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자뷔
2018년 2월 14일, 카카오 모빌리티는 252억에 스타트업 ‘럭시’를 인수한다. 택시 수요는 급증하는데 공급이 이를 따라가지 못하는 출퇴근 시간대에 카풀 서비스를 운영하겠다는 판단이었다. 카카오에서는 평일 오전 8–9시 사이에 카카오 택시 호출이 23만 건인 데 비해 배차 가능 택시는 2만 6,000대밖에 되지 않는다는 데이터를 공개하며 사업의 필요성과 시장 타당성을 설명했다. 또한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제 81조의 1항에 있는 ‘출퇴근 때 승용자동차를 함께 타는 경우’에 유상으로 운행이 가능하다는 예외조항이 있음으로,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대부분 한국 대기업이 좀 될 성싶은 스타트업 서비스를 고대로 모방해서 출시하는 양아치 짓만 하는 와중에(예시가 너무 많아서 들기도 힘들다…), 작은 신생 스타트업의 지분을 100% 인수하고 해당 분야를 어렵게 개척한 스타트업의 뛰어난 인적 자원과 대기업의 인프라를 결합하는 형태로 더 좋은 서비스를 내겠다는 카카오 모빌리티의 결정은 그야말로 바람직한 업계 선배의 멋진 모습 그 자체였다. 척박한 한국 IT업계에서 이런 인수 건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 것이 당연지사.
시간이 흘러 카카오 모빌리티의 카풀 서비스 런칭에 관한 전망과 기사들이 슬슬 나오고 시범 서비스가 가동되기 시작하자 택시 업계의 반대가 시작되었다. 택시 업계는 그해 10월부터 본격적으로 국회 앞, 광화문 광장 그리고 판교 카카오 본사 앞에서 ‘카풀 원천 반대’ 입장을 고수하며 계속해서 시위를 벌여왔다.
언론에서도 각계각층의 패널이 나와서 해당 안건에 의견을 교환했다. 쟁점은 다양했다. 물론 혁신 산업 육성 대(對) 기존 산업 보호의 구도가 대다수였지만, 일부에서는 고질적인 택시 기사 처우 문제 해결이 우선해야 한다고 주장했고, 일부에서는 국토부, 기획재정부, 지자체, 국회 중에 그 누구 하나 제대로 나서는 곳 없이 서로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한심한 모습을 성토하기도 했다.
그런데 12월 10일,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택시 기사 (고) 최우기 씨가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본인의 택시 안에서 분신자살을 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다. 언론은 일제히 달려들어서 그의 죽음을 이슈화하고 카카오 모빌리티를 범인으로 몰아간다. 각계의 정치인은 이게 이슈화되니까 뭐라도 해야 하나보다 하고 잘 모르면서 여기저기 끼어들어서 복장 터지는 이야기나 하고, 택시 업계는 본격적으로 분향소를 차리고 앞으로 더 큰 시위를 하겠다고 예고하기 시작했다. (고) 최우기 씨의 죽음 이후 3일이 지난 뒤, 2018년 12월 13일 카카오 모빌리티는 약 10개월에 걸쳐 준비했던 카풀 서비스 런칭을 무기한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10개월이 지났지만, 택시 업계는 여전히 국회 앞과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벌인다. 그동안 3명의 택시 기사분들이 분신자살을 시도했고 아까운 목숨이 또 사라졌다. 작년 말에 그 안타까운 죽음을 각자의 입맛에 맞게 이용했던 언론, 택시 업계, 정치권과 행정부는 10개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택시 기사의 살인적인 노동 강도와 사납금 제도를 조금이라도 개선한 택시 회사가 단 한 군데라도 있다면 알려줬으면 좋겠다.
면허 사업을 감독해 소비자의 불편을 해소하고 새로운 기술과 시대에 맞춰 법을 정비하고 정책을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치권과 행정부는 특정 이익 집단의 눈치만 보다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뭐, 내년 4월 총선까지 표 떨어지는 일 안 하고 싶겠지. 난 국회, 지자체, 기획재정부 관계자들이 검찰한테 고마워할 거란 데 500원 걸어본다. 검찰이 초스피드로 스타트업 대표 2명 기소한 덕에 이 모든 판단이 사법부 책임으로 넘어갔으니까, 그 덕분에 정부 부처와 지자체는 지금까지와 마찬가지로 아무것도 안 해도 되니까.
