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불감증을 넘은 관료집단의 ‘도덕 불감증’
세월호 참사를 두고 국민적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있다. 무고한 인명 피해가 엄청난데다 사고 수습 과정에서 보여준 관계자들의 행태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수백 명의 승객을 태운 배가 침몰하는 와중에 제 혼자 살겠다고 서둘러 탈출한 선장과 선원들의 행동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렵다. 선원의 기본교양교육은 차치하고라도 인간의 상식으로도 납득하기 어렵다. 그런 사람들이 운항한 배가 인천-제주를 수년째 독점 운항했다니 몸서리가 쳐질 따름이다. 어쩌면 이번 사고는 예고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세월호 선원과 선사 경영진이 ‘안전 불감증’이었다면 사고 수습 과정에서 드러난 관료집단의 행태와 주변상황은 ‘도덕 불감증’의 전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안행부, 해수부, 교육부 등 사고 관련부처마다 사고대책위를 꾸려 그 숫자가 무려 열이 넘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 가운데 어느 곳도 제대로 사태를 수습하지 못했다. 수습은커녕 오히려 무능과 복지부동만이 난무할 따름이었으며, 전문지식도 체계화된 구조전략도 없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한 마디로 우왕좌왕, 허둥지둥, 좌충우돌 그 자체였다. 이를 두고 인터넷에서는 “구조는 등신, 은폐는 귀신”이란 비아냥이 나돌고 있다.
도덕 불감증의 근원, 전관예우
선원과 선사측의 안전 불감증이 과도한 돈벌이 욕심 때문이었다면 공직자들과 해운 관련기관들의 도덕 불감증은 전관예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선사나 선원들이 불법을 저질렀다고 해도 선박 안전검사 등을 관장하는 (사)한국선급이나 한국해운조합 같은 곳에서 제 역할을 다 했다면 이번 같은 참사는 방지할 수 있었다.
한 마디로 해수부, 해경 등 해양관련 부처 출신들이 퇴직 이후에도 유관업체에 재취업함으로써 비리나 청탁 등 부정의 고리가 고착화 돼온 때문이다. 다시 말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니 그 생선이 성할 리가 없는 것은 자명한 이치다.
이런 점에서 소위 ‘김영란법’으로 불리는 부패방지법안이 국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이 법은 유관기관에 재취업한 관료출신들이 퇴직 후 후배공무원들에게 용돈이나 골프접대 등 금품 및 향응제공을 금지하고 있다. 따라서 공직사회의 비리방지를 위해서는 꼭 필요한 법안임에도 불구하고 이해당사자들의 반대로 법 제정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정부도 국회도 모두 당사자다보니 법 제정에 의지가 없는 셈인데 뒤늦었지만 이제라도 국회가 나서야 한다.
전관예우, 더 이상 법조계만의 일이 아니다
그간 전관예우는 주로 법조계의 일로 여겨져 왔다. 참고로 얼마 전에 논란이 됐던, 하루 일당 5억 원짜리 ‘황제노역’은 법조계 전관예우의 산물인 것으로 드러난 바 있다. 그런데 우리사회에서 전관예우의 현실은 이보다 훨씬 더 심각한 지경이다. 속칭 ‘모피아’로 불리는 재경부(현 기획재정부) 등 경제·금융부처 출신들을 비롯해 이번에 새로 ‘해피아’란 이름을 얻은(?) 해양관련부처, 교육부, 국방부, 문화부 등도 예외가 아니다. 어찌 보면 전 부처에서 전관예우가 관행화돼 있다고 할 수 있다.
현 정권 초기 국방부장관 내정자가 군수업체 로비스트로 활동한 경력이 드러나 논란이 되기도 했었다. 또 지난해 원전 납품비리가 논란이 됐을 때는 ‘원전마피아’가 도마에 오른 적이 있다. 여객선 한 척이 침몰한 것을 두고도 온 나라가 침몰할 지경인데 만약 원전 한두 곳에서 폭발사고 같은 게 난다면 어찌 될 것인가.
원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의 경우 ‘원전사고 0순위’라는 지적을 내놓은 지 이미 오래됐다. 원전 사고는 피해규모나 후유증이 이번 세월호 침몰사고와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막대할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이번 세월호 사고 수습을 보면 관계당국의 사고 대처가 어떠할지 대략은 짐작이 간다. 상상조차 하기 싫지만 걱정을 넘어 두려움이 앞선다.
이제라도 정부와 국회는 만악의 근원인 전관예우를 전면 혁파해야할 것이다. 노동부 출신은 노무사, 국세청 출신은 세무사, 관세청 출신은 관세사, 법무부 출신은 법무사 같은 자격증을 주는 것도 재고돼야 한다고 지적하는 이도 있다. 공정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로 전관예우의 먹이사슬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같은 자격증은 버젓이 국가고시가 있는 만큼 자격시험 합격자들에게 부여하는 것이 합당한 처사인 것이다.
* 이 글을 30일자 <경남도민일보> 등에 실린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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