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글쓰기를 하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는 내가 지난 15년여간 해온 실험이라고도 할 법하다. 어쩌면 15년 중에서 글을 전혀 쓰지 않은 날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내 기억으로는 단 몇 줄의 일기라도 쓰지 않은 날은 없다. 어느 날은 몇십장의 글은 쓰기도 하고, 몇 줄의 글을 쓰기도 했지만, 대략 평균적으로 한 편 정도의 글을 매일같이 썼다.
매일 글을 쓴 삶이 그렇지 않은 삶과 무엇이 다른지 알기는 아마 불가능할 것이다. 밀란 쿤데라의 말마따나 우리는 단 하나의 인생을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삶의 참을 수 없는 무거움을 만들어낸다. 평행우주가 있어서, 15년 동안 ‘매일 글 쓰지 않은 나’가 있다면 그와 내 삶을 비교해보는 건 꽤 흥미로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런 비교는 불가능하고 단지 내 삶이 만들어져 온 과정만을 예민하게 들여다볼 수밖에 없다.
하나 확실한 것은 매일 글을 쓰다 보면, 매일 글을 써야만 하는 요구를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지난 15년간 커피를 마시지 않은 날이 거의 없는 것처럼, 커피에 길들듯 글쓰기에도 길들게 된다. 글을 쓰지 않으면 이 하루에 무언가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 그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글을 써주어야 한다. 그런데 글을 쓰다 보면, 그것이 명확해지고, 역시 오늘도 글을 쓰는 게 맞았다고 생각하게 된다. 에스프레소 기계에 남은 커피 찌꺼기처럼 마음에 쌓인 어떤 부분을 걸러내고, 씻어내고, 드러내게 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늘 마음을 걸러내다 보면, 하루 동안 내 마음에 무엇이 들어오는지 비교적 명확하게 알 수 있는 듯하다. 매일을 순백의 백지로 시작할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엉망진창으로 낙서가 된 종이 위에 또 새로운 낙서를 덧입히는 것보다는, 어느 정도 지우개로 지워서 그 위에 하루를 덧입히는 게 더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 유용하기는 할 것이다. 그러면 나의 불안이나 걱정, 누군가 미워하거나 사랑하는 마음, 감격하거나 실망한 것들에 관해 더 선명하고 섬세하게 인식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종류의 ‘지우는’ 작업은 어쩌면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마음 두어야 하는 것, 내 마음이 흘러가는 것을 더 잘 알게 해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스스로의 마음에 역행하는 욕망을 비교적 분명하게 제거할 수 있고, 관계에서 생긴 문제들을 너무 늦지 않게 시정할 수 있으며, 그로써 나은 하루를 살 수 있게 된다고 믿는다. 마음이란 내버려 두면 언제까지나 그리 단단하거나 깨끗하지만은 않은 것 같으므로, 이런 작업을 성실하게 해나가는 일은 삶에서 필요한 일이라고 믿게 되는 셈이다.
물론 어느 때는 글쓰기 그 자체가 삶의 유일한 위안처럼 남아 있을 때가 있다. 어느 누구 하나 내 마음을 들어주는 이가 없는 것 같고, 세상에 홀로 남겨진 것 같고, 모든 이들이 나를 미워하거나 배제하게 되었다고 믿어질 때도, 글쓰기만큼은 끝까지 내 편으로 존재한다는 위안 같은 것이 있다. 마치 인생 최후의 위안 같은 것이어서 내가 결국 세상의 모든 것을 잃더라도 글을 쓸 수 있을 거라는 절대적 믿음 같은 것이 바탕에 깔려 있는 것이다.
그렇게 글쓰기는 내가 가장 처절할 때 나의 유일한 우군이었고, 반대로 내가 삶 속에서 많은 것들을 책임지고 고려하며 매만져야 할 때는 내 마음을 더 올바로 쓸 수 있게 해주는 수선공 같은 게 되어주지 않나 싶다. 그러니 아무래도 글쓰기를 매일 하는 것은 잘한 것이었다고, 또 앞으로도 글을 쓰지 않는 날이란 그다지 많지 않을 거라고 믿게 된다.
그러므로 글쓰기란 결코 어떤 유명 작가들이나 권력에 의해 독점될 수 없는 것이라고, 글쓰기는 모든 삶을 위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나는 많은 사람이 글쓰기를 통해 위안받기를, 그의 삶이 더 나은 것으로 인도되기를 늘 바란다. 내가 그랬으므로. 마치 신을 향해 기도하는 자가 다른 이들이 신을 알기를 바라듯이, 나는 사람들이 글쓰기에 대해 알게 되기를 바란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