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만 문 여는 점포, 낮 시간 공유 점포로 활용
복고풍 감성을 살린 삼겹살 전문식당으로 유명한 강남구청역의 ‘88선수촌’ 매장은 낮에는 ‘500도씨 제육’이란 덮밥집으로 변신한다. 공간은 하나지만 시간에 따라 2개의 식당이 문을 여는 것이다. 밤에만 장사를 하는 하는 탓에 강남구청역 ’88선수촌’ 매장은 낮에는 불 꺼진 공간이었다.
이 매장을 낮에도 북적거리는 공간으로 되살린 이는 소셜벤처 ‘위대한상사’다. 위대한상사는 상업 공간의 비효율성을 공유를 통해 해결하고 수익을 창출해내는 소셜벤처다. 위대한상사는 첫 번째 브랜드로 외식업 공간을 나눠 쓰는 ‘나누다키친’을 선보였다. ‘나누다’의 의미는 크게 3가지다. 시간을 나누고 공간을 나누고 수익을 나눈다는 것이다.
빅데이터 기반 정보 분석, 창업자 생존율 높아
나누다키친은 2018년 3월 공식 오픈했다. 고객은 낮에 공간을 빌려주는 점포주와 이를 빌려 쓰는 외식 창업자들이다. 점포주들은 쉬면서도 추가 수익을 올리고 창업자들은 보증금이나 권리금 없이 소자본으로 창업에 도전해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나누다키친은 공유 점포가 등록됐다고 해서 무작정 창업자들을 연결해주는 것이 아니다. 등록된 점포가 점심 창업이 가능한지 그리고 예상 매출액과 적정 대여료 등을 머신러닝(기계학습)을 통해 산출한다. 이를 기반으로 등급을 나누고 상위 등급에 속하는 경우에만 매칭을 진행한다. 덕분에 창업자들의 만족도가 높은 편이다. 1년 반 사이에 60여 건의 매칭이 이뤄졌고 이 가운데 개인적 사유가 아닌 수익성 문제로 폐업을 한 경우는 단 3곳뿐이다.
기존의 유사한 외식업 플랫폼 업체의 경우 공간이 나오면 연결만 해줬습니다. 하지만 플랫폼 사가 고객들에게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해주지 않는다면 시장은 결코 확장될 수 없습니다. 기존 외식업 공간의 임대는 개인 간 거래가 대부분이었고, 이 경우 창업자들은 을, 정, 병이 될 수밖에 없어요. 중간에서 브로커들이 엄청난 수수료를 챙기지만 부동산 중개법 영향을 받지 않아 그야말로 암흑 시장이었습니다. 이런 틀을 깨고 싶었어요.
나누다키친은 빅데이터를 기반으로 상권과 점포의 월 예상 매출액을 측정해 창업자에게 적합한 메뉴와 점포를 매칭한다. 점포주에게는 수수료를 받지 않고, 기존 매장의 집기가 아닌 별도의 집기를 이용해 관리한다. 만일 기물이 파손되면 계약서 조항을 바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김 대표는 “큰 수익을 바란다기보다는 창업자분들의 안정적이고 지속 가능성을 높여주는 서비스에 주안점을 둔다”고 전했다.
현재 매달 등록 요청이 오는 점포 수는 250–300여 개. 창업 신청자 수는 150–200명에 이른다. 매칭률 또한 처음에는 월 2–3건에 그쳤지만 최근에는 월평균 20여 건이 성사된다. 이 같은 성장세에 힘입어 위대한상사는 인터밸류파트너스, IBK기업은행 등 4개 기관으로부터 이달 시리즈A 투자로 23억 원의 투자금을 유치했다.
시간당 고정비를 낮추다
나누다키친의 차별성은 1000만 원 대의 낮은 초기 비용으로 창업자들의 문턱을 낮춘 것이다. 위대한상사는 나누다키친 서비스를 공식 출범하기에 앞서 주요 상권에 6개 시험 매장을 열고 시간제 공유 점포 서비스 제품을 개발했다.
