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쉽게 풍화된다. 우리의 웹 검색 시스템은 오래전의 기사를 찾아주는 능력이 떨어진다. 영리한 사람들은 이 두 가지를 합쳐서 미디어를 이용한 일종의 수작을 부린다. 타다 얘기다. 주요한 팩트들이 어긋나 있으니 바로잡고 시작하자.
1.
10월 29일 자 조선비즈에 「“국토부서 법 검토받았는데”… 타다 기소에 “정부 신의성 무너졌다” 비판 쏟아져」라는 기사가 실렸다. 겹따옴표 안에 있는 워딩은 이번에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타다 박재욱 VCNC 대표가 한 얘기다. 타다 측은 꽤 오랫동안 이런 입장을 취해 왔다.
그러나 그의 말과는 달리 국토부나 서울시는 타다의 사업모델을 승인해준 적이 없다. 블로터의 올해 5월 24일 자 기사를 보자. 타다가 강조하는 ‘승인’의 정체란 국토부에서 적극적 제지를 하지 않은 것, 그리고 다산 120 콜센터에서 한 민원에 대해 답변한 내용이 전부다. 서울시 측은 이 120 민원 답변은 서울시 공식 입장이 아니라고 부인했다.
양방의 입장이 엇갈리니 기자가 묻는다. ‘타다는 서울시나 국토부에게 서비스를 승인한다는 공문을 받은 적이 있는지요?’ 타다 측은 “유권해석에 대해 명확하게 여부를 답변하기 어렵다”라면서 “사업 상세 내용을 모두 국토부와 공유하고, 현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소통해 오해는 없을 것”이라는 이상한 답을 한다.
보통 기자들은 이런 답을 들으면 ‘아. 승인받은 건 아니군요?’라고 재차 묻고 확실한 팩트를 기사에 쓰는데 이 기자는 마음이 약했는지 그냥 거기서 그쳤다.
2.
타다가 이렇게 언론 플레이를 할 때 업계 경쟁자들은 어떻게 하는지 보자. 카카오모빌리티는 지난 8월에 강남구에 있는 ‘진화택시’라는 법인택시 업체를 통째로 인수했다. 이 업체는 택시 면허 90여 개를 보유하고, 카카오는 면허 한 개당 7,000만 원 정도의 가격을 지불한 것으로 추정된다. 카카오는 서울 동대문구에 있는 ‘중일사업’이라는 택시 회사와도 인수 계약 마무리 단계를 진행한다.
‘마카롱택시’라는 회사를 들어봤을지 모르겠다. 일반인에게는 이름도 생소한 이 모빌리티 업체 역시 택시 면허를 확보하고 영업한다. 지난 7월부터는 차에 민트색 색칠을 한 ‘마카롱 쇼퍼’라는 서비스를 내놨는데, 이 민트색 택시를 모는 기사는 승객의 심부름을 해준다. 학원 가는 애한테 빵을 사다 주거나, 혼자 탑승한 병든 노인을 병원에 데려다 주는 일 같은 걸 해주는 일종의 개인 맞춤형 서비스다. 현대·기아차는 이 회사에 50억 원을 투자하고, 9월부터 진행된 3,000대 규모의 서울시 전기택시 사업차 모집에 함께 뛰어들었다.
누가 혁신적인 행보를 하는 것 같은가. 사회적인 의미에서의 혁신이란 소비자에게 더 높은 효용을 안겨주는 것이지, 단순히 법의 사각을 파고들어 또아리를 트는 게 아니다. 타다가 제공했던 차별화된 모빌리티 경험이 혁신이지, 11인승 카니발을 돌려서 실질은 유상운송을 하면서 법망을 피해 무면허 상태를 유지하는 게 혁신은 아니라는 얘기다. 카카오모빌리티와 마카롱택시는 지능이나 창의력이 부족한 반혁신적 집단이라 저렇게 영업을 하는 것일까.
3.
정상적인 상태의 정부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의 변화를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국토부가 내놓은 게 ‘모빌리티 기업이 진출하고 싶으면 기존에 남아 있던 택시 면허를 구입해서 사업하라’는 방침이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타다가 사업을 하나 카카오가 사업을 하나 제공받는 서비스의 종류와 질에는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타다의 영업모델을 규제하지 않으면 지금도 열악한 환경에 놓여있는 압도적 다수의 택시 면허 소지자들의 노동이나 소득 여건이 더 어려워지는 결과가 발생한다.
그럼 정부가 취해야 할 선택이 어느 방향이겠는가. 타다를 규제하는 게 공공의 이익에 더 부합한다. 사람들이 왜 타다를 그렇게 살려야 한다고들 생각하는지 사실 잘 이해가 안 간다. 택시 기사는 그냥 죽어도 된다는 건가.
4.
검찰이 기소했으니 법원의 판결이 나올 것이다. 타다의 영업방식이 위법하다면 더 이상 영업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법적 문제가 없는 방식이라면 관련법이 변경될 때까지 지금처럼 영업을 계속하게 될 것이다. 명확하게 해 두고 싶은 점은, 문재인 대통령은 어떤 경우든 이 절차에서 엮일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대통령이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하긴 했지만 그도 하면 안 되는 일들이 있다. 대통령이 한마디 했다고 검찰이 가능한 기소를 접어두고 멀뚱히 지켜보는 사회를 원하는가. 사법부가 대통령 체면을 봐서 기업인에게 무죄 처분을 내리는 사회를 원하는가. 문재인이 네거티브 규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하면 국회의 입법 없이도 모든 규제가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뀌는 사회를 원하는가.
검찰의 기소가 왜 문재인이랑 엮이는지 잘 모르겠다. 대한민국은 전제국가가 아니고 문재인도 무슨 왕 같은 게 아니다. 성문법을 바꾸고 싶을 때 누구든 응당 지켜야 하는 절차가 있다. 한 사람한테 엉뚱한 화풀이를 한번 내뱉는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유롭고 싶어 한다. 나도 누가 간섭하는 게 싫다. 그러나 성문법으로 정해져 있는 우리 사회의 규제들은 나름의 이유가 있어서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해당사자가 자기를 옥죄는 규제를 풀 때는 생각 같은 걸 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당사자가 아닌 공동체 구성원이 그걸 풀 때는 원 쿠션, 투 쿠션, 쓰리 쿠션으로 어떤 결과가 발생할지 잘 생각해보는 것이 좋다. 세상엔 나만 사는 게 아니다.
원문: 김동환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