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대학교 입학을 위해 서울로 이사를 온 지 어느새 10년이 되었어요.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에 내 집 마련은 꿈도 꾸지도, 꿈도 꿔본 적도 없어요. 전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만치 집값이 비싼 서울에서, 내 한 몸 누울 공간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었으니까요. 입학하자마자 자취생활을 시작한 저는 발품을 팔아 내 몸 하나 누일 공간을 찾아 이리저리 뛰어다녔죠. 6개월에서 길면 2년,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집을 옮겨야 했어요.
매번 집을 옮길 때마다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기도 어려웠지만, 비싼 월세나 보증금 때문에 예산 내의 가장 저렴한 집이 늘 우선순위가 되곤 했어요. 좁은 건 상관없었어요. 눈을 뜨자마자 학교에 가고, 종일 학교 도서관이나 카페를 전전하다 잘 시간이 돼야 집으로 돌아오는 게 너무 당연했으니까요. 집이란 제게 ‘쉬는 공간’ 이 아닌 어둑한 밤 안전하게 ‘잠을 자는 공간’이 돼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어요.
첫 서울 생활은 30여 년이 된 주택 집 반지하를 개조해 만든 반지하 원룸이었어요. 마당으로 난 큰 창문이 있어서 반지하여도 괜찮을 거라 생각했지만,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장마철이면 방에 곰팡이가 금세 끼곤 했죠. 두 번째 이사 간 자취방은 곱창집 2층에 위치한 책상, 침대, 행거만으로도 꽉 차던, 5평 남짓의 원룸이었어요. 자정이 넘도록 집 주변은 늘 시끌벅적했고, 집 주변은 만취한 사람들로 가득했죠.
졸업할 때까지 살던 마지막 집은 입학 후 처음으로 얻은 전세 원룸인데, 주택가 깊숙이 위치한 다세대 주택의 원룸이었어요. 이곳은 너무 좁아 일부러 침대도 들여놓지 않았어요. 책상, 냉장고가 차지하는 공간 외에 이불을 깔고 누우면, 냉장고에 내 발바닥이 닿았죠. 졸업식을 위해 엄마와 동생이 올라왔는데, 세 명이 누울 수 없어 동생은 외박한 것 기억나세요?
세 곳 모두 딱히 이웃과의 교류는 없었고, 제 방에는 한낮에도 햇빛이 잘 들어오지 않아 오늘의 날씨는 늘 흐림이었어요. 반지하거나 여러 건물에 둘러싸여 조망권을 침해받았거든요. 평균 4–5평에 이르던 자취방은 혼자 살기에 ‘나쁘지는’ 않은 공간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딱히 좋은 공간도 아니었어요.
평일 주말 상관없이 저는 눈만 뜨면 재빨리 씻고 학교나 카페로 나왔어요. 10년 전 저는 카공족(카페공부족) 생활을 시작했죠. 내 집이었지만 편히 쉴 수는 없었던 평균 5평의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본능에 충실해 집을 탈출했어요.
『어디서 살 것인가』의 저자 유현준 건축가에 따르면, 대도시에 살고 소득이 낮을수록, 집에서 한 개인이 머무는 정주 공간이 좁아진다 해요. 이 좁아진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도시 곳곳의 카페가 커피값을 받고 공간을 제공해요. 심지어 요즘은 프랜차이즈 카페들이 카공족을 모시기 위해 카페를 독서실 형태로 꾸미거나, 공유 공간으로 꾸며 좌석을 대여하기도 한대요. 카페에 오래 머무르는 시간이 긴 카공족의 객단가가 더 높기 때문이래요. 오래 머물러 미안한 마음에 하나라도 더 시키는 그 모습은 저와 별반 다르지 않더라고요.
그런데, 스웨덴에서의 2년 동안 저는 카페 유랑자에서 집순이가 되었어요. 집은 탈출하고 싶은 곳이 아니라 머무르고 싶은 곳이었고, 제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냈고, 애정을 갖고 꾸민 곳이에요. 그리고 저는 한국에서도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자 노력해요. 서울은 카페가 즐비한 곳이지만, 저는 카페에 더 이상 가지 않으려 노력 중이에요.
