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급소, 독자와 만나는 신문의 최전방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87년, 서너 달 넘는 기간 동안 신문 배달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나와 형은 새벽 4시~4시 반쯤 보급소로 출근해 매일 80부를 걸어서 배달하며 월 30만원의 월급을 받았다. 당시로선 적지 않았던 금액이었다. 물론 고스란히 부모님의 손에 안겨드렸지만.
보급소로 출근하면, 가장 먼저 본지에 별지와 광고 ‘찌라시’를 삽지하는 일부터 시작했다. 오늘 배달할 신문 80부를 가지런히 정렬한 뒤 왼손으로 본지의 가운데 면을 살짝 들고 오른손으로는 광고 찌라시를 검지 끝에 붙이듯 옮겨와 가볍게 본지 사이에 밀어 넣었다. 이 작업의 속도로 소위 배달 경력 ‘짬밥’을 가늠할 수 있었다.
삽지가 완료되면 40부씩 나눠 왼쪽 겨드랑이에 부드럽게 접은 신문을 끼고 뛰어다니며 신문을 던져넣었다. 보통은 대문 아래로 밀어 넣는 경우가 다수였지만, 2층에 배달해야 할 때엔 딱지 모양으로 접어 저 멀리 던져 배달하기도 했다. 그렇지 않으면 삽지된 찌라시가 날아가 독자들에게 전달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비 오는 날이면 사전 작업이 더 길어진다. 별지와 찌라시 삽지 작업에 신문을 비닐봉지에 담는 작업이 추가된다. 때문에 배달 시간이 약간 늦어지기도 한다. 보급소에는 비 오는 날을 대비해 해당 언론사의 로고가 새겨진 비닐봉투가 늘 비치돼있었다.
신문을 봉투에 담아 끝을 묶어주지 않으면 빗물이 봉투 속으로 스며들어 신문이 젖기 마련이다. 빨리 작업하다 보면 이 과정을 생략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럴 때면 해당 독자가 꼭 지국으로 전화를 해 다시 배달해달라고 채근한다. 두 번 배달하지 않으려면 귀찮더라도 끝을 묶어주는 작업은 생략해서는 안 된다.
신문 보급소(지국)는 신문과 독자가 직접 만나는 핵심 접면이다. 독자의 불만, 배달 서비스와 관련된 요구 사항, 신문 자체에 대한 불평과 매일매일 싸워야 하는 신문 유통 서비스의 전쟁터였다. 이미 생산된 정보를 어떻게 편리하게 전달할 것인가, 어떻게 만족스럽게 배달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하는 신문 유통의 실핏줄이다.
1987년, 한 보급소 소장(서영균 동아일보 개포보급소장)은 신문과 방송 기고문에 이렇게 적은 적이 있다.
“매일 발행되는 신문은 하나의 상품으로 볼 때 활용 시간대가 극히 짧아서 빠른 시간 안에 수요자 손에 전달돼야 상품으로서 가치가 있다. 따라서 빠르고 바르게 배달할 수 있는 체제와 수행이 갖춰져야만 독자 확보, 수금 등 제반 활동의 수행도 가능해진다.”
이처럼 보급소는 말 그대로 독자와의 접면을 구성하는 핵심 서비스로서 위상을 지녀왔다. 신문의 독자 도달 시간을 새벽 5시~7시로 맞춰 배달 시스템을 구축했고, 그 운영 노하우를 수십 년간 누적시켜 왔다. 상품의 소비 시간이 짧다는 인식 하에 도달 시간을 준수하는 걸 시스템 구축의 핵심 가치로 설정했다.
신문 독자들이 출근 시간 전 신문 뉴스를 읽는 행위 맥락을 갖고 있었고, 그에 맞춰 신문은 제작 시스템과 유통 시스템을 진화시키기도 했다. 광고 찌라시도 신문의 읽기 경험을 방해하지 않도록 삽지 방식으로 전달했다. 그 또한 지역 내 유익한 정보를 담은 로컬 타깃 광고 위주로 구성돼있었다. 예를 들면 지역 백화점 세일 광고나 각종 의류 할인 행사 광고가 다수를 이뤘던 기억이다. 그만큼 독자에게 만족스러운 정보 취득 경험을 제공하기 위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결과였던 셈이다.
