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적 노동
남들과는 좀 다르게 일하고 싶은 사람들
사면이 막힌 큐비클(cubicle)말고 내 주위 360도가 뻥 뚫린 곳에서 업무를 볼 수 있다면 두뇌 회전도 몇십 배 더 빠르게 될 것 같다고? 디지털 노마드(digital nomad)라고 하기엔 거창하고, 그저 익숙지 않은 이국적인 곳에서 관광도 하고 일도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편안히 지구 시민의 특권을 누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여유자금을 모아서 큰 배낭 하나 메고 비행기에 올라, 도착하는 어느 도시에서나 여기가 내 집이거니, 컴퓨터를 꺼내 글, 사진이나 영상으로 기록을 남기고 싶다고? 말은 거창할지 몰라도, 사실은 그냥 내 몸 하나, 용기 몇 스푼, 나만의 작업을 할 수 있는 노트/펜, 컴퓨터, 캔버스, 아니면 손바닥만 한 스마트폰이면 지구촌이 누구나의 사무실이 될 수 있다.
사무실에 가고 싶지 않습니다: 리모트 워크
스마트 워크를 연구하는 최두옥 작가의 말을 빌려보자. “비대면이 디폴트인 업무 방식”이 바로 리모트 워크(Remote Work)다. 원격근무라고 하면 이해가 쉽다. 동료들이 서로의 얼굴을 보지 않고도 함께 일할 수 있게 된 조건에는 인터넷의 공이 가장 크다.
원하면 사무실에 나갈 수도 있지만 개인 공간에서 업무를 보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기 때문에 집 근무를 선택하거나, 중장기로 해외 출장을 떠나 일을 하고 연구를 하는 사람도 있다. 위워크(WeWork)나 패스트파이브(FastFive)처럼 이제는 강남 어디에서나 쉽게 볼 수 있는 코워킹 스페이스에서 다른 직종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하루의 일과를 처리하거나,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자처해 물가가 싼 동남아로 이주해 100% 온라인 상으로 근무하는 이들도 있다.
수직성의 기업문화에서 벗어나 개인의 업무 환경과 능력을 더 존중받는 리모트 워크는 21세기 미래적 노동을 이야기할 때 절대 빠질 수 없는 중요 방식이 되었다.
하시는 게 여행인가요, 일인가요? 리모트 워크 프로그램
일 년에 12 도시를 돌며 생활하며 일하는 리모트 이어(Remote Year)나 적게는 2주 동안 여행하며 일하는 해커 파라다이스(Hacker Paradise) 같은 프로그램이 있다. 리모트 프로그램(Remote Programs)은 개인이 일에 집중할 수 있는 오피스 공간과 이동수단, 숙박시설이 제공된다. 또한 현지를 경험할 수 있는 행사가 진행되어 참여하기 쉽고, 주변을 여행하고자 할 때 정보를 제공해줄 현지 스태프들도 상주한다.
마음이 맞고 가치관이 통하는 인생 친구를 만들 수도 있고, 커리어에 관한 조언을 줄 같은 직종의 선배를 만날 수도 있다. 리모트 프로그램은 낯선 공간이 주는 설렘과 모르는 사람과 친구가 될 기회도 제공한다. 이외에도 수많은 리모트 프로그램이 존재한다. 관심 있으신 분들은 이곳으로 가면 볼 수 있다.
따로 또 같이, 코워킹 스페이스
위워크는 2010년에 뉴욕에서 시작해 이젠 전 세계 22 나라 72 도시에 250개가 넘는 로케이션을 가진, 코워킹 오피스의 선두 주자이자 코워킹 분야의 대표 주자다. 로비 어디서든지 일할 수 있는 멤버십에서부터 개인 책상이나 분리된 사무공간을 제공하는 옵션까지 있다. 이제는 플래티론 스쿨(Flatiron School)이라는 코딩 아카데미까지 사들이며 사업 영역을 넓혀간다.