이 과정에서 대형 유통사와 좋은 가격으로 식자재를 신용으로 유통하는 방법과 무인결제 시스템을 개발했고 디바이스 업데이트와 결제 시스템을 고도화했다.
키포인트는 시간당 고정비를 낮추는 것이었어요. 고정비는 흔히 공간을 빌리는 금액, 인건비, 식자재 등이 있는데 한 시험 매장에서는 일 매출이 100만 원 이상 나옴에도 수익이 마이너스였습니다. 문제는 인건비였죠. 매장이 80–90석으로 큰 편이었거든요. 만일 무인결제 시스템을 제공하지 못하면 단순 매출은 올리겠지만 수익을 올리지는 못한다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초기 비용이 많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안드로이드 앱으로 키오스크를 완성했습니다.
위대한상사는 “이 앱을 구동해 실제 운영해 본 결과 1.5명 정도의 인력 감축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나누다키친은 또 공동브랜드로 통합해 마케팅을 진행하기 때문에 점주의 입장에선 개인 홍보 채널보다 효율적으로 홍보를 할 수 있다. 또 낮과 밤의 점포들 사이에서 서로 할인이나 예약 이벤트 등을 통해 시너지 효과도 낸다.
유명 셰프 레시피 제공과 메뉴 변경 가능
나누다키친이 개발한 점심 메뉴는 크게 2가지다. 하나는 장진우 셰프가 개발한 카페 뷔페와 ㈜미담제작소의 유명 셰프진과 공동 개발한 500도씨 제육이다. 다음 달에는 신라호텔에서 20–30년간 몸담아온 셰프 출신 3명과 함께 연구 개발한 중식 브랜드가 출시된다.
경쟁사의 등장과 트렌드의 변화로 시장은 계속 변하는데 기존의 외식 창업의 형태에선 크게 바꿀 수 있는 것이 없어요. 저희는 메뉴와 소스 등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도록 모듈 형태를 도입했습니다. 매장마다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낼 수 있는 사이드 메뉴 개발도 활발합니다.
위대한상사는 계약자들에게 주 1회 레시피를 가르쳐주는 교육센터도 운영한다.
메뉴 변경은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항이 아니기 때문에 언제라도 가능합니다. 고정된 하나의 레시피로 계속 운영되는 것이 아니라 창업자들과 양방향으로 소통해가며 레시피를 개발하고 발전시켜가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폐업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 절감
2017년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프랜차이즈 신규 창업 비용은 1.2억 원에 이른다. 억대의 돈이 들어가지만 성공률은 그리 높지 않다. 작년엔 국내 프랜차이즈 역사상 처음으로 폐업신고자가 창업자보다 많았다.
폐업은 단순한 개인이나 가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발생합니다. 공유 점포는 외식업 창업의 새로운 대안으로 공간 활용을 높여 생기는 수익으로 고정비를 절감해 폐업률을 낮추는 효과를 가져옵니다.
나누다키친의 계약 기간은 평균 1년이다. 이 가운데는 미슐랭 1스타 출신의 셰프도 있고 요식업에 경험이 없었던 주부나 청년 창업자들도 있다.
주로 본 창업을 하기 전에 외식업을 경험해보고 싶은 분들과 주부들처럼 점심에만 일할 수 있는 분들 그리고 은퇴 자본으로 음식점 창업을 고려하고 계신 분들이 많습니다. 청년 창업자들의 경우 본인의 레시피를 테스트해보거나 취업 준비 과정에서 단기간 운영해보고 싶은 분들 그리고 셰프처럼 외식업 전공을 한 분들이 자신의 역량을 테스트하기 위해서도 옵니다.
김 대표는 “처음부터 사회적 가치를 만들고자 시작한 사업은 아니었다”면서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공교롭게도 공간을 빌리는 분들 가운데는 사회적 약자가 많았고 공간을 빌려주는 분 역시 폐업을 방지하기 위해 절박한 심정으로 빌려주는 분들도 꽤 있었다”고 전했다.
