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콜이 울리고, 눈을 뜨자마자 우리는 먹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끼 우리의 배꼽시계는 늘 비슷한 시간에 울린다. 생존을 위해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다양한 미각의 즐거움을 주기 위해서 맛있는 음식을 먹기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교류하기 위해 음식을 먹기도 한다.
그만큼 먹는다는 것은 우리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는 행위이며, 먹기 위해 살고, 살기 위해 먹는다고도 할 수 있다. 나도 먹는 것을 굉장히 좋아하는데, 특히 편식을 잘하지 않고 골고루 섭취하는 식성 덕에 남들과 함께하는 식사 자리에서 못 먹는 음식 때문에 크게 문제를 일으킨 적이 없다.
그런데 스웨덴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사람들과 만나는 식사 자리가 조금 불편해졌다. 음식을 가려먹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특정 식품에 알레르기도 없고 편식도 하지 않는데 음식을 가려먹는다니? 점심, 저녁 시간이 되자 ‘삼겹살 먹자! 곱창 콜? 부대찌개 고고?’ 뭘 먹을지 신나게 고민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기어이 찬물을 끼얹고 만다.
죄송한데… 제가 돼지고기는 안 먹어서…
순간 나는 프로편식러이자 프로불편러가 될 때가 많다.
스웨덴에서 돌아온 이후 나는 완전한 채식은 아니지만, 나는 최대한 육류를 덜 소비하고 유기농이나 친환경 제품을 의식적으로 소비하고자 노력한다. 고기를 먹는 횟수를 제한하고, 먹게 되면 붉은 고기보다 닭고기를 선호하는 편이다. 육류 소비를 의식적으로 줄이는 사람들을 플렉시테리안(Flexitarian)이라고 하는데, 나도 그중 일부로 동참한다.
사실 나는 늘 ‘탄수화물, 지방, 단백질을 골고루 건강하게만 먹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의식적으로 특정 음식을 배제하거나, 줄이기 위한 노력은 한 적이 없다. 더군다나 긴 시간 주머니가 가벼운 학생이었던 나는 내가 먹는 음식이 어디서 생산되어 어떤 유통 경로를 거쳐오는지는 굳이 생각하기보다 가성비가 좋은 제품을 구매했다.
하지만 스웨덴에서 지낸 2년은 의식적으로 내가 먹는 음식에 좀 더 집중하는 시간이 되었다. 건강을 위해서뿐 아니라 내가 먹는 것이 곧 나를 대변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때문에 과연 이 음식이 지금 내 몸에 필요한 영양소를 갖추었는지, 어디서 생산되었는지, 어떤 성분을 함유하는지 등 소비하기 전 나는 한 번 더 질문하게 되었다.
이 습관은 스웨덴에서 만난 다양한 채식주의자 친구의 영향 때문이다. 그 친구들은 자신의 건강뿐 아니라 윤리적인 소비, 환경 보호, 동물 권리 보호 등 다양한 이유로 채식을 실천했다.
스웨덴에서 만난 채식
특히 학교에서 만난 프랑스 친구 클로이(Chloe)는 채식에 대한 내 관심을 촉발한 장본인이다. 그녀는 동물성 식품뿐만 아니라 동물로부터 나오거나 이를 착취하여 생산된 모든 제품을 소비하지 않는 비건(Vegan)이었다. 어릴 적부터 동물과 함께 자라온 그녀는 동물 보호뿐 아니라 환경 보호와 자신의 건강을 위해 비건 라이프를 실천했다.
클로이는 프랑스에서도 채식주의가 커지고 있지만 프랑스보다 스웨덴에 더 다양한 채식 식품이 많다고 했다. 실제 스웨덴의 슈퍼마켓에는 채식 제품만을 전용으로 파는 코너가 따로 마련되어 있고, 다양한 브랜드의 다양한 채식 제품을 비교하여 구매할 수 있다. 레스토랑에서도 꼭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를 마련해놓고 있으며, 더 다양한 채식 메뉴를 갖추기 위해 메뉴 개발을 한다.
스웨덴은 인구의 약 10%가 채식주의자인데, 다른 유럽 나라의 평균(7% 정도)과 비교했을 때도 꽤나 높은 수치다. 특히 최근 한 리서치는 스웨덴 밀레니얼 세대의 30% 이상이 채식 위주의 식단을 더 선호한다고도 주장했다. 숲에서 버섯과 베리를 따고 뛰어놀며 어렸을 적부터 자연과 가까이서 자라난 스웨덴 사람들은 환경 문제에 대해 관심이 많고, 채식도 이를 실천하는 방법 중 하나다.