엄마,
2016년 스웨덴에 도착하자마자 집 계약을 위해 학교 하우징 오피스에 들린 날이 아직 생생해요. 미리 기숙사에 짐을 풀고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저는 한껏 들뜬 채 관계자에게 재잘댔죠.
방이 너무 크고 깨끗해! 창도 정말 크고, 안에 화장실과 샤워 공간도 따로 있어. 공용 주방도 꽤나 깨끗하고 정말 넓어.
어쩌면 방정맞았을지도 모르는 제 모습을 본 관계자는 엄마 미소를 지으며,
많은 아시안 학생이 처음 방을 보고 놀라곤 해. 너랑 비슷한 반응이야.
라고 말하더라고요. 제가 살던 지역 우메오에는 중국, 대만, 홍콩, 일본 등 인구 과밀화된 동아시아에서 온 친구들이 많았어요. 우리는 평균 4–5평의 공간에서 살다가 주방을 제외하고도 평균 7평의 ‘내 공간’을 확보한 것만으로도 기뻤던 거죠!
스웨덴에 내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파트 생활도 월세 생활이었지만, 온전히 제가 ‘쉴 수 있는’ 공간이었어요. 충분히 생활을 위해 확보된 공간 덕분에 집은 잠만 자는 공간이 아니었죠. 관계자는 스웨덴에서는 법적으로 한 개인이 인간적으로 살기 위해 제공해야 하는 방 사이즈와 창의 크기 등이 정해져 있어 무작정 개미 소굴처럼 작게 지을 수 없다고 알려줬어요. 간이 벽으로 나뉜, 창문으로 빛도 들어오지 않던 고시원 생활을 하다 공황장애에 걸린 덴마크 친구가 떠오르네요.
프로 자취러인 제게 침대, 책상, 책꽂이, 옷장, 화장실, 신발장, 행거, 암체어 등 필요한 가구를 놓고도 여유 있는 공간이 생기는 자취방은 처음이었어요. 매일 아침 눈을 뜨면 집에서 나오기 바빴는데, 처음으로 제 방을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꾸미기 시작했어요. 집은 ‘잠만 자는 공간’에서 비로소 ‘생활공간’이 된 거예요!
엄마, 스웨덴에서의 라이프스타일은 집이 중심이었어요. 학교-집-체육관 이 단순한 루틴의 반복은 지루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삶의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공부할 곳을 찾기 위해, 친구를 만나기 위해, 파티하기 위해 새로운 곳을 늘 찾을 필요가 없었어요. 학생이 아닌 사회생활을 하는 스웨덴 사람들의 생활도 집이 중심이었어요.
스웨덴 사람들도 8시간 근무를 하지만, 많은 한국 사람들이 외식으로 저녁 끼니를 해결하는 것과 달리 저녁은 꼭 집에서 먹어요. 스웨덴에 외식 문화가 발달하지 않았고 외식비가 비싼 이유도 있지만, 가정 중심의 문화와 일과 삶의 균형이 잘 자리 잡혀 있기 때문이에요. 가족들과 함께 요리하고, 식사하는 시간은 스웨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거든요.
덴마크식으로 말하면 휘게고, 우리나라식으로 말하면 소확행이에요.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 식사하는 동안 함께 식사하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은 스웨덴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더라고요. 가족이 없는 저는, 함께 사는 친구들이나 학교생활을 하며 만난 친구들을 초대해 저녁을 같이 먹곤 했어요.
한국과 스웨덴 자취 생활을 가장 큰 차이는 한 층에 같이 사는 친구들과 공용으로 쓰는 주방과 식사 공간이었어요. 이런 형태의 아파트를 코리도(Koridoor)라 부르는데 적게는 6명 많게는 12명의 학생이 냉장고, 찬장, 인덕션, 오븐, 전자레인지, 식사 테이블이 있는 주방을 공유해요. 요즘 우리나라에도 셰어하우스 형태로 많이 생겼죠.
이런 구조는 계획하지 않아도 주방에서 우연히 만난 코리도 친구와 저녁을 먹거나, 친구를 방으로 초대해 요리를 함께 해 먹는 것을 수월케 했어요. 8년간의 자취생활 동안 집에서 요리한 적이 거의 없던 내겐 큰 변화였죠. 엄마도 그렇게 생각하세요? 제게 요리 유학하러 스웨덴 갔냐고 핀잔 아닌 핀잔을 주셨잖아요(웃음).
