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글이 예상할 수 없던 수준의 공유를 일으켜 놀랐는데, 그만큼 내게 롤모델이라 여겨진 팀장이 남들이 보기에도 멋져 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 좋은 사람은 누구나 알아본다. 즉 이런 멋진 팀장과 일하고 싶은 사람은 항상 많고, 그런 수많은 대기 수요에 비해 “팀장 때문에, 팀 분위기 때문에” 퇴사하는 사람이 없기에 그 팀의 TO는 더욱 잘 나지 않는다.
그런 귀한 기회를 내가 어떻게 잡았을까? 입사한 지 고작 1년 반 정도 되어 사내 네트워크도 정보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오랜 평판과 네트워크 등의 입지를 탄탄히 다져온 다른 기존 사원들에 비해 월등히 불리한 경력 사원인 내가 어떻게 그 팀에 자발적으로 편입되는 흔치 않은 기회를 잡았을까?
당시 나는 누가 봐도 산재적인 측면이 다분히 있는 상황에서 2주간 휴가를 받았고, 다녀오면 어디든 원하는 대로 팀을 바꿔 주겠다던 당시의 팀장은 다시 모든 것을 잊고 욕심이 나는지 계속 말이 바뀌면서 몇 달째 시간을 끌며 나를 놓아주지 않으려 했다. 운명을 마냥 남과 상황에 내맡기며 빠르게 포기하고 순응하기보다 개척하는 스타일인 나는, 살길을 스스로 찾아야만 했다.
1. 밑 작업
입사하자마자 그 1년 남짓한 시간 동안 나는 너무도 소모되었다. 모든 것을 떠넘기며 감정적인 기복이 심하기로 유명한 파트장에, 쉴 새 없이 몰아 대는 팀장의 기저에는 매일 아침 실적으로 까발려지는 어마무시한 목표의 KPI가 있었다. 이곳에 온 이래 딱히 사담도, 개인적인 네트워킹도 할 여유가 정말 없었을 정도로 일만 해도 모자란 시간들의 연속이었다.
사실 팀을 옮기려 해도 막상 어디가 좋은지 누가 좋은 사람인지 외부 세계에 그야말로 무지할 수밖에 없는 상태였다. 어디든 능동적인 이동을 하기 위해서 그 무엇보다 먼저 외부 세계의 정보를 구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내부에서 어떻게든 해결이 안 되거나 계획이 틀어질 경우 역시 대비해 이직도 동시에 준비했다.)
원래 누가 좋은 사람이고 나쁜 사람이라는 정보는 정보적 가치가 높기 때문에 인사 이동설과 함께 내부자들 사이에 가장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항목 중 하나이다. 다만 나는 철저한 외부자였기 때문에 내가 가지지 못한 정보를 획득하는 경로를 고민해보았다.
공채로 입사하고, 동기애가 아직 끈끈하고, 상대적으로 여유가 더 많아 가십이 빨리 도는 어린 후배들에게 밥을 사면서 어떤 팀이 좋고 어떤 팀장이 좋은 사람인지 믿을 만한 정보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후배들이라고 해도 사실 그전부터 점심시간과 점심값을 아무 때고 기쁜 맘으로 할애할 정도로 친할 기회도 부족한 상황이었고, 솔직히 평소 태도가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지 않은 경우도 있었지만, 당장 우물을 파야 할 목마른 사람은 나였다.
필요에 의한 사회화 과정은 내게 당연히 넘어야 할 산이었다. 그 친구들에게는 원하는 메뉴의 밥을 사줄 뿐 아니라 본인이 겪지 못한 이직이나 유학 등의 궁금한 세계를 솔직히 공유해주는 대신, 나도 내부의 돌아가는 판의 단편적인 정보를 입수하면서 조각을 맞춰갔다.
2. 본 게임
누가 괜찮은 팀장인지 대략적인 정보를 수집 후, 그때까지 한 번도 얘기해본 적도 없었던 그 팀장에게 당돌하게 바로 면담을 신청했다. 역시 사람 좋은 스타일이라 그는 기꺼이 시간을 내어 주면서도 ‘현재 딱히 충원할 상황도 아니고, 심지어 나의 현재 팀장과는 절친한 사이라 갑자기 그쪽에서 붙들고 있는 사람을 달라고 하기도 난처한 상황’이라고 솔직히 얘기해주었다.
이 얘기를 듣고, 다음으로 내가 할 일은 포기나 다른 팀을 알아보는 것이 아니라 그 팀장에게 나를 당겨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만들어 주는 것으로 판단했다. 내가 겨우 조각의 정보만을 가졌던 만큼 그 역시 나라는 사람을 잘 몰랐을 것이고, 기껏해야 그가 나에 관해 아는 인상은 ‘1~2년 전 핵심 인재 급으로 입사한 경력직이니 그래도 멍청하지는 않을 것이고, 그래도 나름 성실하긴 해서 무리도 하다 딱한 일도 겪었나 보다’ 딱 요정도 정보가 전부였을 것이다. 그것으로는 인사이동이라는 큰 변화를 끌어내기엔 상당히 부족한 것이 사실임을 인정했다.
