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verance ARMS 1기 공동회장
연세대학교 의학과 본과 2학년 유석현
Instagram @seokhyeory
3줄 팩트 체크
펜벤다졸이 사람의 말기 암에 효과가 있을까?
- 지금까지 연구된 논문이나 케이스 리포트 중 사람의 암에 유의한 효과가 있다는 연구는 한 건도 없다.
- 기존 항암제의 효과, 부작용 안정성이 펜벤다졸보다 더욱 뛰어나기에 연구를 시도하지도 않은 것이다. 심지어 동물 대상 임상시험도 통과되지 못했다.
- 모든 암은 그 발생 메커니즘이 다르며 치료도 다르다. 절대로 한 가지의 약으로 이들을 모두 치료할 수 없다. 가능하다면 이는 인류 역사에 한 획을 그을 것이다.
지금 말기 암으로 입원 중인 사람이 펜벤다졸을 복용해도 될까?
- 유의한 효과가 없으며 사람에 적용한 적이 없어 부작용에 대한 연구가 아직 진행되지 않았다.
- 의사나 전문가 입장에서는 펜벤다졸 복용을 절대로 권유하지 않는다.
- 말기 암 환자 개인의 입장에서는 생존기간에 대한 기대가 덜하고, 다른 사회적, 경제적, 심리적 피해 등을 신경 쓰지 않겠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비싼 약을 팔면 의사가 돈을 많이 버는가?
- 약을 팔아서 돈을 버는 건 의사가 아니다.
- 의사는 비싼 약을 처방하든 싼 약을 처방하든 버는 돈은 동일하다.
- 무언가 획기적인 치료 방법이 있다면 의사는 그것을 홍보해 환자를 모으지, 절대로 숨기지 않을 것이다. 노벨상감을 왜 숨기겠는가?
사이비 유사 과학, 인터넷 주작썰에 속지 말라
결론적으로 하고 싶은 말은 아직 임상시험 결과가 나오지 않은 약제에 대해선 전문가의 판단 없이 함부로 복용하지 말라는 것이다. 특히나 약물 본래의 목적을 무시하고 충분한 연구 없이 자의로 남용할 경우 큰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최근 의약품의 오남용 문제가 심각하다. ADHD 치료약제인 메틸페니데이트(Methylphenidate)를 공부 잘하는 약으로 오인해 아이에게 먹이거나ㅜ 제1형 당뇨병 치료약제인 인슐린아스파트(Insulin aspart)와 성장결핍증 치료약제인 소마트로핀(Somatropin)을 근육 키우는 도핑용으로 사용하는 경우는 꽤나 많이 알려진 사례이다. 이런 사례들은 조금씩 변형되어 사람들을 현혹해왔다.
이번에도 여지없이 페이스북과 유튜브 등지에서 크게 이슈가 된 내용이 있다. 강아지 구충제로 사용되는 펜벤다졸(Fenbendazole)이 말기 암 환자의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본 이슈로 인해 약이 하루아침에 동났고, 인터넷상에서는 늘 그랬듯이 돈에 눈먼 제약회사와 의새들이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이렇게 효과가 좋은 약을 숨긴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유명 개그맨도 해당 약물을 복용하겠다고 밝혀 더욱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과연 어떤 게 맞는 정보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1. 검증과정
A. Purpose
펜벤다졸의 항암기전을 설명하는 근거로서 주장되는 논문은 작년에 인도에서 나온 논문으로 펜벤다졸이 미세소관 형성을 억제함으로서 특정 암세포를 사멸할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Nilambra Dogra 외, 2018). 미국에서도 조 티펜스(Joe Tippens, 50, M)라는 환자가 말기 폐암(SCLC)로 시한부 선고 이후 펜벤다졸을 복용한 후 암을 완치한 사례가 있다.
그러나 해당 케이스의 환자는 아직 단 한 명이고 전문가의 케이스 리포트가 없는 개인의 주장이며, 환자가 펜벤다졸만 복용한 것이 아니기에 아직 함부로 믿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구충제와 항암제의 기전, 부작용 등을 통해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을 토대로 펜벤다졸을 먹어도 될지 알아보자.
B. 근거 자료 채택
2019년 9월 26일 기준.