IT/스타트업 경력 10년 차의 백수프리랜서 분석가의 생각으로는 기존의 업계가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고자 도전하는 스타트업이 있다면, 이를 격려하고 제도를 정비해서 지원하는 것이 상식인데, 이 문제는 얼마나 복잡하길래 대표 두 명 기소 엔딩이라니… 각자의 사정이 궁금해졌다.
카카오 모빌리티의 사정
2016년 9월 22일, 나는 코엑스에서 카카오 모빌리티 정주환 대표의 발표를 보게 될 기회가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캐시슬라이드에서 제휴와 신규사업을 담당했다. 캐시슬라이드 포인트로 교통카드 충전이나 대중교통비를 할인하는 제휴에 많은 관심이 있었다. 하지만 생긴 지 2년도 안 된 스타트업의 제안서는 대부분 읽씹되기 일수였다. 그러던 와중 ‘서울 스마트 모빌리티 국제 콘퍼런스’가 9월에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쾌재를 불렀다. 한 번에 서울시 도시교통실 공무원들이나 티머니 관계자들과 안면을 트고 명함을 받을 기회였으니 말이다. 이것이 모빌리티 산업에 단 한 번도 종사한 적이 없는 내가 그의 발표를 보게 된 이유…
그 당시에 그는 카카오 O2O 사업 부분 총괄 부사장이라는, 꽤 길고 거창한 타이틀을 달았다. 2016년 9월의 카카오 택시는 큰 성공을 거둬 압도적인 시장 점유율을 가진 시장 지배적 라이드헤일링 서비스(Ride-Hailing Service, 이동 수단 호출 서비스)였고, 그는 카카오 택시 출시와 성공의 1등 공신으로 업계에 소문이 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의 발표는 매우 좋았다. 정주환 대표는 카카오 택시를 서비스하기 위해서 겪었던 고생과 에피소드를 맛깔나게 소개했고, 또 그 과정에서 얻은 생각과 고민을 담백하고 솔직하게 공유해주었다.
전국에 있는 거의 모든 택시 회사를 직접 방문했는데, 대부분의 택시 회사가 영세한 데다가 운영하시는 분들이 IT를 아예 모르기 때문에 설득이 매우 어려웠다고 했다. 특히 대부분의 택시 회사 사무실에 들어가면 일단 컴퓨터가 없고, 벽에는 왠지 모르게 항상 태극기(!)와 지도가 걸려있으며, 갈색 소파 4개로 둘러싸인 테이블 위에는 항상 재떨이가 있다는 묘사에서는 청중이 다 같이 빵 터지기도 했었다.
또 기억 나는 내용은 많은 수의 택시 기사분이 연세가 있어서 카카오 직원들이 직접 사무실이나 충전소에 나가서, 기사용 앱을 일일이 한 분 한 분의 스마트폰에 깔아드리고 사용법을 알려드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정주환 대표의 춘부장께서도 은퇴하고 택시 기사 일을 하셨기 때문에, 택시 기사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한다고 했던 것도 기억난다.
또한 손님들이 택시 기사들을 무서워하는 것만큼, 택시 기사들도 손님을 무서워하고 특히 그중에서도 야간+젊은 취객 조합이 가장 큰 두려움의 대상이라는 이야기도 기억난다. 열악한 택시 업계와 낙후된 시스템을 카카오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통해 개선하고 싶다고 앞으로 포부를 밝히며 발표를 마친 정주환 대표의 얼굴은 자신감에 차 있었다. 택시 산업의 현실과 택시 업계의 입장을 이해하고 해결하려는 그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작년 연말 모임에서 카카오 다니는 지인이 “John(정주환 대표)이 작년에 맘고생을 엄청나게 했고, 택시 업계가 오해하는 부분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는 말을 했을 때, 그의 심정을 어느 정도는 이해할 수 있었다. 물론 택시 업계가 조금의 양보나 타협도 하지 않고 덮어놓고 본인 욕을 하는 상황에서, 진심으로 택시 업계의 입장을 이해하고 그들의 편이 되려고 했던 그의 억울함을 100% 이해한다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말이다. 10개월을 준비한 서비스를 한순간에 허무하게 접어야 했을 때는 또 얼마나 분하고 안타까웠을까? 함께 준비한 직원들과 인수한 스타트업 식구들에게는 얼마나 미안했을까? 개인적으로 전혀 모르는 분이지만 괜히 안쓰럽고 마음이 쓰였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작년 사건 이후 노선을 완전히 바꿨다. 막강한 자본력으로 택시 회사와 택시 면허를 아예 사들인다. 벌써 업체 세 군데를 인수한 거로 안다. 밖에서 택시 업계를 바꾸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하고, 택시 업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직접 택시 회사를 운영하면서 느리지만 확실하게 업계를 바꾸려고 하는 것 같다. 뭔가 “진짜 내가 더럽고 치사하고 억울해서 직접 한다.”라는 정주환 대표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진심으로 그의 성공을 응원한다.