그 팀은 신생팀으로, 지금처럼 팀원이 20명씩 되는 대규모 주요 팀이 되기 한참 전이었지만, 일 좀 하는 중견 실무급에서 사내 손꼽히는 초 고성과자들이 집중되어있는 팀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래서 오히려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는 고과 때문에 웬만큼 고과 관리를 잘해온 중견 사원들은 일부러 기피하기도 하는 팀이었다.
그런 구성원들로 가득했지만 분위기가 경쟁적이거나 배타적이기는커녕 항상 웃음이 끊이지 않는 그 팀을 알아가면 갈수록 꼭 한번 경험해보고 싶은 팀이기도 했다. 나는 핵심 업무를 하나씩 맡아 주도적으로 일하는 그 팀의 주요 실무진 한 명 한 명에게 티 타임을 요청해 커피를 사면서,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팀의 역할과 내부 업무 등의 역학관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그전까지 일면식도 거의 없던 그들은 세상 바쁘게 일하면서도 또 인간성도 좋아서 누군지도 모르던 내게 기꺼이 시간을 내주어 나는 더 구체적으로 그 팀의 좋은 점뿐 아니라 아쉬움이나 한계 등의 힌트까지 다각도로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신기했다. 정말 전사에서 손꼽힐 정도 레벨의 초 고성과자들은 심지어 착한 것도 손꼽을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3. 게임을 원하는 대로 끝내는 법
나는 주요 팀원들과 하나씩 면담을 다 하고 나서 옮기려는 팀의 팀장에게 다시 면담을 신청했다. 그리고 서두르지 않고 편안하지만 명확하게 세 가지 메시지를 전달했다.
- 그동안 팀원들을 하나씩 만나보면서 팀이 무엇을 하는지 더욱 구체적으로 파악해보았다.
- 내가 생각하기에 이 팀의 역할은 이런 것으로 판단되는데, 요런 부분을 보강하면 더 좋을 것이다.
- 나는 이런 역량을 가졌으니, 현재 팀에서 커버하지 못하는 이 부분을 “내가” 채워줄 수 있다.
팀장은 사실 큰 기대 없이 나를 다시 만났다가 다소 놀란 눈치였다. 특히 내가 그사이 거의 모든 팀원을 하나하나 다 만나 면담하면서 기울인 노력과, 앞으로 더 나아갈 방향을 비교적 제대로 짚은 것에 감응하는 눈치였다.
그 면담 이후 나는 바로 원하던 팀으로 옮길 수 있었다. 그 팀으로 가고 싶어 오랫동안 대기 줄을 서 있던(그렇다고 말은 하지만 별 차별화된 노력은 딱히 기울이지 않고 막연한 기대만 가졌던) 무수한 기존 직원들을 다 제치고. 팀 내 TO도 딱히 없고, 현재 소속 팀장이 개인적으로 서로 친한 사이라 보내주기 싫어하는 팀원을 굳이 당겨오기가 좀 그렇다고 하지 않았냐고? 맞다, 그랬다.
하지만 나는 이 팀장이 조금의 잡음도 없이 아주 스무스하게 판을 원하는 대로 바꿀 수 있는 유능한 사람이라는 것을 이후에도 여러 번 목격했다. 인사든 어디든 주요 자리에 든든한 네트워크가 있고, 인간적인 마찰을 일으키지 않고도 웃으며 판을 원하는 대로 짜나갈 사회적 능력이 탁월한 사람에게 사람 한둘 오가게 만드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내 인생 최고의 팀장과 일을 하게 되었다.
같이 일해 보니 과연, 심지어 알려진 명성보다도 더욱더 괜찮고 배울 것이 많은 리더였다. 팀원이 된 후 팀 내 업무 분장이나 새로운 인력 충원 계획에 관해서도 팀장이 개인적인 의견을 물어볼 정도로 이런저런 조직의 이슈를 계속 같이 고민을 했다. 그 신생팀이 오히려 더 큰 기존의 팀을 합병해 가는 과정에서도 팀의 새로운 역할을 직접 만들고, 실제로 눈에 보이는 굵직한 성과를 내면서 신뢰를 쌓아 나갔다.
마치며
매우 개인적일 수도 있는 이런 에피소드를 비교적 상세하게 공유하는 이유는,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조직을 간절히 옮기고 싶어 하면서도 실제로 이루어내지 못하는 경우를 상당히 많이 보았기 때문이다. 결국 단지 조직적인 이슈에서 변화를 끌어내는 데 성공하지 못해 아예 퇴사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주변에서 꽤 자주 보아왔다.
일찌감치 외국계 임원 트랙을 타며 잘나가는 선배조차 한 때 조직을 이동하고자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을 때, 이 정도의 노력을 단지 “조직 이동 자체”를 위해서는 쏟아본 적 없다는 얘기를 하며 나의 경험담이 도움이 되었다고 했기에, 분명 참고가 될 수 있을 사람이 더 있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와 직접 인연이 닿지 않은 누군가에게도 일말의 도움이 될 수 있는 글이 되었기를. 신기하리만치 아직도 바이럴이 된다는 그 팀장에 관한 글 「좋은 팀장에겐 이 세 가지가 있더라」도 덧붙인다.
원문: 투명물고기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