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속한 산업, 회사에서 일 잘하는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것과 전혀 다른 분야에서 일 잘한다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자질이나 성향이 크게 다를까? 나는 각 분야의 특성에 따라 필요하거나 부각되는 자질이 막연히 많이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정말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매우 의외의 곳에서, 회사 업무를 완전히 잊고 주말에 힐링 마사지를 받으며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
1. 주어진 것, 기대되는 수준 이상을 한다.
품질이 잘 관리되고 있는 서비스 프랜차이즈의 경우 모든 것에 매뉴얼이 있다. 단계별로 해야 할 일이나 시간 등이 분명히 짜여 있는 것이 있어서 그대로 따르기만 해도 직원의 입장에서 큰 문제 없이 월급 받고 생활하는 데 지장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 마사지 선생님은 남들이 기본적으로 따르는 정해진 스텝 이상으로 굳이 시간과 노력을 들여 추가로 신경 써 주는 것이 느껴졌다. 다른 관리사들은 한 번도 하지 않았던, 뜨거운 스팀타월로 발을 간단히 풀어준 것은 따지고 보면 엄청난 노력이 드는 일은 아니었음에도 그 효과는 대단히 커서 피로 해소에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
이러저러한 각 스텝에서 남들이 해주는 이상 열정적으로 해주어 퀄리티만 좋았던 것뿐 아니라 결국 총 소요 시간도 10분이나 초과해 물리적으로도 더 많은 관리를 해 주셨다. 따지고 보면 일 잘한다는 사람들도 남들보다 늘 일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멍청해서도 비효율적이어서도 아니고 그냥 주어진 것 이상을 하기 위한 노력을 남들보다 더 하기 때문이다.
2. 남들보다 더 하고도 훨씬 덜 힘들어 보인다.
이 관리사님은 분명히 같은 월급 받고 일하는 남들보다 일은 더 많이 하고 있는데, 훨씬 덜 힘들어 보이고 표정까지 밝아서 마치고 나오는 나도 기분이 좋았다. 아무래도 “시킨 대로 어떻게든 시간을 때우고 그 반대급부로 월급 받는 게 나의 일”이라는 수동적인 생각보다는 “일이란 수행하는 과정에서 얼마든지 나의 주도성을 발휘해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며, 이왕 하는 것이라면 내가 조금 더 해주고 대신 최상의 만족도를 끌어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기 통제권이 있는 일과 없는 일에 대한 태도가 현격하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자기 사업을 하는 사람들에 비해 남의 월급 받는 회사원들은 스스로를 월급쟁이로 비하하면서 비관적이고 수동적인 태도를 가지는 경우가 많은데, 어떤 일이든 일의 주도성과 통제권은 내가 정하는 만큼 가지게 되는 것 같다.
3. 진심을 가지고 같은 일도 세심하게 처리한다.
그녀는 분명히 똑같은 프로세스도 결코 똑같이 하지 않았다. 클렌징을 하면서 눈을 닦아주는 것도 그냥 쓱쓱 대충 닦고 마는 것이 아니라 굳이 면봉을 써가면서 꼼꼼하게 하나하나 지우고, 입술이 건조하다니 팩을 하기 전에 립밤을 별도로 한 단계 더 세심하게 도포해주는 등 다른 분들에게 받을 수 없던 확연히 다른 차원의 케어를 받는 느낌이었다.
또한 천편일률적으로 프로그램에 포함되어 있는 팩을 그대로 도포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 나의 피부 상태를 보고 맞춰서 지금 내게 더 필요한 단계로 대체해 주었다. 업무에서 주어진 프로세스를 처리하는 결과적인 방법은 어쩌면 정형적으로 다 짜여 있었을지 모르나 그것을 하나하나 어떻게 처리하느냐 하는 것은 정말 다른 이야기이다.
4. 뭘 하고 있는지 중간중간 공유를 잘한다.
이 포인트는 업무를 하면서도 내가 좀 부족하다고 생각해서 계속 스스로 개선 과제로 여기는 부분인데, 중간중간 업무의 진행 과정을 관계자들에게 공유하는 것이다. 이 관리사분은 이번 스텝에는 뭘 할 것이다, 이번에는 뭘 도포하겠다, 이런저런 옵션 중 뭘 더 선호하느냐 하는 것을 단계마다 전혀 부담스럽지 않게 살짝살짝 물어보거나 계속 진행 상황을 업데이트해주었다.
회사에서 커뮤니케이션 잘한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의 특징은 정말이지 수시로 업무 진행 현황을 업데이트하고 공유하면서 그 모든 일에서 “우리는 함께 하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그 일에 대해서 “잘 진행되고 있으니 걱정 말라”는 신뢰감을 상대가 궁금해지기 전에 먼저 수시로 주는 것이었다.
5. 당장 요구되는 것 이상의 내공을 갖추고 있다.
이분은 관리를 해 주시면서 지금 내게 유용한 분만 과정이나 출산 후 관리, 그리고 피부에 관한 의학적인 지식 등을 많이 알려주셨는데 알고 보니 간호학과를 꽤 다니다 피부미용 쪽으로 진지하게 전과하셨던 분이었다. 사실 피부 관리사를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학력과 지식이 필요하다고 보통 기대하지 않지만, 확실히 다방면의 내공이 남다른 데는 이유가 있었다.
사실 우리가 회사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도 대단한 학력이나 배경이 필요한 일들이 아니다. 대학만 하더라도 직장인이 수행해야 하는 과업에 비해 과잉 스펙인데, 심지어 어려운 석박사 등을 졸업하고 똑같은 일을 하는 것에 대해서 자조적이거나 인생의 과잉 낭비라는 시선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나도 현재 내수 시장을 상대로 지엽적 마케팅을 하고 있는데, 지금 기준으로는 국제학 석사에 외국까지 가서 MBA를 하고 온 것이 어찌 보면 낭비라고 보일 수 있지만 억울한 적은 없다. 오히려 정말 다양한 지식을 욱여넣고 나니 어느 순간 창의적인 연결능력이 급격하게 증가하는 느낌이 들었다. 공부란 어떤 것을 하든 여러 형태의 내공으로 쌓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마치며
같은 돈을 내고 같은 시간을 들여 받은 마사지의 결과가 이렇게나 다를 수 있다는 것을, 나의 낯빛과 개운한 기분을 통해 확인했다. 아마 회사에서 일하는 우리들도 같은 시간을 보내고 같은 연차를 쌓았다고 모두 같은 레벨의 회사원이 아닐 것이다.
기업의 시스템에서 주어진 일을 하는 것은 누가 하든 결국 비슷하다고? 단지 야근의 물리적 시간이나 정치적인 이슈를 핑계 삼기엔 나와 저기 일 잘한다고 소문난 사람과의 차이가 정말 없을까를 냉정하고 진지하게 한 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차별화되게 일 잘하는 사람의 태도는 산업과 업무 분야와 무관하게 그 맥이 통한다는 것을 확인한 계기였다.
아, 그리고 그 관리사님의 인적 사항을 전혀 모르고 있었는데 역시나, 그분은 그다음 주에 갔더니 매니저로 승진하셨다.
원문: 투명물고기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