택시의 사정
택시 업계는 요지부동이다. ‘타다 OUT’에서 단 한 걸음도 양보하지 않을 기세다. 작년에 그 카카오도 이겼는데 그깟 쏘카, 타다 따위 어차피 또 이길 게 분명하다고 확신한다. 택시 업계가 전통적으로 보수 정당의 주요한 지지층이고 후원자이니 보수 정치권에서도 꽤 나서서 택시를 지지하고 든다. 언론이야 뭐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냥 아무~~~~~런 생각X취재X고민 없이 ‘택시가 피해자고 타다는 불법이다!’라는 입장을 받아 적기만 한다.
일부 보수적인 정치관을 가지신 택시 기사분들은 기사와 유튜브 댓글에 쏘카 이재웅 대표의 문재인 빽(?) 설을 강력하게 설파한다. 박원순 시장 욕, 더불어민주당 욕도 심심찮게 보인다. 택시 업계가 살기 위해서는 정권 교체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VCNC 박재욱 대표가 조국 교수 딸의 남자친구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야기를 하는 택시 기사 아저씨도 만났다.
전통적인 전술학의 관점에서 적대 세력에 대한 유언비어 살포가 내부 결속과 전투력 유지에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인정하는 바이나, 이쯤 되면 솔직히 정도가 심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엇이 택시 업계를 이렇게 분노하게 했을까? 택시 업계의 입장을 요약하면 아래와 같다.
이놈의 타다 때문에 장사가 점점 안되고 택시 기사들의 생존권이 위협받는다. 타다 무조건 금지!
그럼 당연히 궁금해진다. 진짜로 타다 때문에 장사가 안 되는가? 정말로 택시 영업수익 잠식이 있는가? 생존권에 문제가 생겼는가?
추이를 보면 타다가 나오고 영업 수입이 크게 준 것 같지 않다. 딱 1년 치 말고 좀 더 긴 자료도 있다.
그 사이에 풀러스도 나오고 타다도 나왔지만, 현실은 2015년부터 지금까지 택시의 수익은 그냥 큰 변화가 없었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타다 때문에 택시 업계가 많이 힘들어졌다”라는 주장은 잘못된 주장이다. 그것보다는 “앞으로 타다 때문에 내 밥그릇이 뺏길 것 같아서 두렵다”라고 하는 게 좀 더 사실에 가깝다.
다르게 표현하면, 택시 업계의 타다 반대는 지금 당장의 생존권 위협보다는 향후 위협이 될 것으로 보이니까 아예 지금 나서서 싹을 자르겠다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정도 주장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실제로 타다가 정말 잘돼서 한 30,000대 운행하면 이들의 공포가 현실이 될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나는 만약 그렇게 되더라도 타다와 택시의 기본 가격 차이와 서비스 차이가 있으니, 택시는 택시대로, 타다는 프리미엄 서비스로 공생할 가능성이 더 높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작년 카풀 반대 시위 때부터 지금까지의 택시 업계의 태도와 주장을 보면, 좀 과하고 과격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 그렇게 기를 쓰고 시위를 하고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면서 새로운 서비스를 반대할까? 비록 택시 업계의 주장이 팩트가 아니더라도, 아무리 봐도 그들의 절박함과 공포는 진짜처럼 보인다.
내 생각에 그 이유는 심플하다. 택시는 새로운 서비스 때문에 힘든 게 아니라 ‘원래’ 힘들었다. 이미 한계에 달할 정도로 힘들게 일하는 와중에, 더 힘들어지면 안 될 것 같으니까 새로운 서비스에 대해서 무지막지하게 저항하는 거다.
