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의 집회와 광화문의 집회
개인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광장’ 자체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성향이라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최근 벌어진 일련의 집회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기대’보다는 ‘우려’에 가깝다.
한때 광장의 정치는 진보, 혹은 좌파, 혹은 ‘빨갱이’의 전유물이었다. 노무현 대통령 탄핵 반대 집회나 이명박 대통령 규탄 집회 등에서 광장을 메웠던 건 진보 성향의 리버럴리즘이었고, 보수는 이에 대해 ‘질서 문란 행위’라고 규탄하는 것이 일반이었다. 광장의 정치는 때로는 무위로 돌아가기도 했고, 때로는 역동적인 변혁의 원천이 되기도 했다. 사실 빈도로 따진다면 전자 쪽이 많지만, 비록 적더라도 성과를 낼 수 있고, 실제로 낸 적도 있다는 자신감은 광장의 정치에 대한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게 만들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보수, 혹은 우파, 혹은 ‘수꼴’들마저도 자연스럽게 광장으로 나서고 있다. 참 재미있는 게 지난 주말 서초동에 검찰 개혁을 외치는 수많은 군중이 운집했을 때, 보수 측에서는 이 집회의 규모를 어떻게든 작게 잡아서 그 의미를 애써 부정하고 싶어했다. 혹은 이들이 초래한 질서 문란을 굳이 부각시켜 이른바 ‘물타기’를 시도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여기까지는 전형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광화문에서 이번에는 보수 중심의 조국 규탄 집회가 벌어지자 반대로 진보 진영에서는 이 집회의 규모를 어떻게든 작게 잡아서 그 의미를 애써 부정하고 싶어하거나, 혹은 이들이 초래한 질서 문란을 바탕으로 이 집회의 의미가 대단치 않다는 걸 부각시키려는 모습이 눈에 띈다. 반대로 이 집회를 옹호하는 이들은 “질서 문란 행위는 일부에 불과했다”라거나 “우리도 200만 가즈아!” “수백만이 광장에 모여 정권 규탄의 민의를 대변했다”며 ‘(광장 정치의) 규모=시민의 뜻’이라는 도식을 강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광장의 정치를 보며 드는 비관적인 생각
정말 긍정적으로 해석한다면 보수/우파 역시 광장에 모이는 ‘민의’가 결코 무시할 만한 것이 아님을 인정하게 되었노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는 결국 보수조차도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도저히 정치를 지속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는 뜻이기도 하기에, 마냥 긍정적으로 읽을 수만은 없다.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우리는 이른바 ‘대의민주주의’라는 체제를 수립시켜왔고, 그 체제를 온건하게 유지하기 위해 유권자들이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게끔 ‘언론의 자유’를 보장해왔다. 원래대로라면 언론이 유권자들에게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유권자들은 그 정보를 토대로 투표권을 행사하여 가장 적절한 사람을 대표자로 선출하여 정치를 수행하게끔 했어야 했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현 시점에서는 완전히 ‘붕괴’되어버린 게 아닌가.
지금 시대에는 누구도 언론을 믿지 않는다. 언론이 정확한 정보를 준다는 환상 따위는 누구도 갖고 있지 않다. 언론은 객관적이고 중립적이어야 한다고들 하지만, 그 객관과 중립이 일정한 정치적 관점을 전제로 각자의 무게중심을 설정한다는 기본 전제마저도 인정받지 못한다. 언론이 제기능을 못하니 선거 또한 제기능을 발휘할 수 없고, 선거가 엉망이 되면 자연스럽게 정치는 개판이 된다. 그 결과가 바로 ‘광장의 정치’다.
다시 한번 긍정의 힘을 끌어모아보자면, 이제는 진보뿐 아니라 보수쪽에서도 ‘뭔가 잘못되었다’는 걸 직감할 만큼 시스템의 위기를 양쪽 모두 실감했다는 데 의의를 둘 수도 있겠다. 하지만 이 위기의식이 시스템의 개선과 복구를 위한 합의로 이어지는 게 아니라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광장에서 ‘퇴출’시키는 데 목표를 둔 형태로 나아가는 이상, 이러한 광장의 정치는 결국 대의민주주의의 유명무실화로 이어지리라는 비관적인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다.
원문: 박성호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