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40대 대기업 팀장입니다. 우리 회사에는 사장님의 이쁨을 독차지하는 마케팅팀장이 한 분 계십니다. 그런데 이분은 이 일 저 일에 모두 발을 걸치려고 합니다. 중요한 업무는 꼭 자기가 관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죠. 아니, 자기 아니면 할 수 없는 것처럼 얘기합니다. 자기 말고 다른 팀장이 중요한 업무를 맡으면 뒤에서 ‘걔는 이래서 안 돼.’ ‘걔처럼 하면 백 프로 실패하는데…’ 식으로 험담하죠. 사장님께는 다른 팀장의 작은 실수를 과장해서 보고하고요.
그렇다고 마케팅팀장이 일을 특별히 잘하는 건 아닙니다.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지 실제로 성과를 낸 건 별로 없거든요. 말은 정말 잘하죠.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을 만큼 설득력 있게 얘기합니다. 사장님은 마케팅팀장만 예뻐하십니다. 자기 말을 잘 들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자기랑 생각이 비슷해서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마케팅팀장 얘기라면 만사 ‘오케이’입니다. 같은 회사에서 일하기가 정말 힘든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이 많나요? 저만 힘들어하나요?
Answer
어떤 팀장님들은 팀원들을 참 힘들게 하죠. 하지만 동료 팀장님들을 힘들게 하시는 분들도 더러 계십니다. 말씀하신 마케팅팀장님 사례가 딱 그런 경우인데요. 이런 분들이 많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가끔씩 있죠. 저도 20년 넘게 직장 생활 하면서 세 분 정도 봤습니다.
문제는 이런 분들이 많지는 않지만, 한 분만 계시더라도 주변 사람들을 너무너무 힘들게 한다는 거죠. 사장님의 이쁨을 독차지할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아는 세 분 중 두 분은 사장님이 많이 아끼셨죠. 사장님의 이쁨을 받지 못한 한 분은 결국 일도 못해, 동료들도 싫어해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퇴사 당하셨습니다. 하지만 다른 두 분은 롱런하셨죠. 그중 한 분은 아직도 롱런하고요. 그만큼 부작용도 컸습니다.
이런 분들을 흔히 ‘나 아니면 안 된다’ 팀장님이라고 부르죠. 줄여서 ‘난 팀장님’. 잘나서 ‘난 팀장’이 아니라 맨날 ‘나, 나, 나’ 또는 영어로 ‘me me me’ 해서 ‘난 팀장’. 지금부터 이런 ‘난 팀장님’들의 특징을 한번 살펴보죠.
1. 항상 자신감이 넘쳐흐른다
‘난 팀장님’은 자기 자신에 확신이 매우 강합니다. 그러다 보니 항상 자신감이 넘치죠. 걸음걸이는 언제나 보무당당하고, 목소리는 굵고 말투는 확신에 차 있습니다. ‘사장님, 이렇게 하면 됩니다! 제가 반드시 하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듣는 사람에게 신뢰와 믿음을 주죠. 자신감과 말투로 상대방을 홀리는 것입니다.
아니, 이렇게 확신을 갖고 얘기하는데 설마 못 하겠어?
이렇게 되는 거죠. 아니면, ‘그래도 마케팅팀장이 이렇게 자신 있게 얘기하는 것을 보니까 일을 맡겨도 되겠는데? 다른 팀장들은 모두 쭈뼛쭈뼛하잖아?’가 되는 거죠. 여기에 믿음직한 외모까지 겸비했다면 금상첨화. 하지만 제가 아는 세분 모두 외모는… 아닙니다. 남의 외모 갖고 그만하겠습니다.
2. 자신을 과다하게 포장한다
‘난 팀장님’은 나르시시즘이 지나치다 못해 거의 ‘천황병’에 걸리셨죠. 작은 성과도 언제나 크게 포장하죠. 과장과 허풍과의 경계를 왔다 갔다 합니다. 이런 분들이 주로 쓰는 레퍼토리가 ‘최선의 결과를 도출했다’는 것이죠. 아니면 ‘아무도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그나마 내가 이 정도 했다.’ 또는 ‘내가 처음 했다.’