개인택시는 서울시에 대략 5만 대 정도 있다. 이분들의 평균 수입은 한 달에 약 284만 원 정도라고 한다. 이분들은 경력을 쌓아 자격을 얻고, 직접 개인 자격으로 택시 면허를 구매해서 운행하시는 분들이다. 기본적으로 버는 돈의 100% 자기 수익이고, 일하는 만큼 번다. 대체로 이틀 일하고 하루 쉬는 패턴으로 일하고 일하는 시간대는 본인들이 정한다. 누가 떼가는 돈도 없고, 반대로 일을 하지 않으면 버는 돈도 없다
. 은퇴하고 파트타임 프리랜서처럼 일하는 분들은 쉬엄쉬엄할 수 있지만, 본격적으로 수익을 제대로 땡기려고 들면 꽤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한다. 이분들이 타다와 유사 서비스를 반대하는 시위에 나오는 건 수입 감소라는 이유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이분들의 진짜 걱정은 신규 서비스들로 인해, 본인들이 구매한 개인택시 면허 가치가 떨어지는 우울한 미래이다. 즉 퇴직금이 줄어드는 게 가장 큰 걱정이다.
법인 택시는 서울시에 약 2만 3,000대 정도 있다. 이분들의 평균 수입은 한 달에 약 203만 원 정도라고 한다. 버는 돈은 개인택시보다 80만 원 정도 적은 데 노동강도는 훨씬 높다. 출근한 날은 하루에 12시간(!)을 일해야 하며, 한 달에 26일을 만근으로 친다고 한다. 운행을 나간 날에는 낮에는 12~13만 원 밤에는 15–20만 원까지 복귀 시 회사에 무조건 납부해야 한다. 번 돈이 모자라면 자기 돈으로 벌충해야 한다. 이게 말이 많은 사납금 제도다.
법인 택시 기사들은 12시간 동안 돈벌이에 충실한 운행을 해야지 본전치기할 수 있고, 사납금보다 더 벌어서 남기려면 독하게 운전해야만 한다. 이분들의 노동강도와 처우가 얼마나 열악한지는 사고 발생 통계를 보면 알 수 있다. 국토부 통계(2017년)에 따르면 개인택시의 사고 발생 건수는 16만 4,000여 대 중 6,148건(사망 75명)인데, 법인 택시의 사고 발생 건수는 8만 9,000여 대 중 1만 5,690건(사망 139명)이다. 비율로 보면 개인택시는 3.7%, 법인 택시는 17.6%다. 법인 택시 기사들은 착취당하고, 말 그대로 목숨 걸고 일한다.
문제는 여러분이 목/금요일 늦은 밤에 서울 시내에서 택시를 탈 때 만나는 대부분의 택시가 법인 택시라는 점이다. 서울에 개인택시가 50,000대면 법인 택시 23,000대의 2배가 넘는데 그게 무슨 말이냐고 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개인택시의 운행 시간이 자율에 기반한다는 점이다. 개인택시 기사분들은 프리랜서라 아주 늦은 시간까지 운전하시는 분들이 많이 없다.
개인택시 기사분들은 대부분 사람처럼 아침에 나와서 저녁에 퇴근하신다. 막 새벽까지 빡세게 일하면서 수입을 땡기는 개인택시 기사분들도 계시지만 그 숫자는 상대적으로 적다. 하지만 법인 택시의 경우 심야 시간에도 80% 이상이 가동된다. 그들은 의무적으로 그 시간에 일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12시간 동안 최대한 돈을 벌어야 하므로 소위 ‘돈 안 되는 손님’을 피하게 된다.