실제로 스칸디나비아 국가 중 스웨덴과 핀란드의 맥도날드는 고기류가 일체 없는 맥도날드 메뉴인 맥비건(McVegan)을 개발하여 판매하고 있다. 또한 스웨덴 패스트푸드 브랜드인 막스(Max)에서도 고기 대신 구워 먹는 치즈인 할루미나 콩고기를 넣어 채식 버거나 샐러드를 판매하고 있다.
스웨덴 사람들의 채식은 식사 시간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바로 ‘피카’라는 문화다. 피카는 커피와 디저트를 곁들여 먹으며 일을 잠시 내려두고 친구나 직장 동료와 함께 편안하게 대화하는 시간이다. 우리나라에서 아메리카노를 흔히 마시는 것처럼 스웨덴 사람들은 진하게 내린 드립 커피를 마시는데, 커피가 굉장히 진해 대개 우유를 섞어 마신다.
흥미롭게도 매번 피카할 때마다 테이블에는 여러 종류의 우유가 준비되어 있었다. 우유에 포함된 락토아제를 분해하지 못하는 사람을 위해 락토아제 프리 우유나, 저지방 우유, 두유 등도 준비외어 있었지만 가장 인상 깊은 것은 ‘귀리 음료’였다. 귀리 음료는 압착된 귀리에 물과, 약간의 소금을 섞어 만든 음료로 스웨덴에서 가장 많이 마시는 우유 대체품이었다.
사실 채식주의자가 많지 않아 다양한 음료를 준비하는 것이 귀찮거나 손해일 법도 한데, 스웨덴의 모든 카페는 채식주의자들을 위해 모든 카페는 귀리로 만든 제품이나 두유를 항상 구비해둔다. 단순한 커피 한 잔 속에 식습관이 다른 타인을 배려하는 배려가 돋보였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한국에선 내 식습관을 지켜내는 게 스웨덴에서보다는 조금 더 어렵게 느껴진다. 함께 음식을 나눠 먹는 우리나라 문화의 특성상 사회생활을 할 때 음식을 골라 먹기가 눈치 보이기도 한다. 식사 시간은 사회적 교류의 시간인데, 남들이 다 Yes라 할 때, 나만 No라고 말하는 것은 굉장히 불편한 일이다. 특히 상사와 함께 식사하는 자리에서 신입사원인 내가 ‘저는 삼겹살을 먹지 않습니다’ 고 말하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No라고 말해도, 말하는 사람도 눈치 보지 않고 함께 식사하는 사람도 눈치 주지 않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어떤 상황에서든 나의 건강과 소비 정체성을 지킬 수 있는 사회. 채식주의자냐 아니냐보다 개개인의 소비 형태를 존중하는 것은 상대에 대한 배려다.
스웨덴에서 레스토랑에서든 파티에서든 먼저 채식주의자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 사람을 배려해 별도의 메뉴를 준비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임을 느꼈다. 그러다 보니 나 역시도 친구들과 함께 식사를 할 때는 채식주의자가 있는지 먼저 확인하는 것은 나의 습관이 되었고, 혹시를 대비해 채식 요리는 꼭 준비하곤 했다. 그리고 남들과 함께 식사를 하는 자리에서도 나는 나의 식습관을 조금은 더 당당하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국내 채식 인구도 육류를 의식적으로 덜 소비하는 플렉시테리안을 포함해 1천만 명에 육박했다고 한다. 보다 많은 사람이 건강하고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 자신의 식습관과 소비를 통제하고 있다. 아직까지 단체 식사에서 나만 다른 메뉴를 시키는 일은 눈치 보이기도 하고, 외식을 할 때 고기가 없는 메뉴를 찾기는 정말 힘들다.
하지만 나는 내 건강과 생각을 실천하기 위해 나만의 방식대로 편식할 계획이다. 그리고 먼저 물어보는 사람이 되어야지. 여전히 어려워 피치 못하게 침묵할 때도 있지만, 편식이 죄송한 일이 되지 않고, 까다롭다 생각되기보다 존중받는 사회 분위기가 더 조성되길 바란다. ‘혹시 못 드시거나 안 드시는 음식 있으세요?’ 먼저 물어봐 주는 사람이 많아지는 그런 사회를 나는 꿈꾼다.
원문: 도크라테스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