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ID 카드를 놓고 왔네.
집을 나설 때 꼭 확인하는 것이 있다. 휴대폰, 지갑 그리고 ID 카드. 그래도 1년에 몇 번씩 세 가지 중 두어 개를 놓고 온다. 꼭 회사에 도착하면 생각이 난다. 인생이 그렇다. ID 카드가 없으면 나는 익명(anonymous)이 된다.
십수 년을 다닌 회사지만, 그 카드가 없으면 나는 내 책상으로 갈 수가 없다. 누가 증인으로 나선다고 한들 될 일도 아니다. 안내 데스크로 가 시스템으로 신원을 확인한다. 그리곤 내가 가진 다른 신분증을 내주고 임시 카드를 받는다. 임시란 글자를 보고는 동료들은 눈짓을 한다. 나는 그 눈짓의 의미를 짐작할 수 있다. “또?” 혹은 “나도, 어제!” 둘 중 하나다.
직장인이라면 목에 하나씩은 걸고 있는 그것. 사원증이라고도 한다. 줄이나 면 어딘가에 회사 로고가 박힌 카드 모양의 그것은, 공식적으로 그 회사의 소속임을 증명한다. 취업준비생 시절엔 그게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마치 군대에서 훈련병이 이등병의 작대기 하나를 앙망하는 그것과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이등병이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취업준비생도 마찬가지.
사원증을 목에 걸면 그것의 무게를 깨닫게 된다. 막 취업한 신입에게 사원증의 무게는 가볍다. 어딘가에 소속되었다는 안도감, 어려운 취업을 ‘뽀갰다’는 성취감에 취해서다. 신입 사원 때 사원증은 자부심과도 같았다. 더 이상 학생이 아니라는, 세상을 향해 나는 이제 어른이라고 외치는 객기의 원동력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내 그 무게가 점점 더 무거워짐을 느낀다. 누군가는 ‘개목걸이’란 표현도 서슴지 않았고, 나는 동의했다. 대리 땐 그 ‘동의’가 절정에 다다랐다. 사원증이 더 무거워지기 전에 이곳을 빠져나가야 한다는 생각이 몸을 부추겼다. 다른 회사, 공부 모임에 이리저리 기웃거렸다. 별 소득은 없었다.
그러는 와중에 사원증의 무게는 시나브로 늘어났다. 어느새 사원증엔 ‘가정’이라는 액세서리가 붙었다. 그 무게를 말해 뭐할까. 이젠 빼도 박도 못 하는 지경에 이른 것이다.
그렇다고 불행하기만 한 건 아니다. 열심히 일한 대가로 어찌 되었건 가족을 건사한다. 그 과정에 느끼는 인생의 맛은 달고, 쓰고, 짜고, 맵고, 시다. 인생의 묘미다.
시간이 갈수록 사원증의 무게만 늘어나는 게 아니다. 내 목의 근육도 한껏 세진다. 사원증의 한 귀퉁이에, 가정 말고도 ‘다시 열정’이나 ‘그래, 한번 해보자’란 액세서리를 달 수 있을 정도로. 어차피 이번 생이 직장인이라면, 까짓것 끝까지 가보자는 것이다. 이 무거운 플라스틱 카드를 잘 챙겨 다니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