만약 당신이 아침 8시에 출근해서 자리에 앉는 순간, 저녁 8시에 퇴근할 때 무조건 갚아야 하는 12–20만 원의 빚이 생긴다고 생각해보자. 그런 날이 한 달에 26일 동안 매일 매일 반복되고 힘들고 미칠 지경이다. 겨우 버티면서 일하는데, 주변 동료들이 새로운 서비스가 등장해서 앞으로 돈 벌기 더 어려워진다고 공포감을 조성하면 어떤 생각이 들까? 회사 조합 임원과 상사는 집회 나오라고 독촉하고, 그 와중에 사납금은 계속 내야 하고, 동료들의 단톡방에는 불법 업자들 때문에 수익이 감소한다는 글이 올라온다면? 이렇게 상상해보면 이들의 절박함과 공포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정리하면, 택시 업계가 힘든 건 만성적인 문제이고 구조적인 문제이다. 택시 기사들의 사정은 정말 딱하다. 그런데 현재 시점에서 택시 기사들이 힘든 건 카풀이나 타다 같은 서비스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예전부터 계속해서 힘들었다. 그 이유는 첫째는 열악한 근무 여건과 가혹한 사납금 제도고 둘째는 제도와 정책을 보완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사람들이 직무유기하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택시 업계가 자신을 변화시킬 가능성은 작다. 의지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개별 업체는 너무 영세하고 능력도 부족하다. 그런데 상황을 파악하고 제도와 정책을 개선해야 할 책임이 있는 정부 부처와 지자체들은 수십 년째 곪아 터진 문제를 무시하고 방치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높은 확률로 앞으로도 그럴 것처럼 보인다. 생산적인 논의와 머리를 맞대고 함께 고민하는 진지함 대신에, 고발과 기소가 그 자리를 자치했고, 모든 문제가 사법부의 판단으로 넘어갔다. 암울하다.
소비자의 사정
대부분의 소비자는 택시 업계의 시위에 대해 냉담한 반응이다. 이것 또한 택시 업계에 대한 오래된 불신과 불만족에 그 뿌리를 둔다. 소비자들은 무엇이 그렇게, 그리고 얼마나 불만족스러울까? 2018년 이용 만족도를 보면, 서울시민들은 버스에는 6.28점, 지하철에는 6.79 그리고 택시에는 5.61점을 준 것을 볼 수 있다.
서울시 열린 데이터 광장에 가면 더 자세한 정보를 볼 수 있다. 택시는 2005년 이후로 지금까지 계속 버스와 지하철보다 불만족스러운 교통수단이었다. 그럼 구체적으로 소비자들은 뭐가 그렇게 불만족스러울까? 서울시의 교통 불편 민원 신고 현황을 보면 승차 거부와 불친절이 항상 1–2위를 엎치락뒤치락하고 그다음이 부당요금 징수임을 알 수 있다.
승차 거부는 왜 일어나는가? 심플하다. 택시들이 ‘돈 되는 손님’을 골라 태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법인 택시 기사들은 효율적으로 운행하지 않으면 손해를 보기 때문에, 테헤란로 이면도로에 불을 끄고 대기하면서 ‘돈 되는 손님’을 기다린다. 그런데 소비자 입장에서 지하철과 버스가 운행을 중지하는 심야 시간대는 택시가 유일한 이동수단이다. 한시적인 시간 동안 택시가 이동수단에서 독점이 된다.
거기에 만약 당신이 내리는 사람은 많은데 타는 사람이 없는 지역에 산다면, 상황은 최악이다. 택시 기사 관점에서 태우면 손해인 손님이므로 계속해서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카카오T, 티맵 콜 등 모든 서비스에 다 올려도 안 잡힌다. 소위 똥 콜(돈 안 되는 콜)이다. 결국 카카오 택시 목적지에 “상계동 10,000원 추가” 혹은 ‘공릉 15,000원 더 드릴게요’라고 적는다. 그래도 겨우 잡힐까 말까 한다. 택시 잡으려면 이사해야 할 판이다. 서울시에서 단속과 적발 시 페널티를 강화하면서 승차 거부는 꾸준히 줄어들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근본적이고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기 때문에, 페널티를 피하는 방법을 계속 찾으며 승차 거부는 밤마다 계속해서 이루어진다.
