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서방, 참선 한 번 해보게
지방에 살다 보니 서울에 볼일이 있으면 영등포에 있는 처가에서 묵는다. 볼 일이라고 했지만 마무리는 항상 술이다 보니 새벽에 들어가기 일쑤다. 지금은 적응이 됐지만 처음에 처가 아파트 비밀번호를 조심스럽게 누르고 들어가다 깜짝 놀란 적도 많았다. 컴컴한 어둠 속에 장인어른께서 가부좌를 튼 채 꿈쩍도 않고 앉아 계셨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두 분 다 주무시고 계실 거라 생각했던 나는 깜짝 놀라 면구스러운 표정으로 인사를 했지만 아버님께서는 미동도 없으셨다. 혹시 화가 나셨나? 싶었지만 그건 아니었고 나중에야 아버님께서 매일 새벽마다 참선을 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독실한 불교 신자이신 아버님은 홀로 참선을 해오신 지 꽤 오래되셨다. 이후 내게도 자주 말씀하셨다. 참선이 정말 좋은 거라고, 이걸 하니까 마음이 평안하고 시력이 좋아지고 난데없이 키까지 커졌으며 또…여기서 밝히기 좀 뭐한 여러 가지, 그러나 아주 좋은 효과가 있다고 하셨다. 이후로도 장인어른께서는 늘 나를 보면 말씀하셨다.
한 서방, 참선 한 번 해보게.
하지만 불교와 참선 모두에 문외한인 나는 그냥 형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고개는 끄덕였지만 절대 할 생각은 없었다. 물론 참선이란 게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겠지만 나쁜 건 아닐 테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되게 끌려서 당장 배워보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굳이 말하자면… 내 삶과 아주 동떨어진 곳에 있는 예쁜 돌 같은 거?
그러다 이 책을 우연히 읽게 되었다. 제목도 심플하다. 『참선』이라니. 솔직히 별로 끌리지 않는, 평범하고 진부한 제목이다. 책도 두 권이라 읽기 전부터 좀 막막한 기분도 든다. 하지만 이 책엔 반전이 하나 있다. 먼저 평범하고 진부한 제목에 비해 이 책을 쓴 사람의 이력과 삶의 내력이 놀라울 만큼 스펙터클하고 내용 역시 예상외로(?) 흥미진진하다는 것이다.
테오도르 준 박. 아마 처음 듣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나도 그랬다. 실제로 검색해 봐도 나오는 게 별로 없다. 무려 하버드대 출신 재미교포로 충분히 유명세를 탈만한 그의 이력을 생각해보면 놀라운 일인데 책을 읽다 보면 그 이유를 대강 짐작할 수 있다.
깨달음을 얻을 수만 있다면
뉴욕에서 태어나 하버드대학교 비교종교학과를 다니던 테오도르 준 박은 스물두 살이 되던 1987년 깨달음을 향한 열망을 안고 한국에 온다. 사실 한국에 오기 전까지 저자는 전형적인 젊고 똑똑한 히피 뉴요커였다. 병원에 실려 갈 정도로 술을 퍼마셨고 음악과 영화에 빠져 밤을 지새우기도 했으며 화려한 이성 편력을 자랑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런 모든 일이 어려서부터 저자의 가슴 한구석에 자리 잡았던 허무감과 불안감, 우울을 채워주거나 극복하게 해주지는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저자는 우연히 송담 스님에 관해 듣는다. 무려 10년 동안 묵언 수행을 통해 깨달음에 이르렀다는 소문이 자자한 스님이었다. 그 말을 듣고 곧바로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던 저자의 마음은 아마 지푸라기라도 붙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것이다. 인간을 괴롭히는 온갖 삶의 문제에 해답을 가진 사람의 존재를 확인하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송담 스님이 전해준 ‘깨달음’의 골자는 의외로 단순했다. 바로 참선. 오직 그뿐이었다. 쉽게 말하면 송담 스님은 물고기를 잡아다 입에 넣어주는 사람이 아니라 직접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가르쳐주는 사람이었고 그 물고기 잡는 기술이 바로 참선이었던 것이다.
책의 1권에 등장하는 수련기는 그 자체로 몹시 흥미진진한 인생 드라마를 보여준다. 한국말을 거의 하지 못한 채 한국에 와서 엉겁결에 머리를 깎고 스님 생활을 시작한 저자는 송담 스님의 사투리 섞인 설법이 녹음된 테이프를 듣고 또 들으며 조금씩 깨우쳐 나간다. 송담 스님의 원칙은 모든 것을 스스로 깨우치는 것이기에 저자는 주위의 도움을 기대하지 못한 채 갖은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른 한국의 절에서 저자는 자주 회의와 혼돈에 빠지지만 오직 송담 스님을 향한 믿음 하나로 그 힘든 과정을 극복해나간다. 잘나가던 하버드 출신 뉴요커에서 속세 한복판에 있는 시끄럽고 정신없는 절의 허드렛일을 도맡는 중이 되는 건 꿈에서도 상상하기 힘든 일이다. 하지만 테오도르 준 박은 그걸 해냈다.
