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면서
공공기관만 4번의 입사 3번의 퇴사, 정말 어쩌다 보니 공공기관만 4번째이다. 지금도 공공기관을 다니고 있다. 이 특이한 경력을 통해 내가 얻은 것은 다양한 분야의 정부 지원 사업을 직접 운영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사업 계획서에 관해 얘기해보고자 한다.
정부 지원 사업에 선정되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하는 단계가 서류 평가며 이 단계를 통과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진행할 수 없다. 때문에 아이템이 훌륭하든, 지원자의 역량이 뛰어나든 사업 계획서를 제대로 적지 못한다면 정부 지원 사업에 절대 선정될 수 없다. 수백 개의 사업 계획서를 직접 눈으로 보고 경험하면서 분석한 탈락하는 사업 계획서들의 유형을 분석해 보았다.
제발 회사(지원자) 소개는 간단히, 나르시시즘에 빠진 사업 계획서
사업 계획서 처음부터 자기 자랑만 늘어놓는 유형이다. 사업 아이템에 아낌없이 특징과 장점을 소개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안 된다. 그러나 첫 페이지부터 회사 소개 내용으로 꽉꽉 채우는 지원자들이 있다. 회사(지원자)의 간략한 소개가 나오고 회사(지원자) 연혁, 회사(지원자)가 수행한 프로젝트와 주요 성과, 그리고 또 주요 성과, 또 주요 성과…
회사(지원자) 소개가 한 페이지가 넘어가고 두 페이지가 넘어간다면 중요한 사업 내용을 읽기도 전에 집중력을 떨어트릴 수가 있다. 또한 ‘사업 아이템에 자신이 없어 구구절절 회사(지원자) 소개를 적은 것인가?’라고 생각할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평가위원들은 지원하는 회사(지원자)는 최소한의 정보만 알면 된다. 그들이 진짜 알고 싶은 정보는 사업 아이템이다. 회사(지원자) 소개는 최소 반 페이지에서 최대 한 페이지를 초과하지 않는 것이 좋다. 또한 내용은 지원 사업과 회사(지원자) 소개가 부합하는 점의 포인트만 잡아서 서술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다.
추상적인 단어를 남발하는 피카소 사업 계획서
사업 계획서를 두루뭉술하게 작성하는 유형이다. 사업 계획서를 좀 더 내용을 풍부하게 보일 수 있도록 작성하다 보면 최근 보고서 혹은 뉴스에 접한 단어들, 눈에 많이 노출된 유행하는 단어들을 나도 모르게 사용하게 된다. 이러한 유행하는 단어들은 누군가의 캐치 프레이징, 브랜딩으로 매체에 많이 노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므로 단어 자체가 굉장히 모호하고 추상적인 경우가 많다. 다음이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 개방(오픈)형
- 플랫폼
- 이노베이션
- 혁신
- 신유형
- 4차 산업혁명
- 미래지향
- 맞춤형
- 글로벌
그럴듯하지만 빛 좋은 개살구인 단어들이 많다. 물론 저런 단어들을 활용해 포장한다면 훨씬 사업 내용을 트렌디하게 보이도록 할 순 있다. 하지만 평가위원들 입장에선 구체적인 내용을 파악할 수 없는 단어의 나열은 피곤함을 불러일으키며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 있다. 항상 트렌디한 단어를 쓸 땐 내용 메인으로 활용할 순 없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눈높이 교정이 필요한 사업 계획서
기술과 관련한 사업 계획서를 접수하다 보면 이게 연구 논문인지 사업 계획서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있다. 아무래도 기술을 주로 연구하신 연구자 혹은 기술자, 개발자분들이 작성한 사업 계획서를 보면 전문 용어도 많을뿐더러 내용을 이해하기 어렵게 작성하는 경향이 있다.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평가위원들은 이해할 것이다. 그러나 평가위원들을 섭외할 때 한 분야로만 섭외하지 않는다. 다각적인 평가를 위해 다양한 분야에서 전문성을 지닌 평가위원들로 구성한다. 그러므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할 때에는 중학생도 읽으면 알 수 있는 수준에서 작성해야 평가위원들에게 내용이 왜곡되지 않고 전달될 수 있다.
- BLE 기반 무선 충전 시스템
- 블루투스 기반 무선 충전 시스템
전자와 후자 모두 동일한 의미의 사업 내용이다. 어느 쪽이 더 이해하기 쉬운가? 사업 아이템명에 전문 용어를 쓰는 것은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 사업의 첫인상을 판가름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요건이기 때문이다. 지원자들이 알고 있는 전문용어는 평가하는 상대방은 당연히 모른다 생각하고 최대한 쉽게 풀어쓰는 것이 사업 계획서의 합격률을 높이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표, 그림으로 도배하는 사업 계획서
텍스트로만 가득 찬 사업 계획서는 가독성을 떨어트린다. 이를 위해 그림과 표를 적절히 사용해 시각화하는 것은 매우 좋은 작성법이다. 그러나 채워야 할 분량은 많고, 내용이 나오지 않아 표나 그림을 삽입해 분량을 늘리는 사업 계획서가 있다. 한 페이지에 표 혹은 그림을 큰 사이즈로 혹은 3개 이상 삽입할 경우 오히려 성의 없어 보일 수 있다.
