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어떻게 견뎌낼 것인가’라는 문제가 육박해 들어올 때, 이에 제대로 맞서며 삶에 대한 태도를 지켜내기는 무척 어려운 듯하다. 대체로는 그저 나에게 이런 불행이 닥치다니 미쳐버릴 것 같다, 돌아버릴 것 같다, 죽어버릴 것 같다, 생각하며 그 누군가를 증오하고, 신세를 한탄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몸이 아파지는 그런 과정을 밟는다. 그렇다면 그러지 않고 어떻게 여전히 온전하게 삶을 직시하며 뚜벅뚜벅 걸어 마땅한 길을 걸어갈 것인가?
이는 참으로 정답을 정확하게 알기 어려운 문제라고 느낀다. 하나 짐작하는 것은 그 무엇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외면하지 않고, 끌어안은 채로, 그것들을 그저 견뎌내고, 해야 할 일을 해야만 한다. 해야만 하는 것들을 하나씩 놓아버리고, 직시해야 할 것을 하나씩 외면하고, 마주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은 버리거나 은폐하기 시작하면, 그 함정에서 벗어날 방법은 점점 더 없어질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 아내가 보는 〈왕좌의 게임〉을 옆에서 종종 보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 드라마 속 인물들이 견뎌내는 삶의 무게가 너무 엄청나 보여서 괴로웠던 적이 있다. 부모형제가 죽고, 고향에서 쫓겨나고, 강간당하고, 살해당하고, 모든 것을 잃고, 그래도 다시 살아가는 그 일련의 모습들이 한편으로는 삶 자체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들이 걸어가는 삶에 비하면 내가 짊어진 부담감이랄 것들은 다 인간으로서 견딜만한 것이 아닌가 싶기도 했다.
아무리 강인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실제로 강인하기만 한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강인해 보이는 만큼 내면에는 병든 부분, 더 예민하고, 히스테릭하고, 나약하고, 신경증적인 부분들이 키워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스로가 강인할 수만도, 나약하기만도 한 인간이 아니라는 걸 정확히 알 필요가 있다고 느낀다.
나는 내 삶의 모든 것으로부터 상처 입고, 그 모든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고, 그 모든 것들이 무겁지만, 동시에 그 모든 걸 이겨낼 수 있다. 그런 것들이 없거나 느끼지 못할 만큼 강인하고 무감각해서가 아니라, 그 모든 것을 받아들여야 할 만큼 나약하지만 그래도 이겨낼 수 있다고 믿어야 한다.
내 삶이 어찌 이럴 수 있는가, 내 삶에는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가, 무언가 잘못된 게 틀림없다, 이렇게 생각하기보다는 그저 삶이란 그런 것임을 인정하는 일로부터 그다음으로 나아갈 길이 보이지 않나 싶다. 그래야만 더 온전한 결단, 선택도 할 수 있는 법이고, 혹은 현재를 유지할 수도 있는 법이다. ‘삶이라는 게 참 너무하는군’ 하고 생각하고 받아들여야 할 것을, 삶 자체를 증오하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모든 게 무너지기 시작하는 게 아닐까 싶다.
삶이라는 건 수비수들을 피하면서 자기의 공 하나만 잘 들고 상대편 골대까지 달려가는 건 아닐 것 같다. 만약 비유가 가능하다면, 계속 내 손에 던져지는 공을 어느 하나 놓치지 않고 계속 굴려야 하는 저글링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그리고 그 정도는 할 수 있을 것이다. 애초에 할 수 있도록 태어난 것이다.
원문: 문화평론가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