모두 확인하기 어려운 말들이죠. 최선의 결과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아요? 그리고 자기가 하니까 남들이 안 하죠. 자기가 안 했으면 누군가 했겠죠. 또 대부분 처음 한 거죠. 다른 사람이 한 일 똑같이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조금이라도 다르게 하면 다 처음 한 거죠.
경력을 포장할 때 주로 내세우는 레퍼토리가 또 있죠. ‘차석 입학’ ‘차석 졸업’. 수석은 확실히 알아도 차석은 확인하기 어렵죠. 아니, 차석까지는 확인하려고 안 하죠. 왜? 관심이 없으니까. 특히 졸업할 때 차석은 아무 의미 없죠. 장학금도 못 받는데… 이미 졸업했잖아요! 아니면 강의 한번 뛰고 ‘겸임 교수’ 이런 식이죠.
3. 자기 의견에 확신이 매우 강하다
자기가 하는 것은 항상 옳죠. 그것만이 회사의 성장과 발전을 위한 절대적이고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아는 모 팀장님은 사업 본부를 새로 맡으시고 나서 기존 고객들을 배척하는 전략을 수립하셨습니다. 팀원들은 반대했죠. 매출이 반 토막 난다고. 이분은 막무가내였습니다. “새로운 고객을 확보하면 기존 고객에서 잃는 매출을 방까이하고도 남는다”는 게 이분의 강력한 주장이셨습니다. “이런 과감한 전략을 나 아니면 누가 하겠느냐”는 말씀도 잊지 않으셨죠.
하지만 그게 말처럼 쉽나요? 매출은 당장 반 토막 정도가 아니라 사 분의 일까지 토막 났고 새로운 고객은 당장 유입되지 않았고. 앞서 말씀드린 세 분 중 쇼트런 하신 분이 바로 이분이셨습니다. 자기주장을 관철하기 위해서라면 세상이라도 뒤집을 것 같은 그런 절대적 확신은 도대체 어디서 비롯된 걸까요?
4. 자신의 의견과 다른 의견은 개무시한다
자기 의견에 확신이 강한 만큼 다른 분들의 의견에 별로 개의치 않죠. 아니, 그냥 개무시합니다. 들어볼 만한 가치조차 없다는 식이죠. 그렇기 때문에 웬만한 비판에는 전혀 흔들림이 없습니다. ‘멘탈 갑’ 정도가 아니라 ‘멘탈 갑 중의 갑 중의 슈퍼 갑’이죠. 어떤 비판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다는 측면에서는 거의 소시오패스에 가깝습니다.
5. 자신과 의견이 다르면 ‘나쁜 놈’ ‘없어져야 할 놈’으로 간주한다
여기서 그치면 그나마 봐줄 만한데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개진하는 분들을 나쁜 놈 취급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공개 매도를 하시기도 하죠. 모 회사 인사팀 과장은 신입사원 교육 시간에 ‘우리 회사 기업문화와 맞지 않는 분들은 모두 퇴사하십시오’라는 발언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분은 팀장이 아니라 과장이었으니 ‘난 팀장’이 아니라 그냥 ‘난 분’이네요. 아니면 그냥 ‘난 놈’?
일개 인사팀 과장님께서 어떻게 감히 퇴사를 종용할 수 있죠? 인사팀장님께서 그런 말씀을 안 하시니까 나라도 해야겠다는 잘못된 애사심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더 큰 문제는 기업문화에 관한 ‘난 분’의 해석이 회사 웹사이트의 공식 설명과는 사뭇 달랐다는 것입니다. ‘난 분’은 자기 해석이 더 옳았다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지른 것이겠죠.
6. 자신의 허물에는 매우 관대하다
이런 분들은 또 자신의 과오에는 한없이 관대하십니다. 왜? ‘나는 매우 중요한 일을 해야 하니까.’ 그리고 ‘나 아니면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웬만한 허물은 덮고 가야 하니까.’ 아마 이런 논리가 아닐까 짐작해 봅니다.
