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 최진리 씨와 구하라 씨를 떠나보냈다. 나는 예전부터 우리나라의 ‘공장제 아이돌 산업’의 문제를 여러 차례 이야기했다. 사실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가 악은 아니다. 문제는 그 엔터테인먼트 산업 중 일부를 차지하는 팬덤에 기반 둔 ‘아이돌 산업’의 육성 과정에 있다.
먼저 아이돌이란 말 그대로 ‘우상화 판타지’를 이용한다. 남녀를 떠나 ‘올바른 삶의 가치관을 가진 이’를 전제로 대중이 추구하는 바를 대리 만족해주는 ‘상(像)’을 연출하는 데 그 소구의 핵심이 담겨 있다. “섹시하되 섹스하진 말아야 한다”라는 아이돌 출신 연기자 김동완 씨의 발언은 이 지점을 압축적으로 이야기하지만 성적 대상화 문제가 단지 여자 아이돌에 국한되는 지점은 아니다.
아이돌이란 ‘대중이 추구하는 모범적 상(像)을 가진 자’에 대한 ‘유사 연애’ 감정을 바탕으로 한다. 당연히 기본적으로 성별을 떠나 ‘성적 대상화’가 전제되어있다. 다만 유의미한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남녀가 원하는 상(像)이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남성의 경우 본인들 스스로 ‘자아실현의 주체자로서의 선택 권력’을 가진 채로 학습 받아왔고, 그걸 상대 성별에 요구하지 않는다. 반대로 여성의 경우 스스로를 ‘자아실현의 주체자로서 선택하는 것을 억압’ 받아왔기 때문에 그 대리만족을 남자 아이돌로 추구한다.
그래서 남자 아이돌의 음악에서 주는 가사의 멘트는 다분히 공적이거나 ‘올바름’에 대한 표현이 많다(여성들이 추구하고자 하는 이상향이 남성에 의해 표현된다). 반대로 여자 아이돌은 그 주 소비층이 남성이기 때문에 남성에게 소구하는 방법인, 그야말로 ‘귀여움’ ‘애교 많은’ ‘풋사랑’ 등의 다분히 성적 도구화되는 메시지가 표출된다.
그러나 반응은 같다. “섹시하되 섹스하진 말아야 한다”는 아이돌에게 공통된 숙명과도 같다. 열애설이 팬덤을 붕괴시키는 주요 원인이 됨은 남녀 불문 공통인데, 이유는 그 기저에 ‘유사 연애’가 전제됨을 증명한다. 이건 사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공식화된 마케팅 방향이라 새삼 놀랍지 않다. 하지만 문제는 바로 이 아이돌들의 데뷔 연령과 육성이라는 차원에서 존재한다.
바로 “섹시하되 섹스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미지를 부합하는 대상 연령이 점점 어려진다는 점이다. 과거에는 10대 후반에서 20대 중후반까지 분포된 연령대가 최근에는 10대 초중반에서 20대 극 초반에 형성된다. 한 오디션 프로그램에서 YG 엔터테인먼트의 양현석 대표가 20대 중반 참가자를 보고 “은퇴해야 할 나이”라고 지적한 것은 이런 속성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의 아이돌로 소비된다는 현상은 점점 더 어린 나이의 데뷔를 전제하고 발생한다. 우리나라의 아이돌이나 일본의 아이돌 모두 열애설에 취약하고, ‘섹시하지만 섹스하진 말아야 한다’를 공통분모로 하지만 차이가 있다. 바로 양성 과정이다.
일본의 아이돌 산업도 어린 나이에 데뷔하고, 성적 대상화해 소비하는 것은 동일하다. 그러나 그 요구되는 탤런트의 수준이 취약하다. 이것도 또 하나의 문제이긴 한데 일본의 정서 중 ‘아마에’라고 응석받이를 관대하게 받아들이는 정서가 있다. 미성숙함이 오히려 매력 포인트가 된다. 이게 자유주의 국가에서 보면 “소아성애” 문제가 있는 부작용이 있으나 잠시 차치하고, 기본적으로 엔터테이너로서의 숙련도 차원에서 서술하자면 그리 수준이 높지는 않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반면 한국의 아이돌은 엔터테이너로서 높은 숙련도가 요구된다. 1990년대 후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까지의 아이돌은 그런 요구를 받지 않았으나 2000년대 중반부터 탄생한 아이돌은 라이브를 소화할 수준 높은 가창력과 댄스 능력, 랩 실력과 예능, 그룹 해체 이후를 대비한 ‘연기자 수업’ 및 사생활 관리까지 받는다.
