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 ‘시에스타(siesta)’라는 문화가 있다. 일의 능률을 높이기 위해 점심시간이나 오후에 일정 시간 낮잠을 자는 문화다. 농경 시대 농부들이 한낮의 뜨거운 태양을 피하려는 목적으로 생겨난 관행으로 굳어졌다고 알려져 있다. 이 시간에는 대부분의 상점을 포함해 관공서까지 문을 닫고 낮잠을 잔다.
이 신묘한 문화는 아직 우리나라에서 찾기는 힘들다.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9시부터 6시까지라는 근무환경으로 평일에 직장에서 낮잠을 잘 수 있는 시간은 아직까진 보장받지 못하고 있다. 대신 파격적인 복지를 앞세우는 스타트업 중에 종종 점심시간을 1시간 30분에서 2시간까지 제공하는 곳도 있다고 한다.
경험해 본 사람은 알겠지만 신기하게도 낮잠을 10분이라도 자면 식곤증이 싹 날아가고 머리가 개운해진다. 반면 낮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을 경우 오후 내내 꾸벅꾸벅 졸거나 몽롱한 상태로 시간을 전부 보낸 후 퇴근 시간이 서서히 다가올수록 머리가 선명해지는 마법을 느껴볼 수 있다.
낮잠을 왜 자야 할까?
인류는 오래전부터 농경사회로부터 시작했으며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오후가 되면 시원한 그늘에서 낮잠을 청했다. 이러한 오랜 관습이 세대를 지나도 꾸준히 이어져 왔으며 본능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그래서 점심만 되면 잠이 오는 것이다.
BBC 자료에 의하면 하루에 20분간 낮잠을 잘 경우 오래 살 확률이 훨씬 더 높아진다. 심장질환부터 고혈압까지 만병통치약이라고 할 만큼 쉽게 비용을 들이지 않고도 건강을 개선할 방법이라고 한다. 마지막으로 낮잠을 자면 확실히 기분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지며 피로감이 싹 가신다. 어떤 피로해소제보다 효과가 좋다.
낮잠은 얼마나 자야 할까?
주말에 낮잠을 얼마나 자든 누구도 신경을 쓰지 않는다. 그러나 안타까운 직장인들에게 평일에 낮잠을 잘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은 점심시간일 뿐이다. 점심시간이 1시간이라는 전제를 두고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0–10분: 낮잠을 잔 건지 안 잔 건지 애매함
- 10–20분: 기억력 향상, 정신적 기민함 상승, 학습 능력 향상
- 20–30분: 창의력, 기억력 향상
- 30–60분: 렘수면을 보장하는 가장 유익한 낮잠 시간. 그러나 단점으로 점심을 굶어야 하기 때문에 배고픔 증가로 인한 예민 지수 증가, 점심시간 패스로 인한 직장동료와의 대화 단절.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낮잠에도 본인만의 리듬을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 사람마다 낮잠의 최적 시간도 다르다. 딱 맞는 시간을 자면 기분 전환도 되나 만약 본인의 최적 시간보다 초과했을 경우 잠에서 깨기 어렵고 오히려 졸음이 더 심해질 수 있다고 하니 본인의 낮잠 최적 시간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낮잠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
낮잠도 수면의 일부다. 보통 수면에 제약사항이 많은 사람은 피곤함에도 낮잠 또한 제대로 자지 못한다. 주변이 시끄러워 못 자는 사람들도 있고 한 줄기의 빛이라도 들어오면 못 자는 사람들도 있고, 생각이 너무 많아 못 자는 사람들도 있고 다양한 이유로 잠을 자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불면증으로 인해 밤에 잠을 자지 못하는 것보다 낮잠을 자지 못하는 것은 훨씬 더 낫지만 황금 같은 점심시간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직장동료들과 놀지도 못하고 허무하게 써버리고 나면 너무나 아까울 것이다. 그래서 낮잠을 제대로 즐기는 방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첫째, 낮잠 습관을 만드는 것이다. 점심시간에 계속 자는 습관을 들이면 신체 리듬이 형성되어 낮잠 시간에도 익숙해질 것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는 습관을 길러보자. 휴식 습관은 휴식인 만큼 습관을 만드는 데 너무 스트레스를 받진 말자.
