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견되는 아름다움
소설가 오스카 와일드는 “휘슬러가 안개를 그리기 전까지 런던에는 안개가 없었다.”라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소설가 알랭 드 보통은 그의 저서 여행의 기술에서 “반 고흐가 사이프러스 나무를 그리기 전까지 프로방스에는 사이프러스가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라고 서술했죠. 보이지 않았던 사물의 아름다움을 가르쳐준 것은 두 화가였습니다.
누군가 그 아름다움을 말해주기 전까지 미처 그 요소를 파악하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일반인들의 눈에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의 요소를 발견해 구체화하는 것은 전통적으로 예술가들의 일이었습니다. 광경이 주는 아름다움과 사물이 지니는 매력을 직감적으로 느끼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그런 아름다움을 포착해내는 예술가는 줄곧 존경의 대상이었죠.
‘힙하다’는 말을 알기 전까지 그 개념을 설명해줄 단어는 ‘세련됐다’ ‘패셔너블하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힙하다’와 ‘세련됐다’의 의미는 전혀 다른 유형의 멋이란 것을 직관적으로 압니다. 사실 ‘힙하다’는 개념을 알기 전까지 길거리의 대다수 힙한 스타일의 매력을 놓쳤는지도 모릅니다. 고흐가 사이프러스의 매력을 묘사하기 전과 마찬가지죠.
모호하게 숨겨져 있는 아름다움의 요소를 발견하는 것. 그리고 그 개념을 직감적으로 개념화해 설명하는 작업은 인간을 더 넓은 영역의 아름다움에 다가갈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습니다. 추상적인 무언가를 구체적인 것으로 개념화한다는 부분의 미덕은 사람들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는 계몽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
브랜딩은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화다
아름다움의 특징을 발견하는 예술의 특권을 물려받은 것은 브랜드였습니다. 자본주의로 대표되는 21세기에 돈이 빠진 순수예술의 가치는 공허해졌고 그 사이를 기업과 브랜드가 재빨리 가로채 버렸죠. 그런 방향성에 맞게 기업에서 내보인 것은 디자인과 브랜딩이었습니다.
하나의 물건을 숭고한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매끈한 외형(디자인)은 물론 그 물건이 갖는 정서적인 역할까지 구축되어야 했는데, 그 역할이 브랜딩의 영역이었죠. 그저 스터프(stuff)가 아닌 목적을 가진 오브제(objet)가 되기 위해서 기업들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었습니다. 샤넬은 우아함, 나이키는 도전과 활력, 애플은 창의성과 혁신, 스타벅스는 정서적인 공간을 구체화해 자신들만의 가치를 공고히 했습니다.
신화가 되어버린 브랜드의 특징 중 하나는 이처럼 ‘인간의 보편적인 지향’을 자신의 브랜드와 끊임없이 연결시며 가치를 구체화했다는 점입니다. 도전, 혁신, 우아함, 편안함 등 긍정적인 가치를 자신의 브랜드와 연결시키는 것이죠. 브랜드를 둘러싼 사람 모두가 브랜드에 동일한 보편적 가치를 말할 수 있다면 그 브랜드의 브랜딩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좋은 브랜드란 무엇일까?’라는 질문의 사견은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치에 고객은 물론 기업 내부 구성원까지 동일한 이해를 바탕으로 공감할 수 있다.’ 정도일 것입니다. 중요한 점은 의식의 통일화 과정이 매우 어렵다는 점에 있죠. 특정 브랜드가 통일된 가치로 오롯이 공감을 얻기 위해선 구체적이고 명시적인 더 적극적인 무언가가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브랜드 가치의 개념화입니다.
가치의 개념화에 누구보다 앞장섰던 사람은 스티브 잡스였습니다. 아이폰이 혁신적인 제품이란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지만 잡스는 아이폰이 단순히 하나의 전자제품이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예술로 승화시키고 싶었던 것이죠. 잡스는 신제품 출시 때마다 혁신적인 스피치를 통해 제품이 추구하는 가치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개념화했습니다.
아이폰의 매끄러운 소비자 UX 경험과 혁신적인 기술을 ‘테크놀로지와 인문학의 궁극의 교차점’이라 묘사하며 아이폰에 구체적인 퍼스널리티를 불어넣었죠. ‘왜 아이폰이 혁신적인 제품인가?’에 더 감각적이고 개념적인 정의를 통해 아이폰의 가치를 끌어올렸습니다.
혁신적인 프레젠테이션 자체로 주목받은 잡스의 말은 프레스와 소비자들에게 고스란히 전파되었습니다. 아이폰의 아름다움에 대한 개념화가 확산되면서 아이폰은 하나의 신앙으로 자리 잡게 되죠. 스피치가 사실 하나의 완벽한 브랜딩 사례였던 것입니다.
개념화를 통한 내부 구성원의 동일한 이해
고객 만족, 고객 지향이란 말처럼 의미 있으면서 동시에 무의미한 말도 없을 것입니다. 기업 철학이나 매년 초 신년사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고객 만족 최우선’이란 말은 사실 고객은 물론 내부 구성원에게 어떠한 울림도 전달하지 못하는 허울 없는 메시지입니다. 구체화하지 않은 언어는 서로 간의 오해만 만들어낼 뿐이죠.