- 검색 키워드: Fenbendazole AND cancer
- Pubmed에서 초록 검색에서 검색: 총 29개 논문 포함됨.
- 작성자가 29개의 논문 초록을 읽고 주제와 무관한 논문은 제외: 총 25개 논문 제외됨.
- 총 4개 논문이 근거 자료로서 채택되었음.
2. 배경지식
A. 구충제의 기전
펜벤다졸은 –벤다졸(–bendazole) 계열의 약물로 상세 기전과 상호작용이 조금씩 다를 수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은 사람용 구충제로 사용되는 알벤다졸(Albendazole)과 동일하다.
간에서 설폭사이드(Sulfoxide) 형태로 변환된 이후 선충류 기생충 몇 가지 종(회충, 구충, 요충 등)에 대해 유충 세포의 포도당 흡수관에 결합한다. 이 관은 미세소관(microtubule)로 이루어져 있으며 이 중 β-튜불린(β-tubulin)의 콜히친 센서티브 사이트(colchicine-sensitive site)에 결합하는 것이다. 관이 봉쇄되면 포도당을 흡수하지 못하므로 기생충이 영양결핍으로 사멸한다. 즉 기생충을 굶겨 죽인다.
가장 대중적인 알벤다졸의 경우 잘 알려진 부작용으로는 두통과 간독성이 있으며 탈모, 무과립구증, 골수억제 등의 부작용도 보고되는 편이다. 기생충 치료 용량으로 정량을 사용할 경우 10% 내외의 적은 비율에서만 부작용이 나타나는 꽤나 안전한 약물이다. 다만 펜벤다졸의 경우 동물용 약제므로 사람에 미치는 부작용에 대해 연구된 바가 없다.
B. 항암제의 기전
현재까지 출시된 항암제들은 대부분 3가지의 큰 카테고리로 나뉘게 되며 각각의 특징은 아래와 같다.
1. 세포 독성 항암제
- 증식 속도가 비정상적으로 빠른 암세포의 특징을 포착해 공격함.
- 유전자의 합성 및 세포분열을 타깃해 억제함.
- 암세포 사멸(apoptosis)을 유도해 종양의 크기를 줄임.
- 단점: 선택성이 떨어져 모낭세포, 골수세포, 점막세포 같이 증식이 활발한 정상세포까지 공격.
2. 표적항암제
- 암세포가 증식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특정 표적 인자를 찾아서 공격함.
- 암을 사멸하는 것이 아니라, 암의 진행을 억제하는 역할을 함.
- 암세포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므로 정상세포의 독성이 적음.
- 단점: 해당 유전자의 변형으로 내성이 발생.
3. 면역항암제
- 암세포가 면역세포를 공격하는 경로를 막거나, 면역세포 자체를 더 강하게 만들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돕는 역할.
- 위 두 가지 항암제와는 다르게 암세포에 직접적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면역세포에 작용해 면역세포가 암세포를 공격하도록 함.
- 단점: 면역기능을 지나치게 강화해 과잉면역 반응의 일종인 자가면역질환이 발생할 수 있음.
이 중 우리가 이 주제에서 탐구할 부분은 세포독성 항암제고 이 안에서도 기전에 따라 4–5가지 정도의 분류로 나뉜다.
상당히 많은 종류의 항암제가 있지만 우리가 주목할 부분은 가장 아래의 방추체저해제(Spindle poisons)라는 기전을 가진 약제다. 이전 고대인들은 주목나무의 껍질에서 탁수스(Taxus)라는 독을 추출할 수 있었는데 이 독을 화살에 발라서 썼기에 톡신(Toxin)이라는 단어의 어원이 되기도 했다. 해당 독의 기전은 세포분열 과정 중 염색체가 분리되는 M기에서 방추사(microtubule)의 생성이나 분해를 억제하는 것이다.
결국 세포분열이 잘 되지 않아 비정상적인 거대세포가 출현하고 자가사멸한다. 독을 어떻게 쓰는지에 따라 약으로 쓸 수 있듯 이 독물도 많은 연구를 통해 항암제로 거듭났다. 표에 있는 일일초알칼로이드(Vinca alkaloids), 탁사네스(Taxanes)가 이런 기전을 통해 출시되었고 많은 곳에서 사용된다. 탁사네스의 경우 비소세포폐암, 유방암에 자주 쓰인다.
