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번째 창업한 회사에 6년간 몸을 담았다 나왔다. 3–4년 뒤 다시 창업할 생각이다. 지금은 그날을 위해 바탕을 넓히고 있다. 호흡을 길게 가져간다. 이 기간, 더 늦기 전에 내가 배웠던 것들을 나만의 원칙으로 정리해두려 한다. 내가 정리하는 원칙들은 그간 했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함이다. 이 원칙들은 합리적인 고민과 경험에 의해 바뀔 수 있다. 그땐 내가 한 번 더 성장했다는 말이 된다.
‘문제 해결’과 관련된 원칙을 말해 보려 한다.
얼마 전 「넷플릭스를 이끌어온 ‘캐나다 원칙’」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넷플릭스가 초기에 캐나다 진출을 놓고 고민한 데서 시작한 원칙으로, 캐나다 원칙이란 위기를 맞을수록 미래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이 원칙으로 캐나다 진출 문제, 아마존 인수 제안 문제, 블록버스터 인수 거절 문제, 계약금 인상 문제 등 굵직한 문제들을 헤쳐나갔다.
내가 사업하며 했던 가장 큰 실수 중 하나도 이 캐나다 원칙을 지키지 못했던 데서 나왔다. 바로 유튜브를 늦게 들어간 것. 우리 회사는 페이스북에서 카드 형태에 기반을 둔 콘텐츠 회사였다. 3년 전쯤 우리 채널의 도달은 정점을 찍었고, 유튜브는 여기저기서 조금씩 이야기가 들려오던 시기다. 사실 그 이전부터 강력한 채널이었으나 나는 몰랐다. 이때 우리 조직 내부에서도 ‘유튜브를 시작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결과적으로 그때 우리는 그러지 못했다. 그때 우리의 판단 기준은 이랬다.
지금 영상 제작(유튜브 진출)을 위해 발생하는 비용과 시간 대비 유튜브에서 얻을 수 있는 수익과 성공 가능성이 높은가?
이런 판단 기준으로 고민하다 보니, 유튜브를 시작하려야 시작할 수가 없었다. 당연히 영상 콘텐츠는 카드 콘텐츠보다 제작 비용과 시간이 크고, 새로운 인력과 장비에 투자도 해야 한다. 그럼에도 유튜브가 제대로 클 것이라는 확신은 없었고 하필 페이스북에서 우리 채널의 도달은 전성기를 맞았다. 광고비 한 푼 들이지 않고도 100만 도달을 넘기는 콘텐츠가 많았다. 당장의 손익을 놓고 따져보니, 시도할 수가 없는 일이었다.
심지어 이런 고민을 우리는 2년 이상 지속했다. 2년 뒤 유튜브가 이미 대세가 되고, 페이스북이 하락세에 접어들고 나서야 뒤늦게 영상에 뛰어들었다. 이때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은 너무나 컸다. 페이스북에서는 언제나 우리가 선두주자였지만 유튜브에서는 한참 후발 주자였다. 이 사실 자체도 낯설었는데, 영상의 호흡과 소통 방식 등 다른 모든 것도 낯설었다.
문제의 종류에 따라 판단 기준을 달리해야 한다.
나는 이 경험 이후 문제의 종류에 따라 나의 판단 기준을 바꿔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모든 문제는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고 생각한다.
- 생사의 문제
- 손익의 문제
사실 대부분의 문제는 손익의 문제다. 당장 숫자를 확인하고 무엇이 득이고 무엇이 실인지 비교해 숫자가 좋은 쪽을 선택하는 것. 어떤 카피를 쓰고, 어떤 이미지를 사용할지, 이번 행사의 예산과 규모는 어떻게 설정할지. 하지만 진짜 중요하고 장기적인 문제는 생사의 문제다. 이 선택 때문에 우리가 3년 뒤에 무너질지, 솟아날지 가르는 문제 말이다. 이런 종류의 문제를 손익(+, -)으로 따지다 보면 완전히 그릇된 선택을 하게 될 수 있다.
우리가 3년 전 유튜브를 딱 그렇게 판단했다. 언뜻 보기엔 합리적인 것 같지만, 손익과 효율성만 생각하면 절대로 할 수 없는 도전들이 있다. 그 도전이 사실은 무조건 해야 하는 도전임에도 말이다. 이런 문제는 +냐 -냐를 따질 게 아니라 0이냐 1이냐, 즉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고민의 기준은 이렇게 잡아야 한다.
