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의 와중이어서 우리가 깊이 고민하지도 못했고, 또 여론의 주목도 받지 못했지만, 지난 주 금요일 매우 중요한 재판이 열렸다. 바로 국정원·검찰 간첩조작 사건의 항소심 선고공판이 열린 것이다.
이 재판의 변호인들마저 유우성 씨와 함께 한 기자회견에서 세월호 참사를 걱정할 정도로, 세월호 참사가 정말 큰일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항소심 판결 직후인 만큼 유우성 씨 사건을 되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물론 우리는 절대로 시간이 지난다고, 또는 다른 쟁점이 터졌다고 세월호 참사를 잊지 않을 것이란 다짐을 하면서 다른 사건도 살펴보기로 한다.
국정원의 먹잇감 유우성, 무죄를 선고 받다
지난 4월 25일 서울고등법원은 국가정보원이 수사를 맡고, 검찰이 기소와 공소유지를 맡은 유우성씨의 간첩죄 혐의 사건에 대해 무죄를 선고했다.
아직 대법원 판결이 남았지만, 대법원은 사실 관계를 다투는 게 아니라 법률의 해석과 적용을 다투는 법률심이니, 항소심 판결로 유우성 씨 사건, 보다 정확히 표현하면 국정원·검찰 간첩 조작사건은 일단락되었다. 국정원이 2013년 1월 20일 특수 잠입·탈출, 간첩죄 등의 혐의로 유우성 씨를 체포하면서부터 시작된 간첩조작사건이 1년 3개월 만에 일단락된 것이다.
가족도 없고,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한 탈북자가 견뎌내기에는 힘든 고초였을 것이다. 온갖 연고로 짜인 사회에서 혈연, 지연, 학연 등 기댈만한 연고도 없는 젊은 탈북자가 국정원의 공세를 막아내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게다가 대선부정으로 코너에 밀린 국정원이 조직의 명운을 걸고, 범정부 차원의 지원을 받아 현직 서울시장에게 색깔을 덧씌우기 위해 진행한 사건이었으니 더욱 그랬을 것이다.
유우성 씨는 그저 한 명의 개인이었고, 국가정보원의 먹잇감이 되어 도저히 빠져 나올 수 없는 그물에 걸린 존재였다. 적어도 민변의 장경욱 변호사를 만날 때가지는 그랬다.
민변, 변호사 비용도 받지 않고 유우성 씨를 보호
체포된 지 열흘쯤 되던 때 민변의 장경욱 변호사가 서울구치소로 유우성 씨를 찾아왔다. 장경욱 변호사는 여간첩 원정화 사건을 비롯해 이명박 정권 때 자주 터진 탈북자 간첩 사건을 도맡아 변호했던 사람이다. 또 그 이전에는 국가보안법 전담 변호사였다. 장경욱 변호사는 유우성 씨와의 접견을 통해 이 사건이 심각하게 왜곡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선후배 변호사들과 함께 변호인단을 꾸렸다. 천낙붕 변호사, 김용민 변호사 등이 그들이었다.
변호인단은 중국 현지답사를 다녀왔고, 유가려 씨를 만나 진실을 추적했다. 모든 비용은 변호사들이 스스로 부담했다. 유우성 씨는 변호사 선임료를 낼 형편도 아니었다. 여러 명의 변호사가 함께 일을 했고, 여러 가지 바쁜 일을 제쳐두고 국내외 출장을 다녀와야 했다. 모든 것에 돈이 앞서는 이 추악한 세상, 그대로 일부 변호사들은 살아 있었다. 돈이 안 되는 일에 그토록 열심이었다.
상황은 지난해 4월부터 반전되기 시작했다. 변호사들의 치밀한 조사 활동을 통해 국정원이 경기도 시흥의 합동신문센터에서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를 감금한 상태에서 고문, 가혹행위, 협박, 회유를 했고 이를 통해 오빠가 간첩이라는 허위 진술을 받아냈다는 것을 밝혔다. 민변 차원에서 기자회견이 열렸다. 지난해 4월 27일이의 일이다.
