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30일, 올림픽공원에서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한 ‘2019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이 열렸습니다. 대중문화예술상은 정부 차원에서 대중문화예술의 사회적 위상을 높이고, 대중문화예술인들의 창작 의욕을 높이기 위해 제정된 상입니다.
올해는 대중문화예술상 10주년이라 그 의미가 더 깊었습니다. 가수 양희은, 배우 김혜자를 비롯한 5명이 문화훈장을, 배우 염정아와 라디오 DJ 배철수를 비롯한 6명이 대통령 표창을, 가수 김완선과 배우 김서형을 비롯한 8명이 국무총리 표창을, 가수 송가인과 배우 류준열을 비롯한 9명이 문체부 장관 표창을 받았습니다.
이쯤 되면 제목에 내건 ‘BTS, 김혜자, 박찬욱’의 공통점을 쉽게 추측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바로 ‘문화훈장 수훈자’라는 점입니다. 배우 김혜자의 경우 앞서 이야기했듯이 2019년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을 통해 그간 대중문화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는 BTS 멤버들은 지난해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화관문화훈장 수훈자가 되었습니다. 특히 막내인 정국의 경우, 최연소 문화훈장 수훈자로 기록에 남게 되었습니다. 함께 문화훈장을 받은 수훈자들이 배우 이순재와 김영옥, 가수 김민기 등 활동한 지 50년이 넘는 커리어를 가진 원로들이라는 점을 따져보았을 때, 평균 나이 23.7세인 BTS의 문화훈장 수훈은 아주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경우 이미 15년 전인 2004년에 보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당시 영화 〈올드보이〉가 칸 영화제에서 심사위원 대상을 받은 것으로 영화산업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았기 때문이었습니다. 〈올드보이〉의 주연배우 최민식과 제작자인 쇼이스트 김동주 대표도 각각 옥관문화훈장을 수훈했습니다.
이렇게 문화훈장을 받았다고 하면 뭔가 대단한 영광이라는 느낌도 들고, 언뜻 보니 은관이니 옥관이니 화관이니 등급도 여러 개가 있는 듯합니다. 그런데 도대체 문화훈장은 무엇이고, 누가 받았는지, 어떤 기준으로 서훈하는지, 훈장을 받으면 어떤 혜택이 있는지 솔직히 잘 알려지지 않은 게 사실입니다. 오늘은 이러한 문화훈장의 여러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합니다.
훈장, 포장, 표창의 구분
먼저 훈장, 포장, 표창이 어떻게 구분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훈장과 포장은 상훈법을 근거로 합니다. 상훈법에서는 ‘대한민국 국민이나 외국인으로서 대한민국에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 훈장이나 포장을 수여한다고 합니다. 또 상훈법 제19조에서 ‘포장은 훈장에 다음가는 훈격’이라 하기에, 훈장이 포장보다 높은 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 표창의 경우 법이 아니라 대통령령인 정부 표창 규정으로 주어지기 때문에 일반적으로 훈장, 포장보다 한 단계 낮은 격으로 봅니다.
훈장은 총 분야별로 열두 종류가 있습니다. 이 중 오늘 살펴볼 문화훈장의 경우 금관/은관/보관/옥관/화관 훈장의 다섯 등급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문화훈장은 본래 1951년 문화훈장령이 제정되어 주어졌다가, 1967년 상훈법이 개정되면서 국민훈장으로 이름이 바뀐 바 있습니다.
그러다가 1973년 상훈법 개정으로 인해 지금의 문화훈장 체계를 갖춰 1974년부터 지금(2019.11.01)까지 46년간 총 1425번의 서훈 절차를 거쳤습니다. (해당 수치는 행정안전부를 대상으로 정보공개 청구한 자료에 기반합니다.)
본래 훈장은 “동일한 공적에 대해서는 거듭 수여하지 않는다”는 원칙이 있지만, 그럼에도 훈장을 여러 번 받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영화감독 김기덕입니다. 2004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사마리아〉가 은곰상을 받은 이후 보관문화훈장을 받았고, 2012년 베네치아 국제영화제에서 〈피에타〉가 황금사자상을 수상하면서 한 단계 높은 은관문화훈장을 받았습니다. 각기 다른 영화제에서 수상한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문화훈장의 경우, 매년 10월 셋째 토요일 문화의 날을 기념해 수여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문화의 날은 1972년 문화예술진흥법이 제정되면서 처음 지정이 되었습니다. 문화예술진흥법 제정 당시 “국가는 문화예술의 진흥을 위해 현저한 공적이 있는 자에게 대통령령이 정하는 바에 따라 시상할 수 있다”는 조항에 따라 국민훈장에 통합되어 있던 문화훈장을 다시 부활시킨 것으로 보입니다.
