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평가 목적을 두 가지로 얘기한다.
보상해주려면 그 근거가 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니 평가를 할 수밖에요.
또는,
요즘 세대들은 성장을 원해요. 자기가 뭘 잘하고 못하는지 알고 싶어라 해요. 그러니 평가를 하고 피드백해 줘야지요.
그런데 나는 인사 평가의 또 다른 목적이 있다고 믿는다. 바로, “구성원 개개인의 노력과 헌신을 조직의 기억으로 남기는 일”이라고. 이게 무슨 말일까.
어떤 조직은 평가 기록이 하나도 없거나, 불과 3년 치 자료만 있다. 5년 전, 10년 전에 구성원이 치열하게 일한 기억은 상사 개인의 머리에만 남는다. 그 기억력도 불완전해서 대략 ‘아 그때 그 친구가 그랬지’라는 인상만 남는다.
맥락을 모르는 상사가 새로 부임한 경우나, 외부에서 영입된 경우에는 심각하다. 구성원은 정말로 이 조직을 위해서 치열하게 일해왔는데, 새로 온 상사는 “너희는 왜 이따위로 일해왔나. 가만 보니 이 부서에서 오래 일한 네가 적폐였네.”라는 뉘앙스를 흘린다. 머리카락 빠지게 고민한 세월이 갑자기 사라진 셈이다. 조직에는 아무런 기록도 남아 있지 않다. 정말로 서러워진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파벌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점이다. 개인이 열심히 일한 기록이 상사 머릿속에만 남으니, 구성원들은 상사에게 잘 보일 수밖에 없다. ‘일’에 집중하는 게 아니라 ‘상사’와 ‘의전’에 집중한다. 직속 상사가 갈리는 경우를 대비해서, 그 위 상사 또 그 위 상사로 라인을 탄다.
미군이 전사했을 때, 이들이 거행하는 의례를 보면 참 부럽다. 전사자를 정성스레 관에 넣고 성조기로 둘러싼다. 그리고 비행기에 조심스럽게 태운다. 도착지에는 대통령, 고위 각료, 군 장성 등이 먼저 마중 나와 있다. 그의 희생을 모두가 기념한다.
TV에서는 이 모습을 국민들에게 방영한다. 그가 나라를 위해서 쏟아부은 노력과 헌신을 ‘국가의 기억’으로 남긴다. 오늘을 사는 다른 군인들에게는 강렬한 메시지를 전한다. 국가에 헌신한 너를 우리 모두가 기억할 거라고.
스타트업도 이런 접근이 필요할 수 있다. 미래를 담보할 수 없는 전쟁터와 같은 우리 조직에서, 네가 보여준 열정과 헌신을 우리가 계속 기억할 거라고. 평가는 곧 개인의 노력과 헌신을 조직 차원으로 기억하는 일이다. SABCD 평가 등급만 남기는 건 무의미하다. 그의 헌신과 노력, 그리고 결과의 풍부한 기록이 더 중요하다.
원문: 김성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