소비자 입장에서 택시 기사의 불친절 문제도 심각하다. 택시 서비스의 친절도는 택시 기사 개인의 인성과 당일 컨디션에 따라 완전히 복불복이다. 분명히 내 돈 내고 이용하는 서비스인데 친절도는 숫제 1박 2일 잠자리 게임 취급이다. 도무지 예상이 안 된다. ‘손님은 왕’ 취급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 돈 내는 짐짝 취급이고 ‘손님’ 취급도 안 해준다. 개인택시 기사들은 본인의 택시를 자신의 사적 공간으로 생각하고 손님이 그 분위기에 맞춰 주길 바란다. 그나마 그런 경우는 양반이다. 법인 택시 기사는 스트레스와 피로에 찌들어, 그야말로 언제 터질지 모르는 화약과 같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많이 화가 나고 답답한 것은 택시 업계가 서비스 개선에 대해서 매번 말만 하지만 실제로 실행 가능한 계획을 세우고 행동에 옮긴 적이 없다는 것이다. 올해 2월 택시 기본요금이 인상되었지만, 약속했던 서비스 개선은 없었다. 인상된 가격 중에 단 1원이라도 소비자 서비스 개선에 사용되었는지 묻고 싶다. 사람은 한두 번만 속아도 화가 나는데, 수십 년째 속으니 이제는 거의 포기 상태다. 반복되는 상황에서 택시 업계에 대한 소비자의 만성적인 불만과 불신은 최대치에 달해 있었다.
타다의 사정
2018년 10월 타다가 출시되고, 한동안 SNS에는 타다를 사용한 사용자들의 일명 ‘타밍아웃’이 유행이었다. 페이스북에서는 타다 서비스 경험을 칭찬하는 간증이 연일 기독교 부흥회 집사님들 방언처럼 터져 나오고, 인스타에서는 타다 웰컴 키트를 맛집 음식 사진처럼 올리는 인증샷이 계속 올라왔다. 소비자들은 열광했다. 해결될 기미가 없었던 오래된 불만 사항인 승차 거부와 불친절 문제를 깔끔하게 해결한 서비스가 나왔으니 그럴 만도 했다.
타다가 무슨 혁신이냐고 김포공항에 배 들어오는 소리 하는 사람들이 있다. IT/스타트업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뭐 그럴 수 있다. 그런 사람들 눈에는 화성에 가겠다고 로켓 만들고 가짜 고기 만들고 그런 것만 혁신으로 보이겠지. 그런데 IT/스타트업에 꽤 짬밥을 먹은 분들도 저런 말을 하던데 좀 안쓰럽다. 인공지능이니 빅데이터니 이런 말이 들어간 거창한 것만 혁신이 아니다. 유통, 생산, 고객 서비스, BM, 인사 등 다양한 영역의 혁신과 이를 뒷받침하는 기술력을 통해서 부가가치를 만들고 소비자의 사랑을 받은 수많은 서비스가 널리고 널렸는데…
택시 업계는 개인택시만이 아니라 법인 택시 기사들까지도 ‘개인’이 수익 극대화의 책임을 질 뿐 아니라, 손해 발생 시의 리스크까지 떠안는다. 법인 택시 기사들은 사납금의 존재로 인해 마이너스 수익 가능성까지 있다. 수입과 리스크가 택시 기사 개인의 수익 최적화 능력에 달린 가혹한 보상 체계다. 개개인이 각자도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놈의 승차 거부가 해결될 리가 있을까?
타다는 운전기사의 보상 체계를 바꾸고 목적지에 무관하게 가까운 차를 자동으로 배차하는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리고 회사가 중앙 시스템을 통해 전체 차량 운행을 통제한다. 개별 운전자는 중앙 시스템에 따라서 운행하기만 하면 된다. 리스크는 회사가 부담하고, 타다 운전기사들은 운행 수익을 최적화할 필요가 없으며, 승차 거부는 사라진다. 왜 법인 택시 회사는 이렇게 못 할까? 택시 회사 사장님들이 만약 택시가 월급제가 되면 수익이 줄어들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택시 기사들이 사납금이 없으면 열심히 노오력 하지 않으리라 생각하시기 때문에… 차 끌고 나가서 종일 놀다 오면 어쩔 거냐고 누가 책임지냐고 할 게 뻔하다.
타다는 그럴 걱정이 없다. 항상 위치가 추적되고 배차는 자동으로 된다. 게다가 차량 운행 데이터가 쌓이면 요일별, 시간대별로 서울의 지역별 수요 예측을 정밀하게 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 손님이 없는 공차 상황에서 지금 수요 발생 가능성이 가장 큰 지역으로 차량을 유도하는 기능이 타다에 들어가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다. 다음 주 목요일은 기온이 급격히 떨어진다고 하니 심야 시간의 수요가 늘어날 것이 예상되어 200대를 증차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예측을 해낼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수요와 공급이 불일치할 때 이를 자동으로 계산해 실시간으로 가격을 조정하는 탄력 요금제를 도입해 시장 상황에 대응한다. VCNC는 이 모든 것을 종합해 효율을 최적화했을 때, BEF가 넘어갈 수 있다는 계산을 깔고 이 일을 시작했을 것이다. 그들의 도전은 앞으로가 더 기대된다.