3년 뒤 이 일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가 심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가? 3년 뒤 이 일을 함으로 인해 우리가 큰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는 대답이 나온다면, 당장 손실이 커지고 비효율이 발생하더라도 그건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문제인 것이다. 유튜브와 영상 콘텐츠에 도전하는 일은 비효율을 초래하고 당장에 손실이 생길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3년 뒤 (채널의 흥망성쇠 변화가 빠르고 예측하기 힘든 SNS 시장에서) 유튜브와 영상에 적응하지 못한다면 우리가 심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판단했어야 한다.
넷플릭스의 캐나다 원칙도 이와 비슷하다 생각한다. 위의 링크에서 알 수 있듯이 그 당시 넷플릭스의 대여 모델은 전체 매출의 3%에 불과했음에도 판매 모델을 버리고 대여 모델에 집중하기로 했던 결정, 구독 모델이 잘나감에도 오리지널 콘텐츠 제작에 집중하는 결정 등은 모두 최소 3년 뒤를 판단 기준으로 삼았기에 가능한 결정들이다.
이게 간단한 것 같아도 정말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에 수많은 대기업도 시대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해 무너진다. 어쩌면 대기업이기 때문에 더 그런 것일 수도 있다. 한 번의 결정이 불러오는 손실의 폭이 상상 이상으로 크기 때문에. 내 경험상 손익(+, -)이 아니라, 생사(0, 1)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하는 문제는 크게 세 분야가 있다.
- 사람 문제
- 브랜딩 문제
- 비전 문제
이 문제들은 모두 손익 계산기만 두들기다 보면 도전하기 어려워진다는 공통점이 있고, 3년 뒤 우리의 미래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는 공통점이 있다.
사람 문제는 특히 판단이 어려운 영역이다. 실력이 정말 뛰어나고 우리 회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던 사람이 사내 정치를 일으킨다거나 윤리적 문제를 일으켰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이 역시 손익의 문제로 바라보면 실수할 확률이 높다. 당장 이 사람을 내보내야 한다는 걸 직감하더라도, 실력 있는 대체자를 찾기가 정말 어렵기 때문에 계속 품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렇게 질문해 봐야 한다.
3년 뒤 이 사람이 일으키는 사내 정치 문제가 우리 회사에 심각한 악영향을 미칠까? 3년 뒤 이 사람이 우리 회사에 있다면 우리 회사가 무너질까?
당장 3개월 앞을 내다보면, 이 능력자를 대체하는 시간과 비용이 정말 크지만, 3년 뒤를 내다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대체자는 어떻게든 찾을 수 있겠지만, 한번 골이 깊어진 사내 정치 문제는 시간이 지날수록 도려내기 어려워진다.
다시 유튜브 이야기로 돌아와서 마무리하자면,
우리 회사가 유튜브에 도전하지 못한 시기에 다행히 넋 놓고 놀고만 있던 것은 아니다. 또 다른 우리의 미래라고 생각되는 일에 투자했고 그 덕에 지금도 또렷한 비전을 보고 달려 나간다. 하지만 콘텐츠 파워가 가장 큰 힘이었던 회사의 입장에서 강력한 채널을 잃었다는 것은 치러야 할 대가가 컸던 것은 사실이다.
그때 뼈저리게 느꼈고 후회했기 때문에 이 원칙을 정리해둔다. (참고로 이 원칙은 『초격차』라는 책에도 비슷하게 등장한다. 그 책에서 가장 크게 공감하고 배웠던 부분이다. 읽어보길 추천한다.) 심각하고 중요하고 어려운 문제를 마주하면 손익을 따지기 위해 계산기를 꺼내기 전, 먼저 이렇게 질문해보자.
3년 뒤 이 일을 하지 않음으로 인해 우리가 심한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있는가? 3년 뒤 이 일을 함으로 인해 우리가 큰 기회를 얻을 가능성이 있는가?
Yes라는 대답이 나온다면, 그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인 것이다. 계산기는 그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위해 꺼내도 늦지 않다. 이 원칙은 사업뿐 아니라 지금 나의 삶에도 똑같이 적용한다. 내 나이, 내가 모아둔 돈, 앞서 나가는 주변 사람들을 생각하며 자꾸 숫자로 비교했다면 나는 회사를 나오는 판단은 절대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 3년 뒤를 상상한다면 그 모습이 더없이 가슴 뛰게 다가온다.
마지막으로 이때의 경험을 통해 깨달은 걸 추가로 적어둔다.
- 내 삶의 일정 시간은 반드시 미래를 상상해 보는 데 사용한다.
- 가장 잘나간다고 생각될 때, 가장 새로운 것을 준비한다.
원문: 이재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