7. 타인의 허물에는 가차 없다
하지만 타인의 잘못에는 국물도 없습니다. 자기 잘못이 아니라면 매우 작은 허물도 절대로 용서할 수 없죠. 때로는 그것이 마치 회사에 큰 손해를 끼친 것처럼 침소봉대해서 천인공노를 불러일으킵니다.
전략팀장이 어제 경쟁사 제품을 사 드시던데… 이런 분들 때문에 고객들이 우리 회사 제품을 외면하는 거야.
어제 재무팀장이 10분 지각한 거 알아? 그런 사람이 숫자를 다루니까 자꾸 실적 오류가 나는 거야.
홍보팀장 옷 너무 야사시한 것 아냐? 그렇게 헤벌레 하고 다니니까 우리 회사가 언론에 자꾸 까이는 것 아냐?
‘난 팀장님’의 말만 들으면 이분은 정말 학 같은 분이십니다. 절대 고귀, 순전 무결, 완전 산소 같은 분이시죠. 말만 들으면. 하지만 막상 본인은…
8. 자신의 잘못이 드러날 경우에는 이를 부정한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도가 아니라 ‘내가 언제 그랬어?’라면서 눈도 깜짝하지 않고 부정하죠. 그래서 잘 모르는 사람은 정말 안 한 줄 압니다. ‘그렇게까지 강하게 부정을 하는데, 설마 그랬겠어?’라고 생각하는 것이죠.
‘난 팀장’은 또 잘못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것을 금방 잊어버립니다. 몇 달 뒤에는 자기가 어떤 잘못을 저질렀는지 정말 기억을 못 하죠. 본인은 어떤 잘못도 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믿어버립니다. 망각의 귀재죠. 저는 잊으려고 할수록 더 안 잊히던데… ‘난 팀장님’은 뇌 구조가 좀 다른가 봅니다. 아니면, 기억은 하는데 모르는 척하는 건가? 그러면 진짜 대종상 감인데…
9. 예의를 갖추지만 싸가지없다
예의는 최대한 갖춥니다. 난 팀장님은 스스로를 착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예의 없게 반말이나 찍찍하는 몰상식한 행동은 하지 않습니다. 왜? 나는 배운 사람이니까? 하지만 공손한 말투에 담긴 콘텐츠는 참… 어떻게 그렇게 공손한 말투로 그렇게 싸가지없게 말씀을 하실 수 있는지… 때로는 떠듬떠듬 영어로 욕설을 순화하죠. ‘지금 뭐 하시는 거예요? 왓 더 X 알 유 두잉, 맨?’
10. 자신의 라이벌에게는 심한 공격도 서슴지 않는다
자신의 앞길에 조금이라도 장애가 되는 라이벌에게는 정말 심한 공격도 거리낌 없이 자행합니다. “이전 팀장님은 전략을 완전히 잘못 세워서 사업 실적이 폭망했어요”라는 식으로 상대편을 완전히 바보로 만들죠.
때로는 인신공격까지 동원합니다. 머리가 나쁘다거나, 배움이 부족하다느니,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제대로 된 가정교육을 못 받았다느니. 더 나아가 출신 학교가 어떻다느니, 고향이 어떻다느니, 종교가 어떻다느니 등 라이벌이 속한 집단을 떼로 매도하기도 하죠. 라이벌을 완전히 눌러야지만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주장을 펼 수 있으니까요.
11. 자신의 성공을 위해서는 주변의 희생도 마다하지 않는다
‘난 팀장님’은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이고 ‘성공-오리엔티드’ 되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성공에 도움이 된다면 누구라도 기꺼이 희생시킵니다. 그 대상이 설사 자신의 죽마고우라고 할지라도. 모 팀장님은 그와 입사 동기이자 평소 아주 친하게 지내던 동료 팀장이 사장님에게 밉보여 곤경에 처하게 되자 갑자기 그 사람과 ‘안 친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어, 나 안 친해. 그냥 아는 사이야.
