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각화의 난점은 브랜딩과 자원
다이슨이 3년을 공들인 전기차 사업에서 백기를 들었다. 다이슨을 제품 개발 전략의 교과서라고 자주 칭찬했었는데 다각화에서 고배를 마시니 역시나 다각화는 어느 기업에게나 어려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다각화의 난점은 브랜딩과 자원에 있다. 이미 성공한 브랜드라면 그 브랜드 파워를 활용해서 순조롭게 새로운 카테고리 시장을 점령해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고객들의 뇌가 그런 식으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브랜딩의 핵심은 기억되는 것이다. 고객에게 잊히면 시장에서도 잊힌다. 정체성이 강할수록 강력한 기억이 형성된다. 정체성이 강한 기억은 정체성이 희미한 기억을 덮어버리고 종국에는 잊히게 만든다.
운동화 하면 어떤 브랜드가 떠오르는가? 가장 먼저 떠오른 브랜드가 정체성이 강한 브랜드다. 정체성이 강해서 운동화의 이미지로 그 브랜드가 당신의 뇌에 각인된 것이다. 나머지 브랜드는 수초에서 수십초, 심하면 뭔지는 아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정확한 이름이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그게 정체성의 농도, 기억의 농도다.
하나의 이름에는 하나의 의미를 담는 게 좋다. 그래야 정체성의 농도를 짙게 유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작가 누구라 하면 그는 사람들에게 전문적으로 글을 쓰는 사람이라고 각인되기 쉽다. 그러나 그가 오만 잡다한 일을 하면서 자신을 작가이자 변리사이자 공인중개사이자 보험컨설턴트라 소개하고 다닌다면 각인되기 어렵다.
사람들은 이미 머릿속에 작가, 변리사, 공인중개사, 보험 컨설턴트 등 카테고리를 나누고 누구를 먼저 떠올릴지 기억의 줄을 세워놨다. 어디 세울지 애매한 기억은 기타로 분류되고 얼마 안 가 지워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포지셔닝 이론이다. 인간의 뇌가 이렇기에 기존에 축적한 브랜드 가치를 다른 카테고리에 활용하는 것은 위험할 수 있다.
브랜드 후광 효과는 시장의 경쟁 강도가 낮은 상태에서는 문제없이 작동하지만 정체성이 강한 경쟁 브랜드가 나타나는 순간 후광은 꺼지고 고객들의 기억에서 쫓겨날 가능성이 커진다. 만일 새로 진출한 카테고리가 기존 브랜드의 정체성과 상반된 이미지라면 위험도는 급격하게 높아진다. 후광 효과는커녕 모 브랜드의 가치마저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귀뚜라미 에어컨처럼 말이다.
그만큼 다각화는 어려운 것이다
다각화는 이제까지 경험 못 해본 다른 시장에 뛰어드는 것이다. 따라서 현재 기업이 보유한 자원 외에 새로운 자원을 필요로 할 수밖에 없다. 이때 새로운 자원을 확보하는 데 드는 비용이 클수록 기업은 어려움을 겪는다. 기존 사업의 경쟁력을 유지할 자본까지 새로운 자원을 확보하는 데 묶여버린 상태에서 빠르게 이익을 내지 못하면 위험도는 기하급수적으로 높아진다.
예를 들어 마이크로소프트는 노키아를 8조 5,000억 원에 인수하고 이미 레드오션 상태인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다가 큰 어려움을 겪었다. 한국의 예로는 웅진이 있다. 극동건설을 7,000억 원에 인수하고 다각화를 추진하다가 어려움을 겪었다.
다이슨은 3년간 1조 5,000억 원은 배터리 개발에, 나머지는 전기차 개발에 투입했다. 그런 비용을 치렀음에도 제대로 시장에서 겨뤄보지도 않고 백기를 들었다는 것은 시뮬레이션을 해보고 일찌감치 매몰 비용 대비 장래의 손실에 대한 계산을 끝냈다는 걸 의미한다. 다이슨이 뛰어들기에는 이미 기성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기차 시장에서 충분한 정체성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다이슨같이 거대한 기업에도 다각화는 어렵고 망설여지는 선택이다. 그럼에도 작은 회사들은 다각화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성장이 정체되면 제일 먼저 비즈니스 모델과 운영 측면에서 엔트로피를 제거할 수 있는지부터 살펴야 하는데 일을 더 벌이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든다. 카테고리가 늘면 수익도 늘겠지 하는 단순한 생각이다.
인적 자원 측면도 이미 비슷한 담당자가 있으니 문제없다고 생각해버린다. 그들이 담당하고 있는 기존 사업과 관련된 업무들은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밀어붙이면 결과는 뻔하다. 인력은 인력대로 번아웃되고, 돈은 돈대로 힘을 못 쓰는 신사업에 묶이고, 기존 사업은 수혈을 못 받아 천천히 메말라간다. 정말 많은 작은 회사가 이런 형태로 문을 닫는다.
사업과 병풍은 펼치면 넘어진다는 옛말이 있다. 우리나라 속담인지는 모르겠으나 작은 회사 사장님들이 꼭 마음속에 새겨넣어야 할 격언임에는 분명하다.
원문: 여현준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