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미국 대선은 빨대로 갈릴지 모른다”
정치적 비유가 아니라 진짜 빨대 이야기다. 거북이 코에 플라스틱 빨대가 꽂혔던 영상이 공개된 이후 플라스틱 빨대를 퇴출하고 종이 빨대로 대체하는 것은 세계적 현상이 되었다. 지난 7월 트럼프 재선 캠프에서 ‘TRUMP’라고 적힌 플라스틱 빨대를 판매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10개에 15달러인 트럼프 빨대는 판매 일주일 만에 6억 원 가까이 벌었다. 그들은 구호를 외쳤다.
빨대를 다시 위대하게(Make straws great again)
트럼프의 선거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를 적당히 패러디한 구호다. 하지만 이 안에 담긴 논쟁은 적당한 수준에 그치지 않는다. 오늘은 마시즘은 다시 불이 붙은 종이 빨대와 플라스틱 빨대의 전쟁을 다룬다.
종이 빨대 집권 1년 차: 플라스틱 사용량이 70% 줄었다
지난해 종이 빨대로 음료를 마시며 ‘현타’가 왔던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마시는 것이 과연 커피인지 종이인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종이 빨대가 콩기름 코팅을 한 덕분이지, 사람이 적응을 한 덕분인지, 알고 보니 종이 맛이 매력적이었는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거부감이 덜해졌다. 분명 불편한 면도 있지만, 지구와 거북이를 지킬 수 있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플라스틱 빨대의 대체제로 많은 빨대들이 나타났다. 쌀빨대, 대나무빨대, 유리빨대, 쇠빨대, 실리콘빨대 등이 나왔지만 가장 불편함을 덜 주는 빨대는 종이 빨대였다. 과연 단결의 민족 한국 사람답게(…) 매장 내 플라스틱 사용량이 70% 가까이 줄였다고 한다. 요즘에는 카페뿐 아니라 편의점에서도 종이 빨대를 도입한다. 이런데 왜 트럼프는 플라스틱 빨대 어그로(?)를 끈 것일까.
플라스틱 빨대의 반격: 종이 빨대는 과연 친환경적일까?
트럼프 빨대의 발단이 된 트럼프 대선 캠프 매니저 ‘브래드 파스케일’의 트위터를 돌아보자. 그는 물에 젖어 풀어진 종이 빨대 사진을 올리며 “종이 빨대와는 끝이다. 진보주의자들은 경제에서도 종이 빨대 같은 일을 할 것이다. 못쓰게 될 때까지 망가뜨리는 것”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들은 좋은 의도로 시작한 일이더라도 쉽게 망가진다면 좋은 정책이 아니라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피로감을 느끼는 이들을 집결시키기 위한 트럼프 캠프의 아이디어랄까.
종이 빨대에 대한 피로감은 상당하다. 영국 맥도날드는 매장에서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꾼다고 했다가 5만 건 이상의 탄원을 받고 플라스틱으로 돌아오기도 했다. 단순히 밀크셰이크 등을 마시는 데 불편함을 느껴서 일수도 있지만, 맥도날드에서 사용하는 종이 빨대는 너무 두꺼워서 재활용업체가 처리할 수 없고 일반 쓰레기로 처리가 된다는 보도가 나왔다.
플라스틱 빨대를 말하는 이들의 주장은 편의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과연 플라스틱과 종이 중 무엇이 더 친환경적인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다른 원료에 비해 플라스틱이야말로 에너지와 물을 적게 사용하여 만드는 친환경적인 제품이 아니냐는 것이다. 종이 빨대는 플라스틱 쓰레기를 줄일 수 있지만 이를 만들기 위해서는 목재를 베어야 하고, 이것을 옮기고 가공하고 만드는 데 많은 에너지가 사용되기 때문이다.
이는 트럼프의 반대편에 있는 민주당 진영에서도 논쟁적이다. 여러 대선주자가 각각 생각이 다른 것이다. ‘강제로라도 전면 금지’를 해야 하는지 ‘작은 부분보다 기후변화 전체를 보고 행동해야 한다’든지 ‘이렇게 싸우다가 트럼프에게만 좋은 일을 한다’는 등의 논쟁이 벌어진다.