이런 이유로 위대한상사의 사업모델은 사회적 가치를 인정받아 2018년 제13회 아시아 소셜벤처 경진대회(Social Venture Competition Asia, SVCA)에서 대상을 받고, SK 사회성과 인센티브 프로젝트 참여 기업에 선정됐다. 나누다키친은 저녁에만 장사하는 음식점이나 주점 등의 낮 시간을 활용해 창업할 수 있는 새로운 공유 경제 시장을 개척했다는 평을 얻었다.
올해에는 서울시 청년 프로젝트 민간보조사업자로 선정돼 서울시 청년들을 유휴 점포에 공간을 매칭해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밖에도 서울시 인증 공유경제 기업으로 신규 지정되는 등 대내외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실패해도 일어설 수 있는 채널이 되고 싶어요.”
김 대표가 공유경제에 본격적인 관심을 갖게 된 건 셰어하우스 김정현 우주 대표를 알고부터다. 그는 위대한상사 창업에 앞서 삼성화재와 국가신용도를 평가하는 기관인 S&P 회사에서 일하면서 금융시장의 비효율성을 절감하고 P2P금융 플랫폼 렌딧(LENDIT)을 공동창업했다.
랜딧에서 공유 주택 서비스를 제공하는 김정현 우주 대표와 인연을 맺게 되면서 공유경제에 매력을 느꼈고 공유 점포의 시장성에 눈을 떴다.
사회 초년생들이 아무리 좋은 직장을 다닌다 해도 전세든 월세든 집을 얻기 위해선 멀리서 출근할 수밖에 없어요.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엄청납니다. 우주는 이 문제를 공유란 방식을 통해 풀어가는 것이 매력적으로 보였습니다. 같이 사업모델을 고도화하면서 거주공간의 비효율이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걸 깨달았고 거주 공간이 이 정도면 상업 공간은 훨씬 더 심각할 것으로 봤죠.
외식업 창업 시장은 가장 낮은 진입 장벽이 있지만 가장 경쟁이 심하고 성공하기 어려운 시장이다. 누구나 뛰어들지만 성공해서 나가는 경우가 많지 않다.
나누다키친을 통해 크게 성공하는 것도 좋겠지만 우리 사회에서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채널 하나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사업을 시작하려는 분들이 본인의 의지와 아이디어 외에는 다른 큰 부담을 갖지 않고 시작할 수 있는 창업 시장을 만드는 게 꿈입니다.
위대한상사의 수익 모델은 공간 매칭과 상권 분석, 키오스크, 레시피 교육과 대행을 통해 초기 비용을 받는다. 여기에 매달 수익의 2–4%를 수수료로 받는다. 나누다키친은 서울과 수도권을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최근에는 부산경남영업본부 신설을 통해 창원, 부산 진출을 시작으로 전국 단위로 사업을 넓혀간다.
국내 최초 임팩트 유니콘 기업을 꿈꾼다
김 대표는 “공유경제는 이제 트렌드가 아니라 패러다임”이라며 “ 자동차, 사무실에 이어 공유에 대한 서비스가 산업 전반에 침투할 것”으로 내다봤다.
전통적인 시장에서는 경쟁을 통해 유니콘 기업(1조 원이 넘는 기업 가치를 가진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성장합니다. 하지만 공유경제는 기존의 자산 가치를 통해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가기 때문에 다른 서비스를 제공하는 기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저희 같은 작은 회사도 파트너사가 30개가 넘고 각각의 파트너사와 시너지 효과를 내요.
위대한상사는 은퇴 후 제2의 삶을 설계하는 서울시 50플러스재단, 서울시 다문화가정 지원센터, 서울시 먹거리 창업센터, 시중은행과 손해보험사, 카드사 등 다양한 회사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그 영향력과 제품 서비스를 발전시켜나간다.
위대한상사는 단순히 경쟁에서 살아남아 최고가 되는 이기적인 회사가 아니라 수많은 파트너사와 시너지를 내면서 함께 발전하는 임팩트 유니콘 기업이 되고 싶습니다. 공유 점포의 세계는 무궁무진합니다. 창업자나 점포주, 파트너사 가릴 것 없이 상담을 받아보시면 생각보다 많은 길이 열려 있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문을 두드려주세요. 언제나 환영입니다.
글: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 제공: 위대한상사
원문: 이로운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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