디지털 시대, 신문 산업의 위기
디지털 시대로 돌아오자. 온라인에서 보급소와 같은 현장 배달 조직은 더 이상 설 자리를 찾기 힘들어졌다. 누구나가 인터넷만 연결돼있으면 접근이 가능한 구조로 전환된 것이다. 배달에 따르는 유통 비용도 요구되지 않는다. 뉴스의 전달 비용은 0으로 수렴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해당 언론사 뉴스가 독자에게 직접 전달되지 않는다. 재매개(Remediated)된 채로만 독자와 만날 수 있다. 신문 산업의 위기를 여기에서 읽을 수 있다.
신문의 시대, 신문사는 독자와 직접 만나는 유통 접면을 확보하고 있었다. 그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고, 그들을 만족시키기 위해 여러 서비스적 장치를 개발해왔다. 신문을 읽는 시간대에 맞춰 배달 시스템을 완비했고, 지역에 타깃팅된 광고를 유치했다. 눈비가 내리는 날에 대비해 신문을 싸는 비닐봉투를 개발했고, 더 많은 독자에게 제시간에 배달하기 위해 오토바이 배달 시스템도 구동시켰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독자의 정보 경험을 충족시키기 위한 유통 채널의 진화
- 독자와의 직접 소통을 통한 만족도 제고
- 타깃팅된 광고 유치로 부가 수익 증대
- 독자의 과학적 관리체계 수립(지로 용지 개발)
디지털 시대, 신문은 여전히 콘텐트에만 집중하고 있다. 좋은 콘텐트를 생산하면 더 많은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공급자주의적 시각이 고수되고 있다.
만약 신문의 시대에 신문이 보급소와 같은 유통 시스템을 작동시키지 못했다면, 신문의 황금기를 구가할 수 있었을까 되물어본다. 신문이 독자의 신문 읽기, 구독 경험을 만족시키기 위해서 진화시켜왔던 그 노하우는 현재 디지털에서 거의 작동되지 않고 있다. 독자들의 읽기 패턴을 이해하고, 독자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최적화된 전달 체계를 수립해왔던 노하우는 디지털 시대에 이전되지 않고 있다.
Manuel Goyanes와 George Sylvie(2014)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Future companies of the journalism industry will not be organizations depending on content, but (also) on the exclusive services they offer.”
“미래의 저널리즘 기업들은 콘텐트에 의존하는 조직이 아니라, 그들이 제공하는 독점적인 서비스에 좌우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독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전달 서비스(the delivery of services)의 개발을 언급했다. 예를 들어 부가적인 (유통) 서비스나 인터렉션, 그리고 콘텐트 개인화 등이다. 이러한 서비스들은 디지털 시대에 기술 의존적 시스템이다. 소프트웨어로서의 기술적 상품들이다.
유통 비용의 절감으로 축적된 예산을 새로운 유통 시스템의 개발로 투입해야 구축이 가능하지만 이에 대한 대비는 여전히 부족하다. 당장 신문의 시대엔 당연하게 여겨져왔던, 지역 독자들이 웹사이트에 접근할 경우 지역 광고를 노출하는 손쉬운 시스템도 제공되지 않고 있다.
신문은 자신의 과거에서 미래의 힌트를 찾아내는 작업을 우선해야 한다. 수십 년간의 독자와 대면하며 축적한 운영 경험 속에 디지털 시대 대응해야 할 사항들이 세세하게 적혀있다고 할 수 있다.
이를 어떻게 기술적으로 재설계할 것인가, 보급소의 경험을 어떻게 디지털화할 것인가가 미래를 시작하는 초석이 돼야 한다. 지금 신문이 나아가야 할 길을 외부에서 찾을 것이 아니라 내부의 보급소 소장에게 먼저 묻는 것이 현명한 접근 방법이 아닐까 싶다. 누구보다 그들이 독자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문: 고민하고 토론하고 사랑하고
<참고문헌>
- 서영균.(1987). 특집 신문발행부수와 배달제도 / 판매환경의 변화와 보급소 운영. 신문과 방송.
- Manuel Goyanes, George Sylvie.(2014). Customer orientation on online newspaper business model with paid content strategy : empirical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