환경단체의 중재, 문제는 종류가 아니라 양이야
그렇다면 이 모든 것을 판가름할 환경단체들의 입장은 어떨까? 어쩌긴 어째, 종이 빨대건 플라스틱 빨대건 둘 다 쓰지 말라는 입장이다. 문제는 과도하게 만드는 쓰레기의 양인 것이다.
플라스틱 빨대 퇴출은 수많은 쓰레기 줄이기를 위한 첫 단추였을 뿐이다. 해양보호협회의 2017년 해안 정리 보고서에 따르면 빨대는 전체 쓰레기의 3% 정도를 차지한다. 오히려 가장 많이 있는 쓰레기는 담배꽁초, 비닐, 플라스틱 음료병과 병뚜껑들이었다. 다만 가장 쉽게 줄일 수 있는 것을 시작으로 점차 쓰레기를 만드는 일을 줄여가는 방안으로 플라스틱 빨대를 짚은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환경을 고려하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변수가 작용한다. 플라스틱 역시 처음 등장했을 때는 ‘만들기가 쉽고 썩지 않고 계속 쓸 수 있기 때문에’ 친환경적이라고 불리던 녀석이었다. 트럼프 캠프에서 의도했건 얻어걸렸건(?) 이번 지적은 나름의 의미가 있다. 오히려 빨대 고르기를 넘어서 어떤 소비를 해야 하는지를 환경단체들이 짚어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우리의 종이 빨대 사용은 잘못된 것일까?
아니다. 이미 앞서 말했듯이 카페 매장 내 플라스틱 사용량은 많이 줄었다. 또한 시민들이 환경을 생각하고 소비를 하는 의식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이러한 분위기를 발판으로 생산자들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음료로만 한정을 짓자면 요즘에는 신제품을 만들기보다 ‘환경’이 필수 키워드가 되었다. 코카콜라에서는 최근 바다의 푸른빛이 도는 라벨의 코카콜라 병을 보여줬는데, 이것은 해변에서 회수한 플라스틱 쓰레기로 다시 만든 재활용 병이었다. 모든 음료 회사가 플라스틱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경쟁한다.
그 사이에 플라스틱의 분해 방안이나 친환경 소재를 찾기 위한 움직임도 늘어난다. 우리가 의식을 가지고 행동한다면 빨대 논쟁을 넘어 답답한 환경 문제들도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원문: 마시즘
참고 문헌
- [스타벅스 경영]⑪ ‘종이 빨대’ 한국서 첫 도입…’맛없다’ 지적에 콩기름 코팅, 이재은, 조선비즈, 2019.4.4.
- 도입 1년 ‘종이 맛’ 오명 벗고 진화하는 스타벅스 종이 빨대, 윤태석, 한국일보, 2019.8.29.
- [팩트체크] 우리나라 재활용 신화 속 불편한 진실, 귄희은, 노컷뉴스, 2019.6.11.
- 쓰레기 문제는 종류가 아니라 양, 전승민, 신동아, 2019.8.9.
- 편의점 커피도 종이 빨대 CU 친환경 강화, 조윤주, 파이낸셜뉴스, 2019.6.4.
- [밀레니얼의 수다, 솔ㆍ까ㆍ말] 일회용 컵ㆍ빨대 안 쓰려 노력하지만 편리함의 유혹에 빠질 때도 많아, 한국일보, 정예진, 김의정, 주소현, 최한솔, 홍윤기, 2019.7.30.
- “종이 빨대 재활용 못 해” 시인한 英 맥도날드, 김민석, 서울신문, 2019.8.6.
- 트럼프 환경 훼손 ‘플라스틱 빨대’ 팔아 대선자금 ‘대박’, 조계완, 한겨레, 2019.7.30.
- 미국 대통령을 ‘빨대’로 뽑는다?…핫이슈 된 ‘플라스틱 논쟁’, 정환보, 경향신문, 2019.9.17.
- Why Starbucks, Disney, and the EU are all shunning plastic straws, Radhika Viswanathan, Vox, 2018.12.21.
- ‘Banning plastic straws will not be enough’: The fight to clean the oceans, James Rainey, NBC News, 2018.12.30.
- Plastic straw bans and the paper straw culture war, Seth Stevenson, Slate, 2019.9.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