하지만 국정원과 검찰은 민변이 언론 플레이를 한다고 공격했다. 1심 재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였다. 국정원은 그렇다 쳐도 검찰만이라도 그때 민변 변호사들의 조사 결과를 눈 여겨 보았다면 간첩조작이라는 법조사상 유례없는 대형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수 있었다. 검찰이 민변의 조사결과를 눈 여겨 본 것은 사실이지만, 그건 그저 민변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였을 뿐이다. ‘공익의 대표자’(검찰청법)로서의 면모는 전혀 없었다.
검찰은 1심 결심 공판에서 유우성 씨에게 징역 7년을 구형했다. 1심 법원은 지난해 8월 22일 유 씨의 국가보안법 혐의에 대해 무죄판결을 했다. 다만 유우성 씨의 탈북자 신분과 관련하여 여권법 및 북한이탈주민 보호 및 정착지원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했다. 그 부분은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애초에 증거도 없었던 국정원, 증거를 조작하다
법원의 무죄 선고로 유우성 씨는 7개월이나 되는 긴 구금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자유를 얻었지만 그건 반쪽에도 모자라는 초라한 자유였다.
다시 항소심 재판이 진행되었다. 단박에 상황을 반전시킬 카드는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도 없었다. 처음부터 무리하게 간첩으로 조작한 사건이니 증거 비슷한 것도 없었다. 국정원은 예전에도 많이 썼던, 그리고 법원에서도 어느 정도 받아줬던 영사증명서를 활용하기로 했다.
해외 공관의 영사가 보낸 보고서인 영사증명서는 국가기관에 종사하는 공무원이 발급한 공문서지만 공안사건에서의 영사증명서는 대부분 해외공관에서 일하는 국정원의 비밀 요원이 국정원의 지시에 따라 만든 문서에 불과하다. 명칭을 ‘영사증명’이라 부르니 마치 뭔가가 증명된, 뭔가를 증명하는 문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의 이재승 교수는 “영사증명서는 주문자가 원하는 내용으로 제작된 맞춤 문서이며, 영사증명서의 묘수는 ‘증명해야 할 것’을 ‘증명된 것’으로 둔갑시키는 데 있다”고 일찍이 지적한 바 있다.
증거 조작에 개입한 검찰, 의미 없는 셀프 진상 조사
심각한 건 검찰이었다. 공식적인 외교라인을 통해 접수한 것도 아니고, 그저 국정원에서 넘겨 준 자료를 아무런 검증도 하지 않고 증거로 제출한 것이다. 검찰의 역할은 피고인에게 불리한 자료들만 잔뜩 내놓고 피고인에게 유리한 증거들은 은폐하는 게 아니다. 오로지 진실만을 추구해야 하는 것이 검찰의 책무다. 그런데도 검찰은 애써 진실을 외면했다. 나중에 문제가 된 다음에는 그저 몰랐다고만 했다.
지난해 12월 법원은 변호인과 검찰이 각각 제출한 유우성 씨의 출입경 기록에 대한 사실조회를 중국 당국에 요청했다. 두 달이 지난 올 2월 13일 중국 정부는 주한 중국대사관을 통해 답변을 했다. 검찰이 유우성 씨 사건 재판부에 제출한 허룽(和龍)시 공안국 명의의 출입경 기록과 출입경 기록 발급사실 확인서, 싼허(三合)변방검사참(출입국사무소) 정황설명서에 대한 답변서가 모두 위조되었다는 회신을 한 것이다. 희대의 간첩조작 사건이 세상에 드러난 것이다.