스웨덴에서의 2년 동안 집은 끼니를 해결하고, 잠을 자고, 공부하는 생활공간일 뿐 아니라 생일 파티, 송년회, 신년회 등 많은 사회적 교류의 공간이 됐어요. 그렇게 집은 외부인을 품으면서 가장 사적인 공간에서 사람들이 모여 관계를 맺는 작은 사회로 변신하더라고요. 글을 쓰고, 사람들을 만나고, 음식을 나눠 먹는, 제게 행복을 주는 이 모든 것이 집에서 가능했어요.
사실, 가장 사적인 공간인 집을 타인에게 내주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 생각해요. 더욱이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나의 공간을 나와 관계를 맺은 사람들에게 공개하는 일은 생각보다 매력적인 일이었어요. 책장에 꽂힌 책, 냉장고에 붙여진 자석, 곳곳에 걸린 액자, 화장실에 놓인 샤워 제품과 디퓨저, 바닥에 놓인 카펫 등 개인의 취향이 녹은 물건을 통해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취향을 더 알아갔거든요.
더욱이 집안 곳곳에 놓인 사진이나 엽서는 우리의 관계를 더 길고 깊게 만들었어요. 오래전 사진과 엽서를 통해 상대의 과거로 여행을 하고, 현재의 모습에 닿는 행위는 과거로부터 현재라는 물리적인 시간을 연장해주기도 하지만, 서로를 한층 더 깊게 이해하면서 미래로 우리의 만남을 이어 주기도 했어요. 집이 크든 작든, 화려하든 소박하든 간에 집은 그 자체로 한 사람을 들여다보는 가장 개인적이고 소중한 공간인 동시에, 개인과 개인을 잇는 사회적 교류의 공간이 되었죠.
엄마,
여전히 넓은 서울 땅덩어리에서 저는 여전히 남의 집에 살지만, 사는 동안 그 공간을 저만의 공간으로 만들고자 노력하기 시작했어요. 얼마 전에는 커피를 사고, 냉장고에 과일과 채소를 채웠고, 아늑한 조명을 들여다 놓았어요. 스웨덴에서처럼 외식을 줄이고, 요리를 해 먹기 시작했죠. 유튜브로 재즈를 틀어놓고 나만의 시간을 갖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 되었어요.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조용히 혼자 또는 함께하는 사람에게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요. 집만큼 편안하고 조용한 곳도 없다는 걸 깨달았어요. 요즘은 친구를 만날 때도 가능하면 집에서 또는 친구네 집에서 글을 쓰고, 책을 읽고, 요리하고, 친구를 초대해 식사하거나 커피를 마셔요. 공간의 크기와 상관없이 공간이 주는 아늑함과 차분함만으로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얼마 전에는 덴마크 친구네 집에서 점심, 저녁 다 요리해 먹고 책도 읽다 왔어요.
작년 귀국 후 취준 시절, 한동안은 사실 매일 카페로 출근을 한 것 기억나세요? 카페는 적당한 백색소음을 배경으로 남들에게 방해받지 않고, 할 일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했거든요. 하지만 서울에서 사람이 없는, 조용한 카페를 찾기란 너무 어려웠고, 매일 나가는 커피와 간식값도 부담이 됐죠. 조용한 공간을 찾던 내게 카페의 소음은 금세 스트레스로 다가왔죠.
그런데 집을 머물고 싶은 곳으로 바꾸는 요즘, 제 하루가 더욱 안정된 느낌이에요. 하루의 대부분을 보내고 집은 잠만 자는 공간으로 인식해온 제게,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낸 스웨덴 생활은 집의 인식을 바꿔놓았어요.
앞으로 제가 어디에 살든 집은 가장 사적인 공간이자, 가끔은 소중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는 적당한 크기의 쾌적한 환경을 제공할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요. 편의시설이나 교통을 조금은 양보하더라도 인간답게 쉴 수 있는 공간을 찾는 것이 이제는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어요.
스웨덴에서 돌아온 후 저는 집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요.
원문: 도크라테스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