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말에 태어나 2000년이 됐을 때 청소년이거나 어린이였던 세대를 밀레니얼(Millennials) 세대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2000년 이후 태어나 지금 청소년이거나 어린이인 세대를 Z세대(Generation Z)라고 부르죠. (물론 세대가 어느 한 시점을 기준으로 칼로 두부 자르듯 명확하게 나뉘는 건 아닙니다. 기준은 조금씩 다릅니다.) 그런데 최근 Z세대부터 밀레니얼을 아우르는 어린/젊은 세대에서 유행하는 말이 하나 있습니다.
OK, Boomer.
OK는 말 그대로 알았다는 뜻이고, Boomer는 베이비붐 세대, 즉 (특히 나이 든) 어른을 뜻하죠.
우리말로는 순하게 옮기면 “어른들은 몰라요, 그러니 그만하셔요.” 정도가 될 테고, 좀 더 직설적으로 옮기면 “고지식한 소리 집어치우세요, 듣기 싫어요.” 정도가 될 겁니다. 비속어를 쓰지 않는 선에서 더 노골적으로 옮겨보면 “늙은이들아, 헛소리 집어치워. 시끄러우니까.”까지도 가능할 겁니다. 맥락에 따라 워낙 다양하게, 포괄적으로 쓰일 수 있는 표현인 만큼 어느 하나를 정답이라고 하기 어려울 겁니다.
오케이 부머라는 말이 소셜미디어에서 회자하기 시작한 건 올해 초부터입니다. 그러다 이달 초 뉴질랜드 의회에서 녹색당 소속 클로에 스와브릭(Chloe Swarbrick) 의원이 연설 중에 이 말을 하면서 많은 언론이 이 말의 의미와 유래, 파장을 논하기 시작했죠. 영상을 보면 스와브릭 의원 뒤에 앉아서 연설을 듣던 제임스 쇼 녹색당 대표도 스와브릭 의원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몇 초 동안 의아해하다가 뒤늦게 알아차립니다.
뉴질랜드 국회 자막 팀도 ‘OK, Berma’라고 잘못 적었죠. (나중에 자막 팀은 트위터에 자신들의 실수를 인정하며, 앞으로 소셜미디어에서 밀레니얼들이 자주 보는 밈(meme)을 열심히 챙겨보며 신조어도 공부하겠다고 밝혔습니다.) CNN이 뉴욕타임스 문화부의 테일러 로렌즈 기자와 오케이 부머 현상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요약해 정리했습니다.
먼저 스와브릭 의원의 연설 가운데 ‘오케이 부머’가 언급된 장면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2050년이 되면 저는 56살이 됩니다. 이번 회기에 선출된 의원님들의 평균 연령은 49세죠. (동료 의원들 사이에서 얕은 탄식이 나오고, 이내 야유 혹은 조롱 조의 소리도 잠시 들림.) 오케이 부머. 기존의 정치 제도는 단기적인 정치적 이해관계에만 함몰돼 근본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다루는 데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 클로에 스와브릭 의원
뉴욕타임스의 로렌즈 기자의 설명에 따르면, 오케이 부머라는 말이 등장한 건 페이스북 등 소셜 미디어였습니다. 기성세대를 비난하는 이들이 “제발 베이비붐 세대는 입 좀 닥쳐주면 좋겠다(shut the heck up boomers)”는 짤(meme)을 만들었죠. 이 말이 본격적으로 유행하게 된 소셜미디어는 틱톡이었습니다. 이용자들의 평균 연령이 더 낮은 서비스로, 베이비붐 세대는 특히 잘 이용하지 않는 소셜 미디어죠.
오케이 부머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이를 두고 대단히 모욕적(offensive)이며, 나이를 기준으로 상대방을 차별하는 것(ageism)이라는 지적이 나옵니다. 그러나 로렌즈 기자는 오케이 부머가 노인 차별이라면, 기성세대가 밀레니얼이나 어린이들을 향해 “요즘 젊은것들은 이러쿵저러쿵” 하면서 조언을 가장한 간섭을 해온 것도 나이를 토대로 한 명백한 차별이라고 설명합니다. 평생 가장 풍요롭게 살아온 기득권 세대가 세대 경험을 공유하지 못한 다른 이들에게 무례하게 구는 거로 따지면 베이비붐 세대만 한 세대가 없다는 것이죠.
젊은이들은 아마 이렇게 답할 겁니다. 보통 어른들이 다짜고짜 끼어들어 오지랖 넓게 함부로 조언해대거나 고리타분한 말을 할 때 듣기 싫어서 딴청을 피우곤 하잖아요. 그런 것과 같은 거라고요, 상대방이 그만했으면 하는 메시지를 담고는 있습니다. 그렇다고 “오케이 부머”가 무례하거나 공격적인 표현은 아녜요.
베이비붐 세대 전체를 한꺼번에 기득권 세력으로 묘사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로렌즈 기자는 10대 청소년들과 이야기해본 결과, ‘오케이 부머’에서 부머는 특정 세대라기보다는 어린이들이나 새로운 세상의 변화를 이해하려는 마음은 하나도 없으면서 그저 본인들이 익숙한 기존의 질서에 맞추라고 강요하는 기성세대와 그런 ‘꼰대스러운’ 태도를 향한 일침이라고 설명합니다.
10대들이 오케이 부머라는 표현을 가장 많이 하는 대상이 부모님인데, 지금 10대 자녀를 둔 부모들은 굳이 나누자면 대부분 X세대죠. 그러니까 몇 년도부터 몇 년도 사이에 태어났다고 부머가 되는 게 아니라, 쉽게 말해 꼰대의 다른 말이 부머인 겁니다.
이 단어를 만들어내고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세대가 밀레니얼 세대(CNN이 나눈 기준에 따르면 1981–1996년생)가 아니라 그 이후에 태어난 Z세대(1997년 이후 출생)라는 점도 인상적입니다. 밀레니얼 세대도 Z세대에 비하면 더 풍족하게 살아온 세대이므로, 기성세대의 철 지난 조언에 어떻게 보면 이미 좀 물들어 있고, 그래서 거부감이 덜 들 수 있다는 거죠.
꼰대를 좋아하는 젊은이는 아마 거의 없을 겁니다. 그렇다고 해도 오케이 부머 현상이 너무 한 사회를 이루는 다른 구성원을 무시(dismissive)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 로렌즈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마 젊은 세대는 그럼 이렇게 말할 거예요. 기성세대야말로 젊은 세대의 바람과 간절한 외침을 철저히 묵살해온 거 아니냐고 말이죠. 기후변화나 등록금 문제 등 자라나는 세대에 가장 절박하고 심각한 문제들을 개선하기 위해 이들은 거리로 나서기도 했지만, 그럴 때마다 앞장서서 “어린 것들이 뭘 아냐”며 귀를 닫고 무시한 것이 바로 베이비붐세대로 대표되는 기성세대의 ‘꼰대적 관점’이라는 거죠.
절박한 문제를 아무리 이야기해도 들어주지 않는 기성세대와 철옹성 같은 기득권을 향해 젊은 세대가 “우리 손으로 직접 변화를 만들어내자”는 다짐과 함께 만들어낸 신조어이자 하나의 현상이 오케이 부머일 수 있다고 로렌즈 기자는 말합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