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모히또에서 몰디브 한잔해야지!
칵테일은 수다스러운 술이다. 한 잔을 마시는 동안, 아니 주문을 하고부터 다 마시기까지 이 음료에 대한 추억이나 이야깃거리를 읊어야 하는 음료계의 필리버스터라고 할까. 소주면 소주, 맥주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시는 사람들도 칵테일 앞에서는 양반걸음 걷듯 조심조심 입술을 적신다.
각자가 이 칵테일 선정의 이유를 말하고 있을 때 점점 내 차례가 다가옴을 느낀다. 이럴 수가. 그냥 마시고 싶어서 고른 건데. 어떤 말을 해야 이 즐거운 분위기를 다운시키지 않을까 고민을 하다가 입을 열었다.
그 칵테일 뜻이 닭 꼬리인 거 알아요? 칵… 테일….
하핫 망했다(아마 그냥 닭 소리를 내는 게 나을 듯). 오늘 마시즘은 하지 못한 칵테일에 대한 이야기다. 진짜 닭 꼬리 맞다고요.
칵테일의 탄생: 뜻이 닭 꼬리라고?
‘칵테일(Cocktail)’이라는 이름에는 어디에서 지어진 것일까? 이에 대한 이야기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것들이 많다. 일단 멕시코에 정박한 영국 선원피셜이 재미있다. 술집에 들어갔더니 한 소년이 술을 믹스해서 만들어 줬는데 그것이 너무 맛있어서 무엇이냐고 물었다.
하지만 소년은 자기가 술을 섞고 있던 막대를 물어보는 줄 알고 ‘코라데가조(Cora De gallo)’라고 대답했다. 코라데가조! 정말 멋진 술 이름이군. 영국 선원은 이 음료를 코라데가조라며 널리 홍보대사 역할을 자청했다. 코라데가조는 영어로 ‘테일 오브 콕(Tail of Cock)’. 즉 닭의 꼬리였는데 말이다.
술집을 운영하는 주인의 딸에게 청혼하기 위한 남자의 이야기도 있다. 그는 예비 장인에게 청혼 허가를 맡기 위해 주사위 게임을 제안했다. 열심히 져서 술집 주인의 기분이 좋아진 순간 청혼 이야기를 꺼내려고 한 것이다. 문제는 의도와 다르게 자기가 이기고, 술집 주인은 내리 패배하는 것. 술집 주인 입장에서는 이게 예비 사위인지 타짜인지 헷갈리게 되는 싸한 순간들이 찾아왔다.
술집 주인이 다시 주사위를 던지는 순간 수탉이 갑자기 크게 울었다. 그 뒤로 전세가 역전되었다. 결국 술집 주인은 역전에 성공했고, 패배한 남자는 때를 노려 청혼 허가를 받았다. 딸은 아까 울어준 고마운 수탉의 꼬리 깃털로 마시려 했던 술을 저었다고 한다.
술김에 만든 술이어서 그럴까, 사실 칵테일이라는 이름을 누가 붙였는지에 대한 것은 의견이 분분하다. 거의 닭과 꼬리, 그리고 술, 사랑이란 주제로 신춘문예를 하는 것이다. 뉴올리언스에서 만든 믹스 드링크의 이름이 프랑스어 ‘코크티에(Coquetier)’여서 이것이 칵테일이 된 것이 아닌가라는 설도 유력하지만, 재미가 없어서 탈락이다. 술자리는 팩트보다는 재미니까.
얼음과 탄산이 칵테일에게 가져다준 것
칵테일의 역사는 200년 남짓으로 보지만, 사실 인류는 오래전부터 술을 섞어 마셨다. 칵테일의 원조격인 ‘펀치(Punch)’는 17세기 영국에서 유행한 술이다. 인도에서 ‘5’을 상징하는 펀치는 5가지 맛(재료)이 들어있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것이다.
칵테일이 대중화되는 데에 중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을까? 그것은 갑자기 쏟아진 증류주들, 얼음, 그리고 탄산수가 있을 것 같다. 먼저 진과 럼, 보드카, 위스키 등등의 도수가 강한 주류가 쏟아져 나오면서 유통기한이 사라져 두고두고 만들기가 좋아졌다. 또 제빙기의 발명 이후 얼음을 기다리지 않고 만들 수 있었다.
탄산수의 경우는 칵테일에 어떤 전환을 주었는데. 인도에 있던 영국 군인들의 말라리아를 예방하려고 약재가 함유된 탄산수를 주었더니(맛이 없었다), 군인들이 술인 진과 섞어 마시면서 진토닉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 민간요법 같은 칵테일의 종류를 정립한 사람이 있다. 바로 제리 토마스(Jerry Thomas)라는 전설적인 바텐더다.
그는 미국과 유럽 전역에서 일하면서 칵테일을 만들었다. 주특기는 블루 블레이저(Blue Blazer)로 불을 쓰는 퍼포먼스가 강한 칵테일이었다고 한다. 그는 1862년 음료를 섞는 방법에 대한 책 ‘바텐더 가이드(Bartender’s Guide)’를 내면서 칵테일 레시피와 이름을 정립했다. 거의 음주계의 동의보감이라고 할까?