참선하면 대체 뭐가 좋아요?
이 책은 테오도르 준 박의 인생 내력을 담은 자전적 성격을 띠긴 하지만 그보다 대중들에게 참선의 효용을 전파하는 데 더 초점을 맞춘다. 사실 불교 중에서도 선불교는 개인주의적 색채가 매우 강하다. 참선을 하는 것도, 그를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도 모두 개인의 몫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테오도르 준 박의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이유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른다. 그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구도자로써 참선에 몰두했지 다수 대중들을 향해 나서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송담 스님의 권유를 통해 그는 조금씩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그 자신 또한 많은 변화를 겪었음을 고백한다. 물론 더 큰 변화를 얻은 것은 참선이라는 새로운 수행을 시작한 다수의 사람들이겠지만 말이다.
저자는 참선이 “당신 안에 묻혀 있던 지혜를 발견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정답은 외부에 있지 않다. 지혜로운 누군가가 우리에게 삶의 정답을 던져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이미 우리 안에 내재해 있는 정답을 발견해가는 것이라고, 참선은 말한다.
물론 우리는 흠결이 많은 존재들이다. 작은 것에 화가 나서 부들부들 떨고 아무것도 아닌 일에 잔뜩 풀이 죽어 우울해지며 당장의 미래만 생각해도 불안감에 마음이 초조해진다. 이렇게 나약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는 우리 내부에 지혜가 묻혀 있다고? 선뜻 수긍하기 힘들지만 참선은 언제나 그 물음에 ‘그렇다’고 말한다.
물론 이 지혜는 각고의 노력 끝에 발견되는 것이다. 가만 누워서 유튜브로 참선 영상을 100번 본다 한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다행스럽게도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고 간편하게 할 수 있는 참선의 수행 방법을 친절하게 안내한다. 어찌나 간단하고 쉬워 보이는지 나도 혹하는 마음에 바로 따라 해보기도 했다. 그런데 웬걸, 가만히 눈을 감고 1분도 채 있기 쉽지 않았다. 그게 무슨 플랭크 같은 운동도 아닌데 이렇게 힘들 일이야?
당혹스러운 마음에 재차 눈을 감아 보았지만 자꾸 잡생각이 끼어들고 나도 모르게 몸이 뒤틀렸다. 순간 깨달았다. 아, 나는 단 1분도 아무 생각 없이 오롯이 무언가에 정신을 집중시킬 수 없는 사람이구나. 이런 건 어디 건강검진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러니 더욱 큰일이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나도 모르는 사이 내 마음이 이토록 많이 흐트러져 있구나. 그래서 내 마음이 이렇게 힘들 수밖에 없었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요즘 느끼는 건데 점점 사람들의 짜증이 는다. 이게 사람들이 쉽게 짜증을 내는 성격으로 바뀐 것인지 아니면 전에는 알지 못했을 짜증 날 만한 일들을 너무 쉽게 접할 수 있는 세상이 되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우리는 짜증의 홍수 속에 산다. 나 역시 무언가 수틀리면 쉽게 짜증을 내는 스타일인데 어쩌면 그건 삶에 커다란 염증을 느껴서일 수도 있다.
이 책은 나를 둘러싼 바깥세상 자체를 어떻게 바꿔야 하는지는 이야기해주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삶을 대하는 태도를 어떻게 벼려갈 수 있는지, 참선이라는 새로운 무기를 소개하며 자상하게 일러준다. 참선은 무엇보다 내가 나를 통제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비롯한다. 세상에 내 맘대로 되는 게 거의 없다. 그래서 우리는 종종 무기력해진다. 하지만 이 책은 말한다. 바로 너 자신은 네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우리는 ‘참선’이라는 수행을 부지런히 연습해야 한다고.
이건 특정 종교와 별 상관이 없다. 불경을 외는 것도 아니고 부처를 부르는 것도 아니다. 다만 눈을 감고 ‘이뭣고?’라고 외치며 나라는 존재 자체를 깊이 들여다보기만 하면 충분하다. 그러니 기독교인이든 천주교인이든 힌두교인이든 이슬람교도든 아무 상관이 없다. 저자가 강조하는 것도 종교적 수행이 아닌 개인적 수행으로서 참선이 지닌 확장성이다.
그러니 요즘 유독 짜증이 많이 나고 만사가 귀찮으며 뾰족하게 날이 서 있는 것 같다고 느끼는 사람은 이 책을 읽고 저자가 친절하게 알려주는 참선의 세계를 맛보자. 물론 쉽지는 않다. 하지만 일단 참선을 시작한다면 당신의 삶은 지금보다 훨씬 좋아질 것이다.
※ 해당 기사는 나무의마음의 후원으로 제작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