1974년 6월 19일이 지금과 같은 체계로 바뀐 문화훈장이 처음으로 주어진 날입니다. 당시 수훈자는 당시 ‘천재 소년’이라 불린 바이올리니스트 김영욱(현재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입니다. 당시로써는 흔치 않게 어린 나이부터 국제무대에서 활약한 한국인 음악가였던 김영욱은 27세 나이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아, 개정 이후 첫 문화훈장 수훈자가 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한 달 후인 7월 15일, 두 번째 문화훈장을 받은 수훈자 역시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던 스물두 살의 젊은 음악가였습니다. 바로 지휘자 정명훈입니다. 이때 은관문화훈장을 받은 정명훈은 2018년, 방탄소년단 멤버 정국이 역시 스물두 살의 나이로 화관문화훈장 수훈자가 되기 전까지 최연소 문화훈장 수훈자 기록을 오랜 기간 지켜왔습니다. 1995년에 다시 금관문화훈장 수훈자가 되는 영예를 누리기도 했고요.
이렇게 “국제무대에서 활약하여 국위를 선양한 젊은 음악가들”이 문화훈장의 수훈자들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문화훈장의 본래 역할은 ‘문화예술을 통한 국위 선양’을 강조하기 위함이 아니었나 추측해볼 수 있겠습니다.
훈장 서훈 및 등급의 기준과 절차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기준과 절차에 따라 훈장 서훈과 그 등급을 결정하는지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상훈법 제3조에 따르면 서훈 대상자의 공적 내용, 그 공적이 국가와 사회에 미친 효과의 정도 및 지위 등을 고려해 서훈한다고 되어 있습니다.
일단 행정안전부장관을 비롯한 중앙행정기관의장, 국회사무총장, 법원행정처장, 헌법재판소사무처장, 중앙선거관리위원회사무총장 등이 서훈 대상자를 추천합니다. 문화훈장의 경우 보통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이나 문화재청장, 방송통신위원장 등이 추천권을 가집니다.
각 추천기관에서는 먼저 웹사이트를 통해 포상 후보자를 공모합니다. 공모, 혹은 자체 추천을 통해 뽑힌 포상 후보자들은 대한민국 상훈 웹사이트와 각 부처 웹사이트에 명단과 공로 사항을 공개하고, 포상 후보자로 적절한지 공개 검증을 거칩니다. 공개검증 과정에서 문제가 없다면, 이번에는 다시 각 기관의 공적심사위원회에서 추천대상자들의 적정성과 공적을 심사합니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추천기관들은 공적 조서를 작성해 행정안전부 – 국무회의 – 국무총리 결재를 거쳐 최종적으로 대통령이 재가한 후에야 훈장을 수여합니다.
2018 정부포상 업무지침에 따르면 훈장의 경우 보통 15년 이상 해당 분야에서 공적을 쌓은 자에게 수여함을 원칙으로 합니다. 참고로 포장은 10년 이상, 표창은 5년 이상의 기간을 기준으로 둡니다. 그렇다면 이런 질문이 나올 수 있습니다.
BTS는 아직 데뷔 15년이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정부포상 업무지침에서는 ‘국가/사회 발전에 탁월한 공적이 있는 자로서 추천기관과 행정안전부장관이 협의하여 포상기준의 예외를 적용하기로 한 자’는 기간에 상관없이 포상할 수 있도록 합니다. ‘탁월한 공적’의 사례로는 국제대회(경연)우승, 세계 최고권위의 상 수상, 국내 또는 세계 최초/최고의 업적 달성 등을 듭니다.
BTS의 경우, ‘Love Yourself’ 앨범이 연달아 빌보드 200 1위를 기록한 것이 업적으로 인정된 경우겠죠? 마찬가지로 박찬욱 감독 역시 감독 데뷔 11년 만에 칸 영화제 수상을 계기로 훈장을 받았습니다.
