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쉬운 방법
‘자괴감’은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마음이다. 내가 밉고, 하찮게 느껴지고. 내가 나에게 실망하는 그 순간. 사실, 하루에도 우리는 얼마나 자주 자괴감을 느끼는가. 때론 그게 아주 당연하고 익숙한 것으로 느껴지기까지 한다. ‘내 주제에 무슨’, ‘내가 그렇지 뭐…’라고 읊조리는 마음의 목소리는 언제나 그렇듯 꽤 조곤조곤하다.
그런데 자신을 그렇게 괴롭히는 때를 돌아보면 대개 높은 목표를 세워 놓고 그것을 이루지 못했을 때다. 감정에 욱해서, 누군가에게 자극받아서, 지금 이 상황을 벗어나려고 급하고도 과도하게 잡은 그 목표는 자기 목을 죄어 온다. 예를 들어, 오랜만에 만난 사람이 “너 살 좀 찐 것 같은데?”라고 말하면, 오늘부터 당장 한 끼도 먹지 않고 밖으로 나가 뛰겠다고 다짐하거나 그동안 독서를 하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며 내일부터는 하루에 1권, 한 달에 30권을 읽고 말겠다는 것 등이 그렇다.
장담하건대 그런 목표는 절대 이루어지지 않는다. 한 끼도 먹지 않겠다는 밑도 끝도 없는 다짐은 맛있는 음식과 먹어봐서 아는 무서운 맛 앞에서 좌절된다. 책은 펼쳐보지도 못한 채 내일의 나에게 바통을 넘긴다. 문제는 거기서 오는 자괴감이다. 자신을 하찮게 여기며, 미래의 자신 또한 가망 없는 존재로 치부하면서 마음은 아프고 영혼은 시퍼렇게 멍든다.
어떻게 보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괴롭히는 데 고도의 기술을 가진 전문가가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든다. 자신을 괴롭히는 가장 쉬운 방법을 알고는 언제든 그렇게 자괴감을 가지게 만드니 말이다. 우리가 다람쥐 쳇바퀴 돌듯, 그런 다짐과 목표 그리고 자괴감을 세트로 자주 느끼는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성취’라는 것을 크게만 보기 때문이다.
큰 것만이 성취는 아니다
완벽하지 못할 거면서 완벽을 추구하는 어리석은 인간의 원초적 본능도 한몫하는 것이 분명하다. 무언가 큰 것을 이루어야 내가 뭘 좀 한 것 같다는 생각은 착각이고, 또 무언가를 하기 위해선 완벽하게 준비하고 시작해야 한다는 건 오만이다. 그렇게 해서 결과적으로 성취란 걸 해본 적이 있기는 한가?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큰 것만을 쫓다가는 정작 소중한 것들을 잃는다. 큰 성취만을 지향한다는 건, 미래의 나를 전혀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않은 처사다. ‘나’를 잃는다는 것, 내 마음을 다치게 한다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을까. 가장 소중한 존재에게 우리는 막 대하는 게 아닐까.
더불어 우리는 시간과 감정까지 잃는다. 이루지도 못할 목표를 만들 때 우리는 시간이 많다고 착각하고, 지금의 감정이 특정 어느 시점에도 유효하다고 자만하기 때문이다. 나 자신, 시간 그리고 감정을 잃거나 다치고 나서야 우리는 스스로가 파 놓은 구덩이에 빠졌단 걸 그때서야 깨닫는다.
점들이 모여 모양을 이루고 의미를 만들어 낸다
네온사인은 각각의 전구나 광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하나하나가 점멸을 하는데, 신기하게도 우리는 그것의 이미지나 텍스트를 읽을 수 있다. 그저 점들이 모였는데도 말이다. ‘전체는 그 부분들의 합 이상’이라는 ‘게슈탈트(형태) 심리학’의 개념은 우리에게 ‘작은 성취’의 힌트를 주는 듯하다.
큰 성취만 바라보다 매일을 넘어지지 말고, 하나하나 작은 성취를 모아 점으로 찍어 놓으면, 개별 합 이상의 ‘의미’가 발생할 수도 있다는 것. 어찌 보면 참으로 설레는 일이기도 하다. 내가 이룬 작은 것들 하나하나가 모여 그만큼의 합이 아닌, 그 이상의 시너지가 난다는 건 얼마나 기대되고 남는 장사인가 말이다.
나 또한 고백하건대 나를 고문하기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사람 중 하나다. 목표는 높이 잡고 실행하지 못하고 큰 성취를 하지 못하는 나 자신을 평생 괴롭혀 왔다. 해서 난 항상 스스로 꾸준하지 못한 사람이라는 무의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사람은 모든 것을 이루며 살 수 없음에도, 그 이루지 못한 모든 것들이 내 꾸준함의 부족으로 갖다 끼워 맞추면 성립이 되니 나는 나 자신에게 항상 주눅 들어 살아왔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글을 쓰면서 전세가 역전했다. 연달아 책이 출판되면서 ‘나를 괴롭히던 나’와 ‘꾸준하지 못해 왔던 나’는 전쟁을 멈추고 휴전 중이다. 사실 나 또한 이해가 잘 안 되는 부분이 있기는 하다. 꾸준하지 못한 성격임을 아는데, 어떻게 이렇게 글을 쓰고 몇 권의 책을 출간까지 했을까? 돌이켜보면 ‘작은 성취’의 연속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음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어떠한 목적이나 목표를 가지지 않고 그저 쓰고 싶을 때,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을 때만 글을 쓰고자 다짐했다. 그것이 어느 정도 쌓였을 때를 보고 이것이 쓰레기인지 아니면 나의 자산이 될 것인지 판단하자면서. 만약 내가 책 한 권을 1년 안에 내겠다고 생각했거나, 하루에 글 10편을 쓰자고 ‘큰 성취’ 달성을 목표로 했다면 출간은커녕 또다시 나 자신의 꾸중을 들었어야 했을 것이다.
그리고 예전엔 ‘의욕’이 생기길 기다리는 일이 많았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의욕이 생길 때 무얼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일이라도 뭔가를 시작하면 오히려 ‘의욕’이 생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도 쓸까 말까 고민하다 그저 무작정 첫 문장을 띄워 놓고 써 내려가는 중이다. 나도 모르게 생기는 ‘의욕’과 함께.
작은 성취라도 맛볼 시간이다
우리 뇌는 충분히 반복해서 행동을 입력하면 기억 세포를 만든다. 큰 것보다는 오히려 작은 걸 자주 해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 더불어, 구체적이면 더 좋다. 그저 오늘 살을 빼자거나 공부를 하자가 아니라, 만 보가 힘들면 천 걸음이라도. 영어단어 100개를 외우자고 하기보단 5개라도 확실히 알고자 하는 것이 낫다.
러닝화 끈을 매고 밖으로 나가면, 책상에 앉아 책을 펴면 의욕이 생기는 걸 사실 우리는 잘 안다. 그러니 자괴감에서 벗어나 자신을 조금 더 믿어 줘야 할 필요가 있다. 역시 누군가는 이런 진리를 이미 알고 후세를 위해 말을 남겨 놓았다.
치밀하고 합리적인 계획은 성공하지만 어떤 느낌이나 불쑥 떠오른 생각에 의한 행동은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큰 목표일수록 잘게 썰어라.
- 이도 도어 루빈
이 말을 보았다면, 이제 작은 성취라도 맛볼 시간이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 『직장내공』
-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