위에서 언급한 라이드 헤일링 서비스, 빅 데이터 분석, 수요 예측 모델, 실시간 가격 변동 시스템 등의 다양한 기술적 혁신은 사실 소비자 입장에서 쉽게 피부에 와닿는 혁신은 아니다. 소비자 입장에서 가장 확실하게 체감되는 건 고객 서비스의 혁신이다. 타다를 한 번 타본 사람은 앞으로 내가 타다를 부르면 어떤 프로토콜로 서비스가 될지 ‘예상’이 가능하다. 일정 수준 이상 퀄리티가 서비스를 꾸준히 받을 수 있고 자신이 지불한 금액에 비해 그 서비스가 만족스러우면, 소비자는 그 서비스를 다시 이용한다. 올해 5월 기사에 따르면 타다의 재탑승률은 89%라고 한다.
새로 뽑은 흰색 카니발과 쾌적한 환경도 타다라는 브랜드 경험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만, 전부는 아니다. (듣고 있나? 카카오 모빌리티 벤티?) 하드웨어만큼 소프트웨어가 중요하다. 타다는 모든 기존 업계 사람들이 운송업으로 취급했던 산업에 서비스업의 방법론을 적용해서 소비자들의 열광을 끌어냈다. 소비자들이 입장에서는 처음으로 나를 돈 내는 짐짝 취급에서 제대로 된 ‘손님’ 대접을 해준다는 점에서 그저 감동일 뿐이다. 날 이렇게 대한 건 네가 처음이야. 구체적으로 타다가 서비스에서 어떤 차별화를 했는지는 MBN의 이무형 기자님이 페이스북에 올린 글로 대체하겠다.
막상 리스트로 만들면 별것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저런 서비스를 출시와 동시에 몇백 대의 차량에 균일한 퀼리티로 제공하는 일은 또 다르다. 출시 전에 고객 니즈를 조사하고 분석해서 가이드라인을 만들었을 것이고, 승하차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고객 응대 매뉴얼을 만들어서 채용한 운전기사들을 교육해야 할 것이다. 자, 이까지 읽었는데도 잘 모르겠으면 그냥 다음 문장을 외워라. 김포공항에는 비행기가 들어오고 타다는 혁신 서비스다.
타다는 앞으로 제대로 서비스를 이행하지 않는 운전기사 대상으로 재교육도 하면서 계속해서 서비스 퀄리티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지금 타다 편은 소비자밖에 없다. 소비자를 계속 타다의 편으로 유지해야 한다. 그러므로 타다는 앞으로 리뷰 기능을 통해서 고객들의 의견과 피드백을 수렴하고 고객 응대 서비스를 계속 개선해야 할 것이다. 스타트업답게, 린하게 말이다.
마지막 당부
나는 정부 관계자들과 택시 업계가 타다의 케이스를 공부해야 한다고 본다. 타다가 1,400대의 차량으로 시도하는 보상 체계와 시스템이 정말로 지속가능한 모델인지 면밀하게 살펴보고 지켜봐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만약 타다의 방법이 가능하다는 판단이 들면, 그 정보와 노하우를 활용해서 그 50배에 달하는 7만 4,000대의 기존 택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할지 고민하고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물론 사기업인 VCNC와 쏘카가 이용자들 대상으로 폭리를 취하거나, 고용한 노동자들에게 부당한 대우를 하지는 않는지 감시, 감독하는 역할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국토부, 국토교통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 서울시가 새로운 서비스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불법으로 취급하고 매장해버리고, 동시에 곪아 터진 택시 업계의 문제와 소비자의 불만도 대충 묻어두는 ‘쉬운’ 방법을 선택하지 않기를 바란다. 현상을 정확하게 직시하고 업계를 끈질기게 설득하고 이해관계를 조정하고 해결하는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
원문: limyoungjo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