완벽한 조건 속에서 정해진 수순에 따라 탄탄하게 자신의 커리어를 밟아가는 그런 세상에서 제일 부러운 사람도 어딘가에는 존재할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저기 저 피츠제럴드의 방황처럼 어딘가 인생의 계획이 조금씩 틀어지며 실패를 맛본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사람에게 조금 더 끌린다.
‘소설’은 발표하지도 못한 채 카피라이터로서 박봉을 받아 가며 꾸역꾸역 살아가야만 했던 자신의 모습을 자책하며 술이나 왕창 퍼마시던 서글픈 좌절의 시간이 없었다면, 이 세상에는 『위대한 개츠비』라는 소설의 존재조차 없었을지도 모른다. 카피라이터 피츠제럴드가 있었기에 소설가 피츠제럴드도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겠는가.
그건 그렇고 만일 피츠제럴드가 광고회사 ‘바론 콜리어’와 어마어마한 액수의 주급 계약을 마치고 ‘카피라이터’의 세계로 뛰어들었다면 역사는 어떻게 바뀌었을까? 그는 천재 광고인 데이비드 오길비보다 먼저 미국의 광고업계를 확실히 주름잡은 거물이 되었으려나?
하지만 피츠제럴드가 아무리 돈을 밝히긴 했어도, 꽤 의리가 있는 남자였다. 그는 전 세계인에게 감동을 전해주어야 한다는 거룩한 미션을 수행하기 위해 어쨌든 ‘문학’ 세계에 뛰어들어 ‘위대한’ 작품을 만들어내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라는 소리다.
원문: 스눕피의 브런치
참고
- John J. Koblas, 『A Guide to F. Scott Fitzgerald’s St. Paul』, Minnesota Historical Society Press, 2004
- Kirk Curnutt, 『A Historical Guide to F. Scott Fitzgerald』, Oxford University Press, 2004
- F. Scott Fitzgerald, 『Delphi Complete Works of F. Scott Fitzgerald』, Delphi Classics, 2015
- 모린 코리건 지음, 진영인 옮김, 『그래서 우리는 계속 읽는다』, 책세상, 2016
- F. 스콧 피츠제럴드 지음, 최내현 옮김, 『재즈 시대의 메아리』, 북스피어,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