둘째, 스마트폰을 잠시 덮어두는 것이다. 낮잠을 자기로 마음을 먹고 잠깐 이것만 확인해봐야지 하고 스마트폰을 만지는 그 순간 이미 점심시간의 끝이 가슴 턱밑까지 다가왔을 것이다. 낮잠을 위해 잠시 스마트폰은 덮어두자.
셋째, 어둡고 적막이 흐르는 곳을 찾는 것이다. 직장 내 휴게실이 조성되어 있다면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이 흐르고 몸을 이완시키는 포근한 조명 아래 몸을 누운 채 그대로 낮잠을 자면 된다. 그러나 휴게실이 없는 직장일 경우 최대한 어둡고 어떠한 소음도 들리지 않는 곳을 찾아보자. 창고도 좋고 안 쓰는 회의실도 좋다. 잠을 잘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인 본인만의 아지트를 만들어야 한다.
넷째, 만약 낮잠을 자기 위한 자세를 잡았는데 잠이 오지 않을 경우 최대한 다른 생각을 하는 것에 집중해보자. 뇌는 가끔 잠에 들기 위해서는 무언가 편안해지는 다른 집중할 것이 필요할 때가 있다. 걱정거리가 있거나 신경이 쓰이는 일이 계속 뇌를 자극한다면 낮잠을 잘 수가 없다. 행복했던 추억이나 좋아하는 이야기를 떠올리며 최대한 디테일을 계속 상기해보자. 자연스럽게 호흡을 조절하며 잠을 자기 위해 노력하면 어느 순간 맞춰놓은 알람 소리와 함께 눈이 떠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낮잠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물론 낮잠을 푹 자고 일어났다면 오후 업무 시간의 생산성을 향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낮잠을 자지 않았다고 해서 딱히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는다. 일단 잠보다 당장 1분 1초가 시급한 문제가 생기면 자연스럽게 몸은 초인적인 힘을 발휘하게 된다.
너무 걱정할 필요 없다. 낮잠이 부족해 초래할 결과에 집착하는 것이 오히려 더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괜히 낮잠 자면서 시계를 계속 보며 남은 시간을 체크하는 것은 불안감만 증폭할 뿐이다.
수면은 대출 불가 상품이다
『이말년씨리즈』 중 「잠은행」이 있다. 막중한 업무 강도에 시달리는 직장인이 잠을 자지 않고 일을 하기 위해 잠 은행에서 잠을 계속 대출해 잠을 자지 않고 계속 일을 하다가 잠에 대한 이자가 점점 쌓여 결국 영원한 잠에 든다는 비극적인 스토리다.
이처럼 수면은 절대 다른 것으로 대신할 수 없다. 잠을 쫓기 위해 흔히 직장인들이 많이 먹는 것이 커피랑 카페인 음료다. 철야 작업을 할 때 항상 사무실 책상 위에 마시고 남은 커피 컵과 카페인 음료 캔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있다.
전문가의 말에 의하면 커피를 포함한 카페인을 섭취하는 행위로 수면 리듬을 깨는 행동은 권하지 않는다고 했다. 졸음이 오는 건 최면적 기분으로 인간의 최적의 생체 리듬에 도움을 준다고 한다. 커피와 카페인이 당장 수면욕을 해결해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보았을 땐 리듬을 깰 수가 있다고 경고했다.
낮잠도 제대로 즐겨야지 일을 잘하는 직장인이 될 수 있다. 사무실에 언제든지 누워 잘 수 있는 목베개 정도는 팀원끼리 공동 구매해도 좋을 것 같다.
원문: 김화초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