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베 개각에 대한 단상 1: 향후 한일 관계는 여전히 안개 속」에서 이어지는 글입니다.
어디까지나 개인의 단편적인 생각의 조각들을 주워 모아 정리한 것이므로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고, 내 예상이 맞을 수도 틀릴 수도 있음을 전제한다. 만일 내 예상이 맞으면 힘찬 박수를 보내주면 될 것이고, 행여 다른 결과로 나타나 빗나가버리더라도 그 책임과 식견을 묻지 않는 것이 SNS의 불문율이라는 것을 확인하고 시작하도록 한다.
어제 글 말미 부분에 고이즈미 신지로(小泉進次郎)가 아베 뒤를 이어 바로 총리에 오르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했다. 이 점에는 다소 이견이 있는 듯하다. 나는 졸저 『도쿄 30년, 일본 정치를 꿰뚫다』에서도 명기했듯 고이즈미 신지로라는 젊은 정치가가 아버지 고이즈미 준이치로와 함께 총리 부자(후쿠다 다케오와 야스오 부자가 있음)로 등극할 것은 100% 틀림없는 일이라고 쓴 바가 있다.
고이즈미가 초고령사회 일본에서 40대 젊은 총리이 되어 일본호를 이끌고 갈 것이라는 점에는 한 치의 이견도 없다. 다만 그 시기가 언제이며, 어떤 절차를 밟아 총리 자리를 꿰차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한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나는 아베 → XXX → 고이즈미 순으로 예상한다. 물론 2021년 9 월에 자민당 총재 임기가 끝나는 아베가 순순히 총재직에서 물러난다는 전제하에 성립되는 시나리오다. 그리되면 아베 후임으로 XXX가 총리가 되어 아베 퇴진 후의 후유증과 요동치는 정국이 어느 정도 정돈된 후 고이즈미가 등극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물론 그 이유로 고이즈미의 나이가 현재 만 38세라는 점을 들 수 있지만, 나이가 젊다는 것은 무기가 될 수가 있고 약점이 될 수도 있는 요소이기에 나이와 경력이 부족하기 때문에 당장 총리가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내가 고이즈미의 총리 등극이 빨라야 차차기 정도일 것이라 예상하는 근거는 다음과 같다.
걸림돌 1: 파벌 중심적인 자민당 내 정치 역학
우선 일본의 정치체제가 대통령제가 아닌 의원내각제라는 점이다. 이는 아무리 국민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라 하더라도 바로 총리가 될 수 있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의미이다. 한국처럼 대통령을 국민이 직접 투표로 선출한다면 국민적 인기가 높은 고이즈미가 자민당 후보로 나와 선거전을 치른다면 가능성이 크겠지만, 일본은 의원내각제라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지금 일본의 정치지형은 자민당에 의한 일당 지배체제가 60년 이상 이어진다. 통상 중의원 선거를 통해 제1당이 된 정당의 대표가 국회에서 총리으로 선출되는 구조이기에 고이즈미가 총리가 되기 위해서는 먼저 자민당 총재라는 자리를 꿰차야만 한다.
자민당은 2019년 7월 현재 중의원 의석 465 중 285석을 차지한다. 그중에 제일 큰 호소다파(아베 총리의 파벌, 96명)을 포함해 7개의 파벌이 호시탐탐 총재직을 노리는 형국이다. 그러나 고이즈미는 지금까지 어느 파벌에도 속하지 않았다.
이 말은 고이즈미가 총재 선거에 나선다면 파벌의 역학구조를 극복해야 함을 뜻한다. 즉 자민당의 파벌정치가 과거에 비해 구심력을 잃고 영향력이 축소되었다고 하지만 자민당 내 정치 역학이 파벌을 중심으로 움직임에는 변함이 없다.
물론 자민당 내에서도 고이즈미를 지지하는 무파벌 의원이 수십 명 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러나 명확하게 지지를 표명하고 구성원 전체가 일사불란하게 보스의 총재 당선 목표를 향해 힘을 모을 수 있는 파벌을 얼마나 흡수할 수 있느냐가 승패의 관건이 된다. 지금 고이즈미의 능력으로는 어림도 없을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고이즈미가 총리가 되려면 국민적 지지를 유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와 함께 자민당 내 동료 의원들의 확고한 지지를 확보해야 한다는 전제가 뒤따른다. 따라서 고이즈미는 환경 대신으로 국정 경험을 쌓으면서 정책 능력과 국민적 인기 양면에서 평가를 받을 수 있어야 비로소 총재로 등극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아베가 지금까지 자신에게 각을 세우며 비협조적이었던 고이즈미에게 장관 포스트를 내준 것도 자의라기보다는 타의에 의한 결과이며, 또한 자신의 헌법 개정과 차기 총선 등의 선거를 의식한 인사이다. 고이즈미의 국민적 인기를 향후 선거와 헌법 개정을 위한 여론 조성에 적극 활용하고자 하는 포석이다. 내 생각엔 아무리 보아도 아베가 후임자로 생각하는 인물은 고이즈미가 아닌 ○○○인 것 같다.
걸림돌 2: 일본 조직의 연공서열 중시 문화
이외에도 일본 조직의 년공서열을 중시하는 문화도 고이즈미의 빠른 등판에 걸림돌이 될 것이다. 특히나 원로들이 지금도 현역으로 권력 핵심부에 포진한 자민당의 구조로 볼 때, 고이즈미는 장래성도 있고 국민적 인기가 높기에 선거에 유용하게 이용할 수 있는 하나의 ‘패’에 불과할 수도 있다.
더구나 지난번 참의원 선거에서 야당에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며 향후 일본 정치지형의 변화를 예고한 레이와 신센구미(れいわ新選組)의 야마모토 다로(山本太郎) 같은 젊은 야당 정치인을 견제하는 ‘대항마’로 고이즈미가 지극히 유효함을 자민당의 노회한 원로들은 익히 안다.
개각 이후 연일 TV를 비롯한 언론에서 고이즈미 띄어주기에 혈안이 되어 있다 보니 그리 보일뿐, 현실 정치 세계는 드라마보다도 복잡하고 냉혹한 복마전 같은 곳이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아무튼 난 고이즈미는 빨라야 아베의 차차기로 등장할 것에 500엔 걸었다. 물론 어디까지나 흥미 위주의 분석이긴 하지만 정치는 생물과도 같은 것이니 향후 어찌 굴러갈지는 나도 모르고 당신도 모르고 우리 모두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증폭하는 궁금증에 여러 시나리오를 구상해 보고 이렇게 소설을 쓰며 점쳐보는 것이다.
고이즈미 얘기는 이 정도로 갈무리하고, 그럼 포스트 아베로 차기 총리로 가장 유력한 XXX와 ○○○는 누구이며, 이번 개각의 특징과 향후 한국과의 관계에 대해 조명하는 것은?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원문: Hun-Mo Yi의 페이스북