또한 전혀 관련이 없는 이미지나 표를 사용할 경우 오히려 전달하고자 하는 논점을 흐릴 수 있다. 이미지는 내용을 시각화해 표현하고 싶은 중요한 내용으로 삽입을 해야 하며, 표는 내용을 설명하기 위한 근거로 사용할 수 있는 데이터를 삽입해야 한다. 또한 페이지 한 장당 최대 2개가 적당한 분량이다.
뜬구름만 잡는 사업 계획서
사업 계획서 대부분은 끝단에 기대효과, 향후 계획을 작성하는 부분이 있다. 이 부분에 어떻게 사업을 구체화하고 어떤 효과가 있는지 정성적으로 풀어쓰는 경우가 있다. 물론 정성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정량적인 부분이 평가위원들에게 어필하기 위해선 훨씬 더 효과적이다. 지원 사업은 대부분 정부 회계연도에 따라 연간 단위로 사업이 운영된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항상 촉박한 일정에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성과를 요구한다.
따라서 가시적인 성과를 정량적으로 표현한 사업 계획서는 눈에 더 띌 수밖에 없다. 공공기관이 좋아하는 성과는 ‘사업화’와 ‘고용 창출’이다. 이 사업이 어떻게 사업화되어 매출액, 투자액 등이 발생하는가. 그리고 최근 일자리 창출이 정책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사안이라 ‘고용 창출’은 주목해서 보는 성과다. 사업 계획서를 작성할 때 이 두 가지에 관해 중점적으로 작성하면 훨씬 합격선에 가까워질 수 있을 것이다.
가이드는 제발 지워주세요, 가이드를 애지중지하는 사업 계획서
보통 서류 양식을 제공할 경우 지원자들의 원활한 이해를 위해 파란색 글씨에 기울어진 효과를 준 가이드를 파트마다 미리 써 놓는다. 생각보다 꽤 많은 지원자이 가이드를 삭제하지 않고 제출한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사소할 수도 있으나 사업 계획서의 완성도를 떨어트리고 성의 없어 보일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예산작업을 소홀하게 하는 사업 계획서
나는 예산 부분을 사업 계획서의 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정부 지원 사업은 결국 ‘한정된 예산으로 얼마나 적절하게 활용해 제안한 과업을 완수할 것인가?’를 평가하는 것이다. 대부분 지원 사업 평가 지표에 반영한 부분이기도 하다. 때문에 예산은 어떤 지원 사업이든 가장 꼼꼼하게 체크하고 평가하는 부분이다.
예산의 중요성을 모르고 대충 예산을 책정한다면 지원 사업에서 선정된 후에 오히려 더 문제가 될 수 있다. 오리발을 내밀고 지원 사업 수혜를 받기에 부적절한 업체로 낙인찍히는 경우도 종종 보았다. 예산 부분은 실제로 서류를 통과하고 다음 단계에서도 평가위원들이 중점적으로 확인하고 공격당할 수 있는 부분이므로 사업 계획서 작성 단계부터 꼼꼼하게 작성해야 한다.
근거 없는 뇌피셜인 사업 계획서
사업 계획서를 작성할 때 시장조사를 통해 사업 아이템 관련한 시장 동향과 수요를 파악하는 것은 기본이다. 그러나 출처를 누락하면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뇌피셜에 불과하다. 평가위원들에게 주장하는 내용에 신빙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출처를 반드시 표기하는 것이 좋다. 이러한 출처의 있고 없고의 차이는 굉장히 사소한 부분일 수 있으나 데이터의 정확도와 신뢰도를 올리고 사업 계획서의 완성도를 높일 수 있는 필수적인 부분이다. 모든 인용하는 자료들은 출처를 반드시 달자.
마치며
이상 정부 지원 사업에 탈락하는 8가지 사업 계획서 유형을 살펴보았다. 사업 계획서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현직 담당자로 조금 더 합격에 가까워질 수 있는 팁 위주로 소개했다. 정부 지원 사업의 특성상 형식과 근거에 집착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하듯이, 정부 지원 사업용 사업 계획서는 민간용 사업 계획서와 조금은 다르게 디테일한 부분을 조금 더 신경 쓰면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다.
원문: 김화초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