- 탁사네스 계열: 방추사 분해 억제
- 일일초알칼로이드 계열: 방추사 합성 억제
여기에서 벤다졸 구충제와 방추체저해제 항암제의 원리가 비슷함을 알면 된다.
C. 항암제의 부작용
세포독성 항암제는 증식 속도가 빠른 세포를 사멸시키는 약물이기에 결국 암세포가 아니더라도 증식이 빠른 정상 세포를 공격할 수 있다. 즉 선택성이 떨어진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부작용들이 생길 수 있다.
위 증상들이 나타나는 양상에 따라 급성(Acute), 단기(Short-term), 누적 독성(Cumulative toxicity) 3가지로 분류 할 수 있다.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누적이 가장 위험한 부작용일 것이다. 탁사네스, 일일초알칼로이드 계열 약물의 잘 알려진 부작용으로는 탈모, 마비 등의 신경 장애(Neuropathy)가 있으며 구토는 별로 심하지 않은 편이다. 흔한 부작용 외에 탁사네스 안에서도 약에 따라 일부 부작용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 파클리탁셀(Paclitaxel)의 부작용: 심박동수 증가, 호흡수 증가, 발진(rash), 쇼크(shock) 등의 유사 아나필락시스 반응(anaphylactoid reaction), 감각성 신경병증(sensory neuropathy)
- 도세탁셀(Docetaxel)의 부작용: 체액 정체 증후군(fluid retention syndrome), BM 억제(BM suppression), 과민 반응(Hypersensitivity reaction)
D. 신약이 출시되는 과정
이 중 전임상시험 단계에서 먼저 동물 실험을 통해 안전성과 효력을 평가한다. 그러나 종 간 약리학적 작용이 다르기에 이 단계에서의 효력은 거의 의미가 없다. 이를 통해 사람에게 적용되는 초기용량을 선택할 수 있다.
IND 연구승인신청이 완료되면 비로소 임상시험을 통해 약의 효능을 평가한다. 이 과정에서 다음의 세 가지 기준을 충족해야만 신약으로 인정되는데 이 중 세 번째 항목 ‘ 더 나은 약인가?’에서 대부분의 약물들이 탈락하게 되며 임상시험에서는 Phase 3에 해당한다.
신약개발 기준
- Is it safe in humans?
- Dose it show efficiency in humans?
- Is it going to add value? (이미 존재하는 약보다 더 나은 약인가?)
더 낫다?=더 안전하다, 더 효과적이다. Phase 3을 통과하면 해당 제품을 출시할 수 있으며 이후 Phase 4는 실제 사용에서 나타나는 여러 부작용, 효과 등을 추적 관찰한다.
3. 펜벤다졸과 암 치료 연구
A. 조 티펜스의 사례 (진위 여부 불분명)
미국의 조 티펜스는 2016년 소세포폐암 진단을 받았다. 이듬해 2017년 1월에 여러 장기로 암이 전이되어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게 되었다. 참고로 소세포폐암은 전이가 빠른 암으로 예후가 매우 나쁘다. 스스로 치료과정을 찾던 중 강아지 구충제가 암세포에 작용할 수 있다는 쥐 실험을 알게 되었으며, 한 수의사가 뇌종양을 강아지 구충제와 비타민 E, CBD오일 등 영양제를 함께 복용해 6주만에 완치했다는 글을 보고 그대로 실행한다. 이후 개 구충제를 복용하고 온몸에 전이된 암이 제거되어 암이 완치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는 본인의 경험담을 블로그에 올렸으며 구독자 40명이 동일한 약을 복용 후 각종 별의별 암이 나았다는 메일을 보내와 화제가 되었다. 222mg/day의 용량을 주 3회 복용했으며 비타민 E를 함께 복용했다고 한다. 그러나 해당 케이스의 경우 전문가가 작성한 케이스 리포트가 아닌, 신빙성이 떨어지는 블로그의 경험담이기에 주의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트위터 주작 썰이나 페이스북 xxx 일반인 후기가 생각나지 않는가? SNS에서만 유행하고 정작 의사들 사이에선 화제조차 되지 않는 것을 보면…
B. 펜벤다졸이 쥐 실험에서 성공했다?
우선 위 환자가 봤다는 쥐 실험 논문은 2012년에 나온 다음 논문으로 예상된다.
