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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소개팅만 하면 실패하지?
지금은 ‘미팅’이라는 단어가 비즈니스 용어로 쓰이지만, 이성 간 만남을 뜻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왠지 올드한 느낌이고 어색하죠? 그런데 앞으로는 ‘소개팅’의 인식 또한 그렇게 변할지 모릅니다. 요즘 Z세대와 밀레니얼 세대들은 이성 친구를 모바일 ‘소개팅 앱’을 통해서 만나기 시작했으니까요. 비단 연애 상대뿐 아니라 관심사와 취미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다양한 친구를 찾기도 합니다. 왜 젊은 세대들은 모바일 플랫폼을 통해서 새로운 인간관계를 찾기 시작한 걸까요?
소개팅을 해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주선자에게 소개받은 내용과 현실의 체감온도는 차이가 있죠. 남자답게 생겼다고 하면 ‘이글아이’가 나오고, 재미있다고 하면 깃털 같은 사람과 마주했던 이유는 우리가 주선자에게 들었던 이야기들이 객관적 정보보다는 주관적 의견에 더 가깝기 때문입니다.
특히 첫 만남에서는 무엇보다 대화 코드가 잘 통하지 않는다면 성사되지 못할 가능성이 큰데요. 막상 상대가 마음에 들지 않아도 첫 만남에서는 끝까지 좋은 인상을 남기고자 노력해야 했습니다. 그게 상대방과 주선자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였으니까요.
마음에 드는 사람은 고사하고 소개팅에 ‘실패’하는 경험들만 쌓이면서 소개팅에 기대했던 환상은 점차 깨지기 마련이었습니다. 이처럼 기존의 지인 소개팅은 실제로 만나보기 전까지는 상대방의 정보가 제한적이라는 한계와 막상 첫 만남을 가졌을 때도 나와 잘 맞는 경우보다는 그렇지 않은 경우들이 보통 더 많았습니다.
바보야, 문제는 ‘정보 비대칭’이야!
그럼에도 우리가 지인 소개팅을 고집했던 이유는, 내가 특정 모임이나 조직에 소속되지 않고도 새로운 사람과 만날 수 있는 가장 쉽고 일반적인 방법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지인을 통한 소개가 전혀 모르는 사람을 직접 찾아서 만나는 방법보다 특별히 만족스럽지는 않았다는 겁니다.
인연을 찾기까지 ‘과정’은 분명 더 편했지만 뚜껑을 열어보면 더 좋은 ‘결과’는 아니었다는 것이죠. 전적으로 주선자로부터 전해 들은 내용에 의존하는 ‘정보 비대칭성’이란 명확한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대로 주선자 입장에서도 결과에 대한 심리적 리스크가 작용해 기대보다는 부담이 더 컸습니다.
하지만 소개팅 앱을 통해서는 사전에 상대방에 대한 다양한 정보들을 미리 파악할 수 있습니다. 외모는 물론, 어떤 음식을 선호하고 어떤 운동을 좋아하는지 성격이나 취미, 취향을 알 수 있죠. 또한 상대방과 내가 서로 ‘매칭’된다면 채팅을 통해서 대화가 매끄럽게 잘 이어지는지 알아보거나 만약 마음이 내키지 않는다면 반드시 첫 만남까지 발전하기 전에도 관계 형성을 멈출 수 있습니다.
이제는 나와 안 맞는 사람을 예의상 만나지 않아도 잘 맞는 사람만 만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새로운 만남의 기회는 더 많아진 반면 만남에서 실패할 확률은 더 줄어든 것이죠. 또한 소개팅 앱은 지인이 귀띔해준 정보처럼 ‘재미있다’ ‘귀엽다’는 거짓 정보(?)로 나를 현혹하지도 않습니다.
순정이 있던 디지로그 시대와 풀 디지털
이전보다 다양해진 직업군에 따라 라이프 사이클이 맞는 사람을 찾는 것도 하나의 이유입니다. 요즘은 모든 사람이 평일에 일하고 주말에 쉬는 게 아닙니다. 서비스업 종사자는 주말에 일하며, 의료업 종사자는 스케줄 교대 근무를 하는 등 각자 치열한 삶은 많은 시간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삶의 질은 나아졌지만 딱히 여유로운 여가를 즐기기 어려운 시간 빈곤 시대에 사는 것이죠. 시간 빈곤 시대에서 우리는 삶의 많은 영역을 디지털의 도움을 받습니다. 쇼핑이나 유튜브처럼요. 소개팅 앱 또한 새로운 관계 형성에 투자하는 기회비용을 일종의 중매 역할로 줄여주는 셈입니다.