칵테일의 황금기는 금주법 시대와 함께했다
칵테일을 빠르게 발전시키는 나라는 미국이었다. 하지만 1920년대 0.5% 이상의 알코올을 금지하는 금주령(The Volstead Act)때문에 모든 알코올의 명맥이 끊길 위기에 처한다. 하지만 법도 음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마티니, 맨하탄 등의 전설적인 칵테일이 이때에 만들어졌다고 하니 말이다.
왜 칵테일이 발전한 것일까? 거기에는 금주령 때문에 제대로 된 술을 서비스할 수 없게 된 술집 주인의 사정이 담겨있다. 그들은 품질이 좋지 않은 술을 조금 더 맛있게 만들게 하기 위해서 칵테일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금주법 때문에 술 판매를 걸리면 안 되는 술집 주인들은 간판을 없애고 바의 위치를 1층과 2층에서 지하로 바꿨다. 그렇게 만들어진 술집이 스피크이지(Speak Easy) 바. 지금도 이 전통은 남아 있어 칵테일을 마시는 바는 지하나 혹은 지하처럼 어두컴컴한 분위기로 바뀌고 만다.
꽃말은 몰라도 칵테일 이름 뜻은 알아야지
사람들이 굳이 칵테일을 말할 때 닭 꼬리 언급을 하지 않는 이유. 그것은 칵테일의 각각 메뉴만 말해도 더 흥미로운 이야기가 산더미처럼 쌓여있기 때문이다. 칵테일의 이름은 아침마당 저리 가라 할 정도의 사연들이 모여있다. 어떤 칵테일의 맛이 마음에 들었다면 칵테일 이름의 유래를 알아보는 것도 재미있다.
맨해튼의 경우는 술의 도시 뉴욕의 지명을 따서 만들어졌다. 스크류 드라이버라는 칵테일은 보드카를 오렌지 주스 통에 넣어서 드라이버로 저어 마셨다는 데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마가리타는 죽은 연인의 이름을 넣어서 만든 음료라는 이야기가 있고. 좀비라는 칵테일은 해장술을 찾은 손님에게 럼주와 오렌지 주스를 조합해서 칵테일을 만들어줬는데, 그 날 늦게 다시 돌아와 하루 종일 좀비처럼 지냈다는 손님의 불평에서 만들어졌다.
문워크는 1969년 인간의 첫 달 착륙을 기념하여 만든 칵테일이라고 한다. 이 음료는 지구에 도착한 아폴로 11호 우주 비행사들에게 전해졌다고 한다. 사실 제조 방법에 있어서는 누가 처음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비슷한 음료 조합이 있지만 이 중에서 선택을 받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칵테일의 시대는 다시 온다, 인스타그램 때문에
해외에서는 다시 칵테일을 마시는 바 문화가 꽃을 피우고 있다. 이제는 대중들이 술을 대할 때 ‘빠르게 마시고, 빨리 취하는 것’이 기준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들은 음주라는 행위를 통해서 더욱 좋은 가치, 혹은 새로운 시도를 하고 싶어 한다. 술을 판매하는 측에서도 고객들을 끌어올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렇다면, 칵테일이다.
칵테일의 성공요인에는 또 다른 것이 있다. 바로 인스타그램. 칵테일은 다른 술이나 음료보다도 사진을 찍어 올리기에 좋은 생김새를 가졌다. 색깔이 화려하고, 재료도 많이 놓여있고, 무엇보다 있어 보인다. 요즘 신조어로 인스타그래머블(Instagramable)이라고 부른다. 때문에 각종 레스토랑과 호텔을 중심으로 시그니쳐 칵테일을 만들거나, 클래스를 열어서 사람들의 눈과 입맛을 사로잡고 있다. 한국에는 전통주로 칵테일을 만드는 분들의 소식이 왕왕 들린다. 칵테일은 자유니까.
단지 음료를 섞었을 뿐인데 색깔이 바뀌고, 맛이 달라지고, 무엇보다 이야기가 모인다. 만들어지는 과정부터 마시는 순간까지 수다스러운 술. 그래서 제가 마시는 칵테일은요?
번외: 마시즘 사람들이 고른 칵테일은?
- 블랙 러시안(디렉터): 세다, 센 게 짱이지
- 화이트 러시안(에디터): 최애 영화 ‘위대한 레보스키’에서 줄창 이것만 마셔서
- 준벅(에디터 모모): 어딜 가도 차이가 없다, 메로나보다 맛있는 음료는 이것 뿐
- 맨하탄(연구원Q): 이게 정말 멋있잖아요…(라면서 깔루아밀크 시킴)
원문: 마시즘
참고 문헌
- The Golden Age Of Cocktails: When Americans Learned To Love Mixed Drinks, NPR, 2015.7.29
- A (Brief) History Of The Cocktail, Vinepair
- Legends, Myths And Facts About The History Of The Cocktail, Food Republic, 2013.3.6
- 칵테일의 시작은 펀치, 명욱, 세계일보, 2019.4.20
- [뉴욕타임스 트래블] 더블린 하면 기네스 맥주? 이젠 `크래프트 칵테일`이다, 배혜린, 매일경제, 2019.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