위워크의 공동창업자 아담 뉴만(Adam Neumann)은 그저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이 아닌, 인생 자체를 만드는 세상을 창조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다고 한다. 먹고살기 위한 일을 넘어서 나 자신이 주체가 되어 나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세계를 만드는 미래적 노동의 철학과 그 길을 나란히 하는 생각이다.
내가 사는 밴쿠버에는 유명한 코워킹 스페이스는 아니지만 눈 여겨볼 만한 더 애이버리(The Aviary)가 있다. 디자이너들과 창조적인 작업을 하는 아티스트들을 위한 코워킹 스페이스로 하루 패스부터 장기 멤버십까지 제공한다. 이곳은 관심사가 비슷한 사람들을 한데로 모으는 이벤트들을 많이 진행한다.
커뮤니티에 관심 있는 아티스트들은 공간을 빌려 자신만의 행사를 꾸며볼 수도 있다. 다운타운, 이스트 밴쿠버, 밴쿠버 웨스트와 같은 동네에서도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해 편리하다. 밴쿠버의 코워킹 스페이스 중에서는 개인의 진로개발과 종합적 웰니스를 지향하는 워크랩(Werklab)도 있다.
내 지인 중 몇은 패스트파이브에 매우 만족하며 소속해 있다. 국내 업무 환경에 최적화된 공유 오피스라는 슬로건을 내밀어 한국 젊고 가능성 많은 스타트업 종사자들과 프리랜서 아티스트들을 모았다. 독립적인 사무공간뿐 아니라 커뮤니티 매니징을 통해 다양한 네트워크의 기회까지 놓치지 않는다.
전 세계 코워킹 스페이스에 대해 알고 싶다면 다양한 지역의 코워킹 스페이스를 소개하는 셀리나(Selina)나 코워케이션스(Coworkations) 같은 웹사이트를 참고하자.
일뿐 아니라 삶도 따로 또 같이, 코리빙 스페이스
노동은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고, 이 둘은 매우 막역한 사이이다. 지금이야 공부를 하느라 잠시 휴한기이지만, 아침에 출근하고 밤에 퇴근하는 직장인이던 때는 일이 곧 일상 그 자체를 의미하기도 했다. 전 세계를 오피스 삼아 일을 하면서 비교적 구애받지 않는 자유를 얻은 사람들은 직장동료의 개념을 삶의 동반자로 바꿔가는 듯하다.
위워크가 위리브(WeLive)라는 코리빙 공간을 만든 것을 보면, 어쨌거나 사람은 누군가와 함께 소통하고 공유하며 살아가는 사회적 동물임이 틀림없다. 뉴욕의 위워크와 코먼(Common), 런던의 콜렉티브(The Collective)와 같은 코리빙 분야가 지금 한국에서는 공유 주택이라고 불리며 학생과 젊은 직장인의 환영을 받는다. 우주, 커먼 타운, 삼시옷, 쉐어어스, 쉐어원 같은 곳들이다.
가장 나다운 곳에서 가장 나답게
학부 3학년으로 복학하면서 쥐었던 나의 첫 맥북 에어. 책가방이나 에코백에 넣어서 많이도 들고 다녔다. 여행을 할 때도, 새 도시로 이사를 갈 때도 나와 함께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그때는 더욱 많은 글을 썼고, 많은 프리랜서 작업을 했다. 장소에 구애받지 않은 프로젝트들이 나에게 깊은 가르침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사 먹을 수 있는 돈도 벌어다 주었다.
실내에서 일을 하는 것이 그저 갑갑해서 사람들이 리모트 워크를 선택하는 건 아니다. 하루의 일상에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차지하는 ‘노동’을 단순한 ‘일’에 머물게 하기보다는, 가장 나다울 수 있는 공간에서 가장 나다운 시간으로 재해석하고자 하는 결단인 것이다.
아직도 발굴되지 않은 더 멋진 지구촌의 구석구석이 더 많은 사람의 오피스가 되는 그날까지, 미래적 노동 시리즈도 계속되기를 바란다.
원문: Yoona Kim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