이렇게 생각하니 디지털 소개문화는 더 삭막하게 느껴지지만 나름 순정이 있던 때가 있었습니다. 1990년대에 ‘넷심’을 흔들었던 스카이러브, 세이클럽 등 채팅으로 새로운 사람을 사귀던 시대에는 상대방에 대한 어떤 정보도 없이 오직 대화만으로 ‘어떤 사람일까’ 밤새 궁금해하기도 했습니다. 비록 디지털에서의 만남이지만 나름의 아날로그적 감성이 묻어 있었던 것이죠.
지금은 다릅니다. 모바일 소개팅 앱에서는 상대방에 대한 모든 정보를 사전에 파악한 상태로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과거 채팅 문화가 일대일 소통이었다면 지금은 서로 여러 명을 소개받는 다대다 방식으로서 ‘디지로그’ 시대를 지나 ‘풀 디지털’로 접어들면서 더욱 다양한 관계를 형성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소개팅 앱과 결혼정보 회사가 닮은 점
우리에게 익숙한 결혼정보 회사의 비즈니스 모델도 살펴보면 소개팅 앱과 유사한 점이 있습니다.
- 많은 남녀 고객들의 데이터베이스(세부적인 취향에 대한) 확보
- 세부 데이터베이스 항목의 상관관계를 분석해 연관도 높은 커플을 매칭
- 나와 가장 잘 맞을 확률이 높은 사람과 만남 성사
단순히 잘난 사람끼리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라 ‘정보 비대칭성’의 해소로 만남을 주선하는 것이죠. 소개팅 앱 역시 다양한 정보에 기반해 나와 가장 잘 맞는 사람을 추천해주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또한 얼마 전 보도에 따르면 ‘페이스북’이 그동안 확보된 수억 명의 사용자를 토대로 소셜 데이팅 서비스 준비를 예고해 디지털 플랫폼을 통한 소개문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리기도 했습니다. 앞으로 10년 뒤에는 소개팅이라는 개념이 지인을 통한 소개에서 디지털로 변화하는 건 아닐까요?
아직 주변에 소개팅 앱 하는 사람 없던데?
다 좋아 보이는 소개팅 앱이지만 나름의 단점과 한계도 존재합니다. 그동안 지인을 통한 소개가 그래도 나쁘지 않았던 이유는 지인이라는 ‘연결고리’가 당사자들을 담보하고 보증했기 때문이죠.
반면 소개팅 앱은 당사자 간 어떤 연결고리도 없이 모든 소통은 사용자들 스스로가 감당하므로 그만큼 책임감 있는 언행이 요구된다는 점이 있습니다. 마음에 안 들면 다시 볼 일 없다고 해서 서로가 상처를 주는 일들만 반복된다면 소개팅 앱을 사용한 경험이 썩 개운하지 않을지 모릅니다.
또한 디지털 소개문화에 대한 사회적 시선과 여론도 아직 긍정적이지 않습니다. 비록 서비스를 사용하는 유저들은 신선하고 흥미롭다는 반응이지만, 서비스를 사용하지 않는 더 많은 유저는 만남의 출처를 따져볼 때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날 수 있겠냐는 따가운 시선을 보내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람을 디지털 공간에서 알아간다는 사실은 설렘만큼 우려의 시선도 공존합니다.
그리고 소개팅 앱 시장이 형성된 지 어느덧 2–3년이 지났음에도, 급격히 늘어난 서비스들에 비해 아직 사용자 트래픽 면에서 성장이 정체되어 있다는 점은 소개팅 앱이 변화를 견인하나 아직 완전한 대세로는 자리 잡지 못한 사실을 보여줍니다.
디지털 시대의 만남에도 낭만이 있을까?
스마트폰 이름이 핸드폰이던 시절을 더 거슬러 올라가면 공중전화로 통화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삐삐로 주고받던 한 통의 알림과 수화기 너머로 건네는 말 한마디는 많은 성의를 담아야 했죠. 연락을 주고받기에는 너무나도 부족한 환경이었기에 더 채워야 했던 것은 정성과 배려였습니다. 닿지 못해서 절절했던 시절과 너무 빠르게 닿아 아쉬울 것 없는 지금은 꽤 온도 차이가 큽니다.
이렇게 많은 사람을 빠르게 지나치다 보면 기대만큼 나와 잘 맞는 인연을 만날 수 있을까요? 카지노에서는 주사위를 던지는 횟수가 많아도 높은 숫자가 나올 확률은 비례하지 않는다고 하죠. 관계의 양이 관계의 질을 보장하지 않음에도 계속해서 인연의 주사위만 반복해서 던질 우리에게 가끔은 디지털의 치밀함보다 밀도가 부족했었던 그때가 떠오르는, 디지털 시대의 시선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