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살아가는 일이란 중앙에 토네이도나 블랙홀이 있어서 그 좁은 곳으로 끊임없이 빠져들어 가는 일이라고 느껴질 때가 있다. 좁은 땅, 좁은 사회에서 모두가 같은 현실과 성공의 기준을 공유하고, 그 중심으로 들어가지 못하면 도태되고 배제되어, 결국 존재까지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 것이다. 모두가 같아져야 하고, 그 같아짐 속에서 수직으로 줄 세워져야 하고, 그 상층부로 기어오르지 못하면 실패한 인생이 될 거라는 불안이 몸을 휩싸고 돈다.
인스타그램을 보면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무척 많다. 결국 엄청나게 많은 사람이 앱만 켜면 그들의 화려한 삶을 들여다본다는 뜻이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아파트, 고급 외제 차, 매일 떠나는 듯한 호캉스, 해외여행, 하루 몇십만 원은 우습게 쓰는 브런치 및 와인바 등이 매일 보인다.
그들은 말 그대로 우리나라에서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성공을 한 이들이고, 그렇기 때문에 행복하고, 그렇기에 인생의 정답을 사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이 옳고, 그렇게 되지 못한 이들은 저 화려한 이미지 바깥 어딘가로 굴러떨어져 비참하고, 흥미로울 것 없고, 따분한 인생을 살 것만 같다.
사실 20대에 나의 목표랄 게 있었다면, 어딘가 먼 곳으로 떠나 홀로 혹은 둘이서 글이나 쓰면서 여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었다. 한국인으로서 공유하는 현실 속에 자기를 집어넣고, 그 서열이나 평가 속에서 존재감을 얻는 방식으로는 살고 싶지 않았다. 오히려 그 현실 바깥에서 나만의 삶을, 나만의 매일을, 나만의 일상을 살고 그저 그 속에서 더 넓은 세계를 꿈꾸며 그렇게 살아보고 싶었다.
그러나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와 살아가게 될 미래가 펼쳐지고, 수많은 관계가 얽히기 시작하니 그렇게 현실로부터의 완전한 탈출이라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어쩔 수 없이 이 나라 어느 도시 어딘가에 발 디디고 살아야 하는 일들에 관해 고민하게 되고 주거, 교통, 교육, 먹거리나 여가, 돈벌이 따위에 관해서도 인생의 반 이상을 부여해 신경을 써야만 한다.
그러다 보면 내가 마땅히 발 디뎌야 할 지금 여기의 소중함보다는, 저 거대한 현실의 소용돌이에 나도 모르게 점점 더 휩쓸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 그럴 때는 내가 더 온전히 머물렀던 시간들을 생각한다. 아내와 아이와 셋이서 바닷가에 머물렀던 일주일, 우리에게는 그다지 대단한 건 필요 없었다. 그것만으로도 온전히 행복했다.
사실 필요한 건 엄청나게 대단한 물질들이라기보다는 그저 셋이서 몰입하며 웃을 수 있고, 걸을 수 있고, 무언가를 함께 해 먹고, 깔깔댈 수 있는 시간이다. 그런 시간의 온전함을 누릴 수 없을 때 더 많은 것들이 필요하게 되고, 시선은 먼 곳을 향한다. 타인들이 살아가는 삶을 나도 똑같이 살아야만 할 것 같고, 행복은 그들이 누리는 현실에 있을 것 같다. 나는 잘못된 시공간에 있고, 그들이 줄 세우고 만들어내는 현실에만 온전함이 있을 것 같다.
아마 현실적인 측면이라는 것을 완전히 무시할 수는 없을 테고, 가능하면 그런 영역에서도 의미 있는 성취를 이루어나갈 필요가 있다. 그러나 언제나 그런 측면은 삶의 본질이 아니라고, 나아가 삶을 갉아먹고, 삶의 중심을 와해시키며, 내가 사랑할 수 있고 발 디딜 수 있는 시간들마저 앗아간다는 걸 늘 기억해야 한다.
소용돌이에는 너무 가까이 다가가지 말 것. 반경을 유지할 것. 그렇게 내 삶의 가장 값진 순간들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것. 이 위치를 지키기 위해 매일 싸워야 함을 느낀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