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다.
찰리 채플린이 한 말이다. 나는 이 말에서 ‘희극’과 ‘비극’보다는 ‘거리’에 주목한다. 희극과 비극을 구분 짓는 요소가 ‘거리’이기 때문이다. 거리에 따라 어떤 일은 기쁜 일이 되고, 어떤 일은 슬픈 일이 된다. 그러니까 어느 거리에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아래와 같이 달리 해석한다.
거리 두기는 아주 중요하며, 그것에 따라 인생은 희극이 되거나 비극이 된다.
거리 두기의 중요성
우리나라는 거리 두기에 서투르다. 자칫 아웃사이더나 사회 부적응자 또는 매정한 사람으로 분류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나라 고유의 ‘집단주의’에 기반한다. 공동체 생활을 하며 생존한 민족이자 다른 나라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정’으로 똘똘 뭉친 사회.
더불어 유교 사상에 기반 둔 역사적 전통은 ‘인의예지신’을 바탕으로 사람 간의 도리를 강조함으로써 가족이나 선배, 친구나 사회적 공동체와의 공생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전통과 사상은 좋고 나쁨을 떠나 우리 사회를 유지해오고 생존해올 수 있도록 도움을 준 것이 사실이다. 깊이 고민해봐야 할 것은, 이제는 사회가 개인주의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위와 같은 덕목을 지속하고 강요할 수 있을까.
개인주의화는 우리가 서구 문명을 따라가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즉 개인주의는 인간 본연의 본성이다. 같이 있어야 살아남을 수 있지만 살아남아 여유가 있는 존재는 혼자만의 시간도 가져야 한다. 우리보다 경제적 부와 여유를 먼저 가진 이른바 선진국인 서구 문명은 말 그대로 먼저 간 것일 뿐 우리 사회도 결국 개인주의화할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집단주의의 전통과 개인주의의 만남은 여러 사회 문제를 야기한다. 이 문제에서도 나는 ‘거리’가 주된 원인이라 생각한다. 이미 개인의 영역은 선이 그어져 있는데, 집단의 강요가 그 선을 자꾸 넘으려 할 때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물론, 개인도 개인의 영역 범위를 너무 넓히거나 불가침의 것으로 규정해버리면 스스로 문제를 야기할 수 있음을 인지해야 한다. 어찌 되었건, 거리 조절에 실패하면 너도 나도 힘들다.
거리를 고려하지 않은 충고, 조언, 평가, 판단은 인간관계의 피로감을 급증시킨다. 사회적 ‘꼰대’나 도움이 되는 말도 무조건 배척하는 ‘역꼰대’가 가장 대표적 사례다. 타인뿐 아니라 가족도 예외가 아니다.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일어나는 개인의 피해와 상처의 골은 이미 사회 문제로까지 대두했다.
거리 두기의 실천
거리 두기는 ‘기술’이다. 두 사람이 춤을 출 때. 서로의 호흡을 잘 맞추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운동이 되는 춤이 되려면 일정이 거리가 필요하다. 때론 딱 붙었다가, 때론 멀리 떨어지고. 또 때론 적당한 거리에서 아름다운 기교를 부리듯. ‘거리’가 있어야 두 사람은 춤을 출 수 있다.
나는 또한 거리 두기를 ‘배려’라고도 말하고 싶다. 누군가의 방에 들어갈 때 우리는 노크를 한다.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가려면 그것보다 더 큰 무언가를 해야 한다. 『직장내공』에선 상대방을 내 맘대로 바꾸려 하는 시도에 아래와 같은 설명을 덧붙였다.
형법 319조에 따르면 주거침입죄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함(미수범도 처벌함)”이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존재 침입죄’는 어떨까? 다른 사람의 존재를 송두리째 바꿔놓으려 하는 생각 말이다. 그 형벌의 강도는 상상을 초월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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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거리 두기를 하지 않는 것은 배려하지 않는 행위고, 이것은 상대방의 존재에 ‘침입’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거리 두기는 아주 가까운 사이에도 필요한 것임을 인정해야 한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너희 자신’이라고 강조한다. 엄마도, 아빠도, 가족도, 아주 친한 친구도 아닌 너 자신이라고. 너 자신을 먼저 챙겨야 한다고 말한다. 즉, 만약 나의 행복이나 내 존재를 위협하는 존재가 있다면 배척해야 하는 것이 맞는데 그것이 설령 가족이나 부모라도 기를 쓰고 거리 두기를 해야 한다는 것이다.
거리 두기의 핵심, 나 자신
거리 두기는 이처럼 상대방이 나에게 행해야 하는 동시에, 나도 상대방을 고려해야 하는 것이다. 아닌 것은 아니라고 말하고, 지금의 내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 특히 사회생활에선 무조건 마음을 열어 모든 것을 보여주기보단 그것을 반만 보여주는 연습을 해야 한다. 나는 마음을 다 열었는데 너는 그렇지 않았다고 상처받을 일을 굳이 만들 필요는 없는 것이다.
더불어 나 또한 누군가에게 거리 두기를 하지 않거나 배려가 모자라 피해를 주지 않는지 돌아봐야 한다. 나는 거리 두기에 매우 민감하면서 남에게는 그러하지 않는다면 비난받아 마땅하다. 게다가 내가 생각하는 거리와 상대방이 생각하는 거리가 다를 수 있다. 그 차이는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임을 받아들이고, 모든 인간 관계를 완벽하게 가져가려는 욕심을 버려야 한다.
가장 핵심은 ‘나 자신’이다. 결국 거리 두기는 나를 지키기 위한 수단임을 잊지 않았으면 한다. 그 거리에 따라 내 인생은 희극이 될 수도, 비극이 될 수도 있으니까.
원문: 스테르담의 브런치
- 『직장내공』
- 『오늘도 출근을 해냅니다』
- 『진짜 네덜란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