이후 검찰은 마치 간첩 증거 조작에 간여하지 않았던 것처럼 굴었다. 2월 18일 김진태 검찰총장은 증거 조작에 대한 진상 조사를 지시했고, 대검 강력부장을 팀장으로 하는 진상조사팀을 구성했다. 자기들이 잘못해놓고는 자기들이 진상을 조사하고, 잘못된 것을 바로 잡겠다는 쇼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왕 벌어진 일이니 수습은 적당한 선에서 매듭을 짓는 거였다. 국정원 협조자, 국정원 직원 등이 대응할 시간을 충분히 줘 가면서 조사했다. 이 사건에 대한 수사를 시작한 것은 지난 3월 7일의 일이었다. 사건이 불거진 지 4주가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국정원에 대한 압수수색은 3월 10일에 진행했다. 한 달만의 압수수색이었다. 그저 뭔가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호들갑에 지나지 않았다.
4월 14일 검찰 진상조사팀은 수사결과를 발표했다. 국가정보원 대공수사처장과 영사는 불구속 기소, 국정원 과장은 시한부 기소중지, 나머지 하위 협조자는 구속, 그리고 남재준 국정원장은 혐의 없음, 공판 담당 검사들도 모두 혐의 없음으로 불기소 했다.
세월호 사건에 묻어간 국정원과 검찰
검찰의 수사결과가 발표되자 곧바로 서천호 국정원 국내담당 2차장이 사임했고 대통령은 즉시 사표를 수리했다. 이런 식으로 풀고 가자는 거였다. 다음날 남재준 국정원장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것도 사과일 수 있을까 싶은 언론을 동원한 짧은 낭독이었다. 기자회견도 아니었고, 질의응답도 없었으며, 일방적으로 문장 몇 줄 읽는 게 전부였다.
핵심은 미안하기는 한데, 북한의 위협이 있으니, 국정원 원장 자리는 그대로 지키고 있겠다는 거였다. 말만 사과였다. 새누리당의 황우여 대표는 남재준 국가정보원 원장이 그동안 공로가 많았으니 이 정도 선에서 덮자고 했다. 더 일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 다음날인 4월 16일, 참사가 발생했다. 세월호 참사는 초대형 인재였다. 항소심 재판 직후 유우성 씨와 함께 기자회견을 하던 변호인들도 세월호 참사 실종자를 걱정해야 했다. 당연한 일이다. 일찍이 보지 못한 대형 참사였다. 대한민국이 얼마나 엉터리였는지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비극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쏠렸을 때 검찰은 마지막 반격을 준비했다. 그들은 반성하지도 않았고 변하지도 않았으며, 오로지 자신들의 안위, 정권의 안위, 이 사건을 통해 얻고자 하는 정치적 이익에만 골몰했다. 4월 18일, 항소심 선고공판을 앞둔 상황에서 검찰이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를 입증할 새 물증을 확보했다고 했다. 이미 재판절차가 모두 마무리되었는데 새로 재판을 하자며 변론재개 신청을 법원에 낸 것이다. 법원은 검찰의 변론재개 신청을 기각했다.
모든 과정이 조작된, 완벽한 간첩 조작 사건
4월 25일 항소심 법원은 유우성 씨의 간첩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면서 1심 재판부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유우성 씨의 동생 유가려 씨의 허위 진술을 받아내려는 과정에서 국정원이 유가려 씨를 불법 구금했다는 사실을 명확히 판단한 거다.
유가려 씨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CCTV가 설치된 독방에서 장기간 갇혀 있었고, 이 독방은 외부에 잠금장치가 되어 있었다는 점, 달력도 없어서 도대체 날짜조차 모를 정도였다는 점, 이런 구금 상태에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보장받지 못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법원은 유가려 씨가 화교라고 밝혔는데도 이후 171일이나 더 구금되어 있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러한 국정원의 행위가 신체의 자유와 거주이전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한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유가려 씨에게 지속적인 모욕 주기와 회유가 있었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국정원 수사관은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유가려 씨에게 ‘회령 화교 유가려’라고 쓴 종이를 몸에 붙이고 사람들이 지나는 통로에 서 있게 했다. 모욕과 망신을 주면서 심리적 위축을 시킨 것이다. 국정원이 원하는 대로 진술하면, 오빠와 같이 살 수 있다는 회유도 있었다. 이런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의 불법구금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여동생이 심리적으로 위축된 상태에서 국정원 측의 회유에 넘어가 허위 진술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에 따르면 이번 사건은 수사부터 증거수집에 이르기까지 모든 과정이 조작된, 완벽한 간첩조작 사건이었다.
