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은 인간의 본성이다
타고 남을 우리는 본성이라 한다. 인간의 본성은 인종과 문화를 초월한다. 기록은 인간의 본성 중 하나다. 무언가를 적어 남기려는 것은 숨 쉬는 존재 중에서도 인간만이 가진, 말 그대로 ‘종특’이다. 단지 출산과 번식을 통한 생존이 아니라, 문화를 만들어가는 그 모습이 오늘날 인류의 모습을 만들어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인류 최초의 기록 흔적은 약 7만 3,000년 전 그려진 그림이다. 스페인 남부에서 발견된 기존 기록보다 최소 3만 3,000년 앞선 돌조각을 남아프리카 공화국 진화학연구소에서 발견해 네이처 학술지에 발표했다. 연구원들은 우연히 새겨진 게 아닐까 다각도로 분석했으나, 결국 그 흔적은 초기 인류가 의도를 갖고 도구를 이용해 그린 작품이라는 것을 증명해낸 것이다.
나는 여기서 ‘의도’란 단어에 주목한다. 기록은 인간의 본성이지만, 결국 그것은 의도를 내포한다는 것. 의도를 가지고 행동한 것에는 목적이나 목표가 있을 것이기에 좀 더 깊이 바라봐야 하는 것이 아닐까.
너무나도 익숙한 진실, 기록하기
하버드대에서 진행한 ‘기록’에 대한 실험은 이젠 너무나 익숙한 사례다. 자신의 꿈과 비전을 기록한 집단과 그렇지 않은 집단을 몇십 년에 걸쳐 추적 조사했더니, 기록한 집단에서 성공한 리더와 부자가 많이 나왔다는 결과. 단 한 번의 행동으로 인생을 단정하거나, 무엇을 성공의 기준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논제로 그 실험 결과는 다분히 논란이 될 수도 있으나, 어째 사람들은 ‘기록’에 대한 힘을 믿는 것으로 그런 논란을 관대하게 잠재우는 것 같다.
사실 기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건 굳이 실험으로까지 증명할 필요가 없다. 앞서도 말했지만 기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아날로그 시대엔 일기가 있었고, 디지털 시대인 지금은 SNS가 있다. 무엇이 더 중요하고 고상하고 정성을 들이는가를 떠나서 ‘기록’은 현재 진행형이자, 미래 확정형이다. 지금도 무언가를 기록하고, 내일도 그러할 테니까. 오히려 기록이 더 쉬워진 디지털 시대엔 기록물들이 차고 넘쳐 각종 기기의 메모리가 부족할 정도다.
어떤 의도로, 무엇을 기록할 것인가?
그러니까 우리는 ‘기록’의 홍수에 사는 것이다. 기록하는 그것이 중요하고 안 중요하고를 떠나서 사람들 각자는 무언가를 기록하기에 여념이 없다. 사진을 찍고, SNS에 일상을 기록하는데 몰두한다. 다만 안타까운 건 그러는 와중에 우리는 어떤 의도로, 무엇을 기록하는지를 잊었다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되면 삶은 혼란스러워진다. 살기 위해서 돈을 버는 것인데, 돈을 벌기 위해서 사는 것처럼. 내 의도를 분명히 하려고 기록하는 것인데, 우선은 기록하고 보자고 하는 삶의 방식이 내 의도를 등한시하는 상황인 것이다. 물론,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는 뭐라도 기록하는 것이 더 낫다고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방향을 고려하지 않은 기록은 후에 그것을 되돌아볼 때 내 인생에 도움이 안 된다.
열심히, 많이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어떤 의도를 가지고 나아가야 하는지 방향을 설정해야 우리는 비로소 잘 기록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무엇을 기록하는지 스스로 항상 알아차려야 한다.
적자생존 =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
‘적자생존’의 원뜻은 ‘경쟁을 이겨내고 환경에 적응하는 것만 살아남는다’란 뜻이다. 그런 차원에서 이것은 ‘적는 자가 살아남는다’라고 정의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요즘 세상은 기록하고 적는 자가 살아남을 수 있다. 지금 삶이 힘들다면 무어라도 적어 보는 게 좋다. 기록의 중요성을 헤아리면서.
첫째, 삶의 방향을 알려준다.
인류는 역사를 기반으로 살아왔다. 과거를 통해 오늘을 반성하고 내일을 그린다. 나의 기록물들은 역사가 되고, 내 현재의 상태를 바라보며 내일을 꿈꿀 수 있게 한다. 빅데이터의 시대라지만, 그 많은 데이터들은 내 삶에 극히 일부만 도움이 된다. 원하지도 않는 정보를 내가 좋아할 것이라며 들이미는 그 데이터들은, 나를 잘 안다고 착각하는 어설픈 존재의 표상이다.
