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스펜스의 거장, 알프레드 히치콕
알프레드 히치콕이라면 사실 설명이 필요없는 영화 감독이지? 사실 우리 세대보다는 아버지 세대에 깊은 인상을 남긴 감독이지만 우리 역시 주말의 명화나 토요 명화 시간에 이 사람의 작품을 대부분 감상할 수 있었지.
아마 요즘 애들이 ‘서스펜스의 거장’이라는 타이틀에 현혹돼 히치콕의 영화를 감상한다면 이게 무슨? 하면서 의아해 할지도 모르겠다. 워낙 오래된 흑백영화들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알다시피 히치콕은 일반 대중도 대중이지만 전문가들이 더 선연히 기억하는 사람이야.
브라이언 드 팔마 같은 사람이 히치콕을 숭배했고 구스 반 산트 감독은 아예 히치콕의 영화 〈사이코〉를 복사한 리메이크를 만들기도 했어(그런데 원작보다 못하다는 평).
뭐 멀리 갈 것도 없이 박찬욱 감독은 영화를 만들 때 히치콕과 비슷한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기원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 있다. 요즘 하는 말로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하기로 하자. 하나만 더 표현해 보자면 영화사 사상 최초의 ‘스타’ 감독이라고나 할까. 즉 우리가 감독으로 영화를 기억하는 계보의 맨 꼭대기에 위치하고 있다고 보면 될 게야.
내가 이 양반의 영화 세계에 대해 논할 깜냥이 전혀 못된다는 건 익히 알 테지. 나도 그럴 의사는 없어. 〈사이코〉를 처음 볼 때 벌벌 떨었던 기억은 있고 〈새〉의 공포는 꽤 오랫 동안 지속됐고 지금도 새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이유가 되기도 했고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 케리 그란트라는 사람에게 열광하기도 했지만 그냥 단편적인 단상일 뿐, 전문가들이 그렇게 거품물고 감탄하는 이유는 설명을 들어야 고개를 끄덕일 정도인데 내가 감히 뭘…… 단지 나는 히치콕과 그 아내 알마 레빌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함.
히치콕과 알마 레빌
알프레드 히치콕은 원래 영국 사람이었지. 무성영화 시절부터 영화 일을 했고 시나리오 작가에서 감독으로 전환한 뒤에 〈39계단〉 같은 영화가 히트를 치면서 감독으로서의 명성을 쌓았고 이후 헐리웃으로 무대를 옮기지. 나이 스물 일곱 살에 자신의 조감독도 하고 편집자이기도 했고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한 다재다능한 여자 알마 레빌과 결혼하게 되지.
그런데 그 결혼 한 달 전에 히치콕이 얼마나 ‘여자’에 대해 무지했나를 입증하는 에피소드가 발생한다 . 무슨 말인가 하면 여배우가 물 속에 들어가는 장면이 있었는데 생리 중이던 여배우가 이를 거부했대. “아니 도대체 왜 이래! 너 배우 맞어?” 씩씩거리는 히치콕에게 카메라맨이 귀띔을 해 줬어. “쟤 생리 중이래요.” 그런데 우리의 대감독 히치콕 감독이 되물으신 거지. “생리가…… 뭐야?”
엄격한 가톨릭 집안에서 자라 금욕적 분위기에 충만했던 그는 알마 레빌과도 매우 ‘플라토닉’하게 살았다고 전해져. 어떤 호사가의 말에 따르면 알마와 알프레드 히치콕은 ‘딱 한 번’ 관계를 가졌고 운 좋게도 그 결과로 딸 페트리샤 히치콕이 탄생했다고도 하네. 그 호사가가 히치콕의 영화 〈이창〉의 주인공처럼 망원경으로 히치콕의 집 안을 수십년 감시한 바가 아닌 다음에야 믿을 수 없는 말이긴 하지만, 대충 어떤 성향이었는지는 짐작이 가지 않냐.
또 다른 입방아에 따르면 히치콕의 유명한 금발 여배우 선호 (잉그리드 버그만, 그레이스 켈리, 티피 헨드렌, 킴 노박 등등)는 바로 갈색 머리의 억센 아내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고도 해. 티 피 헨드렌 (영화 〈새〉의 주연〉은 히치콕이 자신을 스토킹했다고 추행도 시도했다고 주장하는데 글쎄 안믿는 사람이 더 많다네.
