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22개 국가 사람들을 대상으로 9개의 국가에서 일했다
2019년 올해를 뒤돌아보면 다음과 같다. 페루, 콜롬비아, 멕시코, 홍콩, 베트남, 터키, 스페인, 포르투갈, 한국 총 9개의 국가(연말에 추가될 가능성이 있긴 함)에서 살고, 일하며, 약 22개 국가의 유저 대상으로 하는 서비스를 콜롬비아인 파트너와 함께 둘이서 운영한다. 올해 내가 일했던 곳들의 모습은 대략 아래와 같다.
나의 서비스 ‘노마드 아카데미’는 전 세계 22개 이상 국가에서 사용한다.
이렇게 적고 보니 기분이 매우 글로벌하며 뿌듯하기도 하고. 우와, 대단한데? 하면서 나도 모르게 빙긋 웃음이 지어진다.
어떻게 하다 난 이렇게 살게 되었나?
결론부터 말하면 ‘디지털 노마드의 삶’을 꿈꾸며 전공을 선택하고, 커리어를 디자인한 적은 1도 없다. 나의 전공은 이런 삶과 무관하다고 봐도 좋은 경영학과다. 아, 그래도 창업해서 운영하는 것이니까 아예 무관하다고 볼 순 없겠다.
하지만 그 외에 커리어라고는 비영리 단체에서 깔짝거리다가, 컨설팅으로 이직해서 조직의 쓴맛을 보고(?), ‘집밥’ 소셜 모임 플랫폼을 약 3년간 운영한 것이 전부이다. 현재하는 일은 온라인 코딩 교육 플랫폼이니까 뭐랄까 연결이 1도 안 되는 듯한 그런 느낌이다(막상 이렇게 쓰고 보니까 더 기분이 참담하군…).
- 경영학과 → 비영리단체 → 경영컨설팅 → 창업(집밥, 온라인 모임 플랫폼) → 창업 (노마드코더, 온라인 코딩 교육)
커리어라고 어디 내밀지도 못하겠는 그런 이력서를 가졌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겠다. 그뿐인가? 2015년에 돌연 본인이 만든 회사를 혼자 퇴사해서 전 세계를 쏘다녔다. 농장에도 살아보고, 힙하다는 유럽의 도시들에도 살아보고, 심지어 태국 마사지도 배우고, 그러다가 사람들이 그립다면서 잠시 몇 달 동안 사람들 모아다가 셰어하우스 비슷하게 운영도 해보고……
- 2년간 세계여행 – 농장 – 디지털 노마드 – 태국 마사지 – 셰어하우스…
지금 와서 드는 생각이지만. 이렇게 도무지 써먹을 곳이 1도 없는 이력서와 커리어 때문이라도 바득바득 열심히 “나의 무언가”를 만들어보려고 아등바등 애를 썼던 것 같다. 그렇다. 돌아오는 퇴로를 그냥 싸그리 불태워 버렸기 때문에 그냥 전진하는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말 그대로 무경계 인간으로 살면서 나름 알게 된 것은, 나 같은 인간들이 은근히 많다는 것이다. 아 물론,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아등바등 쫓아다녔던 것이 크겠지만 말이다. (유유상종?)
- 법률로만 7년 동안 일한 친구인데 농부가 되려고 여행하며 우핑(농장에서 생활하는 것)하는 프랑스 친구.
- 수학도인데 수학의 미를 좇다가 어쩌다 보니(?) 디지털 아트 (mapping)를 하는 루마니아 친구.
- 배가 불룩한 미국 아재인데 요가의 참맛을 깨닫고(!) 전 세계 요가 피플과 교류하며 배움을 정진하는 아재.
- 누가 봐도 겁내 잘생긴 브라질 영업인인데 태국 마사지와 명상에 깊은 감동을 받고, 자신만의 마사지 기술을 터득하여 이제 브라질에 마사지 힐러로서 개업을 준비하는 친구.
……까지. 헉헉. 많구먼. 이렇게 무슨 다큐멘터리나 서점에 가면 세계여행-에세이 섹션에 튀어나올 것 같은 친구도 있지만,
- 실리콘밸리에서 엘리트 개발자로 일하면서 전 세계를 유유히 돌아다니며 여행하는 분들.
- 아마존 셀러로서 저렴한 차이나 물품을 판매 대행하면서 태국에서 유유자적 살아가는 친구들.
- 암호화폐가 가져올 미래와 기술을 외치면서 매일 모여서 연구하는 크립토 피플.
그들 모두 사실 물어본 적은 없지만 전공과 별 관계 없는 커리어를 살고, 나처럼 무개념 커리어 패스를 가진 경우가 대다수이다. 아니, 그뿐인가? 국경의 경계 또한 없다.
- 남아공에서 태어난 친구는 포르투갈에 살면서, 중국계 혹은 미국계 회사의 호텔 설계 디자인을 한다.
- 시리아에서 태어난 친구는 이스탄불. 터키에 살면서, 사우디 회사의 사무실 인테리어 디자인을 한다.
- 콜롬비아에서 태어난 친구는 코스타리카에 살면서, 미국인들에게 요가와 명상을 가르친다.
뭐 끝도 없다. 인터넷이 얼마나 우리의 삶을 바꾸어놓았는지, 얼마나 무궁무진한 기회가 열려버렸는지 알게 되는 대목이기도 하다(또한 동시에 전 세계인과 경쟁해야 함… 크흑).
‘무경계 월드=전 세계와 경쟁’이라는 말은 농담처럼 썼지만 사실이기도 하고. 그 와중에 포기하고, 다시 돌아가서 취업을 하는 사례도 많다. 취업한다는 것이 패배 했다는 뜻은 아니다. 전략적인 후퇴라고 하자. 왜냐고? 사실 이러한 무경계인… 경계 사이에서 서성이는 사람들은 이미 기존 사회에서 자리를 찾지 못하고 튕겨 나온 사람들이니까 말이다.
그들의 가장 이상적인 목표는 결국 ‘덕업일치’ 아닐까 싶다. 내가 좋아하는 것, 관심 있는 것을, 흥미로운 사람들과 나에게 맞는 라이프 스타일을 유지하면서 잘~ 먹고사는 것! 말이다.
무경계인의 목표는 결국 ‘덕업일치’
사실 ‘디지털 노마드’니 ‘원격근무’니 ‘지역 독립 기업가(location independent entrepreneur)’니 블라블라보다 중요한 것은 ‘덕업일치’가 아닌가 생각한다. 전공, 국경, 성별 등 사회가 마음대로 정해놓은 경계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것이 바로 ‘덕후’ 아니겠는가(물론 이를 얻기 위해 뼈를 녹이는 외로움과 먹고사니즘에 대한 걱정 등이 수반할 수 있다).
그래서 오늘도 성공한 덕후, 이른바 ‘성덕’의 길을 걷기 위해 절치부심한다. 아, 좋아하는 것이 없거나. 뭔가 덕후 질을 하는 게 없다는 분들은 ‘자기 자신의 덕후’부터 시작하면 된다.
신(神)은 깊은 곳에 나를 숨겨 두었으니
헤매며 나를 찾을 수밖에
그러나 신도 들킬 때가 있어
신이 감추어 둔 나를 찾는 날 나는 승리하리라
- 구본형, 『미치지 못해 미칠 것 같은 젊음』
이런 이야기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시간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요기 아래 행사에 오시면 됩니다.
원문: Lynn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