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 정의로운 주체를 향한 열망이 상당하다는 걸 느낀다. 사람들은 스스로도 정의로운 주체로서 행동하길 원하고, 또한 정의로운 사람을 갈망하고 사랑한다. 단순히 정의로움을 콘텐츠나 담론 안에서 소비하는 정도를 아득히 넘어서, 현실 자체에 정의가 실현되길 바라며 실제로 광장으로 뛰쳐나간다. 이런 열망으로 움직이는 사회란 정말이지 흔치 않다.
사실 정의 자체는 어딘지 이전 세대의 것이라는 느낌이 있다. 흔히 말하는 포스트모던 사회, 근대 이후의 사회에서는 ‘정의’ 같은 대의나 관념은 더 이상 사회를 움직이지 못한다는 식의 담론들이 꽤 팽배했기 때문이다. 이 시대는 단지 생활 정치의 시대로 이전했고 개인화된 사람들은 각자의 삶을 좇기 바쁘며 대의 아래 하나로 뭉치고, 광장에 나서고, 마치 근대인이 믿었던 혁명 같은 시간에 투신하는 일은 ‘끝났다’고 말하는 시대이기도 했던 것이다.
놀라운 것은 그러한 정의에 대한 열망을 상당히 냉소하게 된 시대가 아닌가 했던 시점부터 오히려 더 광장을 향한 열망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그렇게 전 대통령이 자리에서 물러났고, 다시 또 세상은 들끓는다. 이런 정의로운 주체는 어떻게 (재)탄생하게 된 것인지가 우리 사회의 무척 중요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런 열망의 이면에는 자기 진영 옹호나 지지가 깊이 깔린 측면도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러한 자기 진영 수호 의지의 그 밑바탕에 있는 것 또한 ‘정의를 향한 열망’이라는 점이다. 놀라울 정도로 그런 의지는 ‘자기 이익’ 혹은 ‘자기 집단의 이익’보다는 ‘내가 지지하는 집단이 정의롭다’는 의식을 바탕에 깔고 있다. 나아가 그런 나 또한 정의로운 존재이며, 정의롭고자 하는 열망 속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어쩌면 이토록 전 사회적으로 정의를 향한 갈망이 팽배한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얼마나 철저하게 부정의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일지도 모르겠다. 사회 곳곳에서 사람들이 겪어왔던 거의 모든 경험이란 처절할 정도로 정의와는 정반대였을지도 모른다. 공정한 게임, 정의로운 결과, 합리적인 해결이나 룰 같은 것은 도무지 찾아보기 어려웠고 모든 게 불합리한 갑질, 불공정한 경쟁 따위로 좌우되는 경험이 인생 내내 누적되는 건 아닐까?
상사에게 성추행을 당해도 항변할 방법이 없고, 법과 제도는 나를 전혀 지켜주지 못한다고 느끼며, 입시나 취업, 나아가 부의 축적 같은 사회의 모든 측면이 각자의 힘이나 인맥에 따라 좌우된다. ‘공정한 심판 혹은 관리자’ 자체를 거의 경험해본 적 없는 삶에서 결국에는 정의를 향한 열망이 폭발하고, 어떤 식으로든 그 실현을 절박할 만큼 바라게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어쩐지 정의로움을 향한 갈망으로 모인 정의로운 시민들이 한편으로는 대단해 보이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쓸쓸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들은 진심으로 더 나은 세상을 바라는 것이다. 어쩌면 상식적인 공정함과 합리적인 정의로움을 경험해본 적이 없어서, 그토록 강한 열망을 지니는 것이다. 아마도 정의로움을 향한 목마름은 이 삶이 끝날 때까지 이어질지도 모르겠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