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 반경 1KM 바깥은 나에게 달나라와 다름없었다
타고난 집돌이인 마시즘에게 이불 밖의 세계란 미지의 공간이었다. 학교도 근처에서 자취를 했고, 사무실이기 때문에. 자동차까지 가지 않아도 대중교통도 낯설어하는 삶을 살았다. 문제는 너무 만족했다는 게 문제. 친구들의 해외여행 사진을 보아도 그럴 바에는 뜨끈한 국밥, 아니 음료나 마시고 말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음료를 마셔도 해결될 수 없는 게 있다. 바로 그 음료가 태어난 장소에서 이것을 즐기는 것이다. 여기가 말이야 라거 맥주가 태어난 곳인데, 이게 코카-콜라가 만들어진 곳인데, 이게… 이게 깨 보니까 꿈인데. 왜 눈물이 나는데. 이대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마셔서 세계 속으로! 오늘은 도시를 대표하는 것을 넘어 세계의 사랑을 받는 음료들의 고향에 대해 알아본다.
시애틀의 스타벅스
한국에서도 길목을 돌면 만날 수 있는 스타벅스. 해외에 나가서도 커피 맛에 적응을 못 해 찾아가는 스타벅스. 우리는 거의 스타벅스의 왕국에서 사는 게 아닐까 느낄 정도로 자주 보는 스타벅스 로고지만. 시애틀에서는 그 무게감이 다르다(하지만 맛은 똑같다고). 바로 스타벅스가 시작된 곳이기 때문이다.
스벅성애자들이 가고 싶은 곳 시애틀에는 스타벅스 1호점이 있다. 초록색 로고가 아니라 초기의 갈색 로고가 그려져 있다. 이 작은 카페에서 시작된 커피가 세계 곳곳에 깃발을 세웠다. 또한 덕분에 커피콩 한 줌 나지 않는 시애틀은 커피의 도시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타벅스는 물론 많은 카페가 이곳에 있다. 하지만 숨겨진 것. 최초의 스타벅스 매장은 이곳이 아니었다. 1971년에 세워진 매장은 웨스턴 애비뉴 2000번지에 있다고. 오리지널 스타벅스 문에 적힌 1912는 개점연도가 아니라 가게 주소다. 그럼 여기는 1호점인 것이야, 1호점이 아닌 것이야?
더블린의 기네스
아일랜드가 세상에 선물한 가장 멋진 작품이 무엇일까? 오스카 와일드의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 조지 버나드 쇼의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I knew if I stayed around long enough, something like this would happen).”처럼 시대를 초월하는 드립… 뭐 예술과 여행의 나라답게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맥덕의 입장에서는 기네스 맥주가 최고다.
아일랜드 수도 더블린에는 기네스 맥주가 태어난 곳 ‘세인트 제임스 양조장(현재는 기네스 스토어 하우스)’이 있다. 1759년, 아서 기네스가 매년 45파운드로 9,000년을 임대해버린 희대의 부동산 거래로 화제가 되었던 곳이다. 물론 한국에서도 기네스 맥주를 마실 수 있다. 하지만 기네스의 역사를 체험하면서 마실 수 있는 곳은 이곳밖에 없다. 이곳이 아일랜드 최고의 문화이자 최고의 맛집이라고 자신한다(물론 안 가봐서 하는 말임).
마시즘에서 인터뷰를 했던 ‘스티브‘는 이곳에서 일하고 사람들에게 기네스를 소개하며 우리를 기다린다. 구독자 100만 명 채우면 간다고 했는데. 스티브 많이 왔어. 95만 명만큼만 기다려주겠니.
에비앙의 에비앙
프랑스에 가면 뭔가 와이너리 투어를 돌아야 할 것 같지만. 안타깝게도 나의 혀와 돈은 마트 와인으로도 충분히 만족하고 사는 소박함을 자랑한다. 하지만 이곳은 가보고 싶다. 바로 물의 도시라고 불리는 에비앙(evian)이다. 우리가 아는 (하지만 잘 마시진 못하는) 그 에비앙이 이곳에서 나왔다.
에비앙의 전설이 처음 시작된 곳은 까샤 샘(Source Chchat)이라는 곳이다. 1790년 한 남자가 이곳의 물을 3개월 동안 마시고 요로결석을 치료했다고 한다. 그러자 사람들이 구름 떼처럼 몰렸는데(요로결석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이렇게 많은 것인가) 샘의 수인인 까샤가 아이디어를 내서 ‘수치료 센터’를 만들었다. 그야말로 프랑스판 봉이 김선달.
루머일 뿐이겠지만 유명한 스타나 재벌은 에비앙으로 샤워를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슨 에비앙으로 세수를 한다느니, 호텔 욕조를 에비앙으로 채웠다더니 이야기를 한다. 그 비싼 생수로 그런 짓을 하다니. 하지만 프랑스에 가서 에비앙을 사면 1.5리터에 천원도 안 한다는 게 함정. 에비앙 주민들은 동네 약수터처럼 물 받아 마신다고 하니. 마시즘의 에비앙 샤워가 먼 세상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필젠의 필스너 우르켈
맥주야말로 나라별 지역별로 특징이 도드라지는 음료가 아닐까. 에일이 떠오르는 영국 맥주, 정통적인 느낌의 독일 맥주, 크리에이티브한 미국 맥주, 소맥을 타마시는 한국 맥주(?) 등 그 나라에는 여러 스타일과 마시는 방법이 있다. 하지만 주류를 차지한 황금빛 맥주 라거 스타일이 시작된 곳이 바로 체코의 플젠이다.
