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Economist의 「How to talk about unspeakable things」를 번역한 글입니다.
예의를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피해야 하는 대화 주제로 흔히 정치, 종교, 섹스를 꼽습니다. 하지만 어려운 대화를 반드시 해야만 하는 순간이 있죠. 성에 대한 대화, 특히 성적 악행에 대한 대화는 여전히 오해를 낳을 수 있는 말들과 완곡어법으로 포장돼 의도와 관계없이 해로운 결과를 낳는 경우가 많습니다.
최근 바르셀로나에서 일어난 사건은 언어의 힘을 잘 보여줍니다. 의식이 없는 14세 소녀를 집단 강간한 5명의 남성이 ‘성폭행(sexual assault)’이 아닌 ‘성적 학대(sexual abuse)’로 유죄 판결을 받은 까닭은 이들이 엄밀히 말해 법이 규정한 대로 폭력이나 협박을 수단으로 사용하지 않았다는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바르셀로나를 비롯해 스페인 각지에서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위대가 법원의 관용에 분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실제로 꽤 높은 형을 받기도 했고요. 사람들은 ‘성폭행’의 성립 요건이 무력의 사용이 아닌 동의의 부재로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죠. 즉, 정치인들에게 용어의 개념을 다시 정의하라고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의 시위에는 아이러닉한 면이 있습니다. 집회 구호인 ‘No es abuso, es violación(학대가 아니다, 강간이다)’에 나오는 ‘강간’을 의미하는 스페인어 단어 ‘violación’의 어원이 폭력을 뜻하는 ‘violence’와 같다는 사실은 명백한데, 해당 사건에 ‘폭력’이 없었다는 것이 문제였기 때문이죠.
다른 유럽 언어들 역시 강간이란 폭력적인 것이라는 역사적인 믿음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강간’을 의미하는 독일어 단어 ‘Vergewaltigung’ 역시 ‘폭력’을 뜻하는 ‘Gewalt’를 담고 있죠. 영어 단어도 마찬가지입니다. ‘rape’은 라틴어 ‘rapere’에서 온 것으로, 원래는 성적인 의미도 신체적인 손상의 의미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탐욕스럽다는 의미의 형용사 ‘rapacious’에 남아 있듯, ‘(무엇을) 강제로 취하다’라는 뜻이죠.
이는 수 세기 동안 이어진 강간에 대한 태도를 그대로 보여줍니다. 강간은 여성 자신에 대한 범죄가 아니라, 여성의 아버지가 여성의 배우자에게 넘겨주어야 할 여성의 처녀성이나 정절을 강제로 빼앗는 범죄, 즉 아버지 또는 남편에 대한 재산 범죄로 여겨졌으니까요.
다행히도 페미니스트들은 꽤 오래전에 이 문제를 여성의 경험에 대한 것으로 만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러나 ‘강간’이라는 단어는 이제 너무나도 강력하고 고통스러운 단어가 되어, 사람들은 이 말을 직접 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다양한 방식을 개발해냈죠. ‘성폭행’이라는 단어가 널리 쓰이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의 일입니다.
이로써 성적인 폭력을 저지르고, 경험하는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으며, 여성의 처녀성을 강탈하는 것은 다른 종류의 폭력에 비해 더 특별할 것이 없는 한 종류일 뿐이라는 사실이 용어에 반영되었습니다. 미국의 여러 주와 캐나다에서는 법에 더 이상 ‘강간’이라는 죄목 대신 다양한 수위의 성폭행이 명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의도하지 않았던 결과도 있었습니다. 성폭행은 보통 (예를 들면 영미 사법체계에서) 동의 없는 성적 접촉으로 정의됩니다. 그러니까 만지고 더듬는 것에서 가장 난폭한 강간까지를 모두 포함하는 것이죠. 따라서 사건에 직접적으로 관계되지 않은 사람들은 각 사건의 중대성을 실감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가장 사악한 종류의 강간범들조차도 덜 흉악한 범죄를 저질렀을 수도 있다는 오해의 덕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가장 오래된 단어가 가장 강력한 경우가 많습니다. 활동가들은 10대 소녀들을 납치하고 강간한 제프리 앱스타인을 보도하면서 ‘미성년의 여성들과 놀아난(cavorted with)’과 같은 표현을 쓴 매체들을 강력하게 비판했습니다. 비슷한 맥락에서 ‘아동 포르노(child pornography)’라는 표현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동의한 성인들 간의 퍼포먼스와는 거리가 먼, 아동을 상대로 하는 끔찍한 범죄니까요. 때로는 사람들이 동의를 기반으로 한 성관계에 대해 말할 때 쓰는 어휘들 없이는 성범죄에 대해서 이야기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제 페미니스트들은 ‘강간에 대해서 이야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언어: 페미니스트 가이드(Language: a feminist guide)’라는 글을 올린 언어학자인 데보라 캐머런(Deborah Cameron)이 대표적이죠. 범죄에 제대로 된 어휘를 주는 것은 범죄를 축소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론과 정계에서 흔히 사용하는 추상적인 표현과 법적 용어들은 범죄 행위를 덜 심각한 것으로 보이게 해 사안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지 못하게 눈을 가릴 수 있습니다. ‘고문’이라는 말 대신 ‘인권 침해’라는 두루뭉술한 표현을 쓰는 것이 부적절하듯, 성범죄에 대한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르기를 두려워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