그 사람과 친해서 자기에게 좋을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그 친구에게는 살짝 미안하지만 ‘나 아니면 못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죠. 회사를 위해서라면 그 정도의 희생은 감내해야죠.
그 정도면 봐줄만한데 때로는 자신의 잘못을 딴 사람에게 전가하기도 합니다. 말이 좋아 ‘전가’지 ‘덮어씌우는’ 거죠. 제대로 덮어 씌우기 위해서 ‘읍참마속’이 아니라 ‘소참마속’을 하는 분들도 많습니다. 소참마속 정도가 아니라 소참마속의 할아버지라도 할 분이시죠. 여기서 ‘소’는 영어로 ‘카우’가 아니라 한자로 ‘웃을 소’입니다.
주변인을 희생하는 아주 극단적인 사례로는 중국 전국시대의 명장이자 『오자병법』의 저자인 오기를 들 수 있습니다. 기원전 400년경, 힘센 제나라가 노나라를 쳐들어왔습니다. 당시 노나라 목공은 오기를 노나라의 대장군으로 임명해 제나라에 맞서 싸우게 하려 했으나, 오기의 아내가 제나라 고위직의 따님인지라 선뜻 결정을 못 내렸습니다. 이런 상황을 알게 된 오기는 목공의 의심을 풀기 위해 자기 손으로 아내를 죽여 노나라에 충정을 표했다고 합니다.
12. 성공 확률은 상대적으로 높지만 부작용이 훨씬 더 크다
‘난 팀장님’은 이처럼 자기 확신이 강하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성공 확률은 높습니다. 더구나 사장님께서 밀어주신다면…
하지만 그 정도가 지나칠 경우에는 부작용이 더 큽니다. 앞뒤 안 가리고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는 생각으로 일을 밀어붙이기 때문에 엄한 사람들이 희생당하죠. 그리고 그러한 독선적인 만행 때문에 많은 분을 적으로 만들고 언젠가는 본인도 비참하게 퇴사를 당할 수 있습니다. 비참한 최후를 맞은 오자병법의 오자처럼…
하지만 더 큰 문제는 ‘난 팀장’ 말고도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더 있다는 것이죠. 아니, 여러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서 부작용을 최소화한다면, 그래서 여러 부서의 협조를 받아서 일을 원만하게 진행한다면 ‘난 팀장’보다 일을 더 잘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치며
난 팀장님,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은 이제 제발 버리십시오. 다른 사람을 모두 물로 보시는 것 같은데요. 팀장님 말고 다른 사람은 모두 바본 줄 아십니까? 팀장님 말고도 그 일을 할 분은 많습니다. 더 잘할 수 있는 분도 분명히 있습니다. 난 팀장님의 그런 자신감은 아마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감히 생각합니다.
그런 일을 해보셨다면 그것이 얼마나 힘든 것인지, 그리고 섣불리 했을 때 부작용이 얼마나 큰지 잘 아실 것입니다. 또한 많은 분과 교류하셨다면 이 세상에는 나보다 뛰어나고 훌륭한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도 잘 아시겠죠. 샘 스미스(Sam Smith)의 ‘아임 낫 더 온리 원(I’m Not The Only One)’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제목만이라도 제발 좀 가슴 깊이 새겨두기를 부탁드립니다. 그게 회사를 위해서 더 좋습니다.
Key Takeaways
- 회사에는 ‘나 아니면 안 된다’는 팀장님, 줄여서 ‘난 팀장님’들이 간혹 있다.
- ‘난 팀장님’은 자기 확신이 강하고, 양심의 가책을 전혀 느끼지 않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일을 진행하기 때문에… 부작용이 크다.
- 제발 ‘나 아니면 안 된다’는 착각은 이제 제발 버려라. 당신 말고도 할 수 있는 사람 많다. 아니, 더 잘할 수 있는 사람도 분명히 있다.
부족한 글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공감하시면 다른 분들도 공감하실 수 있도록 공유 부탁드립니다.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