남은 문제 1. 국정원 개혁과 검찰 개혁
이제 관심은 다시 남재준 국가정보원 원장의 거취로 쏠린다. 이제는 남 원장의 사퇴가 아니라, 남 원장의 파면이 필요한 상황이다. 물론 남 원장과 국정원 임직원들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를 통해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엄정하게 물어야 하는 숙제가 남게 되었다. 이 사건에 대한 대대적인 수사의 주체가 검찰일 수 없다는 것도 명확히 확인되었다. 특별검사제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제도다.
뿐만 아니라, 국가정보원을 이대로 두면 안 된다는 또 하나의 확실한 교훈을 얻게 되었다.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기관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을 지켜야 할 의무를 갖고 있는 기관이 오로지 자신들만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자기들이 지닌 권한을 오히려 국민을 괴롭히고 민주적 기본질서를 파괴하는데 쓰는 지금의 상황을 바꿔야 할 상황을 맞게 된 것이다.
국정원의 수사권한을 박탈하는 것은 기본이고, 국정원이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일할 수 있는 제도적 개혁이 단행되어야 한다.
특검 도입을 통한 제대로 된 수사와 국가정보원 개혁은 모두 입법사항으로, 국회의 몫이다. 부디 국회가 정부 견제라는 헌법적 책무를 자각하고, 제대로 일했으면 한다.
남은 문제 2. 대통령 급의 사과
물론 그것으로 이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검찰개혁이 얼마나 중요한 과제인지를 알려주는 그 많은 사건의 목록에 이번 사건도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되었다. 검찰개혁 역시 국회의 몫이다.
한 가지 문제가 더 남아 있다. 이제 대한민국이 국가기관을 총동원해 간첩으로 조작하고, 한 개인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을 주었던 유우성 씨와 그 가족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하는 일이 남았다. 이 일은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이다. 수석비서관 회의나 국무회의를 빌려 미리 적은 수첩을 읽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유우성 씨를 찾아가서, 아니면 청와대로 불러서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 한다.
그리고 유우성 씨를 결국 강제출국시키겠다는 국정원과 검찰, 법무부의 치졸한 복수도 이제 그만 두어야 한다. 탈북자 중에는 화교 출신도 있고, 또 북한 출신인데도 중국 지역에서 신분을 위장하기 위해, 그저 생존하기 위해 중국 인민으로 신분을 바꿨던 사람들도 꽤 있다. 목숨을 걸고 중국을 거쳐 오는 동안 별 일이 많았기에 그런 사람들도 다들 탈북자로 인정하고 대한민국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그건 전적으로 국정원의 판단이었다.
유우성 씨와 똑같은 탈북 화교가 정식으로 탈북자로 인정받은 사례도 여럿 있다. 그런데 유독 유우성 씨만 재판이 끝나면 곧바로 강제출국시키겠다는 것은 정말 염치없는 치졸한 보복일 뿐이다. 이제라도 국가기관이, 국가기관 종사자들이 이성을 되찾았으면 한다.
더 이상 추잡하게 굴지 말라. 유우성 씨가 만약 대한민국에서 살겠다면, 그건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이렇게 모질게 굴었던 나라였는데도 이곳에서 살겠다면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가능한 한 도와야 한다. 그게 국가가 이제라도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는 유일한 길이다.
원문: 시사통 / 편집: 리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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