반면 빅데이터가 아니라 자신이 기록한 ‘어느 정도’의 흔적으로도 그것은 충분하다. 그 기록은 내가 스스로 나에게 진실성을 가지고 적거나 남긴 것들이기 때문이다. 후회하는 일들은 반성하게 하고, 좋았던 기억이나 보람찼던 일들은 미래를 밝게 한다. 즉 내가 어떻게 흘러왔는지, 어디로 가는지,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 정답은 아니더라도 훌륭한 힌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 내 마음의 상태를 마주하고 객관화할 수 있다.
‘메타인지’는 1970년대 심리학자인 존 플라벨에 의해 만들어진 용어다. 자신의 인지 과정을 한 차원 높은 시각으로 관찰·발견·통제하는 정신 작용을 말한다. 즉 자신의 생각에 대해 판단하는 일종의 자아 성찰로, 자기 객관화라고도 할 수 있다. 자기 객관화를 하면 감정을 바라보고 불안을 줄일 수 있다.
사람은 보통 자신이 느끼는 좋지 않은 감정이나 불안을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이든 피하려는 경향이 짙다. 마주할 용기가 없고 불쾌하기 때문이다. 이것을 객관화하면 자신을 좀 더 들여다볼 수 있고, 그 감정과 불안에 대처할 수 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면 닥치지 않은 것에 대한 걱정이나, 중요한 선택 앞에 우유부단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다. 마치 우리가 다른 사람의 고민 상담에는 쿨하고 쉬운 조언을 해주는 것처럼.
이처럼, 메타인지를 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마주하기 좋은 방법이 바로 그것을 ‘기록’하는 것이다. 꼭 일기를 쓰거나 장문의 무언가를 쓰지 않더라도, 지금 자신의 감정을 노트에 ‘분노’ ‘화남’ ‘불안’ ‘행복’ ‘기쁨’ 등으로 써서 나열하면 그 감정은 느끼는 것에서 인식하는 것으로 바뀐다. 엔진이 과열된 자동차에서 내려, 우리는 잠시 엔진을 식힐 수 있다.
셋째, 다짐하고 실천하게 한다.
호아킴 데 포사다 교수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기록은 행동을 지배합니다. 글을 쓰는 것은 시신경과 운동 근육까지 동원되는 일이기에 뇌리에 더 강하게 각인됩니다. 결국 우리 삶을 움직이는 것은 우리의 손인 것입니다. 목표를 적어 책상 앞에 붙여두고 늘 큰 소리로 읽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을 디자인하는 노하우입니다.
그렇다. 뭐니 뭐니 해도 기록의 가장 중요한 의미이자 사람들이 기록에 가진 가장 큰 기대는 바로 ‘다짐’과 ‘실천’이다. 쓰면 다짐하고, 다짐하면 실천할 가능성이 높다. 물론, 개인차가 있을 것이다. 기록하고 적는다고 모두가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앞서 강조한 것처럼 어떤 의도를 가지고 무엇을 기록할 것인지를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기록하는 것은 또 다른 의미로 ‘미래 기억’을 형성하는 과정이다. ‘기억’은 과거를 향해있지만, 이 단어 앞에 ‘미래’를 갖다 붙이면 그것은 강력한 ‘다짐’이 된다. 운동선수들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는 것도 이 미래 기억과 관련이 깊다. 다짐을 넘어, 이미 그것을 이룬 것을 상상하며 지금의 내 역량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기록은 언젠가 큰 힘을 발휘한다
작금의 시대는 삶이 쉽지 않다. 변화무쌍하고, 속도도 빠르다.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살아내야 하는 시대. 그 과정에서 그 변화와 속도를 따르기란 쉽지 않지만,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그것들보다 빨리 가거나 그 속도를 늦출 수 있는 건 ‘기록’이 아닐까 한다. 모든 변화와 속도의 중심엔 ‘나 자신’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나’를 잃은 기록은 순수하지 않다. 오염되어 허공을 맴돌지만, ‘나 자신’이 중심이 된 기록은 무게가 있고 덜 흔들린다. 그러니 꼭 장문의 일기를 쓰지 않더라도 오늘 나의 감정을 단어로 표현하거나, 휘발성이 강한 번뜩이는 아이디어나 느낌들은 메모라도 적는 것이 좋다.
적어 놓은 ‘기록’들은 언젠가 큰 힘을 발휘한다. 그 힘을 믿고, 자신만의 의도를 가지고 기록한다면 분명 좀 더 나은 오늘과 내일을 맞이할 수 있다. 덧붙여 20년 전부터 끄적여 온, 개인의 ‘Wish Note’를 펼쳐 보았을 때 이루어진 것들이 많다는 건 굳이 하버드에서 실험하지 않아도 내가 직접 경험한 삶의 진리다.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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