집집마다 맥주를 양조했을 정도로 브루어리들이 많지만 국가대표 느낌이 나는 것은 아무래도 ‘필스너 우르켈’이다. 여기에서 필스너는 ‘플젠’을 독일어로 말한 것이다. ‘우르켈’의 뜻은 원조. 합쳐서 생각하면 원조 플젠 맥주라고 볼 수 있다. 원할머니보쌈 같은 건가.
플젠에서는 필스너 우르켈 공장을 견학 할 수 있다. 그리고 전설의 살균처리되지 않은 생맥주를 마실 수 있다고 한다. 체코는 맥주를 즐기는 자의 경지에 오른 국가(1인당 맥주 소비량 1위다)라 무슨 맥주를 마셔도 즐거울 것 같긴 하다.
런던의 트와이닝
차에 있어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홍차의 나라 영국. 그 싹을 틔운 전설의 브랜드가 바로 트와이닝(Twinings)이다. 「역사상 최대의 부부싸움은 커피에서 시작했다」에서 말했지만 커피가 주류였던 런던에서 토머스 트와이닝이 여성들을 대상으로 차와 차 주전자를 판매하면서 홍차의 시대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1706년 토머스 트와이닝이 처음 연 찻집(당시에는 트와이닝이 아닌 골든 라이언이라는 이름이었다)은 여전히 런던에 자리를 잡았다. 자칫 가게가 좁아 보이지만 사실 안쪽으로 길게 쭉 뻗은 구조라고 한다. 복도 같은 내부에는 트와이닝 티와 티팟 등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다.
가장 안쪽에는 트와이닝의 역사까지 볼 수 있는 전시장이 있다고 하니 한번 들어가면 빠져나오기가 힘든 마성의 복도라고 할 수 있겠다.
애틀랜타의 코카콜라
코카콜라가 처음 만들어진 곳 애틀랜타에는 코카콜라 박물관이라고 불리는 ‘월드 오브 코카콜라’와 한쪽에는 코카콜라 본사가 있다. 콜라덕후 마시즘도 다녀왔다. 탄산음료를 좋아한다면 월드 오브 코카콜라에서 정말 다양한 스타일의 음료를 마실 수 있고, 코카콜라의 역사와 만들어지는 과정 등을 만날 수가 있다.
심지어 이곳에서는 지역 한정 코카콜라를 만날 수도 있다. 멕시코 코카콜라나 캘리포니아 라즈베리 코카콜라를 구할 수 있다. 지갑을 열게 만드는 마성의 굿즈들도 가득하다. 음료뿐만 아니라 자판기까지 뭔가 청량음료의 미래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곳이다.
문제가 있다면 펩시맨들에게는 곤혹(?)스러운 곳이라는 것. 도시의 자존심 같은 코카콜라의 라이벌 펩시는 거리의 저항인 그래피티에서만 만날 수 있다. 그런 곳에 펩시를 들고 탭댄스를 추며 들어가라는 마시즘의 독자 당신들은(눈물).
청도의 칭따오
중국을 넘어 아시아를 대표하는 맥주(힘내라 카스 하이트)가 되어가는 칭따오. 그곳의 본사는 청도(청도와 칭따오는 동의어다)에 있다. 1903년 독일인과 영국인에 의해 지어진 양조 시설을 그대로 보유하며, 박물관은 물론 양조장까지 만들어 하루에 수천 명의 관광객이 오가며 칭따오를 경험하고 간다.
양꼬치엔 칭따오를 실천하는 사람들도 마셔보지 못한 다양한 종류의 칭따오를 이곳에서 마실 수 있다. 그중에서도 최고는 역시 살균처리를 하지 않아 효모가 살아있는 맥주(원장原漿이라고 부른다)다. 유통기한이 24시간이기 때문에 이곳에서만 마실 수 있는 귀한 맥주다.
갈 수 있다면 여름 시즌에 가는 것을 추천한다. 아시아에서는 가장 큰 맥주 페스티벌이 열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여름에는 칭따오, 가을에는 옥토버를 가면 되겠군(이라고 환청이 들렸습니다).
특산품을 넘어 도시의 정체성으로
맛있는 음료는 어떤 예술작품보다 감동스럽기 마련이다. 도시에서 시작한 음료가 세계로 뻗어 나가기 때문에 일자리 및 지역의 경제가 살아난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한 지역의 특산품이나 관광지로 보일 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 음료들이 도시의 정체성과 시민의 자부심이 된다고 생각한다.
우리 동네의 작은 곳에서 시작한 것들이 이제 세계에서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었다는 그런 뿌듯함일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를 소개할 때 소개할 음료는 무엇이 있을까?
원문: 마시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