문화훈장의 경우 보통 방송의 날, 인쇄문화의 날 한글날, 책의 날, 문화의 날,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 등을 기념해 수여합니다. 2019년의 경우, 인쇄문화의 날(9월 14일), 한글날(10월 9일), 책의 날(10월 11일), 잡지의 날(10월 20일), 문화의 날(10월 19일),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10월 30일) 등을 전후해 모두 27명에게 문화훈장이 서훈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훈장의 등급인 훈격의 결정 기준은 어떻게 될까요? 사실 문화훈장의 경우 훈격을 결정하는 기준이 모호한 편입니다. 정부포상 업무지침에서는 “구체적인 훈격은 공적의 정도, 기서훈, 수공기간, 사회적 평가, 지위 등을 종합 검토하여 결정하되, 포상 분야·종류·대상 간에 균형이 이루어지도록 하여야 함”이라 정합니다. 그러다 보니 세간의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가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는 나중에 더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습니다.
이렇게 일생에 한 번 받기도 힘든 문화훈장을 무려 세 번이나 받은 분들이 있습니다. 2010년 작고한 수필가 전숙희의 경우 1976년 보관문화훈장, 2005년 은관문화훈장을 수훈하고 2010년 작고한 직후 금관문화훈장을 추서되었습니다. 한때 패션 디자이너의 대명사였던 김봉남(앙드레김) 역시 1997년 화관문화훈장, 2008년 보관문화훈장에 이어 2010년 세상을 떠난 이후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습니다.
아직 활발히 활동하면서도 문화훈장을 세 번이나 받은 레전드 중 레전드도 있는데, 바로 지난 60년간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가수 이미자입니다. 이미자는 1995년 화관문화훈장, 1999년 보관문화훈장, 2009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아 무려 세 번에 걸쳐 훈장을 받았습니다. 2009년 당시에는 대중음악 가수로서 최초로 은관문화훈장을 받아,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 후로는 대중문화예술상이 신설되면서 패티 김, 조용필, 태진아, 남진, 김민기, 조동진 등 우리에게 익숙한 대중음악인들이 은관문화훈장을 받습니다. 아직 최고 등급인 금관문화훈장을 받은 대중음악인은 없는 상황입니다. 대중음악계에 있어서 위상을 고려했을 때 언젠가 이미자의 금관문화훈장 수훈도 당연해 보이는데, 그렇다면 정말 그 누구도 따라가기 힘들, 유일무이한 문화훈장 4회 수훈자로 남게 될 듯합니다.
문화훈장의 혜택
문화훈장을 받는다는 것은 문화예술인으로써는 더없이 영광인 일이지만, 한편 또 다른 혜택은 없는지 궁금해지기도 합니다. 실제로 지난해 BTS가 문화훈장을 받은 직후, 훈장 수훈자의 군 면제 혜택이 있는지에 관한 내용이 실시간 검색어로 오르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에서는 “훈장 등의 영전은 이를 받은 자에게만 효력이 있고, 어떠한 특권도 이에 따르지 아니한다.”고 해, 훈장 수훈자의 혜택이나 특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군인/공무원 신분으로 전쟁 상황이나 국가안보에 중대한 공로를 세워 무공훈장이나 보국훈장을 받은 경우 국가유공자 등록 대상이 되지만, 문화훈장의 경우 국가유공자 대상이 아닙니다.
공무원의 경우 훈장이 인사에 도움이 된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뚜렷한 ‘혜택’이라고 보긴 어렵습니다. 다만 상훈법에 따라 훈장을 받은 인물은 현충원 안장대상심의위원회를 거쳐 안장대상으로 결정된 경우 사후에 국립현충원에 안장될 수 있다는 것이 유일한 혜택이라면 혜택이 아닐까 싶습니다.
마치며
오늘은 이렇게 문화훈장에 관해 여러모로 살펴보았습니다. 현재 훈장 수훈자들의 명단은 대한민국 상훈 웹사이트에서 검색이 가능하나, 전체 명단을 제대로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간단하게 수훈자들의 소속을 소개하나 어떤 공적으로 훈장을 받게 되었는지, 직업은 무엇인지 등의 정보는 제공하지 않습니다. 그뿐 아니라 문화예술계의 특성상 예명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본명으로만 검색이 가능해 어떤 인물이 훈장을 받았는지 한눈에 살펴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정보공개센터는 행정안전부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1974년 이후 문화훈장 수훈자들의 명단을 확보했습니다. 그 후 정말로 기나긴 검색과 정리 과정을 거쳐 2003년 3월부터 2019년 11월 현재까지, 노무현/이명박/박근혜/문재인 정부 기간의 문화훈장 수훈 671건의 DB를 정리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정보공개센터가 정리한 DB를 바탕으로 지난 16년간 문화훈장 수훈자들의 현황, 정권별로 나타나는 문화훈장 서훈의 특징 차이에 관해서도 살펴보고자 합니다.
원문: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