이들은 10대 중후반에서 20대 극 초반 데뷔를 기점으로 산정해 육성되는데, 가정을 떠나 회사 소속으로서 관리되는 삶에서의 부작용이 있다. 교육적 방임은 이미 많이 논의되었으므로 새삼 재론할 여지도 없다. 10대 극 초반부터 연습생이라는 미명 하에 욕망을 거세당하며 사회화에 필요한 인적 관계가 결여된 삶, 교육적 미비, 수면 부족, 극심한 경쟁이 그 부작용이다.
여기서 정신적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 더 기적이 아닐까? 실패할 때의 리스크는 이루 말할 수 없이 처참하다. 최근에야 유튜브 크리에이터와 같은 대체 진로가 그나마 생기지만 아닌 경우에는 성적 착취 케이스가 존재할 정도로 취약해지는 입지를 가지는 것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종사하는 연습생의 진로인 것이다.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일반적으로 경험할 수 있는 사회화나 어린 시절부터 이어진 유대감이 아닌 비즈니스로 형성된 인적 관계. 그에 대한 보상심리로 체험하는 평범하지 못한 열애와 정신적 타격들. 그리고 성년이 되어서 뒤늦게 깨닫는 허무함과 주체적 자아실현 욕구와의 모순으로 인한 극심한 혼란.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은 10대 중반 이전의 꿈과 10대 후반, 그리고 20대의 장래 희망을 비교해보라. 어린 시절에는 그저 칭찬이 좋아서 주목받는 게 좋아서, 돈 많이 버는 게 멋있어서 선택했지만 정작 자신의 ‘성품’과 연예인의 삶이 안 맞는 이도 부지기수이다. 멘털리티가 강하고 낮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이 문제가 수많은 연예인을 우울증과 자살로 몰아가는 근본적 이유가 아닐까?
우리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그 종사자들인 연예인들의 삶을 ‘하나의 일대기’로 보지 않는다. 그 시점 그 유행에 부합하는 아이콘이자 아이템인지만 봤다. 그게 문제였던 것이다. ‘장래가 어찌 되든 어리니까 소구할 만한 외모와 퍼포먼스니까 일단 쓰자’ ‘부와 명예를 획득하니 그 정도는 참아야지’라고 말했는데, 그게 개인 한 사람에게는 커다란 리스크였던 것이다.
이제 곧 12월이니 연말 시상식이 기다린다. 수년 전부터 이야기한 것이 있다. 아동·청소년 연예인들이 시상식에서 어떻게 소비되는지 말이다. 기사화도 한 적이 있다. 10세 미만의 아역 배우들이 자정이 다가오는 시간까지 연말 시상식 자리에서 조명을 받고, 수면을 방해받는 장면이 아직도 기이하고 후진적이라는 생각이다.
게다가 아역 배우의 수입을 부모가 탕진하거나 부모 자체가 아동·청소년 연예인의 재능을 부의 원천으로만 인식하는 소유 욕구도 지적했다. 이런 상황과 연이은 유명 연예인의 죽음에 한류 소프트파워를 외교 전략이자 수출 전략으로 삼는데, 정부와 국회가 다시 성찰할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다른 제조업과 달리 엔터테인먼트 산업 자체가 ‘사람’과 한 ‘생애’가 원천이자 기반이다. 그러나 사람에 대한 존중 없는 부가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이렇게 수출이 얼마고, 부가가치 창출이 얼마건 간에 그 사람이 이렇게 허무하게 떠났을 때 받는 사회적 충격과 트라우마보다 이익인지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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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 임형찬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