브랜드가 밀고 추진하는 가치가 모호하면 내부 구성원의 방향성 또한 모호해지고 지속성은 짧아집니다. 내부 구성원들이 고객과의 마주침에서 자신 있게 우리는 이런 가치를 추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으려면 먼저 그 가치에 대한 명확하게 정의된 메시지 확립이 필요합니다.
쓰타야는 쓰타야 서점만의 공간 철학을 ‘휴먼 스케일’로 정의합니다. 너무 넓지도 않고, 좁지도 않은 그러면서도 사람과 사람이 자연스럽게 부딪힐 수 있는 정서적으로 안정된 공간이란 의미죠. 도쿄 다이칸야마에 3,000평 이상의 대형서점 T-SITE의 공간 철학 역시 휴먼 스케일이었습니다. 광활한 공간이지만 공간을 작게 세분화해 전체가 아닌 서점의 디테일을 강조함으로써 안정감과 영감의 정서를 획득할 수 있도록 공간을 구성했습니다.
공간의 매력을 더하는 것은 공간을 구성하는 하드웨어적 구축이 아닌 그 안을 기획하고 구성하는 내부 구성원의 소프트웨어 파워의 결집입니다. 인간적인 부딪힘과 서정적으로 정돈된 공간의 개념을 휴먼 스케일로 정의함으로써, 내부 구성원의 이해를 한 방향으로 결집한 부분은 ‘왜 고객이 영감을 얻기 위해 쓰타야를 가는가?’의 실마리일 수도 있습니다.
소비자 인식과 바이럴
정확하게 표현된 가치들은 공유되기 마련입니다. 유행어의 대부분은 현상을 집약하는 유머러스하고 통찰력 있는 방법 때문에 쉽게 전파되는 것입니다. 몇백 년이 지나 많은 언어가 없어진 현재에도 사자성어가 통용되고 유통될 수 있는 배경에는 그 현상을 집약적으로 정의하는 개념화의 미덕이 고스란히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브랜드의 특징을 정확히 짚어낼 수 있는 언어는 변용되고 차용되고 반복해서 공유되면서 결국 나름의 스토리를 만들어내게 됩니다. 그럴수록 브랜드가 담은 이미지의 풍부함은 더 깊어지는 것이죠.
에어비앤비는 여행지에서의 현지 숙박 체험을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라는 메시지로 간단히 축약합니다. 브랜드가 제시하는 가치를 고객 입장에서 더 와 닿는 정의를 통해 바이럴을 만들어내는 것이죠. ‘여행은 살아보는 거야’는 인스타에서 무려 53만 개 이상 태그가 될 정도로 성공적인 바이럴을 만들어 냈습니다.
결국 중요한 것은 브랜드가 내미는 가치의 진정성을 소비자 입장에서 말해주는 것입니다. 기업에서 아무리 우리의 제1목 표는 고객 만족이라고 외쳐대도 소비자는 결코 그 진정성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의미 없는 과장에 괴리감을 느끼게 될 테죠. 더 소비자의 피부에 와 닿는 개념이 필요합니다.
바이럴이 되는 브랜드의 특징은 간단합니다. 아마존 같이 믿기 힘든 정도의 소비자 가치를 제공하거나 브랜드만의 차별화되는 집약적 가치를 지속적으로 구체화하고 전파하는 것이죠. 결국 아마존과 같이 혁신적인 기술이 없다면 브랜드가 해야 할 것은 나름의 제품 가치에 부합하는, 소비자 입장에서의 개념화한 가치일 것입니다. 물론 브랜드가 제공하는 제품과 서비스 역시 그 가치에 부합해야만 하겠지만요.
개념화는 브랜드를 확장한다
몇몇 성공적인 브랜드는 추상적인 세상의 단면을 자신의 브랜드 스토리와 제품으로 구체화해 불멸의 존재가 되었습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추상적인 개념을 더 정교하고 적확한 언어로 다듬어내고 스토리를 축적함으로써 다른 여타의 브랜드가 넘어오지 못하는 강력한 해자를 만들어냈죠.
개념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브랜딩의 방향은 단조롭고 왜곡적인 방향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브랜드의 뿌리가 깊지 않은 기업이 유독 프리미엄, 럭셔리 등을 자주 사용하는 것 역시 개념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을 과장적인 기법으로 해결 보려고 하는 시도인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가치의 개념화는 결코 그럴싸한 말로 브랜드를 포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브랜드가 진정 제공하는 가치가 뭘까?’라는 고민을 바탕으로 브랜드 내부의 본질을 파 해쳐 보는 것이죠. ‘구성원은 물론 소비자가 브랜드의 가치를 동일하게 인식하기 위해선 자신 브랜드만의 가치는 뭘까?’라는 깊은 고민이 필요합니다.
누군가 그 브랜드 내면에 숨겨진 아름다움을 말해주지 않는다면 소비자는 쉽게 인식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브랜드만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정확히 표현해주는 것, 어쩌면 브랜딩의 첫 번째 발걸음일 수 있습니다. 당신 브랜드의 가치는 어떻게 표현하나요?
원문: 밤은부드러워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