티피는 히치콕과 다툼 끝에 “이 뚱뚱한 돼지야!”라고 선언해서 히치콕을 격노시킨 일도 있는데 그녀 말을 액면 그대로 믿기엔 좀 정상적인 사람이 아니라는 썰. 오히려 히치콕이 자신의 금발 선호를 마케팅 포인트로, 즉 “히치콕의 다음 금발은 누구냐?”는 식으로 이용했다는 주장도 있다고 해. 뭐 진실은 당사자들과 신만이 알 일.
영화 제작에서도 파트너였던 두 부부
오히려 부부 금슬은 좋았대. 무엇보다 알마 레빌은 엄청난 과체중 (그 덩치는 기억나지?)과 폭음 등으로 건강을 해치기 일쑤였던 히치콕을 잘 제어했던 현명한 아내이면서 히치콕의 최상의 직업적 조력자였던 거지. 히치콕이 자신이 작업한 여배우에게나 음악 감독에게나 기타 스탭에게 전하는 최상의 찬사는 이것이었대. “알마가 정말 죽여 준다는군.” 그의 영화 대본을 최종 검토하고 완성본을 가장 먼저 보는 건 다름아닌 알마 레빌이었어.
사이코가 등장하는 서스펜스 영화의 원조라 할 〈사이코〉는 알마 레빈이 없었더라면 나오지 않았을 영화지. 실재했던 살인마 에드 게인의 이야기를 가지고 시나리오를 만들긴 했는데 영화사들은 “역겹다”고 투자를 거부했어. 에드 게인이라는 이름은 미국 범죄사에서 유명한 이름이고 후일 많은 영화가 이 사람의 이야기를 토대로 만들어지는데 1960년의 미국 영화사는 그런 엽기를 감당할 수 없었던가 봐. (설명하기 역겨우니 검색해 보도록)
히치콕은 아내에게 SOS를 치지. 알마 레빌은 여기에 선선히 응하고 전 재산을 남편의 영화 제작에 털어넣어. 그리고 이 영화를 고전으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공헌을 하지. 시체가 되어 쓰러진 여주인공이 침을 꿀걱 삼키는 광경을 편집 과정에서 발견한다거나. 영화사상 고전이 된 사이코의 샤워신에서 불협화음같은 음악을 실어 분위기를 살린다거나. (원래 히치콕은 무음 처리를 하려고 했었다는군)
1980년 4월 29일 히치콕이 죽고 그로부터 2년 뒤 알마도 그 뒤를 따랐지. 이 뜨겁다고는 할 수 없지만 꿍짝은 잘 맞았던 부부는 자식은 하나 밖에 안남겼지만 수많은 영화들을 유산으로 남겼다.
많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인용하는 바, 히치콕의 영화에 흐르는 주제는 불안과 공포겠지.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습격하는 새(영화 새). 샤워 중 영문도 모르고 칼질을 당한 채 욕조에 쓰러지는 여자 (영화 사이코), 널따란 옥수수밭에서 비행기의 습격을 받는 남자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라든가. (다른 영화 예를 들어 보라고? 미안. 봤어도 잘 기억 안나네)
히치콕의 불안과 공포가 새삼 기억나는 이유는 요즘 내가 매우 격심한 ‘불안과 공포’에 시달리고 있어서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여행의 즐거움과 설렘으로 그득했던 배가 눈깜짝할 사이에 물지옥으로 변해 버리고 눈앞에서 벌어진 일에 수천만이 손 하나 꿈쩍하지 못하고 그 지옥의 문이 닫히는 순간을 무력하게 지켜보는 설정은 저 유능한 히치콕 부부라도 그 상상 영역 밖의 일일 테니까.
그는 말년에 〈프렌지〉라는 영화를 감독했어. 자신의 영화에 한 번씩 꼭 카메오로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는 〈프렌지〉의 예고편에 등장해. 넥타이에 목졸려 살해당한 여자의 시체가 트럭 뒤칸에 실려 있어. 차가 흔들리면서 갑자기 히치콕이 등장해. 그러고는 말하지. “이 넥타이는 내 꺼란 말이오.” 태연하게 알몸의 여자 시체에서 넥타이를 풀어 셔츠에 매고는 총총 사라진다.
그 능청스러움을 나는 그저껜가 봤다. 어느 방송사의 보도국장이 했다는 얘기 속에서. “세월호 사건이래봐야 교통사고 숫자에 비하면 많은 것도 아니잖아.” 아마 히치콕 부부는 저승에서 구름을 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 왜 우리는 저런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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