- Duan Q, Liu Y, Booth CJ, Rockwell S. Use of fenbendazole-containing therapeutic diets for mice in experimental cancer therapy studies. J Am Assoc Lab Anim Sci. 2012 Mar;51(2):224-30.
해당 논문에서는 펜벤다졸를 쥐의 유선 종양 근처에 피내주사하는 실험을 했었는데 항암 방사선 조사 때 비해 종양의 성장을 지연시키지 못했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나 세포 배양 연구에서는 펜벤다졸이 종양 성장을 억제하는 것을 관찰했다. 논문의 결론은 펜벤다졸이 암세포에 영향을 끼칠 수 있기에 쥐의 암 연구에 관여하는 실험을 할 때는 펜벤다졸을 사용하는 데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으로 적혀 있다. 해당 원문은 아래와 같다.
Care should therefore be exercised in deciding whether chow containing fenbendazole should be administered to mouse colonies being used in cancer research.
즉 펜벤다졸이 쥐의 암을 치료한 연구가 아니라 암 성장에 영향을 끼칠 수도 있으니 암 연구를 할 때 주의하라는 의미다. 이듬해 동일 연구자에 의해 2013년에 펜벤다졸의 항암제로서의 작용 가능성을 연구한 논문이 나왔다. 위의 실험에서 조금 더 발전된 연구인 것 같다.
- Duan Q, Liu Y, Rockwell S. Fenbendazole as a potential anticancer drug. Anticancer Res. 2013 Feb;33(2):355-62.
해당 연구의 결과는 펜벤다졸을 방사선 또는 기존 항암 치료에 추가한 것과 추가하지 않은 것이 용량-반응 곡선이 유의한 차이가 없었고 대신 추가적인 세포독성이 나타났다고 나왔다. 최대 용량 요법에서도 종양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거나 항종양효과를 증가시키지 못했다. 즉, 해당 연구의 결론은 펜벤다졸이 암 치료에 가치가 있다는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지만 앞으로 추가적인 조사가 필요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해당 원문은 아래와 같다.
These studies provided no evidence that fenbendazole would have value in cancer therapy, but suggested that this general class of compounds merits further investigation.
요약하면 실제 동물실험에 적용했을 때 기존 요법보다 유의한 효과가 없었다는 것이다. 위 환자는 고의 혹은 실수로 논문을 잘못 읽은 것이다…
C. 2018년의 연구 결과
현재 SNS 등지에 돌아다니는 연구는 2018년에 인도에서 나온 논문이다.
- Dogra N, Kumar A, Mukhopadhyay T. Fenbendazole acts as a moderate microtubule destabilizing agent and causes cancer cell death by modulating multiple cellular pathways. Sci Rep. 2018 Aug 9;8(1):11926. doi: 10.1038/s41598-018-30158-6.
해당 연구에서는 실험실 연구에서 펜벤다졸이 미세소관 체계를 왜곡해 포도당 과잉공급을 유도하는 미세소관을 막아 포도당 결핍 상태를 일으켜 세포주기를 정지시키고 세포사멸을 유도할 수 있다는 결과를 내었다. 항암제의 원리와 유사하다. 또한 구충제로 사용 시 안정성이 높아 부작용이 크지 않으며(동물에서 설사, 식욕 상실, 혼수 등의 부작용이 있다)기에 잠재적 항암제로 연구해볼 필요가 있음을 주장했다.
해당 약물의 기전을 보면 알 수 있든 암세포의 포도당 섭취를 막는 것인데 이는 구충제의 기전과 유사하다. 또한 일반 정상 세포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 즉 다른 항암제와 유사한 부작용이 나타나야 한다. 그런데 이 구충제가 정상 세포에 부작용이 크지 않다는 말은… 항암제로써 유의한 효과가 없다는 뜻이다.
해당 논문에서는 종양세포에 펜벤다졸을 투약했을 때 포도당 섭취를 억제했다는 연구 결과와 실험실 연구에서 고용량의 펜벤다졸이 ‘실험실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했다는 연구 결과를 담지만 ‘쥐의 암세포’ 증식을 억제했다는 결론은 없다. 포도당이 결핍된다고 다 증식이 억제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만약 암세포에 효과를 낼 수 있을 정도의 고용량을 쥐에게 섭취시킬 경우 그 부작용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즉 약물의 용량에 따른 문제다. 이런 되도 않는 주장 누군 못해서 안 하는 게 아니다. 소금의 사람에 대한 치사량이 6g/kg 정도 된다. 당장 나도 시험관 암세포에 소금 뿌려서 죽일 수 있는데 그러면 소금도 항암제인가?
약물은 리스크와 베네핏을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구충제로 사용할 용량과 항암제로 사용할 용량은 다르며 이에 따른 부작용은 다르다. 지금껏 벤다졸 약물들이 항암제로서 임상시험 되지 않은 이유는 이처럼 탁사네스 계열 약물에 비해 유의한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효과가 뛰어나지 않아 동일 효과를 위해 더 많은 약을 섭취해야 하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면 연구가 시도되지 않는 것이 당연하다.
즉 요약하자면 2018년의 논문도 그 전의 연구와 같이 실험실 환경에서는 효과를 냈지만 쥐 실험에서는 유의한 암세포 사멸을 일으키지 못했다. 또한 사람으로 실험한 연구는 지금껏 단 한 건도 없으며, 효과가 없을 거라 확신하기에 동물에 적용하는 임상시험조차도 시도되지 않았다. 위 케이스 환자 주장의 신빙성이 의심된다.
D. 암의 만병통치약?
식품의약품안전처는 개 구충제의 주성분인 펜벤다졸은 사람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하지 않은 물질이기에 암 환자가 절대로 복용해선 안 된다고 했다.
암은 세포마다, 발생 기전과 이상 유전자에 따라 수많은 종류가 있으며 이 모든 종류의 암들에 대한 치료는 전부 다르다. 심지어 같은 암이라도 그 양상과 정도에 따라 병기로 구분되며 병기에 따라서도 치료가 다르다. 현대의학의 최대 전선인 암 치료에서 이렇게 간단한 약물로 모든 암을 치료할 수 있다면 정말 노벨상감이 따로 없을 것이다.
모든 암의 메커니즘이 다른데 한 가지 약으로 전부 해결한다니. 당사자나 가족의 경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펜벤다졸을 찾아 나서며 희망을 걸 수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추천하지 않는다.
- 효과가 불분명하고,
- 인간에 적용한 사례가 없으며,
- 인간에의 부작용이 아직 불확실하기 때문이다.
더욱 효과가 좋은 약들이 이미 시판되고 1%라도 생존율을 유의하게 높이기 위해 아직도 연구자들은 밤을 새며 신약개발에 몰두한다. 신약개발은 정말 철저한 검증을 받고서야 출시된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약물 부작용으로 인한 피해가 심각하다.
시한부 2개월을 살 수 있는 환자라도 검증되지 않은 약물에 의한 부작용으로 1개월밖에 살지 못 하는 일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 본인이 별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면 자의로 시도해 볼 수는 있겠지만 조금이라도 더 살고 싶다면 조금 더 고민해 봐야 할 것이다.
4. 왜 이런 일이 유행하는가?
A. 비싼 약을 팔면 의사가 돈을 버는가?
의약분업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지금은 제약회사로부터의 리베이트 또한 불법으로 막혔다. 의사가 비싼 약을 처방하든 싼 약을 처방하든 의사에게 돌아오는 돈은 동일하다. 오히려 의사 입장에서는 암을 간단하게 치료할 방법이 있다면 이를 통해 홍보해 손님을 떼로 모을 것이지 다른 의사들과 같이 조용히 있으면서 효과가 없는 약을 처방하진 않을 것이다. 담합? 전 세계의 의사가 얼마나 많은데 이들이 모두 무언가를 숨긴다고?
B. 만성질환과 유사 의학
두 달 후에 죽으나 한 달 후에 죽으나 큰 차이가 없다고 생각하는 환자들은 시도해 봐서 안 되더라도 본전이라는 심리를 가지고 지푸라기를 잡는다. 이 심리를 파고들어 약을 팔아먹는 지금껏 수많은 사기꾼 약팔이들을 생각하면 해당 케이스와 같은 사례는 전체 사회의 문제를 키운다. 마치 몸에 좋다는 게르마늄 팔찌나 음이온, 수소수와 마찬가지로 의학의 틈을 이용해 무의미한 경제적인 손실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결국 맥락은 유사하다. 다만 다행인 점은 강아지 구충제는 100만 원짜리 약이 아니라 저렴한 약이라는 것이다. 해당 사건이 우연히 강아지 구충제에 일어난 것일 뿐이지 언젠가는 비싼 약이 암의 만병통치약이라고 주장하며 환자들을 우롱하는 사건이 일어날 것이며, 실제로 지금도 시골 곳곳에서는 이런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돈에 미친 의새들이 먹으라는 약 대신 자신들이 파는 특별한 무언가를 섭취해야 암 치료에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정말 익숙하지만 또 당하지 않았는가? 이번 케이스에서도 구충제 자체는 매우 쌌지만 추가적으로 항암 레시피라고 CBD 오일, 비타민 E 등의 각종 영양제들을 제시했고 끼워 넣어 비싸게 팔았다. 과연 왜 그럴까?
민간요법이나 각종 사이비 유사 과학들은 만성질환에서 판친다. 만성질환은 현대의학이 아직 완벽히 해결할 수 없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급성질환에서는 사이비 유사 과학을 본 적이 없다. 초기 갑상샘암을 고친다고 하는 약은 왜 없고 말기 암에만 효과가 있는가? 왜 심근경색이나 대동맥 박리에 효과가 있는 특별한 민간요법은 없는가? 이런 급성 질환들은 효과가 바로바로 드러나고 당연히 효과가 없기에 사기꾼으로 고소당할 책임 위험이 높다. 경과가 천천히 나타나고 현대의학이 해결할 수 없는 분야에서 자신들이 판매하는 무언가가 효과가 있다고 주장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들은 독한 양약 말고 천연물질로 만든 무언가를 먹으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요약하자면 부작용이 존재하지 않는 약은 효과 또한 없다. 그렇게 좋은 무언가가 정말 효과가 있다면 왜 의사들이 쓰지 않을까를 생각해보라. 이런 것에 사회적으로 불필요한 비용을 소모하지 않기 위해선 국민들의 건강 정보 이해력(Health literacy)을 키우는 것이 중요한 시점이다. 이 내용은 정말 강조를 거듭해도 부족하다.
5. 결론
펜벤다졸은 적어도 현재까지 알려진 연구로는 말기 암에 유의한 효과가 없으며, 만약 있다 하더라도 현재 시판되는 항암제들에 비해 효과, 부작용 안정성이 매우 떨어진다. 지금까지 나온 연구 중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는 아무것도 없으며 심지어 동물에 임상시험한 연구도 시도조차 되지 않았다. 비록 펜벤다졸만이 아니더라도 지금까지 아무도 모르던, 어떤 간단한 방법으로 암이나 무언가 불치병을 치료한다는 이러한 이슈는 늘 있어왔다. 과연 이러한 이슈를 통해 돈을 버는 사람이 누굴지 생각해보라.
6. 참고문헌
- Duan Q, Liu Y, Booth CJ, Rockwell S. Use of fenbendazole-containing therapeutic diets for mice in experimental cancer therapy studies. J Am Assoc Lab Anim Sci. 2012 Mar;51(2):224-30. PubMed PMID: 22776123; PubMed Central PMCID: PMC3314526.
- Duan Q, Liu Y, Rockwell S. Fenbendazole as a potential anticancer drug. Anticancer Res. 2013 Feb;33(2):355-62. PubMed PMID: 23393324; PubMed Central PMCID: PMC3580766.
- Lai SR, Castello SA, Robinson AC, Koehler JW. In vitro anti-tubulin effects of mebendazole and fenbendazole on canine glioma cells. Vet Comp Oncol. 2017 Dec;15(4):1445-1454. doi: 10.1111/vco.12288. Epub 2017 Jan 12. PubMed PMID: 28078780.
- Dogra N, Kumar A, Mukhopadhyay T. Fenbendazole acts as a moderate microtubule destabilizing agent and causes cancer cell death by modulating multiple cellular pathways. Sci Rep. 2018 Aug 9;8(1):11926. doi: 10.1038/s41598-018-30158-6. PubMed PMID: 30093705; PubMed Central PMCID: PMC6085345.
-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약리학개론, 